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황 VS 투황 (2)
파강!
송하나의 검과 투황의 주먹이 부딪치며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큭!”
힘에서 밀린 투황이 신음을 토해 내며 몸을 비틀었다.
송하나는 투황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힘과 속도 모두 송하나가 앞섰다.
그나마 투황이 앞서는 건 뛰어난 상황 판단력과 전투 센스였다.
하나 송하나는 순수한 검사가 아니었다.
화르르륵! 파지지직!
퍼어어엉!
푸른 화염과 칠흑빛 뇌전이 튀어나와 투황의 몸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투황의 몸이 만신창이로 변해 갔다.
지금까지의 전투 양상은 상당히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버티고 있어.’
투황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거기다.
‘저 눈빛은 절대 승리를 포기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야.’
투황의 눈빛에는 호승심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지켜보자.’
강현수의 기억 속에 있는 회귀 전의 투황과 지금의 투황은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강현수가 알고 있는 투황은 항상 유리한 상황에서 승리를 따낸 인물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해 내는 인물이었다.
전투가 이어지며 투황의 몸에 잔상처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투황은 포기하지 않고 전진 또 전진했다.
그러던 와중 투황이 눈을 번뜩였다.
계속해서 노리고 있던 송하나의 빈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콰콰콰콰!
황금빛 오러에 휩싸인 투황의 주먹이 송하나의 왼쪽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칠흑빛 뇌전을 머금은 송하나의 검이 투황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만!”
강현수가 목소리를 높여 대련을 중지시켰다.
“휴우!”
여차하면 직접 몸을 날리려고 했지만.
다행히 둘 다 잘 멈춰 줬다.
투황의 주먹에 서렸던 황금빛 오러와 송하나의 검을 뒤덮고 있던 칠흑빛 뇌전이 사라졌다.
하나 아슬아슬했다.
투황의 주먹은 송하나의 왼쪽 가슴에 닿아 있었고, 송하나의 검 역시 투황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주먹과 검을 멈추는 게 조금만 늦었다면?
‘둘 다 죽을 뻔했네.’
투황의 주먹은 무쇠보다 단단하다.
그 주먹이 오러까지 머금었다.
만약 멈추지 않았다면 송하나의 심장을 꿰뚫었으리라.
칠흑빛 뇌전이 서린 송하나의 검 역시 날카로웠다.
뇌전이 사라졌음에도 투황의 목덜미에 닿아 있는 검날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둘 다 호승심이 너무 강해.’
그게 저 두 사람의 성장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잘 제어하지 못하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 잘하자.’
애써 손에 넣은 살황과 투황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아쉽네, 내가 다 이긴 건데.”
“그건 내가 할 말이다.”
검과 주먹을 거둔 송하나와 투황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이거나 마셔요.”
강현수가 미리 준비한 포션을 투황에게 줬다.
송하나는 체력과 마력을 소진했을 뿐 상처는 없었다.
씨익!
송하나가 포션을 마시는 투황을 바라보며 조소를 지었다.
뿌득!
그 모습에 투황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아니, 애들도 아니고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특히 항상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 줬던 송하나가 먼저 시비를 거는 모습은 상당히 의외였다.
“이제 너랑 붙어 봐야겠어.”
투황이 강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상처는 포션으로 모두 치료했지만 소모된 체력과 마력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걱정할 거 없어. 내 체력은 아직 쌩쌩하니까.”
투황의 말에 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배려를 거절한 상황에서 굳이 강권할 필요는 없었다.
강현수와 투황이 연무장에 자리를 잡았다.
“대련 시작!”
자연스럽게 심판이 된 송하나의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투황이 강현수에게 달려들었다.
파강! 파강! 파강!
강현수는 차분하게 투황의 공격을 막아 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야.’
다른 누군가가 투황과 동일한 스텟을 가지고 있다면?
백이면 백 모두 패배할 것이다.
‘송하나의 스텟이 투황과 비슷했다면.’
아마 투황이 이겼을 것이다.
송하나는 스텟은 높았지만.
검술 숙련도와 전투 경험이 투황에 비해서는 떨어졌다.
하지만 강현수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헉! 헉!”
투황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맹공을 퍼부어도 강현수가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빈틈을 노리려고 해도 노릴 수가 없었다.
사실 빈틈이 없으면 만들거나 유도하면 그만이다.
투황은 그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수많은 승리를 얻어 냈다.
하나 강현수는 아무리 속임수를 써도 걸려들지 않았다.
또한 기본 검술이 너무 탄탄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도무지 뚫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너, 전투 경험이 많구나.”
투황의 물음에 강현수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전투 짬밥이 얼만데.’
30년이 넘게 칼밥을 먹었다.
생사를 넘나들며 수많은 전장을 전전했다.
그렇게 완성된 검술이고.
직접 피와 살이 찢겨 나가며 한 경험이다.
그런 강현수가 투황의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투황이 특별한 존재인 건 맞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투황은.
강현수의 눈에는 성장 가능성이 넘쳐 나는 기특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헉! 헉! 지금부터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투황이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휘익!
투황의 힘과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콰콰콰콰!
두 주먹에 황금빛 오러를 담은 투황이 맹공을 퍼부었다.
‘뭐지?’
마치 갑자기 대량의 레벨 업을 한 것같이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꽈앙! 꽈앙! 꽈앙!
