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왕의 장갑
‘회귀 전에는 검사였으니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은 아닌데.’
하지만 이 사실을 투황에게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다.
사실 현재 강현수는 회귀 전 강현수와 비교해 검사로만 따지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검사 계열 스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레플리카로 검사 계열 스킬 몇 개를 복사해서 익히고 있기는 했지만.
레플리카 스킬로 복사할 수 있는 스킬의 숫자에 한계가 있다.
‘C랭크인 현재는 겨우 여덟 개지.’
마력의 심장, 스킬 강화, 스텟 고정, 야성의 감각.
이 네 개는 고정이지만.
다른 네 개는 현재 임시 사용 중이었다.
고정으로 사용할 만한 스킬을 얻는다면?
곧바로 다른 네 개도 갈아 치울 생각이었다.
‘일단 하나는 투황의 스킬로 채운다.’
체력이 50% 이하로 하락하면 스텟이 20% 증가한다는 스킬.
그 스킬을 포함하면 사용 가능한 자리는 고작 셋.
그중 한자리는 정해져 있다.
바로 오러 스킬이었다.
‘투황의 오러 스킬은 EX랭크까지 성장이 가능하긴 하지만 권사 전용이야. 내 장점을 살리려면 검사 전용 오러 스킬이 필요해.’
오러 스킬까지 한자리를 채우면?
남은 자리가 고작 둘에 불과하다.
‘레플리카 스킬의 랭크를 올리기 위해 한 자리는 비워 놓는 게 좋은데.’
그럼 실질적으로 남는 자리는 고작 하나.
역시 최대한 빨리 레플리카 스킬의 랭크를 올려 남는 자리를 늘려 놓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다 좋은데, 이게 아쉽단 말이야.’
레플리카 스킬의 유일한 단점.
바로 저장할 수 있는 스킬의 숫자가 적다는 점이다.
‘처음에 다섯 개를 주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는 랭크 업 하나당 한 개씩밖에 늘어나지 않아.’
그렇기에 EX랭크가 되어도 겨우 14개의 스킬밖에 저장할 수 없다.
‘최고의 스킬들로 선별해야 해.’
자리가 없어 그간 숙련도를 올렸던 주력 스킬을 삭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강현수로서는 손해일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이 그랬다.
‘꼭 필요한 스킬들을 얻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얻었어.’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꼭 필요한 필수 스킬들을 강현수의 예상보다 빠르게 손에 넣었고, 계속해서 랭크를 올리고 있었다.
‘그놈이 가진 스킬도 다시 손에 넣어야 하는데.’
1초 회귀자.
강현수를 회귀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핵심 스킬.
‘1초 회귀자는 꼭 내가 다시 손에 넣어야 해.’
그리고 그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를 제거해야 했다.
‘다시 회귀하게 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1초 회귀자는 꼭 필요했다.
쿨타임이 길기는 하지만 1초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건 전투에 있어서 엄청난 이득이 된다.
강현수에게 1초 회귀자가 없었다면?
회귀 전 수십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강현수, 송하나, 투황은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여관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대련을 했다.
“졌다.”
대련의 결과는 역시 강현수의 승리였다.
하나 투황은 얼굴은 오히려 미소가 가득했다.
비록 대련에서는 패배했지만 얻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이긴 강현수도 기분이 좋았다.
단순히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드디어 얻었네.’
투황이 가진 스킬.
야성의 분노를 얻어 냈기 때문이다.
[야성의 분노 – F랭크]
-패시브 스킬
-레플리카 스킬입니다.
-체력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모든 스텟이 1% 상승합니다.
‘F랭크라서 성능이 낮아.’
투황은 20%가 증가했다고 했다.
‘그거야 스킬 랭크가 B라서 그런 거고.’
랭크야 올리면 그만이다.
‘야성의 분노가 EX랭크가 되면 스텟 증폭치는 45%.’
여기에 레플리카 스킬을 EX랭크로 만들면?
‘135%.’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스킬이었다.
대련이 끝난 후.
강현수가 외출을 준비했다.
“어디 가?”
송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도 같이 가도 돼?”
“그래, 같이 가자.”
