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비 협상 (3)
“S랭크 아이템을 달라고?”
멸마창 진구평이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SS랭크 아이템을 준 것으로 우리의 거래가 끝난 게 아니었나?”
“그건 위험하지 않은 임무를 수행할 때고. 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난이도가 다르잖아. 임무를 중화길드와 바꾼다면 굳이 추가 대가를 주지 않아도 괜찮아.”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이 고심했다.
“S랭크 아이템은 무리다. A랭크 아이템 다섯 개를 주지.”
A랭크 아이템은 구하는 게 가능했다.
“다섯 개가 아니라 20개라면 내가 통 크게 양보하지.”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
하지만 멸마창 진구평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강현수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S랭크 아이템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주인 없는 S랭크 아이템이 없단 말이다. 또 A랭크 아이템도 다섯 개가 한계다. 우리 중화길드가 아무리 거대 길드라고 해도 A랭크 아이템을 20개씩이나 쌓아 놓치는 않는다.”
설사 있다고 해도 멸마창 진구평이 사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네가 쓰는 무기도 S랭크잖아.”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은 목덜미를 잡고 쓰러질 뻔했다.
자신이 쓰는 S랭크 무기 신속의 창을 달라고?
“이건 내 분신 같은 녀석이다! 절대 줄 수 없어!”
멸마창 진구평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그럼 A랭크 아이템 20개를 주면 되겠네.”
“열 개를 주지, 그게 내 한계다.”
“그럼 선불로 열 개, 후불로 열 개 어때? 카발길드를 박살 낸 후에 주면 되잖아. 안 그래?”
강현수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멸마창 진구평이.
“좋다.”
결국 콜을 외쳤다.
거래가 끝났다.
강현수는 열 개의 A랭크 아이템을 선불로 받았고.
소환수를 투입시켜 멸마창 진구평이 원하는 날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공격하기로 약속했다.
작전이 끝나면?
열 개의 A랭크 아이템을 후불로 받기로 했다.
‘두고 보자.’
멸마창 진구평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이 한국 놈들에게 끌려다니지만.
‘전쟁이 끝나면 내 친히 네놈들의 버릇을 뜯어고쳐 주마.’
그리고 덤으로 그간 뜯긴 SS랭크 아이템 절멸의 검과 A랭크 아이템들도 회수할 작정이었다.
* * *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뻔히 다 보이네.’
강현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멸마창 진구평이 지금은 순한 양처럼 굴고 있지만.
그 본성은 사나운 맹수에 가깝다.
거기다 멸마창 진구평은 칭호를 가지고 있는 네임드 플레이어.
네임드 플레이어들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소 길드 정도는 혼자서 정리가 가능하지.’
멸마창 진구평도 홀로 랭커 다섯을 상대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목숨을 도외시하면 혼자서 랭커 다섯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치고 빠지는 식으로 공격하면?
랭커 다섯이 아니라 열도 얼마든지 쓰러트릴 수 있었다.
네임드 플레이어는 능히 일당백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뒷감당 따위 생각하지 않고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면?
거대 길드로서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멸마창 진구평이 지금 저렇게 얌전한 이유는?
‘중화길드라는 목줄이 걸려 있기 때문이지.’
멸마창 진구평이 중화길드 내에서의 정치적인 입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일개 무인으로서의 직위만 가지고 있었다면?
정체를 숨기고 있는 강현수에게 저렇게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홀로 독보하는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어떤 위용을 보였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홀로 독보하는 네임드 플레이어, 그 정점에 있는 존재가.
‘바로 살황과 투황이었지.’
그 두 사람은 홀로 독보하는 황제로서 회귀 전 엄청난 위용을 보였다.
사실 황의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가진 힘을 강현수만큼 잘 알고 있는 이도 없었다.
왜?
강현수도 회귀 전 황의 칭호를 가지고 있던 네임드 플레이어였으니까.
‘이번에는 황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강현수가 회귀 전 황소욱의 마수에 빠져 헛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아마 죽기 전 검신이나 수호신 정도 힘은 손에 넣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신들의 신이 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정점에 있는 존재.
신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은 네임드 플레이어.
그들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 배신자들과 마왕군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지구로 귀환한다.
그게 강현수의 목표였다.
‘일단 흡수부터 시켜 볼까?’
