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비 협상
“그게 신경 쓰였던 거야?”
강현수의 물음에 송하나와 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사포처럼 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사실 네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받으라고 했을 때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야.”
투황의 말을 들은 강현수의 머릿속에 야성의 감각 스킬이 떠올랐다.
‘뭐 그럴 만하지.’
A랭크 스킬 야성의 감각이라면 지휘관 임명 스킬의 말하지 않은 단점을 인지할 수도 있었다.
강현수에 대한 충성심이 증가한다.
‘상당히 큰 페널티지.’
하지만 자신의 생사여탈권이 강현수에게 종속된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한다면?
그리 큰 페널티가 아닐 수도 있었다.
‘거기다 송하나와 투황은 소환수가 아니라 플레이어야.’
꼭두각시처럼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
충성심이 증가한다.
이 둘의 차이는 꽤 크다.
‘충성심이라는 것도 내가 그렇게 정의한 것뿐.’
실제로는 애정이나 의리 또는 신뢰가 증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이기에 충성심이 아무리 증가해 봐야 강현수의 꼭두각시가 되지는 않는다.
강현수가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거나 죄 없는 이들을 학살하라고 한들 따를 리가 없다.
왜?
저 두 사람은 소환수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플레이어이니까.
또 진정한 충신은 주군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다.
주군이 잘못된 길을 가면 목숨을 걸고 충언을 하는 게 바로 진짜 충신이다.
‘야성의 감각이 강력하게 경고할 정도의 페널티는 아니지.’
그렇기에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선에서 정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과연 이런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투황이 강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당장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컸다.
또 강현수가 성장할수록 자신 역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이점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강현수가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줬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강현수의 소환수들은 강하다.
네임드 플레이어 검귀나 랭커를 바탕으로 만든 소환수니 당연한 결과였다.
전투력 역시 현재 400레벨대 플레이어인 투황이나 송하나보다 강하다.
“카발길드와 중화길드의 싸움이 격화되면, 넌 더 많은 소환수를 얻게 되겠지.”
그 소환수들의 베이스는 당연히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가 될 것이다.
“그런 강력한 소환수를 거느린 너한테 우리가 필요할까?”
투황은 자신이 강현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송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심리적으로 강현수에게 강하게 의지하고 있는 만큼 송하나가 느끼는 자괴감과 불안감은 더욱더 컸다.
“필요해.”
강현수의 확답에 송하나와 투황이 고개를 획 하고 들었다.
“소환수는 어디까지나 소환수일 뿐이야. 너희들과는 달라.”
“나 대신 소환수에게 지휘관 임명 스킬을 쓰는 게 너한테 더 이득 아니야? 난 지금까지 항상 네 도움만 받았잖아. 괜히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송하나는 처음 지휘관 임명 스킬을 받고 깊은 만족감을 보였다.
자신이 강현수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의 송하나는 자신이 강현수에게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난 너희들을 믿어.”
“우리를 믿는다고?”
“도대체 뭘 믿는다는 거야?”
송하나와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내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야. 소환수 같은 도구가 아니라고.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 플레이어로 만든 소환수? 난 그런 것들보다 너희 둘이 더 소중해.”
이건 강현수의 진심이었다.
“그건 결국 우리가 너한테 짐덩어리가 되고 있다는 뜻이잖아.”
송하나의 중얼거림에 강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도대체 뭘 믿는다는 거냐고? 우리보다 소환수가 더 강한 건 사실이잖아.”
“지금 당장은 그렇지. 하지만 나중에는 다를 거야.”
“나중에는 다를 거라고? 그 말은 우리가 랭커나 네임드 플레이어가 될 거라고 믿는다는 소리야?”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정말 될 수 있을까?”
송하나가 자신감이 떨어진 어조로 물었다.
랭커 플레이어와 네임드 플레이어.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400레벨과 500레벨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 이후에 600레벨과 700레벨의 벽을 넘어서는 플레이어들은 천재라고 불린다.
좋은 스킬을 받아도 재능이 있어도 넘지 못하는 것이 고레벨의 벽이다.
하물며 랭커와 네임드 플레이어의 경우는.
‘신의 아들이나 마찬가지지.’
재능, 노력, 운이 모두 따른 자들이 극악의 확률을 뚫고 올라서는 자리가 바로 랭커다.
그 랭커들 중에서 정점에 올라 만인이 인정하는 칭호를 얻어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네임드 플레이어다.
400레벨대 플레이어인 송하나와 투황의 입장에서는 너무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가능해. 자기 자신을 믿어. 난 너희들의 가능성을 믿고 있으니까.”
확신에 찬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와 투황이 감격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하나 그건 꼭 남자에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성별을 떠나 인종을 떠나 통용되는 진리 중 하나다.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더 믿고, 알아주고, 인정하고, 신뢰해 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이다.
“고마워.”
송하나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강현수가 자신을 믿는다는 한마디가 송하나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뭐, 그럼 내가 네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줄게.”
투황 역시 투지 넘치는 눈빛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현수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 증거로 소환수가 아닌 자신들에게 지휘관 임명 스킬과 지휘관의 축복 티오를 넘겨주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자신들이 그 믿음에 보답할 때였다.
“잘해 봐.”
강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하나와 투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마워, 현수야. 나 열심히 노력할게.”
“얼른 밥 먹으러 가자. 밥 먹고 수련해야지.”
