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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레벨 플레이어-45화 (45/365)

술래잡기

‘이놈이 마지막이네.’

퍼억!

강현수가 왕진평까지 말끔하게 기절시켰다.

마력을 듬뿍 담은 검 면으로 후려쳤으니.

몸속에 스며든 강현수의 마력이 소멸하기 전까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저쪽도 슬슬 끝나 가네.’

강현수가 송하나와 투황의 전투를 주시했다.

나름 치열하게 진행되던 승부의 승기가.

어느새 송하나와 투황에게 기울어져 버렸다.

‘확실히 사기는 사기야.’

강현수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수호의 반지를 쓰다듬었다.

적들의 방심을 유도했다.

그리고 수호의 반지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 약자의 반격을 사용했다.

약자의 반격은 1초 동안 착용자가 받는 모든 공격을 적들에게 되돌려준다.

‘쿨타임이 너무 긴 게 단점이기는 하지만 꽤 쓸 만한 스킬이야.’

수호의 반지에 내장된 첫 번째 스킬인 최후의 방패는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최후의 방패는 단 한 방을 막아 주지만.

약자의 반격은 1초 동안 받는 모든 공격을 상대에게 되돌려주는 범용성이 있었다.

‘각기 장단점이 있는 거지.’

최후의 방패는 엄청나게 강력한 일격을 막을 때 효용을 발휘하고, 약자의 반격은 다수의 적을 상대로 그 효용성을 발휘한다.

당연히 쿨타임은 약자의 반격이 월등히 더 길었다.

‘굳이 하나만 쓸 필요는 없지.’

수호의 반지에 여러 스킬을 잘 조합시켜 놓으면?

쿨타임 걱정 없이 방어 스킬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꽈아앙!

“아아악!”

커다란 폭음과 함께 송하나와 투황의 전투가 끝났다.

‘이제 뒤처리를 해야지.’

강현수가 송하나와 투황이 쓰러트린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기절시킨 후 한자리에 모았다.

“가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와 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잠시 자리를 떴다.

그 후 강현수가 소환수들을 역소환시켰다.

크르르릉!

소환수들이 사라지자마자 피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기절한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었다.

‘다 죽었네.’

말끔하게 뒤처리가 끝났다.

강현수는 아이템을 탐식의 검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준 후 스킬북을 챙겼다.

그리고 중대 구성 스킬까지 사용했다.

‘말끔하네.’

마지막을 몬스터들에게 양보했기에 경험치나 업적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큰 이득이었다.

A랭크와 B랭크 아이템과 스킬북.

거기다 600레벨대 소환수 열 마리.

‘그러게 좋게 보내 줄 때 그냥 넘어갈 것이지.’

중화길드에 대한 자부심.

주인 없는 루자베누 인근 사냥터에 대한 독점욕.

이 두 가지가 저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앞으로도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중화길드는 인근 사냥터를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도 중화길드와 충돌할 확률이 높았다.

‘굳이 피할 필요는 없겠지.’

중화길드는 마왕군과의 전쟁 와중에 아군과 수많은 충돌을 일으킨 트러블 메이커였다.

세력이 꺾인다면?

‘그 오만함도 좀 사그라들겠지.’

강현수는 중화길드의 전력이 줄어든다고 해서 마왕군과의 싸움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쭉정이들이 대다수였으니까.’

중화길드는 엄청난 숫자의 길드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막상 마왕군과의 전면전 당시.

진짜 전력이 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채 한 줌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오히려 손해만 입혔지.’

머릿수는 많았지만.

그 수준이 낮다 보니.

정신계 공격에 당해 아군을 공격하거나.

죽어서 언데드로 부활해 적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차라리 세력이 줄어들어 소수 정예 체제가 되는 게 더 도움이 될 거야.’

결정적으로.

‘어차피 이놈들도 배신자의 수하에 불과해.’

훗날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되는 검존.

