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지리 (2)
강현수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도왕 경위강과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적당히 타협하는 거지.’
무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도왕 경위강은 적당히 체면을 챙긴 상태에서 카발길드에 휴전을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 역시 카발길드의 힘을 적당히 보여 준 후라면.
중화길드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적당한 희생양도 있고.’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
이 전쟁의 원흉을 멸마창 진구평으로 몰아가 책임을 전가시키면 그만이다.
사실 중화길드와 카발길드가 휴전할 확률은 낮다.
중화길드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길드였고.
카발길드 역시 기왕 칼을 뽑아 든 김에 자신들의 힘을 만방에 떨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최소한 가능성조차 뿌리를 뽑아야 해.’
그래야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전쟁을 발발시킨 강현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도왕 경위강과 화염의 기사 제이미가 이 전쟁을 대화로 풀어 나가려고 하면 큰일이야.’
서로 말을 맞춰 보다 보면 무언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럼?
자신들을 싸움 붙인 존재를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강현수의 정체가 드러날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럴 가능성 자체를 말살시키는 거지.’
또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싸움이 어정쩡한 상태에서 마무리되면?
미래의 사고뭉치와 마왕의 하수인을 공멸시키려는 강현수의 계획이 틀어져 버린다.
‘어서 움직여라, 어서.’
강현수는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이 사고를 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멸마창 진구평이.
강현수의 소망을 들어주었다.
* * *
“당장 병력 소집해!”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의 명령이 떨어졌다.
“길드 마스터와 본대가 복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 사냥터를 빼앗긴 채 거북이처럼 루자베누에 틀어박혀 있자는 소린가? 평소에는 우리에게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중소 길드 놈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어. 이 사태가 계속되면 중소 길드 놈들이 카발길드에 붙을 수도 있다.”
멸마창 진구평의 주장에 반대하던 간부들이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발길드 놈들이 500~60
들만 보냈을 리가 없습니다. 카발길드의 고레벨 플레이어와 랭커 들이 함정을 파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사실 높은 정도가 아니라 99%였다.
“함정? 그런 걸 팠다면 역이용해 주면 그만이다. 이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냥터지 놈들에게 익숙한 사냥터가 아니야. 왜, 한번 졌다고 그놈들이 무서워졌나?”
자존심을 자극하는 멸마창 진구평의 말에 간부들이 이를 악물었다.
사실 첫 전투의 패배로 그들 역시 자존심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여기서 반대하면?
겁쟁이로 몰릴 것이고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아닙니다.”
“함정은 우리가 역으로 팔 수도 있지요.”
전장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사냥터.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럼 출전을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결국 대대적인 반격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난 끝장이야.’
멸마창 진구평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중소 길드 핑계와 사냥터의 유리함을 내세우며 간부들의 자존심을 자극해 병력 소집 명령을 내렸지만.
사실 병력을 소집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기로 한 진짜 이유는 자신의 자리 보존을 위해서였다.
‘길드 마스터가 복귀하면 난 끝장이야.’
분노한 길드 마스터 도왕 경위강의 손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현재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은 모두 내려놔야 했다.
권력을 내려놔도 목숨을 건지기만 하면 네임드 플레이어인 이상 어느 정도 대접은 받을 것이다.
하지만 대접을 받아 봐야 결국은 명령을 내리는 장수에서 지시를 따르는 졸 중 하나로 전락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카발길드와의 전쟁이 계속되면?
‘난 가장 치열한 전장에 배치될 수밖에 없어.’
길드 마스터인 도왕 경위강이 백의종군하라며 지시를 내리면?
멸마창 진구평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길드 마스터가 복귀하기 전에 큰 공을 세워야 한다.’
대승을 거두면?
자리를 보존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쥔 권력이 더 커질 것이다.
또다시 대패를 한다면?
분노한 도왕 경위강의 손에 죽을 확률이 조금 더 올라가긴 하겠지만.
‘변하는 건 없어.’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실각은 확정적이다.
그렇다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 실낱같은 재기의 가능성에 도전해 보는 게 옳았다.
* * *
꽈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인간과 인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드디어 움직였구나.’
강현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제 움직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로 움직여 줬다.
‘그것도 제법 머리를 써서 말이야.’
중화길드는 전처럼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중화길드의 마크가 없는 옷을 입고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인 척 위장해 사냥터에 들어왔고.
일제히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사냥했다.
‘이러면 누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고 누가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인지 알 수가 없지.’
중화길드가 노리는 게 뭔지 짐작이 갔다.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는 거겠지.’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공격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럼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인 척 위장하고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길드 마크를 뗄 줄은 몰랐는데.’
상황이 꽤 다급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전략일 뿐이라고 자위하고 있겠지.’
그럴 게 뻔했다.
“우리도 슬슬 움직여 볼까?”
강현수의 말에 미리 이야기를 전달받은 송하나와 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 일이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상대는 마족과 계약을 맺은 마왕의 하수인.
지구로의 귀환을 원하는 송하나의 입장에서도.
고향을 지켜야 하는 투황의 입장에서도.
마왕의 하수인은 한시라도 빨리 제거해야 할 적일 뿐이었다.
꽈앙! 꽈앙! 꽈앙!
강현수 일행과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접전이 벌어졌다.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전투는 압도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역시 대단해.’
애초에 레벨을 초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송하나와 투황이다.
그런 송하나와 투황의 스텟이 지휘관의 축복과 지휘관 임명으로 무려 15%나 증가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였다면?
