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깰 수 없는 벽 (2)

으득!

투황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면 모두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실력 따위와는 상관없는 거였어.’

무투 대회에서 5연승을 하든 10연승을 하든 상관없었다.

토인족들은 불리해지면 전우를 버리고 도망친다는 뿌리 깊은 편견을 깨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애초에 그 편견을 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씨발, 설욕할 기회는 줘야 할 거 아니야.’

선대 토인족들이 큰 잘못을 한 건 인정한다.

하나 선대가 그러니 후대도 그럴 거라 가정하고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것도 선대 토인족들과 종이 같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저는 어차피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꼭 무란 왕국군에 들어가야만 토인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파티나 길드에 들어가서 좋은 동료를 만나 잘 성장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방식으로도 토인족에 대한 편견은 얼마든지 깰 수 있습니다.

강현수와 처음 술자리를 했을 때 들었던 말이 투황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어.’

지금까지 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변경된 것은 아니다.

‘토인족에 대한 편견을 꼭 깨 주겠어.’

애초에 투황이 무란 왕국군에 입대하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강현수의 말처럼 꼭 무란 왕국군에 들어가야만 토인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앞으로는 파티의 일원으로서 마왕군과 전투를 치르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지켜보라고.’

투황은 마왕군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서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설사 죽더라도 전우를 버리고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 그들도 알게 되리라.

토인족이라고 해서 모두 전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겁쟁이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왔어?”

투황이 숙소로 들어오자 강현수가 반갑게 맞이했다.

“결과는 내일 나오지? 무란 왕국군에 들어가면 내일 헤어질 수도 있으니까 오늘 송별회라도 해야겠네.”

강현수가 마음에도 없는 너스레를 떨었다.

‘어차피 떨어질 거 마음이라도 달래 줘야지.’

강현수는 투황이 떨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지금보다 더 큰 위명을 떨칠 때도 무란 왕국군은 투황의 입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 떨어지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럴 필요 없어.”

“어?”

“오늘 바로 출발하자.”

투황의 말에 강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 있었어?”

“아무리 내 실력이 뛰어나도 편견은 깰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투황은 회귀 전 줄기차게 무란 왕국군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남들이 보면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무란 왕국군에 집착했다.

한데 지금의 투황은.

‘집착을 버렸어.’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서.

“어서 가자. 최대한 빨리 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어.”

무란 왕국군을 증오하는 듯 보였다.

‘뭐, 나한테 나쁠 건 없지.’

투황이 계속해서 무란 왕국군에 미련을 가지면?

몸은 강현수 파티에 속해 있지만 마음은 무란 왕국군에 가 있는 꼴이 된다.

그러나 회귀 전보다 빨리 미련을 털어 낸다면?

좀 더 빠르게 강현수의 파티에 녹아들 수 있다.

“그럼 그렇게 하자.”

어차피 투황이 무투 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떠날 준비는 다 해 놓은 상태였다.

지금 당장 떠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강현수 일행이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 후 공간 이동 게이트를 타고 무란 왕국의 수도 굴라에서 무란 왕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대도시 조르만으로 이동했다.

* * *

저벅저벅.

무거운 짐을 짊어진 강현수 일행이 국경 지대를 향해 나아갔다.

‘아직 협조 체계가 너무 미약하단 말이야.’

아틀란티스 차원에는 공간 이동 게이트가 존재한다.

하나 각국은 자국 내의 공간 이동 게이트끼리는 오픈을 해 놨지만.

타국으로 통하는 공간 이동 게이트는 모두 막아 놨다.

비행기나 기차로 치자면 국내선만 운영하고 국제선은 모두 막아 놓은 꼴이었다.

그렇기에 무란 왕국에서 마이트어 왕국으로 이동하려면 이렇게 도보로 국경 지대를 넘어야 했다.

‘나중에 크게 혼이 난 후에야 개선이 되지.’

마왕군이 등장하기 전.

아틀란티스 차원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이었다.

그 여파가 남아 있어서인지 마왕군이 등장한 후에도 아틀란티스 차원의 국가들은 서로가 서로를 경계했다.

