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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516화 (516/522)

# 외전. 19화

“빌어먹을, 여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곳이야?”

“몽월산 악명 높은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좀 어렵네.”

칼잡이 테라와 창잡이 팔리오.

두 사람은 힐탄을 쫓아 몽월산으로 들어왔고 길을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밤이 되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몽월산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그래서 같은 자리만 뱅뱅 돌기를 한참.

마침내 같은 풍경에서 새로운 존재가 드러났다.

“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 느낌.

이 압박감.

이건 절대 평범한 짐승이나 마수가 내뿜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호오?”

테라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허리춤의 칼에 손을 옮긴다.

팔리오도 마찬가지였다.

기운만 느껴지던 그것은 점차 그들과 가까워지던 이내 곧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실루엣을 드러냈다.

실루엣의 정체를 본 테라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팔리오도 마찬가지였다.

“하?”

“오?”

두 사람이 헛웃음을 터뜨린 이유.

꽤 거칠다 싶었던 기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두 사람이 쫓던 힐탄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누구야? 한때 망국의 칼 아니신가?”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보네.”

두 사람은 여유가 넘쳤다.

상대가 제아무리 파르갈의 기사단장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이제 이름만 남은 추억 속의 영광이었으니까.

지금의 힐탄은 왼팔도 없고 옛날만큼 힘도 쓰지 못하는 늙은이에 불과했다.

이건 도둑 길드들도 입을 모아 하는 유명한 사실이며 그의 오른팔이자 부관, 라핀의 수준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힐탄은 동요하지 않았다.

힐탄은 조금의 감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그들과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우리는 슈리오다. 대륙 최강의 용병집단. 들어는 봤겠지?”

“테라, 그런 건 굳이 말해 줄 필요 없어.”

“왜? 어차피 죽을 놈, 우리가 누군지 정도는 알려 줘야지.”

테라의 말에 팔리오는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아꼈다.

힐탄의 질문이 이어졌다.

“너희들인가? 라핀의 수급을 왕궁 앞에 걸어 놓은 건?”

“그럼 당연하지.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 줘. 우린 아까도 말했지만 용병대라서 그런 것뿐, 특별히 너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우린 용병답게 그냥 돈을 받고 부탁받은 대로 일을 처리했을 뿐이야.”

“의뢰인은 누구지?”

“사군주회.”

“테라!”

“왜? 어차피 죽을 놈인데 이 정돈 알려 줘도 되잖아?”

“넌 직업 정신이 너무 없어. 아무리 죽을 놈이라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최대한 입단속해야 하는 거 몰라?”

“넌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팔리오. 걱정하지 마. 내 이름을 걸고 저놈은 깔끔하게 처리해 줄 테니까.”

“하, 난 모르겠다. 진짜.”

팔리오의 한숨.

그러나 힐탄은 그들의 대화 따윈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테라가 대답한 ‘사군주회’만이 머릿속에 맴돌았으니까.

생각을 마친 힐탄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테라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척까지 다가와 허리춤에 찬 검을 뿜었다.

“방심은 금물이지!”

촤악!

엄청난 발도술.

테라의 전매특허이자 시그니처 기술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발도술만큼은 슈리오 내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테라였으니 테라는 승기를 확신했다.

상대의 방심.

선제공격과 연계된 고속 접근술.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발도.

이 모든 것들이 아울러졌으니 아무리 그 옛 제국 테리언의 최강자라 할지라도 별수 없이 수급을 내놓을 것이리라.

그러나.

캉!

청명한 금속 마찰음.

분명 칼날에 묵직한 고깃덩어리가 걸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은 날카롭고 차가운, 그리고 힘 있는 반동력이었다.

동시에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건 교차된 두 자루의 칼날이었다.

“이게 무슨……!”

테라의 몸은 여전히 허공에 붕 떠 있었다.

고속 접근을 위해 몸을 날리다시피 했으니까.

그렇기에 의아했다.

고속 접근을 위해 몸을 날렸으니 휘둘러진 칼날은 비단 팔뚝의 힘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무게도 실렸을 터인데 자신의 칼날을 받아 낸 검은 태산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테라는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힐탄.

이제는 사라져 버린 옛 제국의 최강자.

그는 달빛만큼이나 서슬 퍼런 눈동자로 제자리에 서 자신의 칼날로 테라의 검을 받아 내었다.

그리고 그 오금을 저리게 하는 힐탄의 얼굴이, 테라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너……!”

푸화아악!

테라의 말은 채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쇄골부터 반대쪽 허리까지 긴 사선과 동시에 핏물이 뿜어졌고 그 결을 따라 테라의 칼날도 말끔하게 잘려졌다.

털썩!

테라는 쓰러졌다.

붕 떠올랐던 몸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일이었다.

칼붙이 좀 휘둘러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만할 정도로.

“어, 어떻게 테라를……?”

그렇기에 팔리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테라가 죽었다는 건 둘째 치고 선제공격에, 기습까지 감행한 테라를, 선 채로 아무렇지 않게 단칼에 칼날과 함께 베어 죽이다니.

팔리오도 무인이었기에 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 건지 대번에 알아본 것이다.

힐탄은 칼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그런 다음 여전히 건조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팔리오를 보았다.

“이곳은 몽월산이다. 도망쳐 봤자 두려움의 시간만 늘어날 뿐이지.”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때였다.

힐탄이 망토 속에 가리고 있던 왼팔을 들어 올린 건.