강현수는 진구평에게 받은 A랭크 아이템 열 개의 정보를 확인했다.
‘비주류만 골라서 줬네.’
검이나 도는 하나도 없었다.
액세서리 같은 범용성 좋은 아이템도 없었다.
단검, 너클, 도끼, 망치 같은 비주류가 대부분이었다.
창 같은 범용성 좋은 무기의 경우 일반적인 창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힘든 기형 창을 줬다.
‘하긴, 내가 종류까지 나열하지는 않았으니까.’
사용하는 이가 얼마 없는 비주류 A랭크 아이템들.
검, 도, 창 같은 주류 무기들보다는 당연히 그 가치가 떨어졌다.
하지만.
‘나한테는 상관없지.’
다른 데 팔아먹거나 직접 사용할 용도가 아니라 탐식의 검에게 먹잇감으로 주기 위해 받아 온 것이니 종류는 크게 상관없었다.
‘먹어 치워라.’
사아아악!
강현수의 마력을 받은 탐식의 검이 A랭크 아이템들을 하나둘 먹어 치웠다.
[탐식의 검 A랭크가 성장하였습니다.]
[탐식의 검 A랭크가 성장하였습니다.]
[탐식의 검 A랭크가 성장하였습니다.]
……후략……
열 개를 모두 먹였다.
하지만 S랭크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A랭크 아이템 열 개 정도로 S랭크로의 성장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S랭크를 달라고 한 건데.’
S랭크 아이템 흡수가 가능했다면?
아마 단숨에 탐식의 검 랭크가 S로 상승했을 것이다.
‘조금 늦어질 뿐이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전투가 끝나면 후불로 A랭크 아이템 열 개를 받기로 했으니까.
‘열 개 정도 더 먹이면 S랭크로 성장하겠지.’
그 전에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회수한 A~B랭크 아이템들도 많이 먹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되나.’
그 전까지 스텟을 부지런히 쌓아 놔야 했다.
중화길드와 카발길드가 정면으로 충돌하면.
분명 랭커나 네임드 플레이어 중에 전사자가 나올 테니까 말이다.
* * *
강현수, 송하나, 투황은 텅 빈 사냥터에서 사냥에 열중했다.
“매일 오늘 같으면 좋겠다.”
투황이 귀를 쫑긋거리며 중얼거렸다.
사냥터는 썰렁했다.
중화길드가 카발길드의 사냥터를 점령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화길드의 영향을 받는 중소 길드들은 반강제적으로 카발길드의 사냥터에서 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카발길드의 게릴라전에 대항하기 위해 인해전술로 맞선 것이다.
중소 길드들은 이동 거리도 멀고.
플레이어도 몰려 있어 사냥 효율도 떨어지며.
결정적으로 카발길드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그곳에서 사냥하고 싶지 않아 했지만.
‘선택이 아닌 강제니 어쩔 수가 없지.’
덕분에 노가 난 것은 바로 강현수 일행처럼 파티 단위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특히 강현수 일행은 더 신이 났다.
저레벨 사냥터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 중에는 소속 없이 파티로 사냥하는 플레이어들이 꽤 있다.
하지만 중고레벨 사냥터의 경우 대부분 길드 소속으로 파티 단위로 활동하는 플레이어의 수가 극히 적었다.
그 덕분에 강현수 일행은 드넓은 사냥터를 독점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었다.
‘사냥 속도가 빨라.’
강현수도 텅 빈 사냥터로 인해 꽤 큰 혜택을 받았다.
그동안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소환수를 부분적으로 운용해 사냥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환수들을 다 풀어놨다.
그러자 몬스터 사냥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다.
‘오늘인가?’
멸마창 진구평과 약속한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다.
‘3일쯤 후에 도왕 경위강이 도착한다고 했지.’
대원정을 떠났던 도왕 경위강은 현재 카발길드와의 전쟁이 발발했다는 말을 듣고 정예 수하들과 함께 전력을 다해 복귀 중일 것이다.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고 추정이다.
‘워낙 멀리 떠났어야지.’
아틀란티스 차원에는 인공위성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다.
당연히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통신용 아이템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통신 거리가 너무 짧지.’
