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20화
“테라가 죽었다고?”
“응, 나도 겨우 도망쳤어.”
온몸에 상처를 잔뜩 입은 팔리오가 공허한 눈으로 말한다.
그 말에 급히 호출된 슈리오 멤버 전원이 놀란 표정으로 팔리오를 보았다.
“테라, 그놈이 죽었어?”
“건방지긴 해도 어디 가서 함부로 죽을 놈은 아닌데?”
“아냐, 그 새끼 감싸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 솔직히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죽을 것 같았다.”
“흠.”
10인으로 이루어진 슈리오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무력 집단.
그들의 10인 체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왔는데 영원할 줄 알았던 체제가 갑작스레 무너지니 다들 적잖게 당황한 것.
부단장 칼톤이 물었다.
“테라와 너를 그렇게 만든 게 힐탄 그놈이라고?”
“응.”
“외팔이에 몸 곳곳의 혈맥도 좀 끊겼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군.”
“그건 다 헛소문이었다.”
“헛소문?”
“잘린 줄 알았던 왼팔은 멀쩡했고 오러도 마력도 모두 다 전성기 시절과 다르지 않았어.”
“그럼 사군주회에서 우리에게 거짓 정보를 줬다는 건가?”
의뢰를 받아 오거나 서류 업무를 처리하는 게 주로 칼톤이었기에 칼톤은 눈살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으니까.
“모르지. 어쩌면 힐탄 그놈이 계속 남들 모르게 완벽히 숨기고 다녔을지도.”
“흠.”
칼톤은 얼마간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던 끝에 풍경을 보고 있는 단장, 레흐만에게 물었다.
“단장, 너는 어떻게 생각해?”
칼톤의 물음에 레흐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풍경을 보는 건지 허공을 보는 건지,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한참을 침묵하더니 드디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 우선 의뢰인들을 다시 만나야 될 것 같군.”
“단장이 직접?”
“미우나 고우나 동료였던 놈이다. 의뢰인들의 거짓 정보로 동료가 죽었는데 셈을 다시 해야 되지 않겠어?”
“흠, 맞는 말이긴 하지. 하지만 알지? 그 양반들은 절대로 직접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거.”
“방법이 있어.”
방법이 있다.
그 말에 칼톤이 고개를 끄덕였고 레흐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의뢰인들 만나러.”
슈리오 전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힐탄이 말입니까?”
“예. 그래서 우리 동료가 하나 죽었습니다.”
사군주회 대리인 파만.
그는 예상 밖의 소식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얼마간 고민하더니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서요?”
“뭐?”
“힐탄의 손이 어쨌든 간에 힐탄을 죽여 주겠다고 한 건 당신들이잖습니까. 설마 이제 와서 팔 하나 차이 때문에 의뢰를 못하겠다는 겁니까?”
“후후, 어설픈 도발이네요. 죽여 드리긴 할 겁니다. 하지만 제 말은 단가가 안 맞다는 거죠.”
“무슨 단가요?”
“가령 드래곤을 잡는다고 해 봅시다. 그럼 브레스를 뿜지 못하는 놈과 브레스를 수시로 뿜을 수 있는 놈의 몸값이 과연 같을까요?”
“올려치기가 심하군요. 아무리 비유라고 해도 그 녀석은 드래곤이 아닙니다. 그냥 겁이 나면 겁이 난다고 하세요.”
파만의 비아냥거림에 칼톤이 씩 웃었다.
“그렇대, 단장.”
“진.”
“응.”
콰앙!!
칼잡이 진.
단장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곁에서 팔짱 끼고 있던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파만의 머리통을 테이블에 처박아 버렸다.
“무, 뭐 하는 거야? 난 사군주회의 대리인이라고!”
“알아.”
“무, 뭐?”
“안다고. 근데 그래서 뭐?”
