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69화 (69/365)

살아 있는 광고판 (2)

“그, 그게.”

멸마창 진구평이 창백하게 변한 안색으로 머뭇거렸다.

“왜, 싫어?”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 주인님.”

멸마창 진구평이 공손한 태도로 마창 펜리르의 이빨을 강현수에게 바쳤다.

“전 그저 로크토 제국 황제의 반응이 걱정될 뿐이었습니다. 하사품이 사라지면 여러 문제가…….”

“입 다물어.”

“…….”

강현수의 말에 주절주절 핑계를 늘어놓던 멸마창 진구평이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가능할까?’

아마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았다.

S랭크에서도 SS랭크를 흡수하지 못했다.

당연히 격 차이가 더 심한 SS랭크가 SSS랭크 아이템을 흡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테스트는 해 봐야지.’

만약 성공한다면 말 그대로 초대박 아니겠는가?

사아아악!

[탐식의 검 SS랭크가 펜리르의 이빨 SSS랭크를 흡수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역시 실패했다.

“쯧!”

강현수가 짧게 혀를 찼고 울상이던 멸마창 진구평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펜리르의 이빨을 빼앗아 소환수에게 던져 주고 싶었지만.

‘마땅히 쓸 놈이 없어.’

멸마창 진구평을 죽여서 소환수로 만들면 모를까.

현재는 창인 펜리르의 이빨을 제대로 다룰 만한 소환수가 없었다.

또 멸마창 진구평의 말처럼 로크토 제국 황제의 하사품이 갑자기 사라지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받아라.”

결국 강현수가 멸마창 진구평에게 펜리르의 이빨을 넘겼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펜리르의 이빨을 다시 받아 들자 핏기가 빠져나가 창백했던 멸마창 진구평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며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멸마창 진구평이 강현수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결코 마음 편하게 웃지 못했으리라.

왜냐하면.

나중에 다시 회수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탐식의 검이 SSS랭크가 된 후에 먹이로 주면 되겠지.’

어차피 멸마창 진구평도 강현수의 수족 중 하나.

족쇄가 걸린 수하에게 잠시 맡겨 놨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강현수는 굳이 그 사실을 멸마창 진구평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괜히 말해서 사기를 떨어트릴 필요는 없으니까.’

앞으로 멸마창 진구평이 해 줘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런 만큼 당분간은 힘을 실어 줘야 했다.

“앞으로 중화길드에 도전하는 자들이 많이 나오겠지?”

“로크토 제국 황제와 마이트어 왕국 국왕의 비호가 있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명 어려워질 게 확실합니다.”

중화길드의 전력은 반의반 토막도 모자라 사실상 거의 절멸한 상태였다.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 전력이 아홉 명에서 네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 네 명 중 두 명이 네임드 플레이어라는 것 정도다.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를 제외한 전력 손실은 더 처참했다.

허리를 든든하게 받쳐 줄 중고레벨 플레이어들은 거의 전멸 상태였다.

많은 골드와 아이템 그리고 스킬북을 하사품으로 받지 못했다면?

거대 길드의 규모를 유지조차 하지 못하고 중소 길드 중에서 좀 특출 난 강소 길드 정도로 전락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힘없는 자가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도 죄지.’

길드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소속된 플레이어의 레벨과 숫자.

지킬 힘이 없는 이가 가진 많은 양의 골드, 아이템, 스킬북은 복이 아니라 화가 될 수도 있었다.

‘로크토 제국과 마이트어 왕국의 비호가 있으니 대놓고 전쟁을 벌이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흘러 이번 사건으로 인한 파장이 가라앉고 로크토 제국과 마이트어 왕국의 시선이 느슨해지면?

슬금슬금 시비를 걸고 무형적으로 압박을 가해 중화길드가 알아서 골드, 아이템, 스킬북을 가져다 바치게 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원래 강현수는 중화길드의 규모가 축소된 상태로 방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새롭게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된 멸마창 진구평이 강현수의 수족이 된 이상.

계획의 변경은 불가피했다.

‘검존 주위천을 감시하기도 편하고.’