생활 무전기처럼 근거리에서는 몰라도 원거리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생산 수량이 적어 각국의 왕실이 독점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멀리 대원정을 떠난 도왕 경위강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길드원이 직접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원정을 떠난 장소가 워낙 오지라 비행형 몬스터가 창궐했기에 비둘기를 이용한 정보 전달도 불가능했다.
멸마창 진구평은 도왕 경위강이 오기 전에 첫 전투의 패배를 묻어 버리는 것을 넘어서 더 큰 공을 세우고 싶어 했다.
‘도왕 경위강이라.’
도왕 경위강은 검존 주위천과 마찬가지로 강현수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 중 하나.
‘검존 주위천은 아직 너무 약하니까 살려 두는 게 이득이지만.’
도왕 경위강은 얼마 성장하지 못한다.
‘레벨은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지.’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들 중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700레벨만 찍어도 고레벨 플레이어 취급을 받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정도는 중레벨 플레이어 정도 취급밖에 못 받지.’
지금 현재 네임드 플레이어이거나 랭커 플레이어더라도 오히려 퇴보해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 자리에서 쫓겨나는 이들이 존재했다.
‘도왕 경위강이 바로 그런 경우였지.’
도왕 경위강은 머지않아 벽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영원히 그 벽을 뚫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중에는 도왕이라는 칭호조차 빼앗기고 망령도라 불리며 세간의 비웃음을 당한다.
‘뭐, 그래도 비참하지는 않았지.’
힘을 잃기 전 검존 주위천과 손을 잡은 덕분에 명예는 잃었어도 권력은 잃지 않았다.
그 말인즉.
강현수의 입장에서 도왕 경위강은 지금 죽나 나중에 죽나 소환수로서의 활용성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데 카발길드가 도왕 경위강을 죽이는 게 가능하려나?’
도왕 경위강은 아직 퇴물이 되기 전이다.
오히려 지금이 최전성기다.
현재 도왕 경위강의 실력은 마이트어 왕국과 라메파질 왕국을 통틀어 최강이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의 카발길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의 카발길드라면?
‘알 수가 없네.’
카발길드는 항상 겉으로 드러난 힘보다 비밀리에 감추고 있는 힘이 더 컸다.
‘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강현수가 할 일은 카발길드와 중화길드가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다.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는 도왕 경위강이 죽고 카발길드가 망하는 거지만.
‘그냥 카발길드만 망해도 큰 상관은 없어.’
지금 당장은 무리지만.
시간이 지나 힘이 쌓이면?
도왕 경위강의 숨통 정도는.
‘내가 직접 끊으면 그만이야.’
사냥에 열중하는 와중에 약속된 시간이 되었다.
‘가라.’
강현수가 미리 준비시켜 놓은 검귀와 카발 1~4호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 * *
꽈아아아앙!
대도시 다이온에 위치한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가 습격을 받았다.
“이런 건방진!”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분통을 터트렸다.
강제 강림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최대한 잠자코 있었다.
게릴라를 통해 반격을 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최소한의 반격이었다.
원활한 제물의 수급과 전장을 사냥터로 고정시키기 위한 방책이 아니었다면?
아예 대도시 다이온에 틀어박혀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제물 수급은 다이온 내부에서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냥터에서 싸운 이유는 단 하나.
강제 강림 의식이 진행 중인 길드 하우스가 공격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길드 하우스가 공격받았다.
그것도 랭커로 추정되는 플레이어들에게.
분기탱천한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직접 검을 뽑아 들고 나섰다.
하지만.
“저놈들이!”
길드 하우스를 공격한 놈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막아!”
분노한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외침에 따라 카발길드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다섯 명의 적을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서 선 것은 분노한 화염의 기사 제이미였다.
콰콰콰콰!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검에서 붉은빛 오러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휘익!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검이 도주하던 적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사아아악!
적이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꽈아아아앙!
찰나의 차이로 커다란 폭음과 함께 적이 있던 건물 지붕이 박살 났다.
“역시 길드장님이시다!”
“저 강한 놈을 한 방에 쓰러트리시다니!”
카발길드원들은 화염의 기사 제이미의 공격이 적이 숨통을 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공격한 화염의 기사 제이미는 알 수 있었다.
‘사라졌어.’
적은 자신의 공격에 죽은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공격이 닿기 직전 연기가 되어 사라졌을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사라진 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