연속적인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투황의 스텟은.
강현수보다 높았다.
또한 현재 투황은 강현수와 대련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검사와 싸우는 권사로서의 요령을 하나둘 깨쳐 나가고 있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애송이치고는 제법이네.’
역시 투황은 투황이었다.
하나.
‘아직은 아니지.’
강현수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퍼엉!
강현수의 발 차기에 투황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사이.
휘익!
강현수의 검이 투황의 왼쪽 가슴 앞에 닿았다.
“내가 졌다.”
투황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긴 귀가 축 늘어져 버렸다.
패배의 충격이 꽤 큰 것 같았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나도 좋은 승부였어. 그런데 저…….”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대답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왜 그러시죠?”
“혹시 다음에 또 대련해 줄 수 있어?”
투황이 강현수에게 물었다.
‘아주 불타오르고 있구나.’
투황의 두 눈은 잔잔한 불길로 가득했다.
꼭 실력을 늘려 강현수를 쓰러트리겠다는 호승심이 느껴졌다.
“얼마든지요.”
“고마워!”
투황의 얼굴이 환해졌다.
‘패배했기는 하지만 배운 게 많아.’
투황은 강현수와의 대련에서 얻은 게 많았다.
사실 송하나와의 대련에서는 딱히 배울 점이 없었다.
굳이 얻은 게 있다면…….
마검사를 상대하는 요령이 약간 늘어난 정도?
하나 강현수와의 대련은 달랐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눈썰미를 바탕으로 펼치는 심리전이 일품이었다.
또한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무투가를 상대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익히고 있었다.
당연히 투황으로서도 무투가에 익숙한 검사와 싸우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강현수의 페인트 모션에 속아 발 차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대련을 좀 더 길게 끌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웠다.
참으로 아쉬웠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강현수에게 곧바로 다시 대련을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지.’
강현수는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고수였다.
레벨이고 스텟이고를 떠나 순수하게 무라는 측면에서.
자신이 강현수와 대련을 하면?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강현수에게는 귀찮은 일이 되어 버린다.
‘조금이라도 더 실력을 늘린 뒤에 대련을 청하는 게 옳다.’
투황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현수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투황이 대련에 푹 빠진 것 같은데.’
그럴 만도 했다.
검술의 고수와 대련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으니까.
강현수의 순수한 검술 실력은 아틀란티스 차원 전역을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오늘 저녁은 어떻습니까?”
“오늘 저녁?”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괜찮을까?”
투황이 미안함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이죠. 이제 사냥을 나갈 참인데 끝나면 같이 대련하죠.”
“사냥?”
“네.”
투황이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이건 파티에 들어오라는 뜻인데.’
어차피 신세를 갚기 위해 강현수의 파티에 잠시 소속될 생각이기는 했다.
‘나한테는 손해 볼 게 없어.’
무란 왕국군에 입대하게 되면?
파티는 탈퇴하면 그만이다.
“좋아!”
투황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강현수는 투황의 머릿속을 훤하게 읽고 있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각인시켜 주지.’
부르르르.
“응?”
투황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만한 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겁니까?”
“내 스킬 중 하나야. 체력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모든 스텟이 20% 증가하는 스킬.”
강현수의 질문에 투황이 선선히 대답을 해 줬다.
‘그런 스킬도 있었어?’
강현수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 투황은 데리고 갈 가치가 있었다.
투황 자체로서의 전투력은 물론 빼먹을 스킬도 넘쳐 났다.
“일단 여관부터 옮기시죠. 같이 활동하려면 숙소도 같은 게 좋잖아요. 대련하기도 편하고.”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강현수, 송하나, 투황이 파티를 이뤄 사냥을 나갔다.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셋 모두 어느 파티에 들어가든 에이스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셋이나 모였으니.
사냥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언제 나오는 거야.’
강현수는 스택이 충전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투황을 대상으로 레플리카 스킬을 발동시켰다.
투황이 방금 전 대련에서 사용했던 스킬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계속 꽝이었다.
특히 나오라는 스킬은 안 나오고 삭제시킨 스킬만 다시 레플리카 스킬로 돌아왔다.
‘시간은 많아.’
투황은 이제 강현수의 파티원이었다.
계속 붙어 있는 만큼 언젠가는 원하는 스킬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사냥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던 중.
특이 개체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머리가 세 개 달린 표범이었다.
크아아아앙!
삼두표가 성난 포효와 함께 등장해 강현수와 송하나 그리고 투황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좌악! 퍼엉! 퍼억!
강현수의 검과 송하나의 마법 계열 스킬 그리고 투황의 주먹에 각각 하나씩의 머리가 날아가 순식간에 차가운 시체로 변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정도면 쓸 만하겠어.’
강현수가 중대 구성 스킬을 사용했다.
사아아악!
마력으로 구성된 삼두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이게 뭐야!”
투황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제 직업 스킬로 소환수를 만든 겁니다.”
강현수의 대답에 투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업 스킬? 소환수? 그게 무슨 말이야? 강현수 네 직업은 검사 아니었어?”
“아닙니다. 제 직업은 소환 계열입니다.”
순간 투황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내, 내가 검사도 아니고 소환사한테 패배했다고? 그것도 소환수도 소환하지 않은 소환사랑 일대일로 싸워서…….”
투황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충격이 상당히 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