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62화 (62/365)

손절

‘근거리 공간 이동인가?’

그런 스킬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극히 희귀했다.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화염의 기사 제이미 역시 아직 스킬북을 구하지 못했을 정도로.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수하들에게 둘러싸인 또 다른 적에게로 다가가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사아아악!

꽈아아아앙!

이번에도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에 적이 사라진 것이다.

‘이게 무슨?’

그 희귀한 근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두 명이나 익히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공간을 다루는 스킬이 그렇게 흔할 리가 없었다.

설사 근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제이미의 기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몸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화길드의 숨겨 둔 저력인가?’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와아아아!”

“또 쓰러트렸어!”

“제까짓 놈들이 아무리 날뛰어 봐야 길드장님 손바닥 안이지!”

수하들은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적을 제거한 줄 알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측근들에게만 알리고 길드원들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어.’

괜히 대중적으로 알려서 길드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조사는 필요했다.

그래야 강제 강림 의식이 끝난 후 중화길드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길드장님! 침입자들이 성밖으로 도망쳤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한 간부의 보고에 제이미가 얼굴을 찌푸렸다.

‘함정이겠지.’

그럴 확률이 높았다.

“추격하지 않는다.”

길드 하우스가 공격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추격을 포기하면?

길드원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대외적으로 카발길드의 명예 역시 크게 실추될 게 확실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강제 강림 의식이 끝날 때까지는 최대한 몸을 사린다.

그게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내린 결정이었다.

“랭커 침입자 둘을 제거했다는 사실을 널리 퍼트려라.”

거짓 정보였지만.

길드원의 사기를 높이고 명예 실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 * *

‘하나도 잃지 않았어.’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카발길드와 중화길드가 충돌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하지만 타이밍을 정확히 맞춘 역소환 덕에 소환수를 하나도 잃지 않은 건 큰 이득이었다.

잃어도 스텟을 투자하면 얼마든지 부활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스텟은 최대한 아끼는 게 좋지.’

도왕 경위강이 복귀하면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전면전이 벌어진다.

그럼 수많은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그때 쓸 만한 소환수를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스텟을 모으고 소모를 최소화해야 했다.

‘잔금부터 받아야겠네.’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난 약속을 지켰어.’

중화길드가 요구한 것은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타격하고 자신들이 지정한 장소로 도주할 것.

강현수는 할 일을 했으니 당연히 잔금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또 중화길드는 현재 다섯 명의 한국인 랭커 중 두 명이 사망했다고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웬만큼 무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

강현수가 사냥을 지속하며 검귀와 심령을 연결했다.

“A랭크 아이템 열 개를 내놔라.”

강현수의 요구에 멸마창 진구평이 얼굴을 찌푸렸다.

“작전은 실패했다. 그런데 아이템을 요구하는 거냐?”

“우리는 네 요구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를 둘이나 잃었지.”

“작전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 움직여 다오. 그러면 약속을 지키지.”

“헛소리하지 마라.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니 아이템을 내놔라. 다시 일을 시키고 싶다면 이번에는 진짜 S랭크 아이템을 준비해야 할 거다.”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은 고민했다.

‘어차피 희생은 불가피하다.’

어쩔 수 없이 생길 희생이라면?

대가를 지불하고 용병을 쓰는 게 합리적이다.

“한데 너희한테 그럴 능력이 남아 있나?”

다섯이 셋으로 줄었다.

아무래도 문제를 일으키기에는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소수가 아니다.”

“뭐?”

“수백 명에 달하는 동료들이 대기 중이다. 알맞은 대가만 지불하면 바로 움직일 거다.”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

저들은 카발길드의 적이다.

당연히 대도시 다이온에서의 활동은 불가능하다.

근처에 다른 대도시는 루자베누밖에 없다.

하지만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등장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증명할 수 있나?”

“원한다면.”

상대의 당당한 태도는 결코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가지고 와.”