갑자기 늘어난 스텟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파워는 늘어나도 섬세함이 떨어졌으리라.
하지만 송하나와 투황은 예외였다.
늘어난 스텟 따위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는 듯 전투를 치렀다.
‘600레벨대 파티였네.’
강현수가 대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다.
열 명의 플레이어가 소환수로 되살아났다.
“가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와 투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랐다.
“아아악!”
“도와줘!”
강현수 일행이 지나가는 길마다 피바람이 일어났고.
강현수의 소환수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러던 중.
꽈아아앙!
가까운 거리에서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다.
‘시작됐구나.’
전신이 찌릿찌릿할 정도의 강력한 마력의 파동.
500~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의 접전에서 나올 만한 마력 파동이 아니었다.
“긴장해. 랭커 플레이어와 싸우게 될지도 몰라.”
“알았어.”
“기대되네.”
강현수의 말에도 송하나와 투황의 전의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랭커 플레이어와 싸우게 될 수 있다는 말에 투지가 활활 타올랐다.
두두두두!
빠르게 이동해 도착한 곳에는 중화길드 소속 랭커 둘과 카발길드 소속 랭커 둘이 맞붙고 있었다.
중화길드 소속 랭커들은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카발길드 소속 랭커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랭커의 숫자는 카발길드가 더 많다.’
지금은 2 대 2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원군이 오겠지.’
콰콰콰콰콰!
그런 강현수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보랏빛 오러에 휩싸인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 하나가 전장에 합류하러 달려온 것이다.
‘이대로 합류하게 할 수는 없지.’
강현수 일행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꽈아아앙!
첫 접전.
강현수와 송하나 그리고 투황이 힘을 합쳤음에도 뒤로 밀려 났다.
‘랭커다.’
예상대로였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카발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가 거칠게 강현수와 송하나 그리고 투황을 밀어붙였다.
‘강해.’
1 대 3의 전투였지만 오히려 강현수 일행이 뒤로 밀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멀리서 달려오는 또 다른 랭커 플레이어였다.
‘역시 둘이 함께 다녔구나.’
카발길드는 500~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을 미끼로 던졌다.
그리고 미끼를 문 물고기를 낚아 올릴 낚시꾼으로.
2인 1조로 움직이는 랭커 플레이어들을 선택했다.
‘합류가 엄청나게 빠르다.’
어쩌면 2인 1조가 아니라 4인 1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꽈아앙! 꽈아앙!
“너희는 누구지? 중화길드에 너희 같은 놈들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카발길드의 랭커 플레이어가 맹공을 퍼부으면서도 여유로운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1 대 3의 접전이었지만 자신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태.
거기다 잠시 후면 동료 역시 참전할 것이다.
그럼 일방적인 아군의 승리였다.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강현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카발길드 랭커 플레이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중화길드에 충성을 바치다 죽을 생각이냐?”
카발길드의 랭커 플레이어가 강현수 일행에게 질문을 던진 건 레벨이 낮아 보임에도 전투 센스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카발길드가 알기로 중화길드에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루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작은 호기심이 생겨 말을 걸었다.
혹시 회유할 수 있으면 회유할 생각으로 말이다.
“순순히 투항해라. 그리고 중화길드를 탈퇴해 카발길드로 넘어와라. 그러면 살 수 있을 거다.”
“개소리하지 마라.”
하지만 저렇게 건방지게 나온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 자기 복을 자기 발로 걷어차다니, 어리석구나. 죽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주마.”
욕설 섞인 강현수의 대답에 기분이 상한 카발길드의 랭커 플레이어가 강현수 일행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강현수 일행의 방어는 무척이나 단단했다.
거기다 강현수의 핏빛 오러와 충돌할 때마다 카발길드 랭커 플레이어의 보랏빛 오러가 불안정하게 흔들렸기에 결정타를 날릴 수가 없었다.
뱀피릭 오러가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타악!
또 다른 카발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가 강현수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사아악!
거대한 마력이 강현수 일행과 전투를 치르던 카발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의 등 뒤에서 솟구쳐 올랐다.
‘뭐지?’
불안감을 감지한 순간.
슈욱!
날카로운 예기를 품은 검날이 날아들었다.
“크윽!”
카발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가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좌악!
하지만 옆구리에 긴 검상이 생기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등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피했지만.
오히려 정면에서 날아오는 강현수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욱!
카발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의 심장에 차가운 검날이 틀어박혔다.
“커억!”
보랏빛 오러를 뿜어내던 카발길드 소속 랭커가 숨을 거뒀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5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플레이어를 쓰러트린 자 B랭크가 주어집니다.]
그 순간 강현수, 송하나, 투황이 동일한 업적을 손에 넣었다.
“이게 무슨?”
전투에 합류하기 직전이었던 카발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는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콰콰콰콰!
당혹감을 수습할 새도 없이 푸른빛 오러에 휩싸인 검을 들고 달려드는 괴인의 공격을 방어하기 바빴다.
‘역시 쓸 만하네.’
중화길드 소속 네임드 플레이어 검귀.
그 검귀를 베이스로 만든 소환수의 전투력은 확실히 엄청났다.
‘더군다나 기습에 활용하기도 좋고.’
강현수가 대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다.
사아아악!
방금 전 죽은 카발길드 소속 랭커 플레이어가 소환수로 되살아났다.
‘가라!’
강현수의 명령에 따라 새롭게 태어난 소환수가.
콰콰콰콰콰!
보랏빛 오러를 뿜어내며 방금 전까지 자신의 동료였던 이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