송하나의 말에 강현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 당장 준비할게!”
잔뜩 신이 난 송하나와 외출 준비를 하는 강현수의 눈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투황의 모습이 들어왔다.
“같이 가실래요?”
“어?”
강현수의 물음에 투황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싫으시면 말고요. 오늘 사냥에다 대련에다 피곤하셨을 테니까 숙소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크흠,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은데. 난 체력이 좋다고.”
“그럼 같이 가요.”
“알았어.”
강현수의 권유에 투황이 재빨리 승낙했다.
‘오늘은 돈을 좀 써야지.’
강현수의 외출은 쇼핑을 위해서였다.
투황에게 베팅해서 얻은 돈을 쓸 타이밍이 왔다.
‘송하나한테도 제대로 된 B랭크 무기를 장만해 줘야지. 투황 것도 사 주자.’
투황의 성격상 고가의 장비를 선물받게 된다면?
‘그 장비값을 다 갚기 전까지는 절대 파티를 못 떠나겠지.’
대련, 장비.
이 두 가지로 투황을 옭아맬 수 있다.
‘이게 끝이 아니지.’
지금은 단 두 개에 불과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 절대 파티에서 탈퇴하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 주겠어.’
강현수의 음흉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투황은 신이 나서 빠르게 외출 준비를 마쳤다.
“뭐야? 너도 가는 거야?”
송하나가 투황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냥 숙소에서 쉬지?”
“싫은데?”
송하나와 투황 사이에 다시금 불꽃이 튀겼다.
‘얘들이 또 왜 이러냐?’
강현수는 속이 답답해졌다.
송하나와 투황이 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이 친해지는 게 좋은데.’
송하나와 투황이 친해진다면?
그것도 투황의 파티 탈퇴를 막는 장애물이 된다.
‘전생에 악연이라도 있나?’
어쩌면 회귀 전에 악연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회귀 후인 지금은 없었던 일 아니겠는가?
‘나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는 말도 있으니.
싸우면서 친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가자.”
강현수의 말에 서로 으르렁거리던 송하나와 투황이 잽싸게 따라 나왔다.
‘무란 왕국은 전체적으로 무기 제조술이 뛰어나지.’
손재주가 좋은 후인족과 힘이 좋은 우인족 장인들이 많았고 거기다 예전부터 테라 왕국과 전쟁이 잦았기에 무기 제조술이 발달할 수 있었다.
‘S랭크 무기 제조가 가능한 장인도 있었지.’
그런 관계로 무란 왕국에는 F랭크부터 A랭크까지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이 있었고, 가격도 타국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강현수, 송하나, 투황이 무기점에 들어갔다.
‘여기가 가격으로 장난질은 안 치지.’
회귀 전에도 굴라에 올 때마다 이용했던 곳으로, 가격도 적당하고 품질도 좋았다.
“여긴?”
투황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는 가게예요?”
강현수의 물음에 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굴라에서 가장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곳이다. 무기와 방어구의 품질도 좋아서 나도 단골로 이용하는 가게다.”
투황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회귀 전에 들렀을 때가 10년쯤 후라서 살짝 신경이 쓰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무기 한번 골라 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내 무기 사러 온 거야?”
“사 준다고 약속했잖아. B랭크로 하나 골라 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러면서도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 돈은 우리가 같이 번 거잖아. 그런데 내 무기만 사면…….”
“괜찮아. 평소에 사냥해서 나오면 내가 쓰는 아이템이 많잖아.”
탐식의 검과 수호의 반지 때문에 사냥에서 나온 무기류와 방어형 스킬북을 강현수가 독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알았어. 고마워.”
송하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B랭크 무기가 진열된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냥 곱게 가지 않았다.
투황을 향해 강현수가 봐도 얄미울 정도의 비소를 날리며 움직였다.
“이익!”
투황이 살며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나 그냥 걸어가며 비소를 날린 것뿐이니.
뭐라고 하고 싶어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러고 보니 주피는 뭐 필요한 아이템 없어요?”
강현수가 투황에게 물었다.
그 순간 송하나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투황의 얼굴은 환하게 변했다.