멸마창 진구평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멸마창 진구평의 심복이 미리 준비한 아이템을 들고 왔다.

“약속했던 A랭크 아이템 열 개다. 추가 임무에 대한 선불 역시 A랭크 아이템 열 개로 지급하지.”

“선불로 A랭크 아이템 15개.”

“뭐?”

“우리는 이 임무가 이렇게 위험할 줄 몰랐다.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동료가 죽을 수도 있다. 최소한 A랭크 아이템 30개 정도는 더 받아야겠다.”

“끄응.”

멸마창 진구평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미 지급한 A랭크 아이템이 무려 20개다.

여기에 30개를 더 지급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난 전쟁 중에 중화길드의 600~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컸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던 무구는 중화길드의 재산이다.

창고에 잘 보관했다가 시간이 흘러 600~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보충되면 그들에게 지급해 줘야 했다.

‘이놈들을 다시 고용하지 않으면 A랭크 아이템 20개를 날린 꼴이 된다.’

작전이 실패했으니 사실상 날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냥 저놈을 잡아?’

그럼 이미 지급한 SS랭크 아이템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큰 공을 세우는 일이다.

“거절인가?”

강현수의 물음에.

“아니다, 수락하겠다.”

멸마창 진구평이 콜을 외쳤다.

“수량 맞춰서 가지고 와.”

멸마창 진구평이 지시를 내리자.

멸마창 진구평의 심복이 아이템을 가지고 왔다.

“성공할 때까지다.”

“알겠다.”

강현수와 멸마창 진구평의 계약이 갱신되었다.

* * *

그날 저녁.

사냥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강현수가 무려 25개에 달하는 A랭크 아이템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충분히 S랭크로 성장시킬 수 있겠어.’

강현수가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쓸 만한 것들이 꽤 많네.’

전에는 비주류 무기만 골라서 줬다.

하지만 지금은 주류 무기가 꽤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신 단점이 하나씩 있었다.

‘옵션이 별로네.’

무기는 주류인데 상대적으로 붙어 있는 옵션이 비주류였다.

‘이건 송하나가 쓰면 좋겠네.’

강현수가 한 자루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마법 계열 스킬 공격력 강화 옵션이 붙은 장검이었다.

물리 계열 스킬 공격력 강화 옵션도 붙어 있기는 했지만.

순수 검사가 쓰기에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검사인 송하나가 쓰기에는?

딱이었다.

‘현재 사용하는 B랭크 장검과 옵션도 비슷하니까 적응하기도 편하겠네.’

강현수가 탐식의 검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사아아악!

탐식의 검이 A랭크 아이템들을 무차별적으로 먹어 치웠다.

한 다섯 개 정도 먹었을 무렵.

[탐식의 검이 A랭크에서 S랭크로 성장하였습니다.]

탐식의 검이 S랭크가 되었다.

‘이제 S랭크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건 따로 빼놓고.’

송하나에게 줄 장검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A랭크 아이템을 모두 탐식의 검에게 먹이로 주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SS랭크는 무리라 그거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성공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곧바로 탐식의 검을 SS랭크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내놔.”

강현수가 검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검귀가 공손히 SS랭크 아이템 절멸의 검을 넘겼다.

‘먹어라.’

다시금 탐식의 검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사아아악!

하지만.

콰콰콰콰!

역시나 절멸의 검이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며 탐식의 검에서 흘러나온 마력을 튕겨 냈다.

[탐식의 검 S랭크가 절멸의 검 SS랭크를 흡수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한 단계 차이도 안 되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결국 무조건 동급이나 아래의 급만 먹여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놈, C랭크 아이템은 먹으려나?’

S랭크가 되었으니 입맛이 고급으로 올라가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당분간 킵해야겠네.’

“써라.”

강현수가 절멸의 검을 검귀에게 넘겼다.

‘탐식의 검이 SS랭크가 될 때까지 절멸의 검은 검귀 손에 있을 팔자인가 보네.’

강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송하나에게 선물을 줄 차례였다.

