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계 (2)
강현수의 소환수들은 사냥을 하고 있던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과 지원을 나온 카발길드원들을 모조리 학살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사방으로 흩어져 다시금 학살을 이어 갔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강현수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새로운 카발길드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700레벨대다.’
거대 길드의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은 랭커로 분류되는 극소수의 수뇌부를 제외하면 길드의 주력 중 최고의 무력을 가진 집단이다.
‘당장 독립해 중소 길드를 차려도 될 정도지.’
거대 길드라고 해도 700레벨대로 이루어진 파티는 그리 많지 않다.
규모가 큰 초대형 길드라고 해도 고작 세 개에서 네 개.
적으면 겨우 한 개에서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도주해라.’
강현수가 소환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소환수들은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등장한 순간부터 전력을 다해 도주했다.
그냥 도주한 건 아니었다.
죽은 플레이어들이 걸치고 있던 아이템과 죽으면서 토해 낸 스킬북을 싹쓸이해서 튀었다.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엄청난 속도로 추격해 왔지만.
애초부터 거리 차이가 꽤 있었다.
소환수의 시야에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보인 순간부터 도주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두 집단의 거리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따라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네놈들이 과연 따라올 수 있을까?’
소환수들이 카발길드의 영토에서 벗어나 중화길드의 영토에 진입했다.
추격하던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은.
중화길드의 영토 앞에서 멈춰 섰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카발길드는 다른 길드와의 충돌을 최대한 자제했다.
분쟁이 생겨도 항상 한 발씩 양보했다.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쌓았다.
‘그 덕에 사실상 호구 취급을 받았지.’
거대 길드임에도 힘을 남용하지 않는다.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다.
‘훗날 제대로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 착한 척을 한 거지.’
하지만 이곳 아틀란티스 차원은.
‘호구가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지.’
회귀 전 카발길드를 우습게 보고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분쟁을 일으킨 거대 길드가 있었다.
그들은 야금야금 카발길드의 이권을 침범했다.
카발길드는 평소처럼 양보했다.
하나 그게 실수였다.
그 거대 길드는 아예 대놓고 카발길드의 이권을 빼앗았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카발길드원을 살해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전쟁을 선포했지.’
전쟁 선포와 동시에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그때 보여 준 카발길드의 전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불과 석 달 만에 전쟁이 끝났지.’
카발길드를 우습게 보고 싸움을 걸었던 거대 길드의 수뇌부들은 모조리 목이 날아갔다.
그리고 살아남은 거대 길드의 길드원들은 카발길드에 흡수당했다.
그 전쟁 한 번으로 카발길드를 겁쟁이라며 우습게 보던 여론이 쏙 들어갔다.
카발길드와의 분쟁에서 과한 양보를 받았다고 생각한 길드들은 선물 보따리를 싸 들고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선물 보따리를 싸 들고 찾아가 용서를 구한 길드가 바로 중화길드였지.’
중화길드와 카발길드는 사냥터가 겹쳐 있기에 수시로 분쟁이 발생했다.
카발길드는 분쟁이 생기면 항상 중화길드에게 양보했다.
중화길드는 카발길드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수시로 크고 작은 양보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 왔다.
그런 중화길드로서는.
거대 길드 하나가 석 달 만에 박살 나는 광경을 보며 아마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선을 넘었다면?
자신들도 그 꼴이 났을 수 있다.
‘아직 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렇기에 카발길드를 우습게 보는 거대 길드들이 많았다.
‘그리고 중화길드가 가장 카발길드를 우습게 보고 있지.’
물론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와의 전쟁으로 소멸한 거대 길드는 그 체급이 달랐다.
중화길드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더 컸다.
그러니.
‘더 흥미로운 싸움이 되겠지.’
강현수는 인간형 소환수들이 챙겨 온 아이템을 몬스터형 소환수들에게 넘기도록 시켰다.
그리고 인간형 소환수들의 소환을 해제했다.
‘중대 소환.’
그 후 자신이 있는 위치에 다시금 인간형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죽여라.’
강현수의 명령을 받은 소환수들이.
다시금 학살을 시작했다.
* * *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카발길드의 길드장 제이미가 살기 어린 노성을 토해 냈다.
“아직 정확히 정체가 파악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하지 않더라도 말해 봐!”
“중화길드 소속일 확률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왜? 그놈들이 중화길드 영토로 도망쳐서?”
“그것도 있지만, 놈들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들이 중화길드의 정예들이 사용하는 스킬과 일치합니다.”
“그게 다야?”
“학살을 벌이고 있는 적의 규모는 대략 5백여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한데 이 근방에서 그 정도 규모의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길드는 중화길드가 유일합니다.”
도주하는 위치가 수상하다.
사용하는 스킬이 수상하다.
병력의 동원 규모가 수상하다.
하나가 맞아떨어지면 우연일 수도 있다.
둘이 맞아떨어져도 아주아주 희박하지만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셋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오직 필연뿐이다.
“그 미친놈들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이유는 많습니다. 우리 카발길드가 자치하고 있는 사냥터가 탐났을 수도 있고 플레이어들을 죽인 후 얻는 전리품인 아이템과 스킬북이 탐났을 수도 있습니다.”
“사냥터와 아이템이 탐났다?”
