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튜토리얼의 수호자
20명이 열 명으로 줄어들고 열 명이 다섯 명으로 줄어들었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다섯 명의 적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20명이 넘는 숫자의 플레이어들을 제압하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적 플레이어들의 리더는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송하나를 공격했다.
‘제법 실력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송하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거기다 전투를 함께하던 수하 플레이어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상황.
파강! 파강!
상대는 송하나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금방 끝나겠네.’
잠시 후.
강현수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서걱!
송하나의 검이 창을 들고 있던 상대의 오른팔을 베어 낸 것이다.
“아악!”
상대가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떨어트렸다.
뒤늦게 고통을 떨쳐 내고 황급히 왼손으로 창을 잡으려 했지만 송하나가 더 빨랐다.
휘익!
송하나의 검이 상대의 목을 말끔하게 베어 버렸다.
털썩!
머리를 잃은 몸통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와아아아!”
그 순간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도망치려고 했던 플레이어들이 터트린 함성이었다.
“하아!”
함성을 듣자 강현수는 기가 찼다.
‘이놈들은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다고 함성을 질러?’
그들이 한 건 그저 도망치다 다시 되돌아온 것뿐.
그런 주제에 마치 자신들이 승리한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아는 사이 같던데 상황 설명해 봐.”
강현수가 도망치려고 했던 플레이어들의 리더에게 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사실 며칠 전에…….”
리더가 그간의 사정을 풀어서 이야기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원래 그들의 무리는 30명이 넘는 대인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세 명의 플레이어가 꽤 많은 식량을 들고 합류를 요청해 받아 줬다.
한데 알고 보니 그들이 머더러 집단의 일원이었다.
새롭게 합류한 세 명이 늦은 밤 머더러 집단을 불러들였고.
머더러 집단의 기습 공격을 받은 그들은 전체 인원의 2/3가 전멸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저는 생존자를 수습해 놈들의 추격을 피해 도주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우리를 만난 거다?”
“네, 그렇습니다.”
강현수와 송하나를 보자마자 적대시한 것도 이해가 갔다.
‘우리를 머더러 집단에 소속된 플레이어라고 생각한 건가?’
이미 한번 당한 전적이 있으니 의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50일쯤 지났으니 슬슬 시작되는 건가?’
머러더 집단이 급격하게 늘어날 만한 시기.
‘뭐, 당연한 거지.’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해 보고 싶으면 그에게 권력을 쥐여 주라는 말이 있다.
‘한데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한 권력이 아니지.’
법이 존재하지 않는 약육강식의 논리만 존재하는 세상.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
‘심지어 살인을 하면 손쉽게 강해질 수 있지. 저놈들도 언제 변할지 몰라.’
저들은 아직까지 뒤틀리지 않았다.
하나 그게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식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
죽음에 대한 공포.
나 혼자 뒤처진다는 초조함.
살고 싶다는 생존 본능.
그런 생각들이 지독한 극독이 되어 저들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인의 인격이 뒤틀리고 바뀌어 간다.
‘결국은 저들도 살인자가 되겠지.’
머더러가 되나 머더러 사냥꾼이 되나.
어차피 살인자는 살인자였다.
애초에 세 번째 튜토리얼은.
살인자가 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는 곳이었다.
“현수 씨,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송하나가 강현수에게 다가와 투항한 포로 다섯 명을 힐끗거리며 물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휘익!
강현수가 검을 휘둘렀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다섯 명 중 두 명의 목이 동시에 날아갔다.
“히이익!”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살아남은 세 명 중 두 명이 강현수에게 애걸복걸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의 선택은 조금 달랐다.
“정훈 씨, 저 좀 살려 주세요!”
꾹 눌러쓰고 있던 투구를 벗더니 방금 전까지 강현수와 대화를 나눴던 도망치던 플레이어들의 리더에게 달려간 것이다.
“기철 씨?”
“어떻게 기철 씨가?”
투구를 벗으면서 드러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이 경악했다.
“우리를 배신한 건가요!”
“저 살인자 놈들에게 붙다니!”
비난이 솟구쳤다.
“살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살고 싶으면 무조건 자신들의 무리에 합류하라고 했어요! 전 기회를 봐서 다시 이쪽에 합류하려고 했습니다! 정말이에요!”
기철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가 목이 터져라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원래 이쪽 일행이었는데 습격 이후 생포당해 머더러 집단에 합류한 건가?’
그런 경우는 종종 있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 하겠는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혹시 기철 씨도 처음부터 첩자였던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기철이 오빠는 두 번째 튜토리얼부터 저희와 함께했어요. 그 후 곧바로 이 무리에 합류했고요. 기철이 오빠가 첩자라면 저희도 첩자라는 말씀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그게 무슨! 우리도 저번 습격에서 두 번째 튜토리얼부터 함께했던 동료를 잃었다고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동료는 무슨.”
“지금 말 다 했어요!”
“다 했다 어쩔래!”
무리가 두 패로 나뉘어 말다툼을 벌였다.
“정훈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훈 씨는 기철이 오빠를 믿죠?”
말다툼을 벌이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리의 리더인 정훈에게로 향했다.
“어, 그게…….”
무리의 리더인 정훈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서걱!
그때 뼈와 살이 갈라지는 소음과 함께.
털썩!
포로 중 하나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강현수가 포로 중 하나의 숨통을 끊어 버린 것이다.
“정훈 씨, 제발 살려 주세요! 전 머더러가 아니라고요!”
기철이 겁에 질려 정훈에게 애원했다.
“저기, 이 사람은 원래 우리 무리에 속해 있던 사람입니다.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시시비비를 가린 후에 처결을 내리겠습니다.”
