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47화 (47/365)

이간계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500레벨 사냥터에서 힘겹게 몬스터를 잡는 연기를 하고 있다.

‘함정인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머리 좀 굴렸네.’

위험에 노출되는 500레벨대 플레이어들의 사냥을 금지시킨다.

그 후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500레벨대 플레이어인 척 위장시킨다.

그러면 중화길드의 500레벨대 플레이어들을 실종시킨 범인이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 접근할 걸로 예상했나 보다.

‘사실 내가 먼저 공격한 적은 없었는데.’

항상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특히 파티 구성원에 남자 비율이 높을수록 시비 거는 확률이 올라갔다.

그놈들의 목적은 하나같이 송하나였다.

신사인 척 접근하는 놈들도 있기는 했지만.

강현수 일행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곧바로 태도가 돌변해 급발진을 했다.

‘신사에서 미친놈으로.’

강현수는 먼저 시비 거는 미친놈들은 살려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놈들은 건들지 않았지.’

만약 만나는 족족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사냥했다면?

중화길드가 입은 피해는 지금의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났으리라.

‘일단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중화길드에서도 엄선된 정예를 보냈을 것이다.

500레벨대나 600레벨대 중화길드 파티는 현재 강현수 파티의 전력으로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그러나 700레벨대는 사정이 달랐다.

‘내가 셋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지만.’

송하나와 투황이 문제였다.

제아무리 규격 외의 실력을 가진 송하나와 투황이라도 300레벨가량 차이 나는 적은 하나 이상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감당할 수 있는 적의 수는 다섯 명.

하지만 적의 총원은 무려 열 명.

소환수를 총동원해서 전면전을 벌이면?

나머지 다섯 명의 발을 잡을 수 있을까?

‘계속해서 중대 구성 스킬을 사용하면?’

잘하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나 100%는 아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복수의 문양이 생길 거야.’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적들을 생포할 여유 따위가 생길 리 없었다.

적들을 죽이면?

D랭크 수준이 아니라 B랭크나 A랭크 복수의 문양이 생길 것이다.

‘거기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저놈들이 도주할 수도 있고.’

소환수들의 평균 레벨은 500대.

600레벨대 소환수는 고작 열 마리밖에 없다.

머릿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700레벨대 플레이어들의 도주를 완벽하게 막을 확률은 상당히 희박했다.

‘웬만하면 충돌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문제는 저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온다면?

여태까지 그랬듯 싸울 수밖에 없었다.

‘소규모 파티군.’

제7팀 소속 2번 파티의 리더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강현수 일행을 주시했다.

제7팀은 전원 700레벨대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500레벨대 몬스터를 아슬아슬하게 사냥하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중화길드의 5팀 소속 파티들을 실종시킨 범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저놈들은 아니겠군.’

일단 숫자가 너무 적었다.

고작 세 명.

세 명이서 열 명으로 이루어진 5팀 파티 두 개를 전멸시킨다는 건 개연성이 없었다.

실력 차이가 아무리 많이 나더라도.

고작 세 명이서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는 20명의 퇴로를 막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으니까 말이다.

제7팀 소속 2번 파티의 리더는 강현수 일행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도대체 언제 미끼를 무는 거냐?’

그리고 간절하게 5팀을 공격한 범인들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냥 가네.’

강현수 일행을 힐끗 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사라졌다.

‘다행이기는 한데.’

안심할 수는 없었다.

‘범인이 계속 안 나오면?’

저 미친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막말로 500레벨대 사냥터에서 마주치는 플레이어들을 모두 용의자로 보고 체포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슬슬 움직여야겠어.’

마왕의 하수인들로 이루어진 카발길드와 사고뭉치 중화길드를 충돌시켜야 할 때가 왔다.

* * *

“오늘은 쉬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와 투황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쉰다고?”

“그게 정말인가?”

“왜?”

“너무 이른 것 같은데?”

“난 사냥 더 해도 괜찮은데?”

“나도 마찬가지다. 내 체력은 아직 쌩쌩하다.”

“어, 그게.”

강현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쉰다고 하면 송하나와 투황이 전처럼 뛸 듯이 좋아할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하긴 저 둘도 수련광이지.’

전에는 강현수가 너무 강행군을 했기에 휴식이 간절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휴식을 외친 것이다.

하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쉬어. 성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고.”

“무슨 일 있어?”

“너 뭔가 수상하다.”

송하나와 투황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현수를 주시했다.

‘말해 줄 수는 없는데.’

강현수는 오늘 소환수들을 이끌고 카발길드를 습격할 생각이었다.

마왕의 하수인들을 공격하는 것이니 거리낄 게 없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카발길드는 대외적으로 마왕의 하수인이 아니었다.

카발길드는 꼬리를 잘 감췄다.

얼마나 잘 감췄는지 나중에 정체가 드러난 후에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난리 친 플레이어들이 나왔을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내 말대로 해 주면 안 될까?”

“알았어.”

“좋다. 오늘은 푹 쉬도록 하지.”

다행히 송하나와 투황이 강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쉬고 있어.”

강현수가 홀로 숙소 밖으로 나섰다.

‘곤란해.’

송하나와 투황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 줬다.

그간 쌓은 신뢰가 적지 않았기에 수긍해 준 것이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내일부터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전쟁이 시작되면?’

강현수에 대한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신뢰를 쌓는 것은 어렵다.

