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황 VS 투황
투황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폭발적인 속도와 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검술.
‘절대 내 아래가 아니야. 오히려…….’
투황보다 한 수 위였다.
강현수가 날뛸 때마다 적들이 썩은 볏짚처럼 무너져 내렸다.
“아악!”
“저놈을 죽여!”
“히익! 살려 줘!”
홀로 수십이 넘는 적들 사이로 뛰어들었음에도.
강현수는 조금도 밀리는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양 떼 속에 뛰어든 사자같이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저렇게 강할 줄이야.’
투황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 갔다.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발언을 떠올리자 수치심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저놈, 토인족 놈을 인질로 잡아!”
그때 적들의 수장이 투황을 가리키며 외쳤다.
강현수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목표를 투황으로 돌린 것이다.
‘내가 만만해 보인다 이거냐?’
투황은 기가 찼다.
강현수가 놀라운 무위를 보여 주고 있지만.
투황 역시 강현수 못지않은 강자였다.
“본때를 보여 주마!”
투황이 노성을 터트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주먹과 발을 날렸다.
퍼억! 콰직!
적들의 살이 터져 나가고 뼈가 부러졌다.
투황의 속도와 힘은 강현수보다 부족했다.
하나 그런 점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전투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투황은 어둠 속을 누비는 야수처럼 적들의 빈틈을 파고들어 본능적인 공격을 날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투황은 적들의 몸과 주변의 지형지물을 방패 또는 무기로 활용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묘기처럼 보이는 전투를 연속적으로 이어 나갔다.
‘역시 투황.’
강현수가 투황의 전투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옛날 홍콩 영화를 실사로 보는 것 같네.’
투황의 전투 센스는 역시 엄청났다.
‘이거 기대되네.’
강현수 역시 투황이 가진 전투 센스를 발휘할 수 있었다.
바로 투황이 가진 스킬 야성의 감각을 강현수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뭔지 알 것 같아.’
본능적으로 적의 빈틈이 눈에 들어온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몸이 움직여 적의 숨통을 끊는다.
말 그대로 야성을 가진 맹수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을 손에 넣은 느낌이었다.
‘고작 F랭크인데도 이 정도라니.’
강현수는 회귀 전 투황의 전성기 때 위용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만큼 야성의 감각 스킬의 성장이 끝났을 때의 위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만 하자.’
회귀 전의 강자들을 포섭하고 그들의 주력 스킬을 레플리카로 복사한다.
그렇게 꾸준히 성장해 나간다면?
‘마왕군 놈들과 배신자 놈들에게 회귀 전에 당한 일에 대한 복수를 해 줄 수 있어.’
강현수가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둘렀다.
잠시 후.
“히이익!”
적들의 우두머리를 제외한 모든 적들이 차가운 시체로 변해 버렸다.
‘소환수로 쓸 가치도 없는 놈들이네.’
플레이어이기는 했지만.
평균 레벨은 고작 100~200레벨대.
인간 사냥꾼들과 마찬가지로 낙오자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실력이었다.
‘하긴 그러니 범죄자 짓을 했겠지.’
저벅저벅.
강현수가 적들의 우두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이 괴물들아!”
적들의 우두머리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서걱!
그 순간 강현수가 검을 휘둘러 다리를 베어 냈다.
“아아아악!”
적들의 우두머리가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왜 나를 노린 거지?”
강현수의 물음에 적들의 우두머리가 멈칫거렸다.
서걱!
강현수가 다시금 검을 휘둘러 손가락을 하나를 잘랐다.
“다시 묻는다. 왜 나를 노린 거지?”
“어차피 날 죽일 거잖아! 내가 순순히 대답해 줄 것 같아!”
“순순히 불면 목숨은 살려 주마.”
강현수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적들의 우두머리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큰돈이 있으니까!”
“나한테 큰돈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무, 무투장에서 들었어!”
“무투장 직원 놈도 너희와 한패나?”
“그, 그건.”
“맞으면 맞다고 하면 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하면 된다. 뭐, 한패인데 아니라고 한다면, 그놈만 무사히 빠져나가겠군.”
“그, 그게 좀 애매해서.”
“뭐?”
“그놈이 평소에 목소리도 크고 떠들기도 좋아하는 놈이라서. 평소에 술 몇 잔 사 주면 정보를 술술 불거든. 무투장에서 자기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쉽게 말해 평소에 입이 싼 놈이라 알아서 정보를 술술 분다는 말이었다.
강현수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적들의 우두머리는 강현수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했다.
하지만.
‘별로 영양가 있는 정보가 없네.’
부수적으로 알아낸 게 있다면, 이놈들이 제대로 된 범죄자라는 점이었다.
놈들은 인간 사냥꾼 짓도 하고, 강도 짓도 하고, 인신매매도 하고, 청부 살인도 하고, 용병 일도 했다.
범행 대상은 대부분이 힘없는 빈민이나 가난한 평민이었다.
뒤탈이 없겠다 싶은 범죄는 죄다 저지르고 다녔던 것이다.
“이제 살려 주는 거지?”
모든 정보를 토해 낸 적군의 우두머리가 강현수에게 물었다.
“그래, 살려 주마.”
“고, 고마워!”
강현수의 말을 들은 적들의 우두머리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쪽이 널 용서할지 모르겠네.”
강현수가 투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적들의 우두머리가 투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악귀 같은 얼굴을 한 투황이 있었다.
‘투황은 호인이지.’
또한 선인이다.
그러나.
‘호구는 아니지.’
투황은 회귀 전에도 범죄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아아아악!”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적들의 우두머리가 목숨을 잃었다.