“그, 그게 무슨…… 넌 대리인이지 사군주회가 아니잖아? 그리고 얼굴 한 번 안 내비치는 놈들이 사군주회는 무슨…… 우리가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용병 집단인 거 알지? 우리가 해결 못하면 다른 놈들도 똑같아. 그러니까 가서 전해. 일을 똑바로 처리하고 싶다면 가서 계산 다시 해 오라고.”
칼톤의 말이 끝나자 진이 그제서야 파만의 머리를 풀어 주었고 엉망이 된 파만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후, 후회하게 될 거다, 네놈들!”
“잘 가시고~!”
파만이 건물을 벗어나자 멀어지는 파만을 보며 칼톤이 말했다.
“자, 그럼 우리도 이제 시작해 보자고.”
협상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과연 사군주회였다.
파만은 그들의 대리인이긴 하나 따지고 보면 대리의 대리, 즉 하청이었다.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 그는 사군주회의 진짜 대리인들을 불러 접선했고 힐탄의 소식과 자신이 겪은 처우를 설명하며 당장이라도 슈리오를 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군주들의 진짜 대리인들은 슈리오의 태도보단 그들이 가져온 정보에 놀란 모습들을 보였다.
“팔이…….”
“멀쩡해?”
“신기하군.”
“호오.”
파만의 말에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파만에게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예? 제가 이 꼴을 당했는데요? 이대로 놈들을 그냥 두면 사군주님들의 위신이……!”
쾅!!
“커억!!”
파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진짜 대리인들 중 하나가 파만의 입에 주먹을 꽂아 넣은 후 자신의 손에 묻은 파만의 침과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얻다대고 건방지게 군주님들 위신을 들먹여? 그런 대접을 받은 건 너지, 우리도 군주님들도 아냐.”
“흐, 헤흐헤……?”
저런.
좀 전의 일격으로 이빨이라도 꽤 빠진 모양.
파만에게 주먹을 날린 대리인이 고개를 돌려 나머지 대리인들에게 말했다.
“내일 다시 이 자리에 모이도록 하지.”
“그러지.”
이번 의뢰는 사군주회의 동시 의뢰이긴 하지만 네 사람의 뜻이 일치했기에 진행된 의뢰.
하지만 알고 있는 정보가 변경되었으니 우선은 각자 토의가 필요했다.
이윽고 대리인들이 흩어졌고.
“움직인다.”
슈리오도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대리인들을 쫓았다.
1팀은 부단장 칼톤과 칼잡이 진이 페어를 맞춰 1번 대리인을 쫓았는데 꼬박 하루를 쫓아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대륙적으로 꽤나 이름을 떨치고 있는 상회 중 하나인 카트만이었다.
칼톤이 눈을 좁혔다.
‘사군주 중에 하나가 설마 카트만의 회장이었을 줄이야.’
카트만 상회의 회장, 포앙 리 카트만.
그는 풀만 왕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 몸으로 진짜 귀족은 아니었지만 명예 백작이라는 명예직을 가지고 있을 만큼 풀만 왕국과 그 사이가 가까웠다.
1번 대리인이 상회 건물로 들어가 카트만 회장을 찾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톤과 진은 두 사람이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게 뜸을 들인 후 천천히 대리인의 뒤를 따라 상회 건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누구십니까?”
“이곳은 카트만 상회 본관으로 관계자가 아니면…….”
의미 없는 막아섬.
경비병이 두 사람을 제지하려 하자 진이 검집으로 그들의 머리를 후려쳐 단숨에 기절시켜 버렸다.
그러자 곳곳에서 불한당들의 침입 사실이 알려지며 병사들이 뛰어 들어왔고 바깥 소란에 카트만 회장과 그의 대리인도 그제서야 밖으로 나와 보았다.
카트만 회장을 본 칼톤이 검지와 중지를 붙여 관자놀이를 톡 치며 인사를 건넸다.
“요, 사군주님 안녕하십니까?”
사군주라는 말에 카트만 회장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진다.