그는 강현수를 배신한 최후의 21인 중 하나였다.

* * *

“실종?”

“예.”

중화길드 부길드 마스터 멸마창 진구평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실종된 놈들 찾으라고 보냈던 놈들이 또 실종됐다고?”

“네, 그렇습니다.”

휘익!

멸마창 진구평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더미를 집어 던졌다.

퍼억!

보고를 올리던 부관이 서류 더미에 얻어맞았다.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고 있는 거야!”

멸마창 진구평이 노성을 터트리며 길길이 날뛰었다.

부관이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멸마창 진구평의 귀에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부관은 상관인 멸마창 진구평의 화가 풀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하아! 하아! 7팀 전원을 동원해.”

한참 화를 토해 내던 멸마창 진구평이 짧은 지시를 내렸다.

7팀은 전원 700레벨대 플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총 세 개의 파티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한 개 파티는 대규모 원정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중화길드는 1팀부터 7팀까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7팀을 동원하라는 건 랭커들을 제외한 중화길드 최정예들을 모조리 동원하라는 말과 같았다.

“알겠습니다.”

부관이 재빨리 대답과 함께 자리를 떴다.

“어떤 빌어먹을 놈들이.”

부관이 나간 뒤 멸마창 진구평이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5팀이 실종된 것도 큰일이었지만 6팀이 실종된 건 더 큰일이었다.

중화길드는 수만에 달하는 길드원을 거느린 초거대 길드다.

하나 하위 서열인 1팀에서 4팀이 길드원의 90%가 넘는다.

5팀부터 그 수가 몇백 명대로 급격히 줄어들고, 6팀은 겨우 여덟 개 파티로 총원이 고작 87명에 불과했다.

한데 그중에 열 명을 잃었다.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부길드장 자리가 위험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중화길드 내에 랭커들의 온갖 견제를 뚫고 겨우 얻은 자리다.

길드장까지 딱 한 걸음 남은 상태에서 자신의 커리어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씹어 먹어 주마.’

원정이 끝나 길드장과 랭커들이 복귀하기 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 * *

“당분간 사냥터를 서쪽으로 바꿔야겠어.”

“그래.”

“그러지 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와 투황이 선선히 찬성했다.

루자베누는 거대한 대도시다.

당연히 사냥터도 많았다.

송하나와 투황은 강현수가 왜 굳이 사냥터를 서쪽으로 바꾸자고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루자베누의 실질적인 지배자나 마찬가지인 중화길드의 파티 두 개를 전멸시켰다.

분명히 조사가 시작되리라.

강현수 파티는 사냥 허가서가 없다.

그 말은 중화길드의 조사대와 부딪치면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루자베누에 머무를 필요가 있어?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

송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맞다. 나도 사냥터 통제라는 요상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에게 굴복하고 사냥 허가서를 발급받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사냥 허가서 없이 이곳에서 사냥을 계속하면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건 어떠냐?”

“지금은 그럴 수 없어.”

강현수 일행이 오늘 갑자기 타 지역으로 가면?

중화길드는 강현수 일행을 의심할 것이다.

‘그럼 그 의심을 풀 길이 없지.’

중화길드는 사소한 의심만으로도 강현수 일행을 추적할 추격대를 보내고도 남을 놈들이다.

그리고 추격대와 충돌하면?

감히 자신들의 추격대를 공격했다고 온갖 난리를 치며 덤벼들 놈들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중화길드의 가장 무서운 점은 엄청난 머릿수다.

물론 랭커들이 있기는 하지만.

‘원정을 나갈 때 랭커들이 대부분 빠져나갔지 아마?’

그렇기에 현재 중화길드에 남아 있는 인원은 쭉정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남아 있는 랭커들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놈들 눈만 피하면 그만이야.’

중화길드가 용의자를 찾는 방법이 복수의 문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정체만 들키지 않으면?

