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53화 (53/365)

지휘관 임명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중화길드와 카발길드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그 최선두에는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진구평과 카발길드의 길드 마스터 제이미가 있었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진구평은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굳이 제이미를 쓰러트릴 생각은 없었다.

아니, 냉정하게 말해서 제이미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거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제이미는 진구평보다 먼저 네임드 플레이어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화염의 기사 제이미.

현재의 카발길드를 만든 인물이 바로 그다.

진구평 역시 멸마창이라는 칭호를 가진 네임드 플레이어였지만.

솔직히 말해 제이미에 비하면 한 끗발 떨어졌다.

하지만.

‘이길 자신도 없지만, 질 자신도 없다.’

진구평은 강했다.

멸마창이라는 칭호를 얻고 네임드 플레이어의 자리에 오른 후.

단 한 번밖에 패배한 적이 없었다.

진구평을 패배시킨 이는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뿐.

다른 네임드 플레이어와의 대련에서 진구평은 이기지는 못했지만 지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 활약할 기회가 있었다면?

멸마창이 아니라 더 멋들어진 칭호로 불릴 자신이 있는 진구평이었다.

‘네임드 플레이어의 숫자부터 전체 병력까지 모두 우리가 우세하다.’

굳이 카발길드의 네임드 플레이어들을 이길 필요는 없다.

그저 동수를 이루기만 해도 아군이 유리했다.

꽈아아앙!

푸른빛의 오러에 휩싸인 진구평의 창과 붉은빛의 오러에 휩싸인 제이미의 검이 충돌하며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두 네임드 플레이어의 접전은 하늘을 가르고 땅을 진동시킬 정도로 엄청났다.

‘예상대로다.’

꽤 버겁기는 하지만.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자신을 비롯한 중화길드 소속 네임드 플레이어들이 카발길드 소속 네임드 플레이어를 묶어만 놓으면?

이 전쟁은 무조건 중화길드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진구평은 전력을 다해 제이미와 접전을 벌였다.

다른 곳으로 한눈을 팔 여유 따위는 없었다.

상대는 강했고 동수를 이루는 것만으로도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내야 했으니까.

히죽!

그런 진구평의 눈에 제이미의 미소가 들어왔다.

‘뭐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제이미가 미소를 짓다니?

지금 제이미는 저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학살당하는데 웃을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아악!”

그때 진구평의 귀에 익숙한 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검귀?’

그건 네임드 플레이어 검귀의 비명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네임드 플레이어의 숫자는 중화길드가 더 많다.

한데 왜 검귀의 비명이 들린다는 말인가?

콰콰콰콰!

마력을 과도하게 끌어모아 창에 실었다.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빛 오러로 뒤덮인 창날이 제이미를 향해 날아갔다.

제이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진구평의 공격을 피했다.

그 덕에 생긴 잠깐의 여유.

진구평이 전황을 살폈다.

‘이게 무슨?’

진구평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검귀가 죽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발길드원들이 무자비하게 중화길드원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 무려 넷이나 있었다.

딱 봐도 모두 랭커급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작 두 명만 있다고 생각한 네임드 플레이어급 실력자가 무려 네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네임드 플레이어급 실력자.

그가 검귀를 죽였다.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

네임드 플레이어인 검귀를 죽였으니까.

네임드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건 오직 네임드 플레이어뿐.

그것 말고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오러와 폭발적인 마력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네놈들!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진구평이 분노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사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길드 마스터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대원정을 떠났다고는 하지만.

감히 대중화길드를 상대로 선공을 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왜?

‘이 정도 전력이라면 그런 지저분한 수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도대체 왜?’

진구평은 카발길드가 정면 대결로 중화길드를 이길 자신이 없어 꼼수를 부렸다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은 암습은.

‘단순한 명분 쌓기였군.’

자신들이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으드득!

이가 절로 갈렸다.

카발길드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도발에 넘어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대로 전투가 지속되면 우리가 패배한다.’

아직 수적 우위는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병력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

거기다 검귀가 이미 당한 상황.

전투가 계속 이어지면?

자신이나 또 다른 네임드 플레이어인 일살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타악!

진구평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수신호로 비밀리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철수 명령을 알아들은 이들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뿐이었다.

진구평의 명령을 받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조용히 전장에서 이탈했다.

그 결과 전방에 남은 것은.

중화길드의 지시를 받고 전쟁에 참여한 중소 길드 플레이어들뿐이었다.

“이게 무슨?”

“부길드장님?”

“왜 중화길드가 뒤로 빠지는 겁니까!”

중소 길드의 길드장들이 격렬하게 항의했다.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진구평의 말에 중소 길드의 길드장들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전황이 밀리고 있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중화길드가 전열을 재정비하고 전장에 참여할까?

아니면 그대로 루자베누로 철수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어서 나가서 시간을 벌어라.”

진구평이 항의하러 몰려온 중소 길드의 길드 마스터들에게 대놓고 나가 죽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연히 중소 길드의 길드 마스터들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명령을 거부하는 건가?”

진구평의 두 눈에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아, 아닙니다.”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진구평의 협박에 중소 길드의 길드 마스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전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 *

‘저런 머저리 같은 놈.’

강현수는 중화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진구평의 결정에 어이를 상실했다.

‘중소 길드들을 버리다니.’

진구평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지키기 위해.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버렸다.

‘유일하게 우위에 설 수 있는 게 머릿수밖에 없는데, 그걸 포기하다니.’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기에 감정이라는 게 있다.