카트만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대리인을 보자 대리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전 절대로 아닙니다! 그냥 저놈들이 작정하고 제 뒤를 딴 것 같습니다.”
“딩동댕.”
병사 백여 명이 창칼을 들고 두 사람을 포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고 오히려 대리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칼톤이 말했다.
“카트만 회장, 당신이 사군주일 줄은 몰랐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시치미 뗄 거야? 일부러 둘이 충분히 이야기 할 시간까지 줬는데. 들어서 알잖아, 제국 망령의 두 팔이 실은 멀쩡하다는 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말 그대로야. 놈을 죽이고 싶다면 계산을 다시 해. 우리가 들은 건 팔 한 짝에 불과했으니까.”
“겨우 그까짓 셈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 온 거라고?”
“겨우 그까짓 셈이라니? 우린 용병이야. 돈이 전부라고. 목숨 걸고 일하는데 당연히 셈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어?”
“이 자리에서 죽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우리가 왜 업계 탑인데?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왔을까 봐? 근데 그거 알아? 만약 우릴 여기서 못 죽이면 함께 오지 않은 내 동료들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뭐?”
“그래, 무려 카트만 상회의 회장님이신데 돈을 처발라서 더한 강자를 데려올 수도 있겠지. 아님 풀만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근데 그러면 우리가 과연 정면 승부를 할까?”
그 말에 카트만 회장의 얼굴이 더더욱 구겨졌다.
소수로 움직이는 슈리오이니만큼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사사건건 자신의 상업을 방해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다시 셈을 하는 게 그쪽한테나 우리한테나 가장 이상적인 결과라는 말이지.”
“괘씸한 놈들…….”
그때였다.
“크악!”
“크아아아!!”
“커헉!”
저 멀리 상회의 입구에서부터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의 출처는 당연히 카트만 회장의 사병들.
그들의 비명 소리에 회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뭘? 아니, 저건 우리가 아니야! 오해하지 마!”
칼톤은 당황했다.
그는 분명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협상하기 위해 대리인의 뒤를 딴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학살이라니?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윽고 학살범이 나타났다.
그런데 남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병사 수십을 벤 남자가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칼톤. 슈리오답지 않게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지?”
“뭐?”
“이건 슈리오의 방식이 아니다.”
그 순간, 남자가 크게 검을 휘두르자 그가 휘두른 검으로부터 엄청난 크기의 검풍이 발생했다.
“이런!”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진이 검풍으로 몸을 날려 검을 들었다.
그러자.
카가가가강!!
칼날로부터 귀청 떨어지게 쇠 긁는 소리가 나더니 진의 의복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진은 손에 든 검의 이빨을 절반이나 날려먹은 뒤에야 간신히 검풍을 와해시킬 수 있었다.
“제길.”
진의 몸에 자잘한 검흔들이 생겼다.
그것을 본 칼톤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뭐야?”
“뭐긴. 슈리오지.”
“네가 슈리오라고?”
“네놈 하는 짓이 너무 답답해서 단장이 직접 보냈다. 우리가 언제부터 돈돈 했지? 돈보다 중요한 건 자존심이다.”
남자는 다시 검을 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남자의 몸으로부터 푸른 아우라가 뿜어졌고……
“저건……!”
눈에 보이는 뚜렷한 파란 아우라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런 힘을 가진 자는 대륙에서도 얼마 없는데……
그러나 칼톤이 놀라기도 잠시.
남자는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두 사람의 목을 베었다.
“……!”
“……!”
슈리오 둘이 매가리 없이 당하자, 그것을 지켜보던 카트만 회장과 대리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다음은 자기들 것이란 걸.
“회, 회장님 도망치셔야!”
대리인의 외침.
그러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
그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카트만 회장과 대리인은 물론 순차적으로 상회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으니까.
“후.”
날붙이 든 자들과 슈리오, 그리고 카트만 회장을 죽인 남자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은 이.
다름 아닌 힐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