배신자 중 하나인 도왕 경위강은 죽어 소환수가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배신자인 검존 주위천은 아직 수확할 때가 아니었다.

칭호도 없는 고레벨 플레이어 주위천이 무럭무럭 성장해 도왕 경위강을 뛰어넘어 다시금 검존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는 수준이 되어야.

‘수확할 맛이 나지.’

그러려면 중화길드의 규모와 위상을 키워야 했다.

‘검존 주위천이라면 얼마든지 만신창이가 된 중화길드를 떠나 버릴 수 있어.’

그럼 나중에 검존 주위천을 수확하기가 번거로워진다.

“네놈에게 힘을 실어 주마.”

“예?”

강현수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멸마창 진구평을 소대장에서 중대장으로 승급시켰다.

“오오오오!”

늘어난 스텟이 5%에서 10%로 변하자 멸마창 진구평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휘관의 축복.’

C랭크에서 B랭크로 성장한 지휘관의 축복은 총 50명에게 사용할 수 있었다.

또 늘어나는 스텟 역시 15%에서 20%로 증가했다.

“허억!”

중대장 임명으로 기본 스텟이 10% 증가한 상태에서 지휘관의 축복으로 기본 스텟이 20% 더 증가했다.

총스텟이 무려 30%나 증가하자 멸마창 진구평의 얼굴에 강한 환희가 피어올랐다.

멸마창 진구평의 현재 레벨은 925.

죽을 고생을 해서 1레벨을 올리면?

겨우 열 개의 미분배 스텟이 주어진다.

당연히 레벨이 올라도 강해졌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전신에서 힘이 넘쳐흘렀고 강대한 마력이 몸 밖으로 흘러나와 넘실거렸다.

‘이 정도라면.’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여겼던 도왕 경위강조차도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늘어난 힘에 도취되어 반쯤 풀린 눈을 하고 있던 멸마창 진구평에게 뭔가가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지만.

휘익!

손이 빗나갔고.

따악!

강현수가 휘두른 검집이 멸마창 진구평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악!”

멸마창 진구평이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검집 모서리에 정수리를 직격당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쯧쯧쯧, 미련한 놈에게 너무 과한 힘을 줬네.”

강현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님?”

멸마창 진구평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물었다.

“너 지금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 도왕이든 도황이든 도신이든 나타나기만 하면 묵사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마치 자신의 속을 훤히 읽고 있는 듯한 강현수의 발언에 진구평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하지만 자신이 틀린 생각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멸마창 진구평의 레벨은 925.

그간 주워 먹은 업적 덕에 올린 스텟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레벨은 무려 1000이 넘었다.

한데 그런 자신이 더 강해졌다.

체감상으로는 레벨업을 5백 번은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정도라면 도왕 경위강과도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착각이다.”

실제로 멸마창 진구평의 스텟이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레벨업을 5백 번 한 수준은 아니고 대략 그 절반이 조금 넘는 3백 번 정도 한 수준이었다.

“네 스텟은 아직 도왕 경위강 수준이 아니야. 그리고 스텟만 올리면 다라고 생각하냐? 설사 스텟이 도왕 경위강과 대등한 수준이 된다고 해도 넌 다른 게 전부 수준 미달이야.”

강현수의 냉정한 한마디에 멸마창 진구평이 속으로 발끈했다.

하지만 속으로만 발끈할 뿐.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주인이 종을 나무랐다고 종이 주인에게 대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표정 관리를 해도 억울하다는 듯한 눈빛은 감출 수가 없었다.

“왜, 설마 신체 능력이 동일하면 네 창으로 도왕 경위강의 도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아?”

강현수의 물음에 멸마창 진구평의 눈에서 자신감이 사라졌다.

멸마창 진구평은 도왕 경위강과 많은 횟수의 지도 대련을 했다.

스킬을 사용하고 전력을 다한 대련도 있었고, 순수하게 창법과 도법만을 사용한 대련도 있었다.

그렇지만.

멸마창 진구평은 도왕 경위강에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신체 능력이나 스킬의 문제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서로가 지닌 무에 대한 역량의 차이였다.

