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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레벨 플레이어-65화 (65/365)
  • 도왕 경위강 (2)

    “기, 길드 마스터가 오셨다!”

    “이제 우리는 살았어!”

    “와아아아! 이겼다!”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던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커다란 환호성을 토해 냈다.

    길드 마스터 도왕 경위강.

    그는 중화길드의 살아 있는 상징이자 절대지존이었다.

    단지 그의 존재를 목격했을 뿐임에도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이미 전투에 승리한 것처럼 굴었다.

    ‘왔구나.’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도왕 경위강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직접 찾아가려 했는데.

    아군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알아서 찾아온 것이다.

    전황이 너무 기울면 그대로 도망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도왕 경위강을 제거한다.’

    자신과 강제 각성 의식을 마친 3인이 함께한다면?

    도왕 경위강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유일한 변수라면?

    ‘저놈뿐이다.’

    멸마창 진구평.

    랭커 둘과 네임드 플레이어 하나를 제거한 이상.

    저놈만 제거하면 더 이상의 변수는 없다.

    콰콰콰콰!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3인의 플레이어와 함께 멸마창 진구평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퍼엉! 퍼엉!

    그나마 흡혈 필드가 늘려 준 능력치로 겨우겨우 버티던 멸마창 진구평은 금방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좌악! 서걱!

    갑옷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고 뼈와 살이 베어졌다.

    하지만 진구평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길드 마스터가 왔다.

    조금만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전신에 넘쳐흐르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흡혈 필드의 지속 시간이 끝난 것이다.

    ‘이런 망할.’

    퍼어엉!

    멸마창 진구평의 오른쪽 어깨가 터져 나갔다.

    휘익!

    이어 검날이 멸마창 진구평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파지지지직!

    그 순간 한 줄기의 뇌전이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3인의 플레이어를 향해 날아왔다.

    ‘거의 다 잡았는데.’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뇌전에 실려 있는 마력이 범상치가 않았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3인의 플레이어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뇌전이 내리친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커어억!”

    간발의 차로 목숨을 구한 멸마창 진구평이 폭발에 휩쓸려 뒤로 나뒹굴었다.

    “쯧쯧쯧, 모자란 놈.”

    곰처럼 거대한 체구를 가진 중년인이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진구평 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 길드 마스터.”

    “빌어먹을 놈. 잠자코 전력 보존이나 하고 있을 것이지. 내가 대원정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사고를 쳐?”

    “죄송합니다.”

    “네놈은 잠시 후에 보자.”

    도왕 경위강이 만신창이가 된 멸마창 진구평을 들어 살아남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던져 버렸다.

    “네놈들이냐, 감히 대중화길드를 공격한 놈들이?”

    도왕 경위강의 물음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어쩔 생각이지?”

    “어쩌긴 뭘 어째? 요절을 내 버려야지.”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자신감이 넘쳤다.

    만신창이로 변한 중화길드에 비해.

    카발길드의 경우 어느 정도 피해가 있기는 하지만.

    전력 자체는 아직 건재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 본인과 강제 강림 의식을 마친 3인의 플레이어들.

    네임드 플레이어 하나와 랭커 하나.

    거기다 수백에 달하는 카발길드의 최정예 플레이어들까지.

    고작 도왕 경위강 한 명 등장했다고 바꿀 수 있는 판이 아니었다.

    사실 방금 전까지는 도왕 경위강 같은 강자가 왜 정면 승부 대신 빈집털이를 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길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도왕 경위강과 멸마창 진구평의 대화로 인해 모든 의문이 풀렸다.

    ‘도왕 경위강은 방금 대원정에서 복귀했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럼 전에 아군 랭커들을 전멸시킨 존재는 누구지? 지금 길드 하우스를 공격하고 있는 놈들은?’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그 존재를 도왕 경위강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 이상한 놈들과 관련이 있겠지.’

    갑자기 연기처럼 증발해 버리는 존재.

