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피릭 오러 (2)
‘뭐, 뒤늦게 빛을 보는 경우도 있지.’
처음부터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었다.
또 성화의 신녀가 가진 주력 스킬의 특성상 초반부터 빛을 보기는 힘들었다.
‘그냥 힐 스킬만 얻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중화길드 정도 되는 규모의 대형 길드는 당연히 힐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 대규모 원정을 가는데 힐러를 데리고 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강현수는 레플리카 스킬 스택에 여유가 있다면 중화길드 소속의 힐러의 힐 스킬을 복사할 생각이었다.
한데 난데없이 대어가 걸렸다.
평범한 힐러도 아니고 훗날 대륙 10대 힐러 중 하나가 되는 성화의 신녀를 만난 것이다.
‘성화의 신녀 주력 힐 스킬 하나만 얻는다.’
괜히 다른 스킬에 욕심낼 필요는 없었다.
레플리카 스킬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강현수가 성화의 신녀를 대상으로 레플리카 스킬을 시전했다.
[고유 스킬 레플리카 – B랭크를 사용합니다.]
[스택 하나가 소모됩니다.]
[불멸의 성화 – C랭크의 레플리카를 만듭니다.]
[레플리카 스킬 불멸의 성화 – F랭크가 생성되었습니다.]
[레플리카 스킬은 원본의 100%의 능력치를 갖습니다.]
‘성공이다.’
오늘 정말 운이 좋았다.
단번에 힐 스킬을 획득했다.
그것도 강현수가 원하던 성화의 신녀 주력 힐 스킬 불멸의 성화를 말이다.
[불멸의 성화 – F랭크]
-액티브 스킬
-레플리카 스킬입니다.
-사용 대상의 체력이 지속적으로 회복됩니다.
-사용 대상의 부상이 지속적으로 회복됩니다.
-불멸의 성화는 시전자가 취소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유지됩니다.
-불멸의 성화가 유지되는 동안 시전자의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됩니다.
-쿨타임 : 3시간
불멸의 성화는 단발성 힐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도트 힐이다.
그것도 유지 시간 동안 계속해서 마력을 잡아먹는 형태의 도트 힐.
‘그것 때문에 초반에는 빛을 보기가 힘들지.’
액티브 스킬임에도 쿨타임이 너무 길다는 점도 큰 단점이다.
하나 스킬 랭크가 올라가면?
도트 힐의 힐량이 어마무시하게 증가한다.
동일 랭크의 힐 스킬을 연속해서 사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쿨타임도 계속해서 줄어들어 최종적으로는 1초 단위로 연속 시전이 가능해진다.
‘결정적으로 캔슬이 불가능하지.’
불멸의 성화는 시전자가 취소하기 전까지 그 어떤 디버프 스킬로도 삭제가 불가능하다.
‘마력의 심장이랑 궁합이 좋아.’
불멸의 성화가 가진 최대 단점은 불멸의 성화가 유지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된다는 점이다.
‘성화의 신녀가 독보적인 1인자가 되지 못하고 대륙 10대 힐러 자리에 머무른 이유가 바로 그거지.’
그러나 강현수에게는 성화의 신녀가 가진 유일한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고맙다.’
훗날 중화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되는 검존의 주력 스킬과 부길드 마스터가 되는 성화의 신녀의 주력 스킬을 얻었다.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중화길드가 이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약초밭을 사러 가 볼까.’
원하는 스킬을 얻었으니.
이제는 미래의 돈밭을 만들러 갈 시간이었다.
강현수는 투황의 우승에 베팅한 돈을 털어 구오피 약초밭을 구입했다.
‘생각보다 구오피 약초밭 가격이 저렴해서 다행이야.’
강현수는 예상보다 월등히 많은 양의 구오피 약초밭을 구매할 수 있었다.
사실 구오피라는 약초 자체가 아무 땅에서나 잘 자란다.
그렇기에 강현수 입장에서는 가장 저렴한 지역의 땅을 구입한 뒤 약초꾼들을 고용해 구오피를 기르라고 지시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사람 손이 거의 필요 없는 약초라서 약초꾼을 고용하는 비용도 예상보다 적게 들었다.
‘좋네.’
그 많은 약초밭이 다 돈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직 1년 남았어.’
1년간 부지런히 구오피를 수확해 창고에 쟁여 놓아야 했다.
당분간은 아무런 쓸모가 없겠지만.
1년 뒤에는 그 아무런 쓸모도 없는 약초들이 돈다발로 변할 것이다.
또 이건 단순히 강현수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벌이는 일은 아니었다.
‘독충 군단이 등장했을 때의 피해가 많이 줄어들겠어.’
회귀 전 처음 독충 군단이 등장했을 때.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의 피해는 실로 어마무시했다.
이유는 해독제 부족.
해독제가 없으니 치료 방법이 없었다.
물론 독충 군단의 독은 힐러의 해독 스킬로도 해독이 가능했다.
‘문제는 힐러 숫자가 너무 적다는 거지.’
다수의 힐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정규군이나 거대 길드에서도 피해가 속출했다.
힐러들이 잠자고 밥 먹는 시간도 아껴 가며 해독 스킬을 사용해도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독에 중독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가 정규군과 거대 길드가 이런 상황이니.
‘중소 길드나 파티 단위로 활동하던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엄청났지.’
독충 군단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중저레벨 플레이어들도 살기 위해 몇백만 원짜리 해독제라도 사 먹으려고 했다.
하나 사 먹고 싶어도 물량이 없었다.
국가와 거대 길드가 해독제 물량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도 해독제를 사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속절없이 죽어 갈 수밖에 없었지.’
문제는 또 있었다.
