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황 (2)
“저기, 괜찮으세요?”
“고생하셨어요.”
최우석과 박지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희 대체 뭐 하는 놈들야? 바보야, 돌대가리야? 공격을 해야 할 것 아냐! 우리가 죽으면 그다음은 너희 차례라고!”
오성혁이 욕설과 함께 울분을 토해 냈다.
“죄송합니다. 몸이 안 움직여서.”
“앞으로는 잘, 열심히 할게요.”
최우석과 박지명이 기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죄송하다고 하면 끝인 줄 알아!”
오성혁이 계속해서 욕설을 토해 내며 최우석과 박지명을 갈궜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원독에 찬 눈으로 강현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성혁은 강현수에게는 단 한마디의 독설도 내뱉지 못했다.
“잠시만요.”
그때 송하나가 나섰다.
“당황하시는 것도 놀라는 것도 이해해요. 갑자기 이런 이상한 곳에 끌려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뿐이에요.”
“죄, 죄송…….”
“사과를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에요. 전 이 몬스터를 잡고 레벨 업을 했어요. 그리고 더 강해졌죠.”
“나도 레벨 업을 했다.”
오성혁이 툭 하고 내뱉듯 말하며 송하나의 말에 힘을 실어 줬다.
“튜토리얼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또 우리가 앞으로 함께 움직이게 될지 첫 번째 튜토리얼처럼 떨어지게 될지도 알 수가 없어요.”
“아마 혼자 튜토리얼을 시작하면 저놈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 버릴걸.”
송하나의 말과 오성혁의 비아냥거림에 최우석과 박지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몬스터를 잡고 레벨 업을 해서 강해지지 못하면 당장은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어요. 두려워도 무기를 들고 몬스터와 싸워야 해요.”
“저놈들에게 그럴 만한 배짱이 있을까 모르겠네.”
“그리고 무서운 건 몬스터만이 아니에요. 법이 없는 세상에서는 몬스터보다 사람이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어요.”
송하나가 그 말과 함께 오성혁을 바라보았다.
“…….”
계속해서 송하나의 말에 추임새를 넣던 오성혁이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스스로 강해져야 해요.”
냉정하긴 하지만 송하나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현대와는 달랐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본인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비참하게 버려질 수밖에 없다.
송하나의 말에 최우석과 박지명이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옳은 말인 건 맞았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두 사람에게는 듣기 싫은 말이었다.
“두 번째 튜토리얼이 끝나면 현대로 돌아갈 수 있을 수도 있잖아요?”
최우석이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최우석의 대답에 송하나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놈은 글렀네.’
희망적인 생각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행복 회로만 돌리는 건 결코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행복 회로를 돌리더라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지.’
그래야 행복 회로가 박살 났을 때 상황을 감당할 수 있다.
‘어차피 난 송하나만 챙기면 그만이야.’
저 짐덩이들은 두 번째 튜토리얼만 끝나면 죽든 말든 강현수가 알 바 아니었다.
거기다 저 둘이 몬스터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면?
강현수가 먹을 수 있는 경험치가 늘어난다.
“일단 이동하죠.”
강현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우리는 이곳에서 3일간 생존해야 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주무시고 싶으신 건 아니죠?”
3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적당한 동굴을 찾아서 안에 넣어 놔야지.’
사방에서 공격당할 수 있는 장소는 위험했다.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재빨리 화살을 회수했다.
화살통은 하나의 아이템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그 안에 든 화살은 고작 열 발뿐.
쏜 화살을 회수하지 않는다면 석궁은 금방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상황 판단이 빨라.’
강현수를 제외하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생존 본능이 뛰어났다.
‘이건 내가 챙겨야지.’
강현수가 오성혁이 떨어트린 검을 챙겼다.
오성혁은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죠.”
강현수가 몸을 움직였다.
일행이 강현수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캬웅!
이동하는 중간중간 몬스터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서걱!
일행은 나서고 싶어도 나설 틈도 없었다.
강현수가 일 검에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강현수의 모습에 송하나의 표정에 서려 있던 긴장이 살짝 풀렸다.
최우석과 박지명은 심각했던 표정을 풀고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강현수가 있는 한 자신들이 위험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반면 오성혁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이동하면서 만난 몬스터의 숫자는 무려 수십 마리에 달했다.
한데 그렇게 많은 몬스터를 처리했음에도 강현수는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히 이동하는 자신의 호흡이 격렬한 전투라도 치른 듯 거칠어졌다.
어떻게든 경험치를 나눠 받기 위해 전투에 기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현수가 몬스터가 나타나는 순간 숨통을 끊어 버리는 통에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저게 무슨 취미로 검도를 배운 수준이야.’
검도 대회 세계 우승자도 저런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할 것이다.
‘나쁜 놈.’
오성혁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저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위기를 방치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몬스터 손을 빌려서 날 죽이려 했다 이거지. 두고 봐라.’
오성혁이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결심하며 속으로 칼을 갈았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강현수가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좋겠네요.”
강현수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작은 동굴 앞이었다.
동굴 옆에 작은 개울이 있어서 목을 축이기도 좋았다.
최우석과 박지명이 개울에서 목을 축인 후 재빨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송하나와 오성혁도 물을 마신 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쉬고 있으세요.”
“네? 저희들끼리요?”
“어디 가시려고요?”
최우석과 박지명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3일 동안 생존해야 한다는 말은 식량도 구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몬스터의 사체는 먹을 수가 없다.
