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예지
‘처음에는 고레벨 사냥터 숫자가 부족하니 그렇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겠지.’
초기에 등장한 고레벨 사냥터는 왕국 직속 플레이어들이 쓰기에도 부족했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 독점을 했다.
그 후 조금씩 고레벨 사냥터의 숫자가 증가했다.
각국 왕실은 자신들이 우선 쓰고 남는 사냥터를 국가 친화적인 거대 길드에 나눠 주었다.
말 잘 듣는 개에게 먹이로 던져 주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고레벨 사냥터는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각국 왕실은 사냥터 독점을 풀지 않았다.
사냥터가 남아돌아도 자국의 충성스러운 충견들에게만 사냥을 허락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인류 전체의 전력을 깎아 먹었어.’
재능 있는 이들이 아니라 각국의 왕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반대로 말하면 중소 길드 소속이나 파티 단위로 활동하는 재능 있는 이들은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냥터는 계속해서 꾸준히 늘어났다.
하나 각국 왕실의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대참사가 벌어졌지.’
각국의 왕실은 고레벨 플레이어의 사냥터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결국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고.
아틀란티스의 왕국들은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몬스터는 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한다.’
왜?
마왕군이 지속적으로 게이트를 통해 아틀란티스 차원에 몬스터를 투입시키니까.
그걸 막고 있는 게 가이아 시스템이다.
하나 가이아 시스템은 한계가 있다.
‘그저 인간들이 힘을 키울 동안 시간을 벌어 줄 뿐.’
애초에 가이아 시스템이 마왕군의 침공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었다면?
굳이 플레이어를 탄생시키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아군 차원인 지구 같은 곳에서 지원병을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거지.’
오랜 시간 이어진 마왕군의 침공.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아틀란티스의 왕국들은 그 위기를 훌륭히 극복해 냈다.
또 가이아 시스템이 계속해서 타 차원의 지원병을 보내 주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왕실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부강해졌고 왕권이 강화되었다.
그게 오히려 각국 군주들의 긴장감을 빼앗아 갔다.
그 결과 아틀란티스 차원의 군주들은 현 상황에 찌들어 버렸다.
더 이상 몬스터를 마왕군이 보낸 침략의 전초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왕권을 강화하고 왕국을 살찌울 사냥감이라고 생각했다.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사냥하며 강해진다.
그렇게 강해진 플레이어들은 왕권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마석은 인류의 생활에 엄청난 진보를 가져다줬다.
갑자기 몬스터가 사라져 마석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다면?
아틀란티스 왕국들의 경제 근간이 무너질 정도였다.
마석이 마치 지구 인류의 석유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각국의 왕실은 그런 마석을 독점하며 엄청난 부를 쌓았다.
‘생존을 위해 발악해야 할 시기에 풍요를 꿈꿨으니.’
그 대가는 처참할 수밖에 없었다.
‘각국의 왕실은 자신들의 생존만을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플레이어라는 초인이 등장했다.
초인의 등장은 각국의 왕실에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빠른 회유와 압박을 통해 플레이어 통제에 성공한 후.
갑자기 지구의 지원군들이 등장해 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입헌군주제니 하는 사상을 떠들었다.
각국의 왕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플레이어들을 통제할 힘이 필요했다.
‘가장 좋은 게 고레벨 사냥터 통제지.’
그렇게 하면?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는.
통제할 수 없는 고레벨 플레이어의 탄생을 원천 봉쇄할 수 있었다.
‘너무 썩었어.’
차라리 침략 초기에 모든 것이 무너졌어야 했다.
하나 무너지지 않았다.
왕실과 귀족들은 건재했으며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거기에 지구와 같은 타 차원의 지원병들이 만든 거대 길드가 기득권에 저항하는 대신 손을 잡는 선택을 했다.
‘무너트려야 해.’
그래야 인류 전체가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무너트리면?
인류의 내분으로 마왕군에만 좋은 일을 해 주는 꼴이 된다.
‘역시 가장 좋은 건 마왕의 하수인들과 공멸시키는 거지.’
마왕군과 손을 잡은 건 거대 길드만이 아니다.
각국의 요직에 있는 이들 중에도 마왕군과 손잡은 이들이 있었다.
‘충분히 가능해.’
회귀 전에는 몰라서 뒤통수 맞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일단 내 힘을 키워야 해.’
강현수가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6백 마리의 소환수를 모조리 최상위 레벨로 채우는 게 우선이다.’
몬스터로 채우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플레이어로 채우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
강현수의 눈에 루자베누의 성문이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중화길드의 정예들이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나지는 않겠지.’
거대 길드와 거대 길드의 전쟁이다.
아마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수많은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죽겠지.’
이것은 인류의 내전이다.
마왕의 하수인들을 줄인다는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중화길드는 어찌 되었든 인류의 편이지.’
사고뭉치였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게 인류의 손해로 작용하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큰 이득이 될 것이다.
카발길드라는 독버섯을 제거한다.
중화길드라는 골칫거리의 힘을 약화시킨다.
겉으로 보기에 이건 인류와 마왕군의 전력이 동시에 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개입하면 사정이 달라지지.’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정예들이 고스란히 강현수의 소환수로 재탄생한다면?
마왕의 하수인을 박멸하고 골칫거리의 힘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인류의 전력은 오히려 늘어나는 셈이지.’
그 힘이 강현수라는 개인에게 온전히 종속되는 소소한 이변이 발생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지휘관의 축복.’
강현수가 중화길드 700레벨대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만든 소환수에게 지휘관의 축복 스킬을 사용했다.
[직업 스킬 지휘관의 축복 – F랭크를 사용합니다.]
[스텟이 영구적으로 소모되었습니다.]
화아아악!
