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왕의 목걸이
“그, 그렇기는 하지만, 단 하루도 완전히 휴식을 취한 날이 없잖아.”
“육체적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거기다 정신적인 피로도 풀어야 하지 않나?”
송하나와 투황이 울상이 된 표정으로 애원했다.
‘내가 좀 심하기는 했지.’
강현수의 눈에 송하나와 투황의 모습이 들어왔다.
두 사람 다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피어 있었고.
광대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쪽 빠져 있었다.
송하나와 투황은 강해지겠다는 열망이 강했다.
투쟁심도 강했다.
누군가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을 했는데.
송하나와 투황은 그 노력이라는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다 죽어 가는 소리를 할 정도로 강현수는 엄청난 강행군을 했다.
‘하루 정도는 쉬게 해 줘야겠다.’
이대로 계속 굴리면 투황의 말처럼 죽지는 않겠지만.
‘살아 있는 해골이 될지도 모르겠네.’
체력 스텟과 정신력 스텟이 1천 가까이 되는 두 사람이 피골이 상접해질 정도니.
아마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였다면?
정말 과로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알았어. 그럼 오늘 하루는 쉬자.”
강현수가 하루 동안의 휴식을 선언했다.
“그 말 진짜지? 나중에 말 바꾸는 거 아니지?”
송하나가 간절한 표정으로 되물었고.
“몇 시간 후에 휴식 종료라는 소리를 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투황은 으르렁거리며 강현수를 협박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심했나?’
송하나와 투황의 반응을 보니 ‘내가 그동안 심하게 굴리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안 바꿔. 몇 시간 후에 휴식 종료라는 소리도 안 해. 그러니까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해.”
“와아아아!”
“난 자유다!”
송하나와 투황이 순식간에 강현수의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난 뭘 하지?’
강현수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러다 결정을 내렸다.
‘사냥이나 가자.’
송하나와 투황과 다르게 강현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멀쩡했다.
그러니 굳이 시간 아깝게 쉴 필요가 없었다.
‘소환수들이 있으니까 안전에 문제가 될 일도 없고.’
몬스터를 잡고 새로운 소환수를 만들어 충전된 중대 구성 스택도 소모해야 했다.
강현수는 사냥을 떠나기 전 상점 밀집 지역으로 향했다.
포션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다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사 놔야지.’
소도시 소크는 인구도 적고 오는 길도 험하다.
그렇다 보니 판매되는 아이템의 수량이 무척이나 적었고 가격도 비쌌다.
특히 포션의 경우는 대도시보다 1.5배 정도 비싼 가격임에도 상점에 나오면 곧바로 팔릴 정도로 물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포션이 모자랄 줄은 몰랐는데.’
소도시 소크의 상황을 알고 있던 만큼 강현수는 이동 전 포션을 잔뜩 쟁여 놓은 상태였다.
한데 그렇게 쟁여 놓은 포션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송하나와 투황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또 거의 매일 치러지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대련도 포션 소모를 가속화했다.
그 결과.
‘슬슬 재고를 채워 넣어야 해.’
자칫 잘못하면 포션이 없어서 사냥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굴라에 좀 더 머무를 걸 그랬나?’
그랬다면 치료 스킬을 얻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못 얻었을 수도 있지.’
무란 왕국의 수도인 굴라에서도 힐러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상황.
‘오히려 더 손해를 봤을 수도 있어.’
굴라에 더 머물렀는데 치료 스킬을 못 얻었다면?
그저 시간만 낭비한 꼴이다.
‘당분간은 이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어.’
강현수가 첫 번째 상점으로 들어갔다.
“포션 있나요?”
“없습니다.”
첫 번째 상점부터 실패였다.
강현수는 상점을 나가기 전 물건들을 가볍게 둘러봤다.
혹시 수호의 반지에 먹일 만한 좋은 옵션을 가진 스킬북이 있나 해서였다.
하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이 없었다.
거기다 가격 자체도 대도시에 비해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비쌌다.
‘역시 가성비가 너무 안 좋아.’
