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2)
‘괜히 그 미친 괴물 새끼를 건드려서.’
강현수와 송하나.
그 둘에게는 무리를 만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왜?
무리를 지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혼자 거대한 규모의 무리를 손쉽게 박살 낼 정도로 강했으니까.
‘그것도 모르고 병신처럼 좋아했으니.’
자신이 바보 천치처럼 느껴졌다.
그간 최대한 몸을 사렸다.
플레이어 집단이나 머더러 집단을 만나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싸움을 걸지 않았다.
한데 상대의 전력도 확인하지 않고 단지 단둘이라는 이유로 승리를 확신했다.
숫자가 적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단둘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의심했어야 했다.
휘익!
최선을 다해 도주하고 있던 오성혁의 귀에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서걱!
무려 D랭크 아이템인 방패가 너무도 손쉽게 둘도 쪼개졌다.
그리고 날카로운 칼날이 오성혁의 왼팔을 베어 냈다.
“아아악!”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도망쳐야 해.’
오성혁이 고통을 억누르고 다리를 움직였다.
좌악!
그 순간 붉은 피 분수가 튀어 오르며.
털썩!
오성혁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에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말끔한 모습의 강현수가 보였다.
오성혁이 있는 힘을 다해 입을 열어.
“사, 살려 줘!”
목숨을 구걸했다.
“살고 싶으면 날 만나지 말았어야지.”
“크흑!”
오성혁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는 말이었다.
저놈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강해졌다는 사실에 자만했고.
과거의 빚을 갚아 준다는 생각에.
다시 만나 반갑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지 말걸.’
그 반가운 만남이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 그리고 아까 말해 주지 못했는데 말이야. 나도 널 다시 만나서 정말 정말 반가웠어.”
‘도대체 왜?’
“죽었겠거니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계속 찝찝했거든. 난 후환을 남겨 두지 않는 주의라서. 거기다 마지막 선물 고맙다.”
‘마지막 선물이라니, 그게 무슨.’
오성혁은 강현수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시간도 없었다.
점점 흐릿해지던 시야가 완전히 검게 물들었고.
더 이상 생각이라는 걸 이어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업그레이드가 가능했어.’
강현수가 상태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칭호 – 세 번째 튜토리얼의 수호자 SS랭크]
-모든 스텟 40 증가.
오성혁 패거리가 그간 세 번째 튜토리얼에 꽤 많은 패악을 끼친 것 같았다.
고작 열 명 정도를 쓰러트렸을 때 칭호 세 번째 튜토리얼의 수호자가 A랭크에서 S랭크로 성장했다.
그 후 오성혁을 잡으니 무려 SS랭크가 되었다.
‘EX랭크도 가능하려나?’
오성혁 패거리를 잡고 무려 두 단계나 랭크가 올랐다.
오성혁 패거리만큼 패악질을 부린 녀석들을 집중적으로 제거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최대한 노력해 보기로 했다.
거기다 강현수가 얻을 이득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질 좋은 아이템을 꽤 많이 모아 놨네.’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탐식의 검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사아아악!
탐식의 검이 오성혁의 장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남은 녀석들이 들고 있던 아이템까지 먹어 치우면.’
튜토리얼에서 탐식의 검이 C랭크로 성장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꽤 쓸 만한 녀석들이 많았으니까. 분대원으로 쓰기도 좋겠어.’
이렇게까지 얻은 게 많아지자.
세 번째 튜토리얼이 다 끝나 갈 무렵 오성혁을 만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성혁.
그는 강현수에게 있어서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였다.
* * *
강현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지금처럼 해서는 세 번째 튜토리얼의 수호자를 EX랭크로 성장시키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현수는 머더러 집단을 사냥하는 한편 정상적인 플레이어 집단이 생존하는데도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다.
몬스터에게 전멸당할 뻔한 플레이어 집단을 구해 주기도 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플레이어 집단에게 식량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덕분일까?
세 번째 튜토리얼의 수호자를 SSS랭크로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다.
EX랭크까지 딱 한 단계를 남겨 둔 것이다.
강현수는 그러는 한편 혹시 모를 히든 피스를 찾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하나 히든 피스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냥 없어서 소문이 나지 않은 건가?’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는 와중 세 번째 튜토리얼 종료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다 끝내셨나요?”
강현수가 송하나에게 물었다.
“네, 현수 씨가 기다려 주신 덕분에 다 끝낼 수 있었어요.”
송하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가죠.”
“네.”
강현수와 송하나가 세 번째 튜토리얼의 보스 몬스터를 향해 접근했다.
세 번째 튜토리얼의 보스 몬스터는 그림자 리자드맨 킹이었다.
‘말단이라고는 해도 용종은 용종이지.’
거기다 혼자도 아니었다.
그림자 리자드맨 킹의 주변에는 그림자 리자드맨 전사와 그림자 리자드맨 마법사 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회귀 전에는 그림자 리자드맨 킹이 나타나면 피해 다니기 바빴지.’
하나 회귀 후는 달랐다.
오히려 강현수가 먼저 가만히 있는 그림자 리자드맨 킹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다.
“도망치는 놈들만 처리해 주세요, 하나 씨.”
“네.”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림자 리자드맨 킹 사냥은 강현수 혼자서 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송하나가 도와준다면 그림자 리자드맨 킹 사냥 속도가 더 빨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함께하게 되면?
업적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진다.
송하나는 먼저 나서서 보스 몬스터 사냥을 강현수에게 양보했다.
‘개념이 충만하단 말이지.’
세 번째 튜토리얼에서 개념 없는 플레이어들을 꽤 많이 만났다.
선의를 베풀어 줬다.
