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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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황 (2)

“우승 축하드립니다.”

강현수가 투황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투황은 이건 뭐지 하는 표정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실력이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길드나 파티에는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투황은 역시 투황이었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기도 전인데 거절당했다.

“저기…….”

“그럼 전 이만.”

강현수가 다시 말을 이어 가려고 하자 투황이 몸을 획 돌려 무투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빨도 안 들어가네.’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었다.

“저 아이를 우리 파티에 넣을 생각이야?”

“실력이 뛰어나잖아. 넣을 수 있으면 넣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

201~300레벨 대회에 참가했으니 추정 레벨은 대략 200레벨 후반.

함께 사냥하기에 레벨도 적당했다.

“뭐, 제대로 까였지만 말이야.”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실력은 좋을지 몰라도 인성은 별로인 거 같아. 사람이 말을 하는데 중간에 다 잘라 먹고 말이야. 최소한 말은 다 들은 다음에 거절을 하든가.”

송하나의 투덜거림에 강현수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게 당연한 건데.’

회귀 전 투황의 행적을 알고 있던 강현수는 애초에 거절당할 걸 예상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었을 뿐이다.

투황의 까칠한 성격은 회귀 전에도 유명했기에 별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성격이 까칠하기는 하지만 악인은 아니었으니까.’

투황의 성격은 오히려 호인에 가까웠다.

불의한 일이 있으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나섰고,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투황을 호구라고 생각하고 이용하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니까.’

하나 투황은 호인일지는 몰라도 호구는 아니었다.

투황은 자신을 속이고 이용해 먹으려고 한 이들을 철저하게 응징했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아침.

강현수는 홀로 무투장으로 향했다.

투황의 승리에 걸어 놓은 배당금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별로 없네.’

어제 투황이 이겼기 때문이리라.

‘수많은 티켓이 휴지 조각으로 변했겠지.’

그러나 강현수의 티켓은 사정이 달랐다.

휴지 조각이 아니라 금덩이로 변할 예정이었으니까 말이다.

“배당금을 찾으러 왔습니다.”

“티켓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강현수가 무투장 직원에게 티켓을 넘겼다.

“축하드립니다! 대박을 치셨군요! 정말 부럽습니다!”

무투장 직원이 커다란 목소리로 강현수의 대박을 사방팔방에 알렸다.

당연히 사방에서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강현수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아, 죄송합니다. 너무 부러워서요. 어제 제 티켓은 휴지 조각이 됐거든요. 설마 토인족이 웅인족을 꺾고 우승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토인족이 우승할 수도 있죠. 사실 토인족인지 웅인족인지보다는 그 사람의 실력이 더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손님은 타 차원의 인간이라서 잘 모르시나 본데 토인족은 전사 일족이 아닙니다. 귀만 쫑긋 세우고 언제나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겁쟁이들이죠. 웅인족 전사가 방심하지만 않았으면…….”

무투장 직원이 계속 입을 놀리며 토인족을 깎아내렸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배당금이나 주시죠.”

강현수의 말에 무투장 직원이 입을 다물고 금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넘겨주었다.

“무투장 수수료 20%를 제외한 배당금 63만 골드입니다.”

수수료로 무려 17만 골드에 가까운 돈이 날아갔다.

‘수수료 하나는 정말 더럽게 비싸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수수료에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투장 자체를 무란 왕국에서 운영하고 있으니까.’

무란 왕국의 주 수입원 중 하나가 바로 무투장 관람 티켓과 베팅 티켓 판매였다.

‘그럼 이제 쇼핑을 하러 가 볼까?’

강현수는 돈주머니를 챙기고 몸을 돌렸다.

‘어?’

몸을 돌린 강현수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투황?’

투황이 멀찍이서 강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벅저벅.

투황이 강현수를 향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많이 벌었네.”

투황의 말에 강현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 당신 덕분이죠.”

강현수가 두둑하게 한몫 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투황 덕분이었다.

“왜 나한테 걸었어? 나를 알아?”

“당연하죠. 베팅을 하려면 선수에 대해 조사하는 게 필수 아니겠습니까? 전에 참가하셨던 0~50레벨, 51~100레벨, 101~200레벨 무투 대회에서 모두 무패 우승을 하셨더군요. 그래서 이번 201~300레벨 대회에서도 당연히 무패 우승 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정보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시는 않아.”

“틀린 말씀은 아니죠.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과거를 살펴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

“또 전 당신의 실력이 진짜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전 무란 왕국인들처럼 토인족에 대한 편견이 없거든요.”

“뭐, 그건 알아서 하도록 해.”

투황이 짧은 대답과 함께 무표정한 얼굴로 강현수를 지나쳐 갔다.

‘쑥스러워하기는.’

강현수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강현수가 말을 할 때마다 투황의 머리 위로 삐죽 솟아 있는 토끼 귀가 쉼 없이 움찔거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현수가 한마디 한마디 말을 내뱉을 때마다 투황의 긴 귀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투황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지.’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고작 34살.

수인족은 30살에 성인식을 치르니.

상당히 어린 나이다.

인간으로 치면 갓 사회에 나온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이랄까?

거기다 투황은 무투 대회 4연속 무패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고도 토인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수인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항상 무시당하던 자신의 실력을 강현수가 인정하고 칭찬해 줬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어라?’

그런 강현수의 눈에 투황이 무투장 직원에게 금화 주머니를 받는 모습이 들어왔다.

‘자기 경기에 자기가 베팅을 했던 건가?’