“전리품은 반반 분배하죠.”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쓰러트린 놈들이 더 많잖아. 각자 쓰러트린 놈들에게서 나온 건 각자 갖도록 하지. 아, 이놈은 네가 쓰러트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너한테 줄게.”
투황이 방금 전 숨통이 끊어진 적들의 우두머리가 토해 낸 스킬북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강현수가 투황이 건네준 스킬북을 받고 전리품을 챙겼다.
‘탐식의 검과 수호의 반지에게 줄 먹잇감이 생겼네.’
탐식의 검과 수호의 반지가 먹지 못하는 낮은 랭크의 아이템이나 방어 계열이 아닌 스킬북들도 있었지만, 그건 팔면 그만이었다.
“너 강하더라.”
전리품 정리를 끝낸 투황이 호승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제 동료도 저만큼 강합니다.”
강현수의 말에 투황의 눈이 반짝였다.
“대련 한번 해 볼 수 있을까?”
투황은 싸움을 좋아한다.
괜히 투황이라는 칭호를 얻은 게 아니다.
“제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찾아오시면 얼마든지 해 드리겠습니다.”
“파티에 들어가지 않아도?”
투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현수가 투황에게 대련을 미끼로 파티 가입을 유도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저도 당신과 대련해 보고 싶기는 하니까요.”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내일 아침에 찾아가지.”
“알겠습니다.”
강현수와 투황이 다시금 여관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실력이 정말 대단하더군. 솔직히 말해서 깜짝 놀랐어. 지금 레벨이 어떻게 되나? 아, 이건 실례되는 질문이지. 그럼 언제부터 검술을 수련했는지…….”
투황이 다시금 투머치토커의 기질을 발휘해 강현수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강현수는 투황의 질문에 적당히 대꾸해 주며 움직였다.
잠시 후.
강현수와 투황이 여관에 도착했다.
“내일 이곳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알았다. 꼭 찾아가지.”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강현수와 투황이 짧은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투황을 포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들어가서 푹 쉬자.’
강현수가 여관 내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저 사람이랑 같이 있었던 거야?”
여관 문 앞에 송하나가 있었다.
“어, 같이 저녁 먹으면서 술 한잔 했어.”
“너무 늦어서 걱정했잖아. 다음부터 늦을 것 같으면 미리 말해 줘.”
송하나의 말에 강현수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옷이 왜 그래? 피가 묻어 있는데.”
송하나는 눈썰미가 날카로웠다.
고작 몇 방울 튄 핏자국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저 가방에 든 아이템들은 뭐야?”
“자세한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해 줄게.”
강현수와 송하나가 호실 내부로 들어갔다.
그 후 강현수가 송하나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너무 밤늦게 다니지 마. 위험하잖아. 그럴 일이 있으면 앞으로는 나랑 같이 다니자. 네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송하나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투황의 투머치토커 기질이 옮겨 갔나.’
이날 하루.
강현수의 귀는 낮부터 밤까지 편할 날이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투황이 찾아왔다.
그것도 너무 일찍.
“일단 밥부터 먹죠.”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황도 아침을 안 먹었던 모양이다.
1층 식당에 강현수와 송하나, 투황이 마주 앉았다.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이쪽은 송하나예요.”
강현수의 말에 투황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피나 아르소다. 그냥 주피라고 부르면 된다.”
아르소가 성이고 주피나가 이름이었다.
“대련하러 오신 거죠?”
송하나가 투황에게 물었다.
“그렇다.”
“기대되네요.”
송하나의 말에 투황의 긴 귀가 꿈틀거렸다.
투황은 강현수의 실력은 직접 목격했지만.
송하나의 실력은 아직 직접 경험한 적이 없었다.
“나도 기대가 되는군.”
송하나와 투황이 사이에 묘한 기류가 휘몰아쳤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호승심 넘치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세 사람이 여관에 있는 대련장에 모였다.
최상급 여관이다 보니 대련장도 꽤 수준이 높았다.
주변의 시선을 차단해 주는 높은 담장과 가지런히 깔린 돌바닥.
담장과 돌바닥에는 강한 충격에도 파괴되지 않도록 강화 스킬과 방어 스킬까지 인챈트되어 있었다.
‘시설은 훌륭하지만 그만큼 대여료도 비싸지.’
이 대련장은 시간당 1골드를 대여료로 받는, 돈 잡아먹는 귀신이었다.
“자, 어서 시작하지.”
투황이 기대감 가득한 시선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강현수도 대련을 준비했다.
“내가 먼저 하면 안 될까?”
그때 송하나가 끼어들었다.
“난 네가 아니라 강현수와 대련을 하러 온 것이다.”
투황의 말에 송하나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왜? 나랑 싸우기 겁나?”
빠직!
투황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하!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군. 좋아, 망신당하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주지.”
강현수가 개입할 틈도 없이 송하나와 투황의 대련이 결정되었다.
‘기대되네.’
강현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송하나와 투황을 바라봤다.
살황과 투황.
회귀 전에는 절대 만날 수 없었던 두 절대자의 대결을 눈앞에서 직관하게 된 것이다.
‘플레이어로 각성한 건 투황이 먼저다.’
당연히 그만큼 더 많은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송하나도 만만치가 않았다.
‘송하나는 회귀 전의 지금보다 월등히 강해졌어.’
강현수를 만난 나비 효과로 송하나는 엄청난 업적을 독식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레벨은 투황이 송하나보다 높다.
하나 실질적인 스텟은 송하나가 투황을 압도할 가능성이 높았다.
“대련 시작.”
타악!
자연스럽게 심판이 된 강현수의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송하나와 투황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