지금 송하나와 투황은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와 전의가 철철 넘쳐흘렀다.
송하나와 투황은 강현수의 확신에 찬 눈빛과 말에 강한 감명을 받았다.
강현수의 진심을 느낀 것이다.
‘그래, 열심히 노력해 봐. 그럼 너희는 회귀 전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회귀 전 황의 칭호를 받은 네임드 플레이어였던 두 사람이다.
일찍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저레벨 시절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면?
황의 칭호가 아니라 신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으리라.
강현수가 미래 예지를 통해 엿봤던 미래처럼 말이다.
회귀 전의 기억과 두 사람의 미래를 본 강현수는 이 두 사람의 가능성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진실을 송하나와 투황이 알았다면?
강현수의 말과 행동에 느꼈던 감격이 짜게 식었을 것이다.
어쩌면 크게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아.’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가 없다.
왜?
강현수는 진실을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 * *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고?”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이 무표정한 얼굴로 반문했다.
“예,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떤 길드에 지원 요청을 하신 겁니까?”
“그건 알려 줄 수 없다.”
“보안 때문입니까?”
“그렇다.”
“하면 그들이 계속 우리를 돕는 겁니까?”
“비밀이다.”
“혹 무리한 대가를 약속하신 거 아닙니까?”
“그럼 큰일 아닌가?”
“큰일은 무슨. 당장 그들의 도움 덕분에 우리가 대승을 거둔 거 아니야?”
간부들이 자기들끼리 설왕설래하며 투닥거리는 동안.
멸마창 진구평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번 전투로 인해 얻은 이득과 손실이 기록된 서류를 살폈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멸마창 진구평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랭커 플레이어 두 명은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한데 갑자기 등장해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거기다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는 의미심장한 발언까지 했다.
간부들은 멸마창 진구평이 비밀리에 지원군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른단 말이야.’
멸마창 진구평도 갑자기 등장한 지원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모른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럼 겨우 회복한 자신의 권위가 손상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직 길드 마스터가 복귀하지 않았네. 그런데 대대적인 반격이라니? 지금은 방어가 최선이네.”
“그래도 그자들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반격이 가능합니다.”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자들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부길드 마스터, 그자들이 도움을 더 줄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라도 알려 주실 수 없는 겁니까?”
간부들의 시선이 멸마창 진구평에게 몰려들었다.
“보안 때문에 그럴 수는 없네. 일단 회의는 이만하도록 하지.”
멸마창 진구평이 회의를 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아군의 등장.
멸마창 진구평으로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정체를 밝히고 대가를 요구하면 좋으련만.’
멸마창 진구평이 그런 생각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그때 멸마창 진구평의 직속 수하 하나가 재빨리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그게 정말이냐?”
귓속말을 들은 멸마창 진구평의 물음에 직속 수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 봐야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 자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멸마창 진구평은 칭호를 가지고 있는 네임드 플레이어다.
비록 카발길드의 길드 마스터 화염의 기사 제이미와의 접전에서 수모를 당하기는 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카발길드에서는 멸마창 진구평을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상대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그 누가 루자베누에서 날 위협하겠나?”
바로 중화길드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도시 루자베누였다.
“죄송합니다.”
“입단속이나 철저히 하도록 해.”
“예.”
멸마창 진구평이 비밀리에 중화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빠져나가 약속 장소로 향했다.
* * *
‘오려나? 안 오려나?’
강현수가 대대장의 시선을 사용해 검귀의 시야를 공유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오면 좋겠는데.’
강현수는 중화길드를 도왔다.
물론 그 이유는 배신자들이 속한 중화길드의 힘을 약화시키고 마왕의 하수인으로 이루어진 카발길드를 멸망시키기 위함이었다.
또 그 싸움을 통해 전사한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를 베이스로 하는 소환수를 대량 생산하는 이득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수고비는 받아야지.’
도왕이 오면 절대 받아 낼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멸마창 진구평이라면?
얼마든지 강현수가 원하는 수고비를 뜯어낼 수 있었다.
‘불안불안하겠지.’
강현수의 도움 덕에 겨우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는 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강현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치적 입지가 완전히 무너졌을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없었다면 대패했겠지.’
아마 나중에 알고 식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도움이 필요하지.’
조력자를 포섭해 놓고 게릴라 전투를 진행했다.
그 덕에 계획된 승리를 거뒀다.
멸마창 진구평에게는 그런 명분이 필요했다.
‘왔다.’
검귀의 시야에 멸마창 진구평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저벅.
“당신이 우리를 도운 자인가?”
멸마창 진구평이 검귀를 향해 물었다.
검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제 갑옷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투구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멸마창 진구평은 죽은 검귀가 소환수로 부활해 자신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다.”
강현수의 지시를 받은 검귀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한국인이었군.”
검귀는 중대장으로 임명되며 지성을 회복했다.
하지만 미약한 수준에 불과했다.
당연히 스스로 판단하고 대화를 나눌 수준이 되지 못한다.
사용할 수 있는 언어 자체도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재 검귀는 강현수가 직접 심령으로 전달하는 명령을 그대로 읊는 도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한국인의 도움이라 꺼림칙한가?”
강현수의 물음에 멸마창 진구평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궁금하기는 하군. 왜 우릴 도운 건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그럼 원하는 걸 말하게.”
“S랭크 이상의 아이템.”
강현수의 말에 멸마창 진구평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