강현수가 첫 번째 상점을 나선 후 두 번째 상점으로 향했다.
“포션 있나요?”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포션은 없었다.
강현수는 포션을 구매하기 위해 부지런히 가게들을 순회공연했다.
다행히 그중에 포션이 남아 있는 가게도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두 개밖에 없다고요?”
“예, 그게 끝입니다.”
수량이 너무 적다는 점이었다.
‘소크에 있는 상점들을 다 돌아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것도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 말이다.
‘매일 순회공연을 해도 소모되는 물량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네.’
거기다 대규모 상점이 없고 소규모 상점이 많은 관계로 돌아다녀야 할 가게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혼자 하려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네.’
그렇다고 오래간만에 휴식을 즐기고 있을 송하나와 투황을 불러와 부려 먹기도 그랬다.
‘내일부터 부려 먹자.’
강현수는 작은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포션을 사 모았다.
물론 틈틈이 수호의 반지에 먹일 만한 옵션을 가진 스킬북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곳에도 상점이 있네.’
후미진 골목가에 자리한 상점을 발견했다.
상점 자체도 상당히 낡아 보였다.
‘일단 들어가 보자.’
끼이익!
강현수가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나이 든 상점 주인이 강현수를 반겼다.
“포션 있나요?”
“중급 세 개 있습니다.”
다행히 포션이 있었다.
“얼마죠?”
“개당 13골드입니다.”
다른 가게보다 가격이 좀 비쌌다.
“많이 파세요.”
강현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아무리 물량이 부족해도 저런 바가지를 쓸 생각은 없었다.
“12골드!”
강현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11골드에 팔겠네!”
상점 주인의 말에 강현수가 그제야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 있습니다.”
강현수는 33골드를 주고 중급 포션 세 개를 구매한 뒤 습관처럼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아이템들을 살펴봤다.
그때.
‘어?’
강현수의 눈에 익숙한 모양의 목걸이가 들어왔다.
‘얼음 왕의 목걸이?’
그건 바로 강현수가 소도시 소트에 온 진짜 목적인 얼음 왕의 목걸이였다.
강현수가 홀린 듯 다가가 얼음 왕의 목걸이를 살펴봤다.
[얼음 왕의 목걸이 F랭크]
-F랭크 스킬 얼음 화살을 사용할 수 있다.
‘이게 뭐야?’
얼음 왕의 목걸이가 맞기는 했다.
하지만 강현수가 알고 있던.
얼음 여왕 제나가 사용하던 얼음 왕의 목걸이는 아니었다.
일단 랭크 자체가 EX가 아니라 F였다.
거기다 옵션도 F랭크 얼음 화살 하나뿐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얼음 왕의 목걸이는 완성형이 아니었나?’
강현수가 알고 있는 얼음 왕의 목걸이는 네 개의 EX랭크 스킬을 가지고 있는 완성형 EX랭크 아이템이었다.
한데 지금 강현수의 눈앞에 있는 아이템은 고작 F랭크에 불과했고.
‘스킬도 네 개가 아니라 한 개밖에 없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사시겠소?”
그때 상점 주인이 강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산다면 내가 싸게 주지. 옵션은 별로지만 디자인이 상당히 좋아. 그냥 장신구로 사도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한다고.”
“얼만데요?”
“20골드.”
강현수의 얼굴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F랭크 아이템의 평균 시세는 10골드 남짓.
20골드라는 가격은 이곳이 소도시 소크라는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바가지였다.
“그게 정가이기는 하지만 지금 산다면 내 특별히 15골드에 팔겠네.”
강현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목격한 상점 주인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래도 너무 비싼 거 같은데요? 특히 옵션이 너무 안 좋아요.”
얼음 왕의 목걸이가 가진 유일한 옵션은 F랭크 스킬 얼음 화살.
그러나 소도시 소크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은 평균 레벨이 높다.
당연히 F랭크 공격 스킬 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북부의 강추위에 적응해 살아가기 때문에 냉기 계열 스킬에 대한 저항력도 엄청나게 높았다.
