황금 군주 (2)
‘구오피 판매는 상인에게 맡기는 게 제격이지.’
중화길드가 열심히 구오피를 판매해 아이템과 스킬북 그리고 골드를 긁어모으고 있지만.
애초에 중화길드는 돈이 아니라 몬스터와의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새롭게 담당 직원을 뽑고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로크토 제국과 그 제후국들에게 구오피를 판매하는 것조차 한계에 도달해 삐걱거리고 있었다.
‘중화길드의 역량으로 두 달 안에 아틀란티스 차원 전역에 구오피를 판매하는 건 무리다.’
두 달.
그 안에 아틀란티스 전역에 구오피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어.’
독충 군단에게 중독당한 플레이어는 석 달 안에 사망한다.
벌써 한 달이 지났으니 두 달 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틀란티스 전역에 구오피를 공급해야 한다.
‘이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야.’
마왕군의 침공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사건 중 하나인 독충 군단의 등장.
그 피해를 무로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에마알이라면 가능하다.’
회귀 전 황금 군주라고 불리며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상인이 된 그라면.
아무런 무리 없이 두 달이라는 시간 안에 아틀란티스 전역에 구오피를 공급할 수 있으리라.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 사에마알, 5년 안에 골드로드상단을 아틀란티스 최고의 상단으로 키워 주군께 바치겠습니다.”
사에마알의 말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10년간 빚 갚는 노예로 살다가 다시 재기에 성공해 10년 만에 아틀란티스 최고의 대상이 된 사에마알이다.
사에마알이 허투루 날릴 10년의 세월을 무로 만들었다.
구오피라는 황금 보검도 주었다.
“믿으마.”
그런 사에마알이라면.
‘5년이라는 시간 내에 골드로드상단을 아틀란티스 최고의 상단으로 키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겠지.’
거기다 중간중간 강현수가 미래 정보를 던져 줄 생각이니.
잘하면 5년이 아니라 2~3년 안에 골드로드상단을 아틀란티스 최고의 상단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주군의 믿음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사에마알이 의욕에 불타는 눈빛으로 대답하자.
“두 달, 그 안에 아틀란티스 전역에 구오피를 안정적으로 공급시켜라.”
강현수의 첫 번째 지시가 떨어졌다.
‘나의 능력을 시험하시는구나.’
두 달.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에마알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미 코가 꿰이기도 했고.
상인으로서 구오피 판매 독점이라는 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에마알이 아니라 다른 상인을 선택할지도 몰랐다.
“예, 주군!”
사에마알의 힘찬 대답을 들은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중화길드가 골드로드상단에게 구오피 판매 대행을 맡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이트어 왕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단들은 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심 중화길드가 자신의 상단에 구오피 판매 대행을 맡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기 때문이다.
판매 대행을 맡은 골드로드상단은 빠르게 움직였다.
아틀란티스 전역에 골드로드상단의 지점을 세우며 규모를 무시무시하게 키운 것이다.
사실 아틀란티스 전역에 골드로드상단의 지점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사에마알은 불과 보름 만에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 방법은 바로 지구의 프랜차이즈 회사였다.
새롭게 상단 지부를 만든 게 아니라 그 지역의 상단과 계약을 맺고 골드로드상단의 지점으로 간판만 바꿔 달게 만든 것이다.
그 후 골드로드상단의 지점들은 구오피 판매를 시작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본 다른 상단의 견제, 영주의 간섭, 터줏대감 길드의 방해 등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골드로드길드는 중독된 플레이어들을 구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때로는 화합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대립하며 구오피 판매를 이어 나갔다.
* * *
‘훌륭하네.’
두 달의 시간을 줬지만.
사에마알은 불과 한 달 반 만에 아틀란티스 전역에 안정적인 구오피 판매망을 만들었다.
‘지점 숫자로는 벌써 대륙 최고겠어.’
하지만 아직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었다.
지점장들의 충성도, 중간 관리 인력 부족, 안정적인 유통망 구축 등등.
거기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구오피 판매 권한을 빼앗고 싶어 하는 세력들의 견제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꽤 험난한 여정을 하게 되리라.
‘그건 알아서 잘 극복하겠지.’
강현수가 기억하는 사에마알이라면.
이 정도 문제는 알아서 잘 극복해 나갈 것이다.
‘이제 슬슬 가 봐야겠네.’
얼마 후 무란 왕국의 변방에 차원 게이트가 열린다.
그리고 그 차원 게이트로 인해.
무란 왕국의 국토 절반이 불타는 대참사가 발생할 예정이다.
지금쯤 출발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어.’
차원 게이트 자체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가능했다.
그리고 덤으로.
‘쓸 만한 소환수를 잔뜩 얻을 수 있겠지.’
이번 차원 게이트를 통해 나오는 몬스터들은 용종.
리자드맨 같은 하위 용종부터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같은 상위 용종까지 대거 포함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보스 몬스터가 마룡 카라스였지.’
회귀 전 마룡 카라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무려 21명의 네임드 플레이어와 3백 명이 넘는 랭커가 사망했다.
‘마룡 카라스를 소환수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
그건 도왕을 소환수로 만든 것 이상의 엄청난 성과가 될 것이다.
* * *
“정말 무란 왕국의 국토 절반이 불타는 대참사가 일어나?”
투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무란 왕국은 미우나 고우나 투황의 모국이었다.
또 투황의 일족들 역시 무란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맞아.”
“끄응, 무조건 막아야겠네.”
투황이 이를 악물었다.
강현수가 미래 예지 스킬을 통해 무란 왕국에 벌어질 대참사를 예견했다.
무조건 막아야 했다.
막지 못하면?
그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수천만의 난민이 발생하리라.
“무란 왕국에 알릴 수는 없을까?”