해독 스킬과 해독제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국가 정규군과 거대 길드에 속한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멈춘 것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해독제도 없는 상황에 또다시 사냥을 나갔다가 독충 군단의 독에 중독되면?
이번에는 진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독충 군단은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대폭 줄였다.
그뿐 아니라 살아남은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성장 동력도 끊어 버렸다.
‘이번에는 막아 주마.’
회귀 전 강현수도 독충 군단의 독 때문에 사경을 헤맸다.
그나마 거대 길드인 발해 소속이라 겨우 해독제를 복용해 목숨을 건졌다.
‘회귀 전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구오피가 아틀란티스 전역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기까지 무려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 번식력이 좋고 특별한 관리 없이도 잘 자라는 구오피이기에 고작 반년이라는 시간 만에 아틀란티스 차원 전역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물량 확보가 가능했다.
‘1년 남았어.’
회귀 전에도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전 대륙을 커버했던 번식력을 가진 구오피다.
1년 전부터 준비한다면?
독충 군단으로 인해 입는 피해 자체를 제로로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 * *
하루 동안의 휴식이 끝난 후.
강현수 일행은 다시금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송하나와 투황은 강현수의 강행군을 군말 없이 따라왔다.
종종 장난삼아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송하나와 투황은 자신들이 얼마나 큰 행운을 거머쥐었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강현수와 함께하면 몸은 고되지만.
타 플레이어들보다 월등히 빨리 강해질 수 있다.
아틀란티스 차원은 약육강식과 강자 독식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국가라는 큰 틀이 있기는 하지만.
한 국가의 수도조차 해가 떨어지면 무법천지로 변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치안이 열악한 곳이 바로 아틀란티스 차원이다.
특히 플레이어들의 경우.
사냥을 하기 위해 도시를 벗어난 순간.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곳에서 믿을 건.
개인의 강함과 동료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강현수 일행은 이곳이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너희, 누구 허락받고 여기서 사냥하는 거야?”
중화길드의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갑옷을 입고 있는 플레이어 열 명이 강현수 일행을 포위한 상태로 물었다.
“허락? 그런 걸 왜 받아야 하지?”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외국 놈이었잖아?”
“저게 어느 나라 말이지?”
“내가 알아. 저거 한국말이야, 한국말.”
“한국 놈이 여기는 왜 온 거야?”
강현수의 한마디에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벌 떼처럼 웅성거렸다.
플레이어들은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넘어오면 시스템창에 등록되지 않은 패시브 스킬 하나를 얻는다.
바로 자동 통역 스킬이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타국의 언어와 글을 자국 언어와 글처럼 쓰고 말할 수 있다.
아틀란티스 차원의 원주민들 역시 플레이어건 일반인이건 상관없이 자동 통역 스킬을 패시브로 가지고 있었다.
지구와 같이 타 차원에서 온 지원군과 아틀란티스 차원의 원주민이 의사소통 문제로 시간 낭비를 할 것을 우려한 시스템의 배려랄까?
하지만 그 뜻이 자국어로 이해된다고 해서 내뱉은 말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중요한가?”
강현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중요하지! 이곳 루자베누는 우리 중화길드가 지배하는 땅이야! 또 마이트어 왕국은 우리 중화인들에게만 허락된 땅이고! 넌 우리 땅을 침범한 거야! 알겠어!”
중화길드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강현수에게 일갈했다.
‘미친놈들.’
중화길드는 회귀 전에도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쳤다.
그게 다 중화사상 때문이다.
‘어째 이놈들은 차원을 넘어와도 변한 게 없냐?’
같은 지구인끼리 뭉칠 생각은 하지 않고 중국인들끼리 뭉칠 생각만 한다.
결정적으로 마이트어 왕국은 마이트어 왕국인들의 땅이다.
루자베누 역시 마이트어 왕국의 귀족이 다스리는 영지다.
강현수 일행은 적법한 입국 절차를 거쳐 마이트어 왕국에 들어왔다.
당연히 마이트어 왕국의 관리도 아닌 놈에게 저딴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었다.
“같은 중화인이었다면 적당히 경고하고 사용료만 받고 보낼 생각이었는데, 한국 놈이라면 그럴 수가 없지.”
스르릉.
중화길드 파티의 리더가 무기를 뽑아 들었다.
챙! 챙! 챙!
리더가 무기를 뽑아 들자 파티원들도 무기를 뽑았다.
“뭘 어쩔 생각이지?”
강현수가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가지고 있는 거부터 다 꺼내 봐. 그리고.”
중화길드 파티 리더의 눈이 송하나에게 향했다.
“그다음은 저년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결정하지.”
중화길드 파티의 리더가 혀를 날름거리며 음심 가득한 눈빛으로 송하나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 그래?”
강현수의 두 눈에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저항할 생각이냐?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오랜만에 사람 피 맛 좀 볼까?”
타악!
중화길드 파티의 리더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강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콰콰!
중화길드 파티 리더의 손에 들린 대도가 시퍼런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강현수를 향해 쇄도했다.
좌아악!
뼈와 살이 갈라지는 소음과 함께.
툭!
대도를 들고 있던 중화길드 파티 리더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아아아악!”
중화길드 파티의 리더가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비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걱!
핏빛 오러가 서린 강현수의 검이 중화길드 파티 리더의 목을 그대로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놈들이 미쳤나?”
“우리는 중화길드원이야!”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사태에 화들짝 놀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강현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동료가 죽었다.
원래대로라면 곧바로 달려들어 강현수 일행을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그러는 대신 자신들이 중화길드인 것을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현수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원래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 법이지.’
겁먹은 개가 지껄이는 소리에 두려움을 느껴 물러날 강현수가 아니었다.
타악!
강현수가 중화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들며 핏빛 오러가 서린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