‘굳이 중화길드와의 충돌을 피할 필요가 없지.’

그동안 강현수가 중화길드와의 충돌을 피한 이유는 단 하나.

정면 승부로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면 승부를 피할 방법이 있다면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없는 게 나은 놈들이야.’

툭하면 사고 쳐서 아군과 충돌하고.

머릿수를 제외하면 큰 도움도 되지 않고.

그나마 쓸 만한 중화길드 랭커들의 우두머리는.

‘내 뒤통수를 쳤지.’

정확히는 칼을 꽂았다.

그런 놈들이 뭐가 이쁘다고 내버려 두겠는가?

‘사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죽이고 싶은데.’

황소욱, 신소희, 이철민, 검존 등등.

총 21인의 배신자들.

그러나 그들은 현재 대형 길드의 간부이거나 길드 마스터였다.

현재 강현수가 가진 힘으로는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거다.’

회귀 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죽도록 고생해서 얻은 힘을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회복했다.

‘짧으면 앞으로 1년, 길어야 3년.’

그 정도 시간만 있다면?

몸을 숨기고 있는 마왕의 하수인들과 21인의 배신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냥 곱게 죽일 수는 없지.’

강현수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들.

그들은 마왕이 이끄는 마왕군은 무너트리는 데 큰 힘이 된 이들이다.

‘철저하게 이용해 주마.’

배신자들을 헛되이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마왕군의 주력과 충돌시켜 싸우게 만들 것이고.

죽어서는 강현수의 소환수가 되어 평생을 봉사하게 하리라.

‘예정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일단 중화길드를 카발길드와 충돌시켜 볼까.’

카발길드는 영국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길드로, 현재 중화길드가 속해 있는 마이트어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메파질 왕국 소속이다.

또한.

‘마왕의 하수인들이 장악한 길드이기도 하지.’

훗날 전면전이 벌어졌을 당시.

카발길드의 배신으로 인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카발길드는 결정적인 순간 정체를 밝히고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 아군인 척하며 지속적으로 정보를 교란했다.

거짓 정보로 아군끼리의 충돌을 부추기거나 아군을 사지로 몰아넣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이다.

‘그놈들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피를 흘렸지.’

중화길드는 카발길드의 정체가 밝혀진 후.

자신들이 피닉스길드와 충돌한 것 역시 카발길드의 농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화길드가 워낙 꼴통이었기에 그 주장은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카발길드가 부린 수작은 고작 서로 감정의 골이 아주 살짝 파일 정도에 불과했다.

한데 중화길드는 그런 수작에 넘어가 마왕군과 전쟁 중 아군인 피닉스길드를 공격했다.

‘역시 중화길드 놈들은 마왕군과의 전쟁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카발길드와 충돌하는 게 낫지.’

마왕의 하수인과의 전면전.

그게 중화길드를 좀 더 쓸모 있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아직 좀 이르기는 한데.’

강현수는 1년 뒤.

독충 군단이 등장하고 구오피밭이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하게 된 이후에 중화길드와 카발길드를 충돌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네놈들이 이렇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가 없지.’

강현수가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충돌을 1년 뒤로 미룬 것은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자신은.

중화길드와 카발길드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는.

너무 약했으니까.

‘그렇지만 편하게 사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사냥을 하면 중화길드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강현수 일행이 가만히 있어도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올 테니까 말이다.

계속해서 피할 수는 없다.

‘꼬리가 길면 밟힐 수밖에 없지.’

그러니 그 꼬리를 카발길드의 것으로 바꿔야 했다.

‘이번 일과 앞으로 생길 일들의 범인을 카발길드로 만들면 되겠지.’

그 정도만 해도 중화길드는 알아서 카발길드에 싸움을 걸 것이다.

두 거대 길드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사냥터를 관리할 여유 자체가 사라지겠지.’

강현수로서는 배신자와 마왕의 하수인을 충돌시키고 편안하게 사냥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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