“나도 사 주려고?”
“우리는 같은 파티잖아요. 좋은 아이템을 착용해서 전력을 올릴 수 있으면 올리는 게 좋죠.”
“그, 그게 나도 갖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너무 비싸서.”
투황은 자신이 출전하는 무투 경기에 계속 전 재산을 걸었다.
자신의 실력을 믿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원금이 너무 적어서 몇십 배로 벌어도 총액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 배당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사고 싶었던 게 있기는 한데…….”
투황이 귀를 꼬물락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괜히 강현수를 책망하는 것처럼 들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으니 제가 사 드릴게요.”
“아니, 사 줄 필요까지는 없어! 빌리는 걸로 하자! 내가 꼭 갚을게!”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저 녀석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송하나가 끼어들었다.
“아, 그게.”
강현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무투장에 베팅을 했다는 사실을 송하나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회귀 전의 기억이 있으니 투황에게 전 재산을 베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송하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승패를 알 수 없는 도박에 전 재산을 밀어 넣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거기다 베팅한 돈에는 송하나의 몫도 있지.’
송하나가 믿고 맡긴 돈을 강현수가 도박에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강현수의 신뢰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주피의 무투 대회 우승에 내 몫의 돈을 베팅했었거든.”
결국 강현수의 선택은 거짓말이었다.
“그래? 얼마나 더 벌었는데?”
“일곱 배 정도?”
“꽤 많이 벌었네. 그런데 그거 도박 아니야? 지구로 치면 토토 같은 거잖아. 그러다 돈을 날리면 어쩌려고?”
“주피가 지금까지 참가한 무투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실력자였거든. 그걸 믿었지.”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 믿은 덕분에 큰돈을 번 거지. 나도 나의 우승에 전 재산을 걸었다.”
투황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도 도박이잖아. 주피가 질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진다고?”
“그래, 나랑도 동수였고 현수한테는 완전히 깨졌잖아. 그 정도 실력을 어떻게 믿어.”
뿌득!
투황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돌아가서 다시 한번 붙어 보자. 이번에는 누가 더 강한지 확실하게 결판을 내자고.”
“좋아, 나도 바라던 바야.”
송하나와 투황의 눈에서 다시금 불똥이 튀었다.
“자 자, 진정하고 아이템이나 고르라고.”
강현수의 중재에 송하나와 투황이 동시에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만약에 정말로 전 재산을 날렸으면 어쩔 뻔했어? 차라리 현수 네가 출전하든가 하지.”
“난 출전 못 해. 무란 왕국 국적을 가진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무투 대회거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 돈 다 날렸으면 어쩌려고 했냐고?”
“…….”
송하나의 추궁에 강현수는 할 말을 잃었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미래를 알고 한 선택이었으나 그걸 밝힐 수가 없었다.
“뭐, 내 돈은 안 걸었다고 했으니까 그걸로 생활하면 됐겠지만, 너도 그걸 믿은 거지?”
송하나의 말에 강현수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하지 마. 도박에 잘못 빠지면 패가망신하는 법이야.”
송하나는 짧은 경고를 끝으로 다시금 무기를 고르러 향했다.
‘송하나 돈까지 걸었다는 사실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겠다.’
밝히는 순간 신뢰도가 수직 하락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베팅도 송하나 몰래 해야겠어.’
괜히 알려졌다가는 도박 중독자 취급받을 것 같았다.
송하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주력으로 사용하는 검들을 살폈다.
반면 투황은 미리 마음에 정해 놓은 상품이 있었다는 듯 한 곳으로 곧장 이동했다.
‘단골이라더니 미리 찍어 놨다는 아이템도 이 가게에 있었나 보네.’
강현수가 투황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투황이 어떤 아이템을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쓸 만한 거겠지?’
그다지 큰 쓸모가 없는 아이템이라면?
최대한 말려 볼 참이었다.
“이거다!”
투황이 붉은빛이 도는 가죽 장갑을 골랐다.
손가락을 넣는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어 손가락 일부와 손등 그리고 손바닥만을 덮는 형태였다.
‘스포츠 장갑같이 생겼네.’
강현수가 장갑의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