‘지금은 침략 초기에 불과해.’

훗날 침략이 본격화되면?

아틀란티스 차원의 국가들은 막아 놓은 공간 이동 게이트 때문에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자기들끼리 다툴 때가 아닌데 그걸 모른단 말이야.’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이건 강현수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차차 시간이 흘러 더 강력한 마족들이 등장하면.

아틀란티스 차원의 국가들은 무조건 힘을 합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제로 깨닫게 되리라.

크아아앙!

이동하는 중간중간 몬스터가 덤벼들었다.

서걱!

몬스터는 등장하기 무섭게 숨통이 끊어졌다.

몬스터의 레벨이 강현수 일행에 비해 너무 낮았기에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그나마 무란 왕국과 마이트어 왕국의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야.’

무란 왕국과 마이트어 왕국의 사이가 무란 왕국과 테라 왕국처럼 견원지간이었다면?

로크토 제국의 자유민 신분을 가진 강현수와 송하나는 몰라도 투황의 경우는 마이트어 왕국에 입국하는 즉시 목이 잘리거나 체포되었을 것이다.

‘근데 얘들은 국경 지대에는 몬스터 정리도 안 하나?’

캬우우웅!

이동하는 와중에 몬스터들이 쉴 새 없이 덤벼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소환수들을 동원해 싹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얼마 안 남았어.’

마이트어 왕국의 국경이 코앞이었다.

당연히 마이트어 왕국군이 망루 위에서 강현수 일행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주목받을 필요는 없어.’

강현수가 가진 일인중대는 상당히 이질적인 직업이다.

또한 강력하다.

그런 만큼 최대한 그 힘을 감출 필요가 있었다.

잠시 후.

강현수 일행은 무사히 마이트어 왕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마이트어 왕국에 입국한 강현수는 송하나와 투황을 이끌고 곧바로 텔레포트 게이트로 향했다.

“루자베누는 어떤 곳이야?”

송하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투황도 루자베누에 대한 정보가 알고 싶은지 긴 귀를 쫑긋 세웠다.

송하나와 투황은 강현수에게 목적지가 마이트어 왕국의 루자베누란 사실은 들었다.

하지만 그저 효율 좋은 사냥터라는 말만 들었을 뿐.

루자베누가 어떤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이트어 왕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대도시야.”

강현수의 대답에 송하나와 투황의 눈이 번뜩였다.

“대도시?”

“그럼 소크같이 척박한 곳은 아니겠군?”

“그렇지. 있을 건 다 있는 대도시니까.”

강현수의 대답에도 송하나와 투황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원정도 가?”

“원정? 정말 또 원정을 가는 건가?”

송하나와 투황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현수를 주시하며 물었다.

“굳이 원정을 갈 필요는 없어. 루자베누 주변은 몬스터 천지니까.”

원정을 갈 필요가 없다는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와 투황의 얼굴이 환해졌다.

“거기 날씨는 어떻지, 춥나?”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추운 게 아니라 덥지. 루자베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어. 우기랑 건기뿐이야. 넌 아틀란티스 원주민이면서 그것도 모르냐?”

강현수의 타박에도 투황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지! 당연히 덥겠지! 하하하! 알고는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난 더위에 강하거든!”

“나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훨씬 나아!”

투황과 송하나의 입이 귀에 걸렸다.

‘석 달 동안 너무 굴렸나?’

따듯한 지역이 아니라 더운 지역이라고 했음에도 엄청나게 좋아했다.

혹한의 추위에서 하는 야영.

그 덕에 추위에 너무 시달린 것인지 투황과 송하나는 북부의 북 자만 나와도 경기를 할 정도였다.

‘가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자.’

루자베누에 가면.

추운 것도 괴롭지만 덥고 습한 것 역시 괴로운 건 마찬가지라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 * *

강현수 일행이 루자베누에 도착했다.

공간 이동 게이트 비용이 만만치 않기는 했지만 강현수 일행은 그런 푼돈에 연연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았다.

‘투황 덕분에 이번에도 두둑하게 벌었네.’