정훈의 말에 강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걸 왜 네가 정하는데?”
“예?”
“죽이든 살리든 시시비비를 가리든 말든 그걸 왜 네가 결정하냐고? 이놈들을 네가 잡았어?”
“그, 그게.”
강현수의 말에 정훈은 다시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정훈 씨, 살려 주세요! 전 살인자가 아닙니다! 죄가 없어요!”
기철이 정훈에게 매달리며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억울하기는 개뿔.”
강현수는 기가 찼다.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머더러 플레이어를 향해 칼끝을 겨눴다.
“너도 정말 저놈이 억울하다고 생각해?”
강현수의 물음에 공포에 질려 떨고 있던 머더러 플레이어의 눈이 번뜩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절 죽이지 않으실 겁니까?”
머더러 플레이어가 희망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게 하지.”
강현수가 순순히 머더러 플레이어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저놈도 저희랑 똑같은 놈입니다!”
“증거가 있나?”
“있죠! 무리에 끼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거든요!”
“그 입 닥쳐!”
기철이 흥분해 머더러 플레이어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휘익!
하지만 순식간에 목 앞으로 다가온 강현수의 검 때문에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절차가 뭐지?”
“포로를 죽이는 겁니다! 저놈은 살아남은 자신의 동료들을 죽임으로써 우리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범죄자 집단이 동료를 늘리는 전형적인 방법.
그건 바로 상대를 범죄자로 만들어 원래 집단에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거다.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닙니다! 저놈이 먼저 우리 무리에 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더군요!”
아마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남을 죽이려고 했다면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해야지.’
서걱!
강현수가 검을 휘둘러 기철의 목을 말끔하게 베어 냈다.
“저, 전 살려 주시겠죠?”
머더러 플레이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하지. 난 약속은 꼭 지킨다. 널 죽이지 않으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머더러 플레이어가 환한 얼굴로 강현수에게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내 동료가 널 살려 줄지는 모르겠네?”
“예? 그게 무슨?”
스르르릉.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송하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이런 씨발! 이건 약속이 다르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널 죽이지 않는다고 했을 뿐이야. 지켜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고.”
“이 개새끼가!”
머더러 플레이어가 욕설을 내뱉으며 도주하려는 찰나.
서걱!
송하나가 검을 휘둘러 머더러 플레이어의 목을 베어 버렸다.
털썩!
머리를 잃은 몸통이 붉은 선혈과 함께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말끔하네.’
강현수와 송하나의 목숨을 노리던 머더러 플레이어 무리를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말끔하게 제거했다.
‘피곤하네.’
이제는 정말 쉬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강현수가 죽은 머더러들의 아이템을 회수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 정훈이 재빨리 나서서 아이템 회수를 도왔다.
눈치껏 보고 있던 다른 이들도 합류해 아이템 회수를 도왔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시체가 잔존 마력으로 흩어진 덕에 말이 아이템 회수지 그냥 땅에 떨어진 걸 줍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씨, 가죠.”
“네, 현수 씨.”
강현수와 송하나가 전리품들을 챙겨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저기.”
그때 정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야?”
“우리와 힘을 합치시는 건 어떠십니까? 식량이나 잠자리는 저희가 마련하겠습니다. 불침번도 저희가 서겠습니다. 그리고 사냥해서 나온 아이템도 전량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싫어.”
강현수가 짤막한 대답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양보했는데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훈이 강현수의 등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탁!
강현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스르르릉!
순식간에 뽑혀 나간 강현수의 검이 정훈의 목덜미에 닿았다.
“너, 죽고 싶어?”
“네?”
강현수의 말에 악에 받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정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너희는 우리를 먼저 공격했어. 그런데 난 너희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뻔한 위기에서 구해 줬지.”
맞는 말이었다.
강현수와 송하나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저들은 머더러 플레이어들과 같이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을 것이다.
그 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으리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놈들이야. 알겠어?”
“네? 네.”
정훈이 몸을 덜덜 떨며 힘겹게 대답했다.
목덜미에서 흘러나온 붉은 선혈이 몸을 서서히 적시고 있었다.
휙!
검을 거둔 강현수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정훈은 더 이상 강현수와 송하나를 붙잡지 못했다.
얼마 가지 않아 강현수와 송하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곧바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기철 저 새끼가 배신자였다니! 잘 죽었네! 잘 죽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마 저 살인마 놈의 말을 믿는 거예요?”
“그럼 믿지 못할 건 또 뭐가 있죠?”
“지금 말 다 했어요?”
“정훈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걸 왜 저런 놈한테 물어봐요? 저놈 판단 미스 때문에 우리가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데!”
“하긴 기철 오빠 죽을 때 찍소리도 못 하고 있더라니.”
“그것뿐이야. 협상도 개판으로 해서 저분들 심기만 건드렸잖아. 협상만 잘했어도 합류할 수 있었는데.”
“그러게. 협상이고 뭐고 그냥 조용히 뒤따라갔다면 우릴 외면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저놈 때문에 망한 거야.”
“지금이라도 뒤따라가는 게 좋지 않을까?”
둘로 분열되었던 목소리가.
셋으로 그리고 넷으로 분열되었다.
잠시 후.
목소리의 분열이.
“저런 멍청한 놈을 리더라고 믿고 따를 수는 없어. 리더를 다시 뽑자.”
“정훈 씨는 할 만큼 했는데 왜 그래요? 그렇게 정훈 씨가 싫으면 차라리 갈라져요!”
“그래, 갈라지자, 갈라져!”
“난 지금이라도 그분들을 따라갈래.”
현실의 분열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