그런데 은혜를 입은 이들이 마치 당연한 권리라는 듯 은인인 강현수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나 송하나는 달랐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강현수에게 도움이 될까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탐식의 검이라는 아이템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자신이 사냥을 통해 얻은 아이템을 강현수에게 양보했다.
식량을 구하거나 잠자리를 정돈하는 허드렛일도 자신이 도맡아서 처리했다.
이번 보스 몬스터 단독 사냥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현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하나가 먼저 제안했다.
송하나는 알고 있었다.
강현수가 자신을 배려해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먼저 나서서 보스 몬스터 사냥의 기회를 강현수에게 양보한 것이다.
또한 송하나는 강현수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자신의 직업과 스텟 그리고 스킬을 모두 공개해 줄 정도로 말이다.
‘고작 1백 일 정도 함께한 것뿐인데.’
송하나는 강현수를 향해 전적인 신뢰와 헌신을 보내 주었다.
‘너무 믿으면 안 되는데.’
강현수는 회귀 전 송하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더 강한 신뢰를 보냈던 인물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러니 송하나를 전적으로 믿지 말아야 했다.
‘경계를 늦추지는 말자.’
강현수가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탐식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현수의 마음속에.
송하나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것도 강현수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그럼 슬슬 가 볼까.’
타악!
강현수가 그림자 리자드맨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에에엑!
그림자 리자드맨 전사들이 포효를 터트리며 강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무래기들.’
이미 진작 업적 작업도 마친 녀석들이었다.
화르르륵!
강현수의 왼손에서 화염이 피어올랐고.
콰콰콰콰!
오른손에 쥔 검에서는 칠흑빛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리자드맨 전사들의 몸이 수십 개의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캬아아악!
그림자 리자드맨 마법사들이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꽈아앙! 꽈아앙!
하나 그림자 리자드맨 마법사들의 공격은 강현수가 아니라 동족들에게만 피해를 줄 뿐이었다.
순식간에 진영이 뚫렸고 강현수가 그림자 리자드맨 킹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캬아아앙!
키가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덩치의 그림자 리자드맨 킹이 분노 어린 포효를 터트리며 강현수를 향해 삼지창을 휘둘렀다.
삼지창에 실린 힘과 마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서걱!
강현수가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그림자 리자드맨 킹의 몸이 삼지창과 함께 둘로 갈라졌다.
털썩!
좌우로 나누어진 그림자 리자드맨 킹의 사체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실 그림자 리자드맨 킹은 플레이어 한 명이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다수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기에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힘을 합쳐 연합해야만 공략할 수 있는 몬스터.
그게 바로 그림자 리자드맨 킹이었다.
전투력 또한 웬만한 수준의 파티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쉽네.’
강현수에게는 손쉬운 상대일 뿐이었다.
[보스 몬스터 그림자 리자드맨 킹이 플레이어에게 사냥당했습니다.]
[1시간 후 세 번째 튜토리얼이 종료됩니다.]
단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후 개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그림자 리자드맨 킹 솔로 레이드 EX랭크가 주어집니다.]
‘그렇지.’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수백 명이 힘을 합쳐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를 혼자서 사냥했다.
‘그럼 당연히 EX랭크 정도는 줘야지.’
강현수가 얻은 소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칭호 – 세 번째 튜토리얼의 수호자 EX랭크]
마지막 목표였던 세 번째 튜토리얼의 수호자 랭크가 EX로 성장했다.
‘세 번째 튜토리얼을 빨리 끝내는 것도 플레이어들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는 뜻이겠지.’
그게 아니면 그냥 몬스터들을 대량으로 사냥해 플레이어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기에 준 걸 수도 있었다.
‘뒷정리가 남았네.’
강현수가 도주하려다 송하나에게 가로막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 그림자 리자드맨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림자 리자드맨 무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남은 시간도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소대 구성.’
강현수가 소대를 새롭게 구성했다.
사아아악!
칠흑빛 마력이 뿜어져 나왔고.
우득! 우득!
칠흑빛 마력이 그림자 리자드맨 킹과 그림자 리자드맨 전사와 주술사로 변했다.
‘최대한 강한 놈들로만 구성한다.’
어차피 나중에는 또 새롭게 구성해야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아이템도 수거해야지.’
강현수가 탐식의 검에 마력을 주입해 주변에 널려있는 아이템들을 흡수시켰다.
강현수는 다행히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세 번째 튜토리얼이 종료됩니다.]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세 번째 튜토리얼이 종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와 동시에.
화악!
밝은 빛무리가 강현수와 송하나의 몸을 휘감았다.
* * *
드넓은 공터.
화악! 화악! 화악!
그곳에서 연달아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 방금 전까지 세 번째 튜토리얼을 치렀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씨발! 여기는 또 어디야?”
“도대체 언제 지구로 돌려보내 주는 건데!”
“언제까지 이딴 짓을 반복해야 하는 거야!”
분노한 플레이어들의 노성이 강현수의 귓가를 울렸다.
‘돌아왔다.’
반면 강현수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드디어 회귀 전 3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아틀란티스 차원으로 돌아왔다.
‘전이랑은 많이 다를 거다.’
회귀 전 아틀란티스 차원에 갓 진입한 강현수는 많고 많은 평범한 생존자 중 하나에 불과했다.
세 번의 튜토리얼을 통과했음에도 남들 다 얻는 업적 몇 개 획득한 게 다였다.
또 전직을 하거나 특별한 스킬이나 아이템을 얻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튜토리얼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업적과 스킬 그리고 스텟을 싹쓸이했다.
겉모습은 고작 튜토리얼을 갓 통과한 다른 햇병아리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알맹이가 다르지.’
그 증거들이 강현수의 눈앞에 떠 있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튜토리얼에 존재하는 모든 업적을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튜토리얼의 모든 업적을 획득한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역대 최고 성적으로 튜토리얼을 통과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한계를 돌파한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