    그놈들이 벌인 수작이 확실했다.

    ‘그놈들에 대한 정보는 도왕을 제거한 뒤 캐물으면 된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자리에서 도왕 경위강을 죽이는 일이었다.

    ‘네놈은 차라리 몸을 피하고 훗날을 도모했어야 했다.’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상.

    도왕 경위강은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도왕 경위강의 여유로운 표정에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눈가가 잠시 일그러졌다.

    ‘허세다.’

    허세가 확실했다.

    중화길드가 함께하면 모를까.

    중화길드 전력의 태반이 날아갔다.

    어디 그뿐인가?

    멸마창 진구평을 제외하면 대원정을 떠나지 않고 중화길드에 남아 있던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모두 죽었다.

    ‘시간을 끄는 게 확실하다.’

    중화길드에는 대원정을 떠났던 랭커 세 명이 존재했다.

    아마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확실했다.

    “그럼 어디 한번 증명해 봐라!”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그 말과 함께 도왕 경위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속전속결.

    최대한 빨리 도왕 경위강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시간을 끌면 변수가 생긴다.’

    대원정을 떠났던 중화길드 랭커 세 명.

    극심한 부상을 당했지만 회복 가능성이 있는 멸마창 진구평.

    사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그들이 전장에 합류해도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이니.’

    기적이 발생할 확률 따위는.

    ‘사전에 제거해야지.’

    콰콰콰콰!

    붉은 오러에 휩싸인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뒤를 따라 3인의 플레이어가 도왕 경위강에게 달려들었다.

    꽈아아아앙!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3인의 플레이어가 전력을 다한 공격이 도왕 경위강에게 적중했다.

    ‘끝이다.’

    피했으면 모를까 적중했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때.

    휘익!

    뇌전을 담은 한 자루의 도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크윽!”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에 서린 뇌전으로 인해 피부가 까맣게 타 버렸다.

    “증명해 보라고 했나? 그럼 내 그렇게 하지!”

    칙칙한 회색빛 구름에 휩싸인 도왕 경위강이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3인의 플레이어를 상대로 맹공을 펼쳤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꽈아아앙!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3인의 플레이어가 힘없이 뒤로 밀려 났다.

    회색빛 구름은 진짜 구름이 아니었다.

    그저 밀집된 오러가 중첩되고 중첩되어 구름처럼 보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도왕 경위강은 뇌기를 다루는 오러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직접 타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신체가 마비되는 증상이 연달아 나타났다.

    ‘이런 미친!’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경악했다.

    왕의 칭호를 받은 플레이어가 일반적인 네임드 플레이어보다 강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자신과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마족화를 통해 얻은 힘을 숨기고 있었다.

    마족화를 통해 얻은 힘을 드러내기만 하면?

    왕의 칭호는 우습고 황의 칭호도 손쉽게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마족화가 진행 중인 육체는 인간의 육체보다 월등히 강건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강림 의식을 준비하느라 조용히 있었기에 왕이나 황의 칭호를 얻지 못했을 뿐.

    자신의 실력이 도왕 경위강보다 아래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거기다 강제 강림 의식을 통해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 비슷한 수준의 강함을 획득한 3인의 플레이어가 있다.

    넷이 힘을 합치면 도왕 경위강 정도는 손쉽게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4 대 1로 싸우고 있음에도 힘에 부쳤다.

    “이놈을 죽여!”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랭커들과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재빨리 합류했다.

    하지만 모두 합류하지는 못했다.

    “이놈들 어딜 가냐!”

    “네놈들은 우리랑 놀자!”

    살아남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악착같이 들러붙어 개싸움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잔뜩 몰려든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을 보며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 순간.

    우르르르릉!

    하늘이 울리는 듯한 뇌성과 함께 칙칙한 회색빛 구름이 전장을 뒤덮었다.

    파지지직!

    천둥이 몰아치고 뇌기가 작렬했다.

