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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레벨 플레이어-72화 (72/365)

황금 군주

“사방에서 상인들이 돈을 싸 들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주인님.”

멸마창왕 진구평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강현수에게 보고를 올렸다.

독충 군단으로 인한 피해는 중화길드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전폭적으로 루키들을 키우고 있었기에 피해가 타 길드에 비해 월등히 컸다.

그나마 강현수가 밀어주라고 했었던 힐러 장소화가 힐을 도트식으로 넣기에 다른 길드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결국 도긴개긴이었다.

그때 구세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강현수였다.

강현수는 중화길드와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그동안 창고에 쌓아 두었던 구오피를 넘겨주었다.

그 덕에 중화길드는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것을 넘어 오히려 구오피를 전략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었다.

마이트어 왕국을 비롯한 각국의 정규군에 구오피를 납품하는 조건으로 막대한 이권을 챙긴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중화길드와 경쟁자 관계에 있던 길드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이권을 양보하며 구오피를 구매해 갔다.

멸마창왕 진구평의 입장에서는 길드장으로서의 입지가 더없이 탄탄해짐과 동시에 중화길드의 세력까지 키울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골드로드상단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나?”

“예, 아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워낙 먼 곳에 있는 상단이라서 소식을 접하는 게 꽤 늦는 모양입니다.”

“골드로드상단이 접촉하면 무조건 상단주가 직접 오라고 해. 그리고 곧바로 나한테 보내고.”

“알겠습니다.”

“아이템과 스킬북은 창고에 있나?”

“예,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강현수와 멸마창왕 진구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창고에 가득 쌓인 A랭크 이상의 아이템과 스킬북이 강현수의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맡기기를 잘했어.’

중화길드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은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사냥하느라 바쁜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각국의 재상이나 각 길드의 제정 담당을 만나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괜히 헛수작 부리는 놈들도 없어졌고.’

강현수가 개인 신분으로 구오피를 판매했다면?

분명히 만만하게 보고 찝쩍거리는 놈들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중화길드를 내세우자 모든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중화길드의 세력과 영향력도 커졌고.’

중화길드는 멸마창왕 진구평의 것이고 멸마창왕 진구평은 강현수의 것이다.

구오피 판매로 강현수의 힘이 커진 것이다.

창고에 쌓인 A랭크 이상의 아이템과 스킬북은 중화길드가 구오피 판매를 조건으로 국가나 타 길드로부터 양도받거나 구매한 것들이었다.

강현수가 직접 나섰다면 어려웠을 일이.

중화길드를 통하니 너무도 손쉽게 해결되었다.

“챙겨라.”

사아아악!

강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환수들이 아이템을 챙겼다.

적당히 선별한 후 소환수들을 무장시키고 남는 물량은 탐식의 검에게 먹이로 던져 줄 생각이었다.

스킬북의 경우는 강현수가 직접 살펴보며 직접 익히든 챙기든 수호의 반지에 흡수시키든 할 생각이었다.

‘아이템과 골드가 미친 듯이 들어오네.’

이렇게 많은 아이템과 스킬북을 구오피 판매 대가로 받았음에도 골드가 계속해서 쌓였다.

‘역시 사람은 계약을 잘 맺어야 해.’

강현수가 중화길드와 맺은 구오피 독점 공급 계약.

그 계약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방적으로 강현수가 유리한 조항들로만 채워졌다.

얼마나 유리하냐면.

중화길드가 구오피를 백날 팔아 봐야 본전치기밖에 못 할 정도였다.

거기다 강현수가 원하면 언제든지 독점 공급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는 조건도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종료하면 오히려 손해지.’

중화길드 길드원들이 발바닥에 땀나게 뛰고 있다.

거기다 추가로 구오피 약초 관리와 판매를 전담하는 직원들까지 새로 뽑았다.

또 각국 재상들이나 거대 길드의 재정 담당자들을 찾아오면 기본적인 접대는 해 줘야 했다.

바이어가 찾아왔는데 냉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무리 중화길드가 갑의 입장이더라도 상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거물들.

미래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예우를 갖춰 접대를 해 줘야 했다.

그렇게 나가는 인건비와 접대비를 포함하면?