환한 빛무리가 소환수의 몸을 휘감았다.
[소환수가 강화되었습니다.]
‘스텟 소모가 꽤 심하네.’
예상보다 소모되는 스텟의 양이 꽤 많았다.
아마 소환수의 기본 능력치가 상당히 높기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덕분일까?
[직업 스킬 지휘관의 축복 – F랭크가 E랭크로 성장합니다.]
단 한 번 스킬을 사용했음에 랭크가 상승했다.
‘늘었어.’
강화 가능한 한계치가 1%에서 5%로 증가했다.
그뿐 아니라 강화 가능한 소환수의 숫자도 열 마리에서 20마리로 늘어났다.
‘쿨타임이 겨우 4시간밖에 줄지 않은 게 아쉽네.’
하지만 괜찮았다.
고작 20시간.
보름 조금 넘는 시간만 투자하면.
20마리의 소환수를 모두 강화할 수 있었다.
* * *
“정말 중화길드의 짓이었다는 말이지?”
카발길드의 길드 마스터 제이미가 분노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습격자들의 몸에서 중화길드의 브로치가 나왔습니다. 또한 물러나려는 길드원들을 중화길드의 정예들이 공격했습니다.”
“겨우 한 명만 살아남았다고?”
“그렇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전멸했을 수도 있습니다.”
“전 병력 출정 준비시켜. 중화길드를 친다.”
“그럼 강림 의식은?”
“어쩔 수 없지. 뒤로 미룬다.”
“그분들께서 크게 노하실 겁니다.”
“그럼 이대로 당하고 있으란 말이냐? 중화길드 놈들은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작자들이야. 이번에 우리가 잠자코 있으면? 그놈들이 얌전히 물러날 것 같아?”
제이미의 말에 부길드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놈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만만하게 보고 미친 듯이 날뛸 거야. 놈들의 공격을 받으면 어차피 강림 의식도 물 건너간다. 어때? 내 말에 틀린 점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당장 준비해. 최단시간에 중화길드를 쓸어버린다.”
“예, 길드 마스터.”
카발길드의 정예들이 속속 소집되었다.
그리고 카발길드의 귀에 중화길드 소속의 대규모 병력이 카발길드의 영토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내 선택이 옳았어.’
제이미가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병력이 모이기 전에 기습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가자.”
제이미가 이미 소집된 카발길드의 정예들을 이끌고 중화길드의 대군을 맞이하기 위해 출전했다.
* * *
중화길드와 카발길드가 각자의 전력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다.
그 시각 강현수는.
카발길드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라메파질 왕국의 대도시 다이온에 잡입했다.
‘이놈이 어디 있으려나?’
다이온에 잠입한 이유는 단 하나.
강현수가 노리고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를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 당장은 큰 위협이 안 되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도 치워 버리는 게 맞아.’
그래야 그가 가진 스킬을 자신이 독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킬은.
송하나와 투황을 비롯해 앞으로 자신의 휘하에 들일 플레이어들을 설득하는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비전투 계열이니 전장에 동원되지는 않았을 거고.’
강현수는 다이온에 자리한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정예들이 대부분 출정한 지금은 가능했다.
남은 정예들도 중화길드의 기습에 대비해 다이온 성벽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수색을 했을까?
드디어 강현수의 눈에 원하던 목표가 들어왔다.
‘레플리카.’
강현수는 레플리카 스킬을 시전했다.
[고유 스킬 레플리카 – B랭크를 사용합니다.]
[스택 하나가 소모됩니다.]
[강건한 육체 – D랭크의 레플리카를 만듭니다.]
[레플리카 스킬 강건한 육체 – F랭크가 생성되었습니다.]
[레플리카 스킬은 원본의 100%의 능력치를 갖습니다.]
……후략……
강현수가 계속해서 레플리카 스킬을 시전했다.
대상이 보유하고 있는 스킬은 대부분 육체 능력을 올려 주거나 방어 능력을 올려 주는 계열이었다.
‘설마 스택이 다 소모될 때까지 안 나오는 건 아니겠지?’
레플리카 스킬이 B랭크로 올라서며 스택의 숫자도 20개로 늘어난 상태.
20개는 많다면 많지만.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적은 수이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산 채로 제압해 카발길드의 길드 하우스 밖으로 데리고 간 뒤.
스택이 충전될 때까지 끌고 다는 수밖에.
‘위험 부담이 조금 있기는 한데.’
아무리 카발길드가 텅 비어 있다고는 해도 짐덩이 하나까지 짊어지고 활보하기에는 약간의 부담이 있었다.
만약 발각되면?
다이온 성벽에 있는 카발길드의 정예들이 몰려올 게 확실했다.
그때였다.
[고유 스킬 레플리카 – B랭크를 사용합니다.]
[스택 하나가 소모됩니다.]
[미래 예지 – E랭크의 레플리카를 만듭니다.]
[레플리카 스킬 미래 예지 – F랭크가 생성되었습니다.]
[레플리카 스킬은 원본의 100%의 능력치를 갖습니다.]
‘얻었다.’
14번째 스택이 소모될 때 원하던 스킬을 손에 넣었다.
‘잘 가라.’
서걱!
강현수의 검이 가볍게 상대의 목을 날려 버렸다.
미래 예지라는 사기적인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허무한 최후였다.
‘사실 사기적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지.’
강현수가 미래 예지 스킬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미래 예지 – F랭크]
-액티브 스킬
-레플리카 스킬입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지합니다.
-쿨타임 : 365일
쿨타임이 무려 1년이나 되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지할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
‘하지만 함정이 많지.’
1년이라는 긴 쿨타임을 감수하고 스킬을 사용했는데.
‘화장실에서 열심히 배에 힘을 주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미래가 보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