하나 신뢰를 깨는 건 너무 쉽다.

‘비밀을 지키면서도 신뢰를 유지시켜야 해.’

하지만 그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어.’

마왕의 하수인들과 배신자들.

마왕의 하수인들은 어차피 처리해야 할 적이다.

그러나 배신자들은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마왕군과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된 영웅들이다.

그들을 마왕의 하수인들과 공멸시킨다면?

인류의 전력에 큰 공백이 발생한다.

‘대체재가 필요해.’

강현수를 배신하지 않았던 이들.

사리사욕보다는 인류 전체를 위해 싸웠던 이들.

‘그런 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일찍 죽었지.’

송하나와 투황은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강현수는 두 사람의 운명에 개입함으로써 미래를 바꿨다.

‘둘로 만족할 수는 없어.’

정략 싸움에 밀려 함정에 빠져 너무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영웅들의 미래를 비틀어야 했다.

아니, 단순히 비트는 게 아니라 그들을 자신의 휘하에 거느려야 했다.

또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야 했다.

‘솔직히 절대적인 신뢰도 부족하지.’

이미 한번 신뢰하던 이들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충성을 얻어 내야 해.’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손에 넣었다.

다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손에 넣지 못했을 뿐.

‘어느 정도는 오픈해야 해.’

권한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자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절대적인 충성을 받아 낸다고 해도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유비무환.

회귀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만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 스킬을 손에 넣어야겠어.’

회귀자라는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송하나와 투황을 비롯해 앞으로 포섭해야 할 플레이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스킬.

‘겸사겸사 잘됐어.’

어차피 그 스킬은.

‘카발길드에 있지.’

* * *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일반적인 플레이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아니지.’

강현수는 카발길드의 입단 조건을 알고 있었다.

‘마족과의 계약.’

계약을 거부하면?

카발길드에 입단하지 못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중대 소환.’

강현수가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모두 소환하지는 않았다.

대략 1백여 마리.

모두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바탕으로 만든 소환수였다.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저놈들이 입고 있는 옷이지.’

소환수들이 걸치고 있는 옷은 아이템 효과가 없는 평범한 옷가지였다.

시중에서 헐값에 구할 수 있는.

하지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1백여 마리의 소환수들 중 열 마리가 중화길드의 마크인 황룡이 형상화된 브로치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당당하게 브로치를 달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품에 숨겼을 뿐이다.

‘습격하는 놈들이 대놓고 증거를 달고 다니면 오히려 더 이상하지.’

황룡이 형상화된 브로치는 미래를 위한 포석일 뿐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옷가지가 더 중요했다.

전신을 꼼꼼하게 가렸으니.

‘이놈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감춰 줄 수 있겠지.’

소환수들이 준비를 끝냈다.

‘죽여라.’

강현수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콰콰콰콰콰!

소환수들이 폭발적인 마력을 뿜어내며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이 자식들 뭐야?”

“튀어!”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전투 대신 도주를 선택했다.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들은 고작해야 200~300레벨대 플레이어들었고.

소환수들은 전원 500레벨대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꽈아아앙!

“아아악!”

폭음과 함께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마족과 계약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힘을 섣불리 드러낼 수는 없겠지.’

마족과 계약한 사실이 드러나면 끝장이다.

아틀란티스 차원의 모든 플레이어들의 공적이 된다.

‘뭐, 드러내도 상관없고.’

마족과 계약한다고 해서 극적으로 강해지지는 않는다.

그 정도가 되려면 수백 수천의 생명을 산 제물로 바쳐야 한다.

저 정도 레벨이라면?

마족의 힘을 끌어와 봤자 소환수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그러면서도 마족의 힘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용 안 한 건지, 사용 못 한 건지.’

그건 강현수도 모른다.

하지만 짐작 가는 건 있었다.

‘아마 길드 차원에서 강제로 제약을 걸어 놨겠지.’

보안 유지를 위해서.

‘역시 쉽게 꼬리를 드러내지 않네.’

회귀 전에도 카발길드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

그 많은 길드원들 중 누군가가 말실수라도 해서 퍼져 나갈 만도 한데.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스킬을 이용한 거라면?

그 스킬을 손에 넣고 싶을 정도로 철저했다.

‘그럼 가 볼까.’

강현수가 중대장의 시선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몸을 날렸다.

“아아악!”

“지원 요청해!”

강현수가 떠난 뒤에도 소환수들은 학살을 계속했다.

그 자리에 있는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를 모두 죽였다면?

곧바로 이동해 다른 곳에서 사냥 중이던 카발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카발길드 소속이 아닌 플레이어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장소에 도착한 강현수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차분히 기다렸다.

잠시 후.

‘제법 반응이 빠르네.’

중대장의 시선으로 본 시야에 지원 나온 카발길드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동속도로 볼 때 400~500레벨대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숫자는 50명가량.

‘너무 쉽게 생각한 거 같은데.’

200~3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습격당한 일이다.

400~5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나서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죽여라.’

강현수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뿔뿔이 흩어졌던 소환수 1백여 마리가 한자리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카발길드의 정예들에게 덤벼들었다.

600레벨대 소환수 열 마리에 500레벨대 소환수가 90마리다.

고작 400~500레벨대 플레이어 50명이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최선두에 있던 600레벨대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만든 열 마리의 소환수들이 공격 스킬을 쏟아 내며 공격을 시작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다시금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