그러나 단순하기 그지없는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팔리오의 두 눈은 휘둥그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다시 한번 경고한다. 이곳은 몽월산이다. 도망쳐 봤자 두려움의 시간만 늘어날 뿐. 그러니 부디 내게 협조하길 바란다.”

힐탄의 경고에 팔리오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슈리오에 입단하고 자그마치 수년 만에 엄습해 오는 공포였다.

*“쿨럭…….”

몽월산 어딘가.

그곳 어딘가에 몽월산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몽월산에선 좀처럼 맡을 수 없는 진한 인간의 혈향 때문이었다.

팔리오의 것이었다.

허나 몽월산 주민들은 코앞에 탐스러운 먹잇감을 두고도 좀처럼 접근할 수 없었다.

팔리오를 발아래 두고 있는 힐탄 때문이었다.

힐탄은 직접 벤 나무 밑동에 앉아 발 앞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팔리오를 보며 생각했다.

‘우릴 쫓던 자들이 사군주회라는 조직을 만들었을 줄이야.’

심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곳은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몽월산이었고 힐탄은 심문의 프로였으니까.

덕분에 슈리오가 어떤 의뢰를 받았는지, 사군주회가 어떤 곳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힐탄이 피를 토하며 꿈틀거리는 팔리오를 보며 말했다.

“팔리오라고 했나?”

“끄으으…… 죽여라…….”

“마음 같아선 널 죽이고 싶다만…… 네게 살 기회를 주마.”

“끄으…… 장난치는 거라면…… 그냥 죽여라…….”

“장난이라니.”

힐탄은 눈앞의 나무를 베어 앉을 자리를 하나 더 마련했다.

그런 다음 바닥에 뻗은 팔리오를 들어 그 위에 앉혔다.

팔리오는 전신에 검상을 입어 상태가 위독했는데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였다.

그러나 힐탄은 그런 팔리오의 상태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네가 슈리오에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넌 기사가 아니라 용병이니까. 그러니 네게 제안하지. 내 일을 도와준다면 내 부관을 그렇게 만든 건 테라 선에서 눈감아 주도록 하지.”

그 말에 팔리오가 충혈된 눈을 반쯤 겨우 뜨며 힐탄을 노려보았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숨소리가 거슬리는군. 넌 죽지 않는다, 팔리오. 이곳은 몽월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어우러지는 곳으로 네가 네 스스로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면 그깟 상처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것이다.”

“그게 무슨…….”

“못 믿겠나 보군.”

힐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죽은 테라의 다리 한 짝을 이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에서 으르렁거리던 몽월산 주민들의 하울링도 사라졌다.

산속은 고요했다.

마치 아버지가 만들어 준 요람처럼.

팔리오는 힐탄이 베어 만들어 준 밑동 위에 앉아 호흡을 골랐다.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다짜고짜 자신만 놔두고 사라질 줄이야.

하지만 혼자 남아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은 진정되어 갔고 동시에 육체의 고통도 비교적 덜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더 흘렀다.

이젠 의심이 들었다.

왜 자신을 여기에 둔 거지?

대체 무엇을 위해?

또 시간이 흘렀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자 팔리오는 슬슬 힐탄이 자신에게 말했던 몽월산의 속성과 스스로를 세뇌시키라는 말 밖에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

그런 건 후보지에도 없었다.

자신을 단 몇 합 만에 제압한 사내에게 도망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으니까.

‘내 스스로를 세뇌시키라고?’

팔리오는 자신의 팔을 보았다.

수많은 검상들.

좀 전에는 고통으로 떨리던 육체가 이젠 떨림은커녕 벌써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왜 아프지 않은 걸까?

정말 이건 모두 다 몽월산의 환상인 걸까?

‘아니, 정말 이 모든 게 환상이라면?’

그 순간, 힐탄의 멀쩡한 왼팔이 떠올랐다. 분명 잘려 있어야 할 힐탄의 왼팔은 보란 듯이 멀쩡한 모습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어?”

고통이 사라졌다.

동시에 온몸에 나 있던 검상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힐탄의 왼팔을 떠올리고 이 모든 게 환상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한 순간, 믿음이 극에 달한 것이다.

“성공했나 보군.”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힐탄이었다.

“이, 이게 뭐지?”

“말했잖아. 이곳 몽월산은 밤이 되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곳이라고. 외팔이로 살았던 내가 위험할 걸 알면서도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

힐탄은 자연스럽게 팔리오 앞에 앉았다.

테라는 보이지 않았다.

팔리오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자 힐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친구는 산의 주민들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입이 많아서 그런지 여전히 허기져 보이더군.”

이윽고 힐탄이 팔리오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나는 내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을 모두 죽여 없앨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나? 더 이상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속죄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렇군.”

“나는 과거의 힘을 다시 되찾았다. 그리고 내게 이어진 과거의 굴레를 모두 끊으려고 한다. 팔리오, 내게 협조해라. 그럼 네가 내게 저지른 잘못을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도록 하겠다.”

팔리오가 힐탄에게 저지른 잘못.

그것은 힐탄에게 있어 절대로 용서할 수도 없고 봐줄 수도 없는 잘못이었다.

하지만 힐탄은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 기꺼이 그를 용서키로 했다.

그가 순순히 협조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꿀꺽.

힐탄의 제안에 팔리오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전설이 자신에게 베푸는 자비.

그렇기에 절대로 거절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용병.

신념이나 충의보다는 삶과 돈으로 움직이는 자였기에.

“…예, 알겠습니다. 힐탄 님.”

팔리오가 고개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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