투황이 우승한 덕에 강현수 일행은 큰돈을 벌었다.

얼마나 큰돈을 벌었냐 하면.

‘D랭크에서 멈춰 있던 수호의 반지가 단숨에 B랭크로 성장했지.’

그뿐 아니라 탐식의 검에도 꽤 많은 먹이를 던져 줬다.

그 결과 탐식의 검은 B랭크 중에서도 상위에 랭크 될 정도로 성능이 좋아졌다.

사실 돈지랄이기는 했다.

옵션이 좋지 않은 B랭크 아이템과 선호도가 떨어지는 방어 계열 B랭크 스킬북을 싹 다 긁어모아 탐식의 검과 수호의 반지에게 먹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강현수는 만족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마이트어 왕국의 최남단 루자베누.

이곳에 온 이유는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사냥.

현재 일행이 성장하기에 루자베누같이 좋은 사냥터가 없었다.

두 번째는 돈.

루자베누는 온갖 독초와 약초가 자생하는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구오피라는 약초는 독을 중화시키는 해독 작용을 하는 흔하디흔한 약초다.

‘번식력이 좋아서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하지.’

그 덕에 가격도 쌌다.

하지만.

1년쯤 후부터 가격이 수백 배 급등한다.

‘독충 군단이 등장하니까.’

차원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독충 군단의 레벨은 그리 높지 않았다.

외형이 벌레라 징그러운 것만 빼면 기존의 중저레벨 몬스터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독이 있지.’

중독되는 즉시 숨통이 끊어지는 강한 독은 아니다.

하나 지속적인 고열과 복통을 발생시켜 중독 대상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독을 해독하지 못하면?

중저레벨 플레이어의 경우 90% 이상이 석 달 안에 목숨을 잃었다.

‘독충 군단이 출현한 이후부터 구오피의 가격이 급등하지.’

구오피의 경쟁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해독제들은 효과가 더 좋은 대신 가격 자체가 너무 비쌌다.

지구로 치자면 몇백 원짜리 타이레놀 한 알만 먹으면 완치되는 병을 고치기 위해 한 알에 몇백만 원짜리 신약을 사 먹는 꼴이었다.

쉽게 말해서 가성비가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죽지 않기 위해 한 알에 몇백만 원짜리 신약이라도 사 먹었다.

하지만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독충 군단의 독을 해독할 해독제를 섭취해야 했다.

하루 수입이 몇십만 원인데 몇백만 원짜리 약을 먹는다?

차라리 사냥을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또 다른 해독제들의 경우 재배 조건이 까다로워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니 가격이 낮아질 수가 없었다.

반면 구오피는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그 덕에 가격도 저렴했다.

유일한 단점은 열대 지역인 루자베누 지역에서만 자라는 약초라는 점.

‘아무리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아도 전 차원을 커버할 정도의 물량이 되지는 않았지.’

더군다나 가격이 저렴해 그 당시에는 구오피를 키우는 약초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뭐, 수백 배 급등한 가격도 다른 해독제보다 훨씬 저렴했으니까.’

타이레놀 한 알이 몇만 원이 되어도 몇백만 원짜리 신약보다는 싸다.

‘회귀 전 가성비 면에서 구오피를 대체할 수 있는 해독제는 존재하지 않았어.’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구오피 약초밭을 운영하면 꾸준히 캐시카우 역할을 해 줄 수 있어.’

사냥을 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해독제가 필요했다.

하루 사냥을 위해 몇백만 원짜리 약을 먹는 건 엄청난 손해였지만.

몇만 원짜리 약은 충분히 사 먹을 수 있었다.

아틀란티스 차원의 모든 플레이어가 강현수의 고객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검존.’

아틀란티스 차원에서 최강의 검사를 말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인물.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양반이지.’

검신, 검황, 검성, 검존.

아틀란티스 차원을 대표하는 네 명의 검사.

검신 이광호는 말 그대로 모든 검사의 신이었고.

검황과 검성은 모든 검사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하나 검존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놈 검술 실력이 나보다 한참 아래였지 아마.’

검존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검술 실력이 너무나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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