“이게 뭐야?”

송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강현수가 건넨 한 자루의 검을 바라봤다.

“네 새 무기.”

“고마워!”

송하나가 활짝 웃으며 검을 건네받은 후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와아!”

송하나의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무려 A랭크.

거기다 옵션도 송하나 같은 마검사에게 딱 맞는 것이 붙어 있었다.

“정말 고마워, 현수야.”

송하나는 기분이 좋았다.

또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송하나가 알기로 강현수의 무기인 탐식의 검 역시 현재 A랭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탐식의 검한테 먹이로 주는 게 낫지 않아? 탐식의 검을 빨리 S랭크로 만들어야 하잖아.”

송하나는 자신이 강현수와 같은 등급의 무기를 쓴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걱정할 필요 없어. 방금 전에 S랭크로 성장 끝났으니까.”

“그래?”

강현수가 S랭크 무기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송하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좋겠다, S랭크니 A랭크니 하고 있어서.”

투황이 입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성장을 못 시켰나?’

강현수가 알기로 투황의 무기 야수왕의 장갑도 EX랭크까지 성장이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옵션도 워낙 좋아서 발동 조건만 어긋나지 않았으면 강현수가 직접 사용하고 싶을 정도의 최상품이었다.

‘하긴 그럴 수도 있지.’

탐식의 검은 애초에 성장 조건을 알고 있었지만.

수호의 반지와 얼음왕의 목걸이는 성장 조건을 몰랐다.

‘사실 찾아낸 것도 우연이었지.’

방어 스킬을 익히고 냉기가 가득한 대지에 갔기에 얻어 낸 성과였다.

‘저것도 분명히 무슨 조건이 있을 텐데.’

그 조건을 찾아내면?

야수왕의 장갑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뭐가 부럽다고 그러냐? 네 무기도 엄청 좋잖아. 옵션만 보면 B랭크 최상급이잖아.”

“뭐, 그렇기는 한데, 그냥 좀 아쉬워서. 아무리 그래도 B랭크는 B랭크지, A랭크가 아니잖아.”

송하나의 핀잔에 투황이 귀를 축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힌트라도 줘야겠네.’

나중에 A랭크 격투가 무기를 보고 바꾸겠다고 나서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EX랭크까지 성장이 가능한 최상위 아이템을 버리고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꼴이니까 말이다.

“혹시 그것도 성장형 아이템 아닐까?”

“뭐?”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눈을 반짝였다.

“탐식의 검도 성장형이잖아. 수호의 반지도 성장형이었고.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정말 그럴까? 성장형이 흔한 건 아니잖아?”

사실이었다.

회귀 전 공식적으로 알려진 성장형 아이템은 고작 11개.

얼음왕의 목걸이나 야수왕의 장갑처럼 완성형이라고 잘못 알려졌지만.

사실은 성장형이었던 비공식 성장형 아이템도 있겠지만.

어쨌든 성장형 아이템의 수량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아마 대다수의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성장형 아이템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꿀을 빨 수 있는 거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탐식의 검, 수호의 반지, 얼음 왕의 목걸이를 손에 넣었다면?

과연 제대로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운 좋게 성장 조건을 충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평범한 F랭크 아이템인 줄 알고 상점에 팔아 버렸겠지.’

어쩌면 지금도 상점 어딘가에 성장형인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템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얼음 왕의 목걸이처럼 말이다.

“시도해 봐서 손해 볼 건 없잖아.”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한번 도전해 볼게.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래, 노력해 봐. 절대 포기하지 말고.”

강현수가 애써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왜냐하면.

‘절대 밑져야 본전이 아니야. 밑져도 엄청 밑지는 거라고.’

야수왕의 장갑은 미래의 EX랭크 아이템.

강현수는 투황이 A랭크 아이템을 손에 넣고 B랭크인 야수왕의 장갑을 상점에 팔아 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뭐, 애초에 강현수가 그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 철벽 방어를 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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