“학살이 자행된 곳은 중화길드와 우리 카발길드의 사냥터가 겹치는 지역뿐입니다. 또 놈들은 아군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아이템과 스킬북을 모조리 쓸어 갔습니다.”
“겨우 그따위 걸 얻기 위해 우리와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건가?”
“중화길드 놈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녀석들입니다. 아마 전쟁이 벌어지면 손쉽게 우리 카발길드의 모든 것을 독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이미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래,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기는 하지.”
카발길드는 그간 타 길드를 상대로 크고 작은 분쟁에서 많은 양보를 했다.
다른 길드들은 카발길드를 우습게 보면서도 고마워하는 시늉이라도 낸다.
또 당분간은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나 중화길드는 달랐다.
마치 당연히 맡겨 놓은 것을 받아 간다는 듯 당당한 태도를 고수했다.
또 받아먹은 사실을 까먹기라도 했는지 다시금 분쟁을 일으켰다.
으드득!
제이미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우리가 너무 만만히 보였나 보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카발길드가 그동안 다른 길드와의 분쟁에서 최대한 양보를 한 이유는 좋은 이미지를 쌓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현재 준비하고 있는 강림 의식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일단 확실한 물증부터 잡아야겠지. 추격대에게 알려. 중화길드 영토로 진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그놈들 잡으라고.”
“알겠습니다.”
* * *
강현수는 계속해서 위치를 이동하며 소환수들의 소환과 해제를 반복했다.
그 덕에 고작 1백여 마리에 불과한 인간형 소환수들이 여러 곳에서 날뛸 수 있었다.
‘아마 같은 존재라고는 생각을 못 하겠지.’
공간 이동 게이트를 이용하는 게 아니면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1초 만에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강현수가 노린 건 병력의 뻥튀기 효과.
‘아마 몇백 정도의 병력이 공격을 가한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이놈들은 언제까지 잠자코 있을 생각이지?’
강현수는 카발길드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그 속은 그 누구보다도 사악한 놈들이다.
‘마족 소환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놈들이지.’
같은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놈들이 바로 카발길드다.
‘괜히 병력을 뺐나?’
카발길드가 급발진할 때를 대비해 새로운 분장을 마친 600레벨대 소환수 열 마리를 미리 빼놓은 상태였다.
한데 카발길드는 큰 반응이 없었다.
‘뭐, 계속해서 가만히 있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지.’
하루 종일 치고 빠지며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학살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네놈들의 참을성이 얼마나 가나 보자.’
오늘 하루 종일 참는다면?
내일도 오고 내일모레도 오면 그만이다.
그때였다.
‘어라.’
소환수들이 중화길드의 영토로 넘어갔음에도.
카발길드의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전 병력을 이끌고 전면전을 펼쳤으면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단은 진실을 확인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 모양이었다.
‘그럼 진실을 알게 해 줘야지.’
강현수는 소환수들을 중화길드의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미리 빼놨던 600레벨대 소환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중화길드의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라고.
* * *
‘오늘도 허탕인가?’
중화길드 제7팀 소속 2번 파티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시간 아깝네.’
지난 며칠간 경험치도 얼마 안 주는 저레벨 몬스터만 잡았다.
당연히 손해 본 시간이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도 안 보는 상황에서 저레벨 몬스터를 아주 힘들고 아슬아슬하게 잡는 연기까지 해야 했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방구석에서 단체로 생쇼를 하는 느낌이랄까?
제7팀 소속 2번 파티원들 입장에서는 현타가 제대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콰콰콰콰!
파지지직!
오러와 뇌전이 뒤섞인 공격이 제7팀 소속 2번 파티를 향해 날아들었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중이었지만 제7팀 소속 2번 파티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막아 냈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들이기에 막아 낸 것이다.
500레벨 수준의 플레이어들이었다면?
상당히 치명적이었으리라.
거기다 몬스터 사냥 중에 뒤통수를 맞은 것 아니겠는가?
파티장과 파티원들의 눈이 번뜩였다.
“드디어 잡았다.”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아 주마.”
제7팀 소속 2번 파티가 자신들에게 공격을 날린 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데 이 약삭빠른 놈들이.
“거기 서라!”
“절대 놓치지 마!”
벌써 도망치고 있었다.
* * *
‘순조롭네.’
중화길드의 700레벨대 플레이어와 카발길드의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시간이 안 맞네.’
중화길드와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추격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대로 가면?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충돌하기 전에 소환수들이 먼저 잡힐 판이었다.
‘속도 조절을 해야겠네.’
강현수가 소환수들 중 일부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카발길드의 추격을 받던 소환수들 중 열 마리만 남기고 공격에 나섰다.
그중에는 중화길드의 마크인 황룡을 형상화한 브로치를 품고 있는 열 마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환수들과 카발길드 소속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충돌했다.
소환수들은 목숨을 도외시하고 나 죽고 너 죽자는 식으로 덤벼들었다.
애초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소환수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그저 스킬로 만들어 낸 도구일 뿐.
그러니 저런 형태의 공격이 가능했다.
하나.
‘얼마 못 버티네.’
숫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고작 500레벨대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환수들이다.
아무리 머릿수가 여덟 배 이상 많다고 해도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증거는 남길 수 있지.’
중화길드의 마크인 황룡을 형상화한 브로치.
그 브로치가 카발길드 소속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에게 큰 확신을 줄 것이다.
중화길드가 자신들의 적이라는 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