“도왕 경위강을 따라잡고 싶으면 일단 늘어난 신체 능력과 마력에 대한 적응부터 해야 할 거다.”

마력이 몸 밖으로 흘러나와 넘실거린다는 건?

제대로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체 역시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넋이 나갔다지만 강현수의 검집에 정수리를 가격당하고 고통스러워하다니?

강현수는 현재 누적 스텟의 대부분을 소모한 상태.

순수 스텟은 고작 400레벨대 플레이어 수준이었다.

주인인 강현수의 공격이니 일부러 맞아 준 걸 수도 있을 테지만.

본능적으로 팔을 움직인 멸마창 진구평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강현수의 공격을 일부러 맞아 준 게 아니라.

막으려고 했는데 못 막은 거였다.

900레벨이 넘어가는 놈이.

스텟의 총합은 1200레벨대 플레이어 수준인 놈이.

멸마창이라는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인 놈이.

고작 400레벨대 플레이어 수준인 강현수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니?

아무리 방심해 있는 상태였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신체 감각이 다 뒤틀렸을 거다. 빨리 적응하는 게 좋아.”

힘이 강해지고 속도도 올라갔지만.

반대로 섬세함이 떨어지고 둔감함이 더해졌다.

신체 제어력이 바닥을 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갑자기 크게 증가한 신체 능력에 적응하려면?

아마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할 터였다.

“죽어라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죽어라 해야 할 거야. 다음에 만났을 때까지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 힘을 다시 거둬 갈 테니까.”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이미 전신에 넘쳐흐르는 강대한 힘과 마력에 중독된 멸마창 진구평에게.

그 힘을 다시 거두어 갈 수도 있다는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꼭 해내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너, 예산의 법칙 알지?”

“예?”

“올해 예산을 다 못 쓰면 내년 예산이 줄어든다. 반대로 올해 예산을 다 쓰면 내년에는 예산이 올라가지.”

멸마창 진구평의 눈이 번쩍였다.

그 말은 늘어난 스텟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힘을 거두어 가겠지만.

잘 적응하면 더 강한 힘을 주겠다는 말 아니겠는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고?’

강현수의 말뜻을 헤아리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레벨은 그대로인데 더 강해진다.

그 고양감은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레벨 업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스텟이 대폭 상승했지만 멸마창 진구평의 레벨은 여전히 925다.

당연히 레벨을 얼마든지 더 올릴 수 있었다.

“반드시 추가 예산을 타 내겠습니다!”

멸마창 진구평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강현수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리고 추가로 지시할 것이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대원정을 떠났던 중화길드원 중에 주위천과 장소화라는 녀석이 있을 거다.”

“주위천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도왕 경위강이 전적으로 밀어주던 녀석입니다.”

“그래?”

“예, 거의 양아들처럼 끼고돌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도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네.’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장소화라는 길드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아봐. 힐러니까 찾기 쉬울 거다. 그 후에 그 둘을 길드 차원에서 대폭 밀어줘.”

“예?”

“아이템이랑 스킬북도 대대적으로 지원해 주고 레벨에 맞는 넓은 사냥터도 지원해 주라는 말이야.”

중화길드의 차기 주력으로 주위천과 장소화를 키우라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지시를 내리시는지?”

멸마창 진구평은 혹시 주위천과 장소화가 강현수와 친분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도 주위천과 장소화에게 잘 보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둘 다 네임드 플레이어로 성장할 만한 재목이다. 그러니 네 수족으로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멸마창 진구평에게 그리 어려운 주문은 아니었다.

주위천은 꽤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루키 신분에 불과했고.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줬던 도왕 경위강이 사망한 이상 끈 떨어진 연 신세였다.

장소화는 힐러라는 특별함이 있기는 하지만.

멸마창 진구평이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길드원이니 힐러들 중에서는 입지가 바닥일 것이다.

그 둘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면서 수족으로 만든다?

닳고 닳은 정치인인 멸마창 진구평으로서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잘 키워. 내가 최대한 빨리 수확할 수 있게.”

강현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수확’이라는 한마디에.

멸마창 진구평의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강현수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살이 아릴 정도의 농도 짙은 살기가 멸마창 진구평의 전신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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