중화길드는 오히려 소량의 적자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중화길드의 그 누구도 멸마창왕 진구평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찬양했다.

엄청난 위기를 손쉽게 넘겼다.

거기다 발 빠른 구오피 독점 공급 계약으로 경제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무형적으로 얻은 이득이 어마어마했다.

거기다 판매 조건으로 인해 양도받은 이권은 그대로 중화길드에 귀속되니 단기적으로는 손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이었다.

“내일 다시 찾아오지.”

보고도 받았고 아이템과 스킬북도 챙긴 강현수가 중화길드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길드장님, 말씀하신 골드로드상단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상단주가 직접 온 모양입니다.”

강현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골드로드상단의 주인 황금 군주 사에마알이 도착했다.

* * *

‘무조건 공급 계약을 맺어야 한다.’

맺지 못하면?

사에마알은 파산이다.

‘가성비로 보나 공급 물량으로 보나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독 약초는 구오피뿐이다.’

다른 약초들은 너무 비싸고 공급 물량도 적었다.

“잠시 후에 길드장님이 도착하실 겁니다.”

중화길드 사무원의 말에 사에마알의 표정이 굳어졌다.

“길드장님? 멸마창왕께서 직접 오신다는 말씀입니까?”

“예.”

중화길드 사무원의 말을 들은 사에마알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길드장인 멸마창왕 진구평이?’

판매 담당 직원만 잘 구워삶으면 구오피 약초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갑자기 중화길드의 길드장인 멸마창왕 진구평이 직접 온다고 한다.

‘이득인가, 손해인가?’

잘만 하면 빅딜을 통해 손해가 아닌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사클란트 제국의 구오피 약초 독점 공급권을 따내기라도 한다면?’

골드로드상단은 사클란트 제국 10대 상단 중 하나가 아니라 독보적인 1위 상단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길드장인 멸마창왕 진구평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구오피를 구하지 못할 수 있어.’

사에마알이 양손을 꽉 움켜줬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가 온다.

그때 안정을 생각하면?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지.’

사에마알은 상인이었다.

그리고 상인으로서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멸마창왕 진구평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해.’

그래야만 사클란트 제국의 구오피 약초 독점 공급권을 따낼 수 있다.

사에마알은 마음속에서 기존에 제시하려고 했던 계약 조건을 대폭 수정했다.

끼이이익!

그때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이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 멸마창왕 진구평이군. 그런데 옆에 있는 저 사람은 누구지? 혹시 검마 주위천? 아니야, 얼굴이 달라.’

사에마알은 급하게 오는 와중에도 정보 상인을 통해 중화길드에 대한 정보를 탈탈 털었다.

그래서 중화길드의 주요 간부의 인상착의에 대해서 습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보 상인이 넘긴 정보지 어디에도 저 청년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멸마창왕 진구평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골드로드상단의 상단주 사에마알이라고 합니다.”

사에마알은 일단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부터 했다.

털썩!

그때 멸마창왕 진구평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멸마창왕 진구평이 몸종이라도 되는 양 그 뒤에 얌전히 양손을 모으고 시립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사에마알이 머리에 물음표를 잔뜩 띄우고 있을 무렵.

“구오피 사러 왔지?”

청년이 입을 열었다.

“예, 그렇습니다.”

“기왕이면 사클란트 제국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원할 거고?”

마치 사에마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물음.

‘아니다. 난 사클란트 제국의 상인이야. 그럼 독점 판매권을 원하는 게 당연하다.’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장사가 바로 독점 판매권이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가 어찌 그런 과한 배려를 바라겠습니까. 하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성실히 임하여 중화길드의 이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에마알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중화길드의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도 길드 마스터인 멸마창왕 진구평보다 직위가 높아 보였다.

‘숨겨진 중화길드의 실권자인 건가?’

상대는 지구 차원의 동양인 외모를 하고 있었고.

중화길드 하우스에서 길드장과 함께 등장했다.

당연히 사에마알 입장에서는 중화길드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난 네가 중화길드의 이득 말고 나의 이득을 위해서 일해 줬으면 하는데.”

그렇기에 상대의 말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사에마알이 재빨리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멸마창왕 진구평의 눈치를 살폈다.