중화길드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카발길드보다 중화길드에 더 강한 악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진구평은 ‘그래 봤자 고작 중소 길드 놈들이 뭘 어쩔 건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확실했다.

그리고 중소 길드가 죽을힘을 다해 싸워 카발길드의 전력을 조금이라도 깎아 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지.’

더군다나 카발길드 놈들은 사람을 속이고 그 심리를 이용하는 데 도가 튼 녀석들이다.

‘역시.’

카발길드는 도주하는 중화길드를 공격하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움직였다.

수는 열세지만 네임드 플레이어와 랭커급 플레이어가 열 명이 넘는 상황.

제압만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래 죽나 저래 죽나 하는 심정으로 싸우던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조용히 물러나라! 그럼 공격하지 않겠다!”

“우리의 적은 중화길드지 너희들이 아니다!”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외침에.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카발길드는 제압한 중소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도 풀어 주었다.

중화길드가 가장 먼저 물러났다.

중화길드의 지시를 받던 중소 길드도 물러났다.

이에 카발길드는 전사자들의 아이템과 스킬북을 습득하고 물러났다.

그 결과 너무도 허무하게 첫 번째 전투가 종료되었다.

강현수는 분통이 터졌다.

‘준비한 걸 써 먹어 보지 못했는데.’

강현수는 소환수들을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 근처에 배치시켰다.

전황이 기울면?

소환수들로 하여금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공격하게 시킬 생각이었다.

앞뒤로 적이 생기면?

카발길드는 전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랭커급 플레이어가 두세 명 정도는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 나름 균형이 맞는다.

그런데.

‘겨우 네임드 플레이어 한 명 죽은 걸 보고 겁을 집어먹다니.’

강현수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 강현수의 기억 속에 있는 중화길드는 미친개였다.

자신을 건드리면 누구든 용서하지 않고 물어뜯었다.

사고뭉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겁을 먹고 물러난 적은 없었는데.’

체면이 손상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게 바로 중화길드였다.

그렇기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백 명이 죽고 전투가 끝났다.

거기다.

‘지배력을 행사하던 중소 길드들의 신뢰도 잃었어.’

이러면 곤란했다.

‘설마 사과하고 꼬리를 말아 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럼 강현수의 계획이 흐트러진다.

‘길드 마스터가 없어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쉽게 내빼다니?’

지금의 중화길드는 강현수가 알던 중화길드와는 다르다.

강현수의 기억 속 미래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검존 주위천이었다.

현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도왕 경위강이다.

‘하지만 중화길드의 성향은 큰 차이가 없을 텐데.’

강현수가 기억하기로 도왕 경위강과 검존 주위천은 사이가 상당히 좋았다.

검존 주위천의 실력이 자신을 뛰어넘자 도왕 경위강은 길드 마스터 자리를 넘겨주고 자신은 장로라는 직책을 만들어 물러났다.

그 둘은 반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존 주위천이 바깥 살림을 하며 중화길드의 세력을 키우면.

도왕 경위강이 안살림을 하며 중화길드의 내실을 다졌다.

‘도왕 경위강은 검존 주위천의 정치적 스승이나 마찬가지였지.’

둘은 죽이 잘 맞았다.

‘둘이 사이좋게 내 뒤통수를 칠 정도로 말이지.’

으드득!

강현수가 어금니를 갈았다.

‘도왕 경위강이 복귀해야 제대로 된 싸움이 벌어지겠군.’

도왕 경위강의 성향이 강현수의 기억과 동일하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카발길드 역시 마찬가지다.

‘한 대 맞았다고 한 대만 때릴 놈들이 아니지.’

오늘은 곱게 물러났지만.

그건 중화길드와 중소 길드들을 분열시키기 위해서다.

카발길드는 분명 다시금 중화길드를 공격할 것이다.

강현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카발길드는.

‘자신들에게 이빨을 드러낸 적을 단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지.’

평소에는 호구 같은 모습을 보여 주다가도 누군가에게 물리면 미친개로 돌변하는 게 바로 카발길드였다.

‘본보기를 보이는 거지.’

그래야 자신을 우습게 보는 이들이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나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 했다.

강현수는 모두가 떠나간 전장으로 향했다.

‘대대 구성.’

강현수가 대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고.

사아아악!

마력으로 이루어진 소환수들이 새롭게 탄생했다.

척!

새롭게 탄생한 소환수들이 일제히 강현수에게 무릎을 꿇었다.

소환수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150여 마리 남짓.

사실 마음만 먹으면 6백 마리를 모두 채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스텟을 낭비할 수는 없지.’

전에는 스텟이 남았지만.

지금은 부족했다.

‘지휘관의 축복도 하루에 한 번씩 사용해야 하고.’

그렇기에 6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을 베이스로만 소환수를 만들었다.

“네가 대장이다.”

강현수가 가장 선두에 선 소환수에게 새롭게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지휘관 임명.’

병사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소환수들 사이에 지휘관급 소환수가 탄생했다.

화아아악!

스텟이 소모되며 지휘관으로 임명된 소환수의 마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외형도 변했다.

육체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건 변함이 없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 있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충!”

소환수가 인간의 언어를 내뱉으며 강현수에게 머리를 숙였다.

강현수가 지휘관으로 임명한 소환수는.

방금 전 전쟁에서 사망한 중화길드의 네임드 플레이어.

검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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