그랬을 확률이 100%였다.

어제 무투장에서 열린 경기는 201~300레벨 대회 결승전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담하네.’

투황의 금화 주머니는 강현수의 금화 주머니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작았다.

베팅 금액 자체가 적었기에 배당금도 적었으리라.

‘나 때문에 배당금이 줄었겠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현수가 거액을 베팅하지 않았다면?

투황의 금화 주머니는 지금의 세 배 가까이 커졌을 것이다.

‘밥이나 사 주자.’

이럴 때는 역시 밥 한 끼 거하게 사 주는 게 최고였다.

‘식사 중에 친분을 쌓으면 더 좋고.’

투황은 훗날 최상위 랭커가 될 존재다.

또한 마왕군을 막아 내는 데 상당히 큰 기여를 하는 인물이다.

포섭하지 못하더라도 친분을 쌓아서 나쁠 게 없었다.

‘마침 명분도 있고.’

네 덕에 돈을 벌었으니 밥 한 끼 사겠다.

이 얼마나 훌륭한 명분인가?

저벅저벅.

강현수가 투황에게 다가갔다.

“뭐야?”

“덕분에 큰돈을 벌었는데 밥이라도 한 끼 근사하게 대접하고 싶어서요.”

“거절한다. 네가 너한테 밥을 왜 얻어먹어.”

투황이 무표정한 얼굴로 단박에 거절했다.

하지만.

‘귀가 파닥거렸어.’

밥이라는 말에 분명 투황의 귀가 반응했다.

“제가 고마워서 그럽니다. 가시죠. 가는 김에 어떻게 4연속 무패 우승을 하셨는지도 좀 알려 주시고요.”

강하게 밀어붙이면 되겠다 싶은 생각에 강현수가 투황의 팔을 잡아끌었다.

“뭐가 고맙다는 거야? 그건 네가 베팅을 잘한 덕이라고.”

“그래도 그게 아니죠. 아, 첫 번째 무투 대회에 출전했던 이야기부터 좀 해 주시죠.”

“크흠, 정 알고 싶다면 어쩔 수가 없지. 그때가 2년 전이었는데 말이야.”

강현수가 팔을 잡아끌자 투황이 못 이기는 척하며 끌려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첫 번째 무투 대회에서 어떻게 무패 우승을 했는지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구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 투황의 말은 청산유수였다.

첫 번째 무투 대회에서 만났던 상대들의 종족과 주력 스킬을 시작으로 자신이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 하나하나 쓰러트렸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투머치토커였나? 회귀 전에는 과묵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성장하면서 말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투머치토커 기질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없어져서 말을 줄였던 건지.

‘나쁘지 않아.’

강현수는 투황의 말에 적당히 대답해 주며 식당으로 향했고, 약속대로 근사한 식사를 대접했다.

‘회귀 전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회귀 전의 투황은 독불장군과 과묵함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살짝 까칠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벽을 쌓지는 않았다.

또 말도 많았다.

‘속마음이 귀로 다 드러나기도 하고.’

어리고 순수한 게 눈에 보였다.

‘이런 투황이 왜 그런 독불장군이 되었을까?’

이유는 뻔했다.

‘토인족이라는 이유로 당한 무시와 멸시.’

무투 대회에서 5연속 무패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그저 ‘토인족치고는 제법이네.’라는 평가를 받았다.

투황이 토인족이 아니라 호인족이나 상인족이었다면?

첫 대회에서 무패 우승을 차지한 순간부터 거대 길드나 무란 왕국군에 스카우트되었으리라.

호랑이 수인과 코끼리 수인은 육식동물 수인과 초식동물 수인을 대표하는 존재였으니까.

호인족이나 상인족이 아니더라도 낭인족이나 우인족만 되었더라도 2연속 무투 대회 무패 우승을 달성한 순간 엄청난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 투황은.

‘8연속 무패 우승을 달성한 후에야, 제대로 된 주목을 받았지.’

그 전에도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편견에 사로잡혀 무시당했을 뿐.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아마 지금 투머치토커처럼 열변을 토하는 이유도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이를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잘하면 될 것도 같은데.’

투황의 회귀 전 행적을 보고 포섭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의 순둥순둥한 모습을 보니.

‘꼬실 수 있겠어.’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면, 투황을 파티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랑 함께하는 게 투황한테도 도움이 되고.’

회귀 전 투황은 최전선에서 홀로 적들과 싸우다 전사했다.

‘독불장군의 한계였지.’

투황은 독보적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독선적인 성격과 고집 탓에 적이 너무 많았다.

많은 이들의 질시를 받았다.

‘투황이 세력만 갖췄어도 전장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소모되지 않았을 거야.’

투황은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다.

하나 상위 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나 거대 길드에는 적이 많았다.

‘한번 해 보자.’

강현수는 투황과 지속적으로 친분을 쌓아 파티에 끌어들일 결심을 굳혔다.

‘성공하면 대박이야.’

포섭에 실패해도 손해 볼 건 없었다.

그저 투황과 친분을 쌓은 것만으로도 강현수에게는 큰 이득이 된다.

‘회귀 전 계획에는 없던 일인데.’

이미 살황으로 추정되는 송하나가 강현수의 파티원이 되었다.

여기에 투황이 합류하면?

강현수는 총 두 명의 황제를 파티원으로 거느리게 된다.

살황과 투황.

두 사람의 합류는 강현수의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데도.

또 마왕군을 막아 내는 데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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