“소환수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기는 할 테지만, 과연 믿을지 모르겠네.”
“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투황은 강현수에게 미래 예지 스킬의 존재를 밝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밝혔다간 강현수가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가자. 미리 알았으니까 막을 수 있을 거야.”
송하나의 말에 투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함께 짐을 챙기고 무란 왕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사실 이번 미래 예지 스킬은 꽝이었는데.’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미래를 두 번이나 봤다.
첫 번째는 강현수, 송하나, 투황 세 사람이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미래였고.
두 번째는 어떤 저레벨 파티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미래였다.
‘어차피 큰 기대는 안 했으니까.’
강현수가 미래 예지 스킬을 원했던 이유는 자신이 알고 있는 회귀 전의 정보를 동료들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풀어놓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두 번 다 꽝이 나왔지만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 * *
강현수 일행이 무란 왕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목적지는 수도 굴라가 아닌 서부 변방이었다.
“정말 이런 오지에 차원 게이트가 열린다고?”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미래 예지 스킬을 통해 봤다고 했으니까 확실하겠지.”
“언제 차원 게이트가 열릴지 모르니까 일단 이곳에서 대기하자.”
사실 강현수도 차원 게이트가 열리는 정확한 날짜는 몰랐다.
워낙 오지에 차원 게이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엄청난 숫자의 용종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와 무란 왕국의 대도시 바란을 침공하기 전까지 무란 왕국은 차원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초기에 틀어막는다.’
차원 게이트가 열린 장소에 대기한다.
그 후 차원 게이트가 열리면?
‘나오는 족족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야.’
물론 마룡 카라스가 나타나면 무조건 후퇴해야 했다.
그놈은 현재 강현수 일행이 잡을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마룡 카라스만 등장하지 않으면 충분히 꿀을 빨 수 있어.’
송하나와 투황은 현재 600레벨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광렙을 하면?
‘무난하게 600레벨을 찍을 수 있겠지.’
어쩌면 600레벨 중반까지 레벨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열릴 차원 게이트에서 등장할 용종 몬스터들은 모두 600~900레벨대의 고레벨 몬스터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경고도 해 줘야겠지.’
강현수가 소환수들을 흩뿌렸다.
* * *
무란 왕국의 변경백 부카쿠 백작.
그는 호인족이자 서부의 맹호라는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였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공간인 수련장에 누군가가 침입했음을 손쉽게 알아차렸다.
“웬 놈이냐!”
부카쿠 백작의 물음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암살자인가?”
부카쿠 백작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나는 암살자가 아니다. 그저 너에게 알려 줄 정보가 있기에 찾아왔을 뿐.”
“정보?”
“조만간 서부 지역에서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린다.”
“흥!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차원 게이트는 수시로 열린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틀란티스 차원의 몬스터는 진작에 멸종했을 것이다.
“차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 네가 다스리는 영지를 습격할 거다.”
“뭐?”
부카쿠 백작은 대도시 바란을 다스리는 영주였다.
자신의 영지가 몬스터들에게 습격을 당한다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상소집령을 내려 성벽을 보수하고 병력을 배치해라. 그리고 무란 왕실에도 이 사실을 알려 지원군을 요청해라. 그러지 않으면 대도시 바란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해 불바다로 변하고, 네 영지민들은 모두 몬스터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할 것이다.”
부카쿠 백작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악담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영지 자체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다니?
영지민들이 모두 몬스터 밥이 될 거라니?
부카쿠 백작은 자신의 실력과 영지에 자부심이 강했다.
대도시 바란은 국경 지대에 위치한 탓에 마왕군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란 왕국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해 왔다.
그렇기에 그간 수많은 외적과 몬스터의 침공을 받았지만.
단 한 차례도 함락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한데 그런 자신의 영지가 고작 몬스터 따위에게 함락당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부카쿠 백작이 도전적인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물었다.
정체를 당당하게 밝힌 것도 아니고 딱 봐도 ‘나 수상한 놈이오.’ 하는 차림으로 등장한 상대의 말을 어찌 믿겠는가?
“믿지 않는다면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후회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네가 될 테니까.”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런데 넌 어떻게 차원 게이트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마왕의 하수인이냐? 아니면 미래를 보기라도 하는 거냐?”
사실 전자일 확률은 없었다.
마왕의 하수인이라면 차원 게이트의 등장을 경고해 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후자일 확률 역시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미래를 본다는 말인가?
“우리 동료 중에 미래 예지 스킬을 가진 이가 있다.”
상대의 말에 부카쿠 백작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스킬.
그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는 힘이었다.
거기다 동료 중에 미래 예지 스킬을 가진 이가 있다는 말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뜻. 단체일 수도 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부카쿠 백작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부카쿠 백작이 저자의 말을 듣고 비상소집령을 내린다면?
병사들이 고생을 좀 하기는 하겠지만.
큰 손해는 없었다.
왕실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큰 망신을 당하고 왕국군이 헛수고를 하겠지만.
그 역시 망신살이 뻗칠 뿐 큰 손해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자신의 정체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놈의 말을 들을 성싶으냐!”
가장 확실한 건 상대를 생포해 정체를 밝힌 후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었다.
“네놈의 정체부터 밝혀라!”
부카쿠 백작이 노성을 토해 내며 정체불명의 존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생포한 후 동료들이 어디 있는지 캐물을 작정이었다.
정보의 진위도 확인하고 미래 예지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플레이어도 확보할 수 있으니, 부카쿠 백작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였다.
콰콰콰콰콰!
부카쿠 백작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향해 순백의 오러에 휩싸인 검을 휘두르는 순간.
꽈아아앙!
칙칙한 회색빛 오러의 폭풍이 부카쿠 백작의 전신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