맛이나 독의 여부를 떠나 사체가 잔존 마력으로 변해 흩어지기 때문이다.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그때 송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그, 그럼 저도.”
최우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박지명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생각인데, 두 분이 저를 따라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강현수의 말에 최우석과 박지명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레벨 업을 하고 추가 스텟을 찍은 송하나와 오성혁도 숨이 거칠어질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레벨 업도 못 하고 추가 스텟도 얻지 못한 두 사람은 사실 이곳까지 강현수의 뒤를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 있었다.
“오성혁 씨.”
“네!”
강현수의 부름에 오성혁이 군대에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불을 피울 수 있는 나뭇가지를 모아 주세요. 버섯이나 열매같이 먹을 수 있는 과일도 찾아봐 주시고요. 개울에 통발을 놓는 것도 좋겠네요. 하실 수 있으시죠?”
“네, 할 수 있습니다.”
오성혁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가 송하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시죠.”
“네.”
강현수와 송하나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야! 거기 둘!”
두 사람의 모습이 멀어지자 오성혁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최우석과 박지명을 불렀다.
“네?”
“왜요?”
“네? 왜요? 너희 방금 저 자식이 한 말 못 들었어? 당장 움직여, 이 굼벵이 같은 놈들아!”
오성혁의 말에 최우석과 박지명이 발끈했다.
“당신은 왜 가만히 있어요?”
“우리보다 체력도 좋잖아요.”
“난 지금 오른손이 병신이잖아. 환자는 쉬어야지.”
“그런 게 어디…….”
“왜? 뭐 불만 있어?”
최우석과 박지명의 저항에 오성혁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몬스터의 피로 얼룩진 방패를 본 최우석과 박지명이 입을 다물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남은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송하나가 걱정스럽다는 듯 강현수에게 물었다.
“괜찮을 겁니다. 근처에 있는 몬스터는 다 정리했으니까요.”
“그게 아니라 오성혁 그 사람 때문이에요.”
“둘이서 부상당한 사람 하나를 못 당할까요.”
“저는 왠지 그럴 거 같은데요.”
최우석과 박지명이 힘을 합쳐 오성혁에게 대항한다?
오성혁에게 굴복했으면 굴복했지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예?”
“제가 보모도 아니고 두 사람을 일일이 챙겨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남은 튜토리얼 기간 동안 안전을 책임져 주는 것만으로도 제가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렇죠. 그게 맞는 거죠.”
잠시 고민하던 송하나가 수긍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실 방금 전 강현수에게 던졌던 질문은 송하나가 자기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했어.’
충고는 충분히 했다.
그걸 듣고 듣지 않고는 당사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였다.
“식량은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혹시 독버섯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죠?”
송하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저도 어떻게 구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 주변을 훑어보다 보면 나오는 게 있겠죠.”
캬앙!
그때 블러드 울프가 수풀 속에서 뛰쳐나와 강현수를 향해 달렸다.
서걱!
하지만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목숨을 잃었다.
‘떴네.’
강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일격필살이 B랭크에서 A랭크로 성장했습니다.]
[일격필살 – A랭크]
-50마리의 몬스터를 일격에 사냥하셨습니다.
-모든 스텟 30 상승.
칭호 일격필살은 첫 번째 튜토리얼 첫 번째 사냥에서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랭크를 상승시키는 건 그 후에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강현수가 선두에 서서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블러드 울프 학살자 A랭크가 주어집니다.]
새로운 업적을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레벨에 도달했다.
[10레벨에 도달하셨습니다.]
[1차 전직 조건을 완료하였습니다.]
[전직할 직업을 선택해 주세요.]
강현수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전직 목록을 확인해 봤다.
[일반 직업 검사 – F랭크]
[일반 직업 전사 – F랭크]
[일반 직업 마법사 – D랭크]
[일반 직업 마검사 – E랭크]
[유일 직업 일인분대 – F랭크]
‘나왔다.’
강현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실 랭크는 마법사가 가장 높았다.
그러나 마법사는 조금 희귀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일인분대는 다르지.’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나오는 일종의 히든 직업.
또 단 한 명의 플레이어만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직업이었다.
‘조건이 좀 까다롭기는 하지.’
유일 직업인 일인분대를 얻기 위해서는 1차 전직을 할 때까지 솔플로 몬스터를 사냥해야 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상혁과 송하나가 블러드 울프를 사냥할 때 끼어들지 않았다.
그 후에는 다른 이들이 나설 틈도 없이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그 결과 일인분대라는 유일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분대지만 나중에는 다르지.’
회귀 전 이 직업을 가지고 있던 플레이어의 칭호는 일인군단.
실제 전투에서도 일인군단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지.’
최상위 플레이어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수준이긴 했지만.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가 되지는 못했다.
최후도 비참했다.
‘하지만 난 달라.’
먼 훗날 최상위 플레이어가 되는 이들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 스킬, 아이템을 모두 독점할 것이다.
일인분대라는 유일 직업은 그 시초에 불과했다.
‘내가 네 소망을 이뤄 주는구나.’
훗날 일인분대라는 유일 직업을 얻을 예정이었던 플레이어.
강현수의 선점으로 그는 회귀 전 그렇게 저주하던 일인분대라는 유일 직업을 획득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직업은 내가 가져가 주마. 그러니 네가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무인의 삶을 살아라.’
그리고.
‘회귀 전처럼 비참하게 죽지 마라.’
마음의 결정을 내린 강현수가 일인분대로의 전직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