‘변화가 없다.’

어쩌면 중화길드가 저 정체불명의 청년이 거느린 수많은 길드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명하신다면 충심으로 따르겠습니다.”

사에마알이 바짝 엎드렸다.

중화길드라는 거대 길드를 어둠 속에서 지배하는 세력의 인물이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지금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했다.

“거짓말을 하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대는 뼛속까지 상인이지. 이득이 없다면 절대 진심으로 나를 따를 리가 없어.”

강현수의 말에 사에마알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상인이니까 그럴 것이다.’라고 말한 게 아니라 ‘사에마알 너는 그런 놈이지.’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나?’

어쩌면 미리 조사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게 당연한 거다. 나를 몰랐다면 여기까지 불렀을 리가 없어.’

자신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자.

‘사클란트 제국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확보할 수 있겠어.’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떠올랐다.

‘문제는 내가 그 대가로 뭘 줘야 하냐는 건데.’

답은 간단했다.

상인에게 원하는 게 돈 말고 뭐가 있겠는가?

“너에게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상인 자리를 주마.”

“예?”

사에마알이 화들짝 놀랐다.

사클란트 제국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상인 자리를 주겠다니?

“어쩌겠느냐? 나를 따르겠느냐?”

“거절하겠다면 저를 죽이실 겁니까?”

사에마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죽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죽고 싶은 상황이 되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구오피를 구매하지 못하면 넌 어차피 망하지 않느냐?”

청년의 말에 사에마알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선택해라. 나를 따르겠느냐, 아니면 따르지 않겠느냐?”

청년의 물음에 사에마알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상인 자리를 주겠다는 허황된 미래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앉은자리에서 망할 수는 없지.’

구오피를 구하지 못하면 어차피 망한다.

그냥 망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크게 망한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 힐러 일만 해야 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은 모두 빚을 갚는 데 쓰일 것이다.

그런 참담한 미래를 막을 수만 있다면.

사에마알은 악마와도 계약할 수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처참한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상대가 내면 손을 붙잡아야 했다.

“따르겠습니다.”

결국 사에마알은 정체도 알 수 없는 청년의 제안을 수락했다.

‘계약서를 쓰려나?’

아틀란티스 차원에는 절대 어길 수 없는 계약이 존재한다.

영혼의 계약서나 신념의 서약 같은 아이템을 통한 계약이었다.

“그럼 수락해라.”

청년의 말과 함께.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시스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이건 또 뭐야?’

정확히 어떤 단점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혼의 계약서나 신념의 서약보다는 낫다.’

사에마알이 예를 선택했다.

[분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1% 증가합니다.]

‘분대장?’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지만.

어쨌든 상대의 조건을 수락했다.

이제는 혜택을 받을 차례였다.

‘사클란트 제국의 구오피 약초 독점 공급권 정도는 주겠지.’

사클란트 제국은 로크토 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제후국을 거느린 대국이다.

사클란트 제국의 구오피 약초 독점 공급권을 얻으면?

자연스럽게 제후국들에도 약초를 판매할 길이 열린다.

“너에게 구오피 약초 독점 공급권을 주겠다.”

“감사합니다!”

구오피 약초 독점 공급권을 주겠다는 청년의 말에 사에마알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사클란트 제국이라는 말이 빠졌지?’

너무 사소한 거라서?

그게 아니면 그냥 깜빡하고?

사에마알의 머릿속이 의문점으로 물들어 가고 있을 때.

“형식은 중화길드가 골드로드상단에 약초 공급권을 일임하는 형태로 진행될 거다. 그러니 골드로드상단과 중화길드 모두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구오피 약초를 판매해라.”

청년의 말이 이어졌다.

‘어?’

사에마알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너무 사소해서 뺀 게 아니었다.

그냥 깜빡한 것도 아니었다.

‘나한테 아틀란티스 차원 전역에 판매되는 구오피의 독점 공급권을 준다고?’

머릿속이 맹렬하게 굴러갔다.

독점 공급권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불현듯 청년이 방금 전했던 아틀란티스 차원 최고의 상인 자리를 주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허언이 아니었어.’

구오피 약초의 독점 공급권을 얻는다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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