    “아아아악!”

    “크억!”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명령에 따라 도왕 경위강에게 덤벼들었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새카맣게 탄 숯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썩어도 준치라고 랭커들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사실은.

    “이, 이럴 수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어 주지 못했다.

    * * *

    ‘설마 이게 전부였어?’

    강현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화염의 기사 제이미를 바라봤다.

    자신 있게 중화길드를 치기에.

    도왕 경위강의 등장에도 전혀 겁을 집어먹지 않기에.

    뭔가 숨겨 둔 한 수가 있는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그냥 도왕 경위강이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을 못 했던 거네.’

    도왕 경위강.

    그는 네임드 플레이어의 자리를 20년 가까이 지킨 괴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30년 넘게 지키지.’

    비록 나중에는 퇴물이 되어 도왕이라는 칭호 대신 망령도라는 칭호로 세간의 놀림감이 되었지만.

    어찌 되었든 네임드 플레이어의 자리는 지켰다.

    ‘거기다 미래에는 몰라도 지금 현재 도왕 경위강은 실력은 진짜야.’

    왕이라는 칭호를 당당하게 붙일 수 있는 최강자.

    그게 바로 도왕 경위강이다.

    ‘레벨이 비슷하다고 다가 아니야.’

    얻은 칭호의 숫자와 랭크에 따라 기본 스텟 차이가 난다.

    보유한 스킬과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의 종류와 랭크에 따라서도 실력이 천차만별이다.

    어디 그뿐인가?

    똑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누가 사용하느냐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전투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AOS 게임의 경우도 동일 캐릭터, 동일 레벨, 동일 아이템을 착용해도 브론즈가 컨트롤하는 것과 챌린저가 컨트롤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다이아몬드 정도지.’

    아무리 높게 쳐줘도 마스터 하위 등급이었다.

    그에 반해 도왕 경위강은 포텐셜이 제대로 터져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최상위 프로게이머급이었다.

    거기다 기본적인 스텟과 스킬 랭크도 월등히 높았다.

    그러니 마족의 힘을 빌려 급격하게 성장해 힘만 강한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화염의 기사 제이미 외 3인이 도왕 경위강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어라?’

    그때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역시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었구나.’

    강현수가 눈을 번뜩였다.

    ‘사이좋게 공멸해 주면 딱 좋겠는데.’

    그럼 자연스럽게 강현수가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었다.

    * * *

    ‘이대로는 끝장이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모두 마족과 계약을 맺은 상태다.

    마족과의 계약은 카발길드의 비밀을 지키게 해 주는 보안의 열쇠임과 동시에 혹시 모를 사태가 벌어졌을 때 마족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는 보고였다.

    길드 마스터인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고위 마족과 계약을 맺고 있었다.

    ‘백작의 힘을 끌어오면 충분히 이 위기를 타파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계약을 맺은 마족의 힘을 빌려 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필요했다.

    일반적인 대가는 바로 산 제물.

    하지만 효율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산 제물을 바쳐도 아주 잠깐 강해지는 게 전부였다.

    거기다 마기를 줄줄 흘리기에 한눈에 보기에도 마족의 하수인이라는 티가 팍팍 났다.

    그렇기에 강림 의식을 사용해 마족화를 하는 방법으로 영원불멸의 힘을 탐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는.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더라도.

    마족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이 들키더라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어.’

    문제는 지금 같은 전투 상황에서 갑자기 산 제물을 구할 수는 없다는 것.

    딱 한 가지 방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살아남으려면 그 수밖에 없어.’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자신과 계약한 마족 백작에게 간청했다.

    ‘제 수하들의 피와 살을 받으시고 저에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족과 계약한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

    그들은 마족화를 진행하기 위한 후보임과 동시에 유사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산 제물이기도 했다.

    -좋다, 허락하마.

    마족 백작의 대답과 함께.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전신에 막대한 마기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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