쉽게 말해 F랭크 스킬 얼음 화살을 가지고 있는 얼음 왕의 목걸이는.
소도시 소크에서 장신구 이상의 가치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크흠, 그럼 내 특별히 14골드에 주지.”
14골드도 비싼 건 마찬가지였다.
강현수가 아무 말 없이 상점 주인을 응시했다.
“이익! 13골드! 더 이상은 못 깎아 주네! 차라리 안 팔고 말지! 내가 산 매입가가 13골드야! 사실상 거저 주는 거라고!”
상점 주인이 최후의 발악과 함께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강현수를 노려봤다.
“좋습니다. 사죠.”
강현수의 말에 상점 주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게 정말인가?”
“네.”
강현수가 13골드를 꺼내 상점 주인에게 건넸다.
“자, 여기 있네.”
돈을 받은 상점 주인이 강현수에게 얼음 왕의 목걸이를 넘겼다.
“그럼 많이 파세요.”
강현수가 얼음 왕의 목걸이를 손에 쥐고 상점을 나갔다.
‘바보 같은 놈, 그걸 13골드나 주고 사 가다니.’
강현수에게 얼음 왕의 목걸이를 판매한 상점 주인은 희희낙락했다.
오랜 악성 재고를 드디어 판매했기 때문이다.
‘다들 가격을 듣고 아예 관심을 꺼 버렸는데.’
오늘 아침에도 한 여자 손님이 가격을 물어보더니 흥정할 시간도 없이 그대로 나가 버렸었다.
‘8골드 벌었다.’
강현수에게는 13골드에 매입했다고 했지만 사실 진짜 매입가는 5골드에 불과했다.
얼음 왕의 목걸이를 판매했던 플레이어에게 소도시 소크의 특성을 들먹이며 값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역시 호구한테 싸게 사서 호구한테 비싸게 파는 게 남는 장사라니까.’
상점 주인은 호구를 알아보는 자신의 눈에 뿌듯함을 느꼈다.
하나 잠시 후.
아침에 가격을 물어봤던 여자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저기 있던 얼음 왕의 목걸이 어디 갔어요?”
“팔렸는데요.”
“아, 디자인이 예뻐서 내가 사려고 했는데, 아깝다.”
“예?”
“아침에 물어봤을 때 20골드라고 했었잖아요. 당장 돈이 없어서 몬스터 사냥해서 20골드 만들어 왔는데, 그새 팔렸네. 아깝다.”
“커억!”
여자 손님의 말에 상점 주인이 그대로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팔지 말걸.’
호구를 보는 눈이 부족해 20골드에 팔 수 있는 물건을 13골드에 팔아 버렸다.
그러나 상점 주인은 몰랐다.
자신이 판매한 얼음 왕의 목걸이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얼음 왕의 목걸이는 고작 13골드나 20골드가 아닌.
수천, 수억 골드를 줘도 구할 수 없는 보물 중에 보물이었다.
아마 이 사실을 상점 주인이 알았다면?
목덜미를 잡는 수준이 아니라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으리라.
그러나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었다.
* * *
강현수가 얼음 왕의 목걸이를 자세히 살폈다.
‘얼음 여왕 제나의 소유였던 얼음 왕의 목걸이가 확실해.’
디자인도 그렇고 옵션이 얼음 화살인 것도 그렇고.
이건 회귀 전에 봤던 얼음 왕의 목걸이가 맞았다.
‘완성형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성장형이었나?’
제나가 얼음 여왕의 칭호를 얻고 얼음 왕의 목걸이가 유명해지는 건 3년 후.
그때 알려진 정보는 대부분 얼음 여왕 제나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하긴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지.’
사실 강현수가 회귀 전의 정보를 통해 수호신 이철민의 아이템 수호의 반지와 검신 이광호의 아이템 탐식의 검을 얻은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회귀 전 그들이 아이템을 얻은 과정을 숨겼거나 왜곡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성장형이라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어.’
EX랭크까지 성장이 가능한 최상급 아이템을 얻었다는 게 중요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건 도대체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 거지?’
얼음 왕의 목걸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