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9화
그런데 도착한 곳에 수상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특이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알?”
웬 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것 정도.
두 사람은 주변에 숨어 알의 주인인 어미가 나타날 때까지 좀 기다려 보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수색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직접 봐야겠군요.”
이상함을 느낀 검성이 알에게 다가간 순간이었다.
촤악!
알에서 촉수 비스름한 것이 검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스름한 것이 아니라 촉수가 맞았고 확실하게 검성을 노리고 있었다.
검성은 처음 보는 미지의 생명체에 거리를 벌리며 녀석의 촉수를 상대했다.
서걱!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녀석의 촉수가 속수무책으로 잘려 나간다.
뭘까?
타조알 정도 되는 크기에서 저만한 촉수가 나온 것도 신기한데 녀석이 가진 내구성은 생각보다 형편없었다.
이어서 촉수 공격이 몇 번 더 이어진 뒤 녀석은 검성에게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촉수 대신 다른 공격을 준비했다.
그렇게 날아온 것이 독침.
카강!
그런데 독침이라 여겼던 것의 맹독 수준도 생각보다 별로였다.
‘뭐야 이거?’
그렇게 한참의 탐색전을 벌인 끝에 검성은 참다못해 멀리서 검기를 쏘아 보냈다.
그것은 대지를 가르며 녀석에게로 뿜어졌고 최종적으로는……
쩌적!
……허무하게도 녀석을 두 동강 내어 버렸다.
“…….”
검성은 황당했다.
대륙을 꽤 오랫동안 누벼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다양한 공격을 하는 놈도 처음이었지만, 그런 다양성과는 달리 이렇게까지 형편없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검성은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긴장은 늦추지 않았다.
시올라가 말하길, 녀석은 최근까지도 북쪽 숲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생명체들을 잡아먹었다고 했으니까.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촤악!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검성에게 다량의 촉수를 뿜었다.
“어이가 없군.”
매우 가까이 있었지만 검성은 그 조차도 무시하고 베어 버렸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베던 끝에 이름 모를 그 녀석은 마침내 계란만큼 작아졌고 검성은 자신이 가진 물품들 중 봉인식이 내장된 펜던트에 녀석을 봉인했다.
“돌아가시죠.”
“…네.”
그건 뭐였을까?
위험한 조건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허무하게 끝나 좀 의아했다.
두 사람은 봉인된 미생명체를 데리고 시올라에게 돌아갔다.
“이게 그놈이라고?”
“그렇다.”
“흐음.”
시올라는 팬던트에 든 녀석을 한동안 살피더니 기분 나쁘다는 듯 다시 검성에게 던졌다.
“별 볼일 없는 녀석이었군. 가져가.”
“북쪽 숲에서 발견된 건데 직접 보관하지 그래?”
“우리 엘프들은 위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걸 미덕으로 삼지 그런 위험한 호기심 같은 건 땅 밑 난쟁이 놈들이나 갖는 거야.”
“그렇군.”
땅 밑 난쟁이.
드워프를 말하는 것이리라.
검성은 펜던트를 품속에 넣은 후 재차 말을 이어 나갔다.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네 차례다, 시올라.”
“그렇잖아도 말해 줄 참이었어.”
그녀는 성격 급한 검성에게 눈짓과 턱짓으로 앉을 것을 제안했고 검성과 아이기스는 그제서야 자리에 앉았다.
“내가 보기에 너희가 마녀라고 알고 있는 건 아무래도 미의 사제들 짓인 것 같군.”
“미의 사제들? 미의 여신을 모시는 사제들을 말하는 건가?”
“맞아.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구성원들도 하나 같이 아름다운 녀석들로만 뽑지만…… 혹시 그 사실을 알고 있나? 미의 여신은 질투가 굉장히 심하다는 걸.”
미의 여신, 로나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들 중 아름다움과 사랑을 관장하는 신.
일설에는 로나스가 굉장히 질투가 심하고 미에 대해선 교만하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
미에 대해선 교만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
미의 여신이니까.
하지만 질투심이 강한 건 몰랐다.
그런 마인드는 자존감 낮은 것들이나 가지는 줄 알았더니 설마 신씩이나 되는 존재가 그럴 줄은……
검성이 미간을 찌푸리자 시올라가 재밌다는 듯 말했다.
“저 아가씨는 어지간히도 충격받은 모양인데?”
그 말에 검성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아이기스를 보았다.
시올라의 말대로였다.
아이기스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왜냐하면 로나스는 그녀도 익히 아는 신이었고 아는 수준을 떠나 굉장히 좋아하는 신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감사의 기도도 꽤 드렸는데 어떻게…….’
자신이 아름답게 태어날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도 있지만 모두 미의 여신 로나스의 축복이 크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런 저주를 내린 것이 다름 아닌 그 로나스였다니.
아이기스는 배신감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 아이기스가, 시올라는 퍽 재밌었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뒷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아마 맞을 거야. 우리 엘프들은 유일신을 모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모시는 신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거든.”
“그럼 마녀라는 건 정말로…….”
“이 세상에 마녀라는 게 존재할 것 같아? 애초에 마녀라는 말도 너희들이 멋대로 갖다 붙인 말이잖아? 당장 우리들만 해도 인간들 사이에선 마녀들이라 불리는데 너희가 생각하는 마녀란 게 대체 뭔데?”
맞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마녀는 그저 해악한 이미지를 가진 추상적인 존재일 뿐, 대륙 그 어디에도 자신들을 마녀라고 부르는 이들이 없었으니까.
“미의 신전을 찾아가. 그 녀석들은 서부 끝자락에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야.”
“고맙군.”
저주의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남은 건 원인을 제거하는 것뿐.
해답을 얻은 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근데 말이야……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너흰 설마 신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올라의 말에 검성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내가 보기에 이번 사태는 둘 중에 하나야. 충성심에 눈이 먼 어느 멍청이가 독단적, 혹은 집단적으로 저 여자에게 저지른 사태이거나. 아님 미의 여신이 화가 나 직접 지시했거나.”
그 말에 검성이 잠시 고민하던 끝에 말했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사제들만 죽이면 해결된다지만 후자라면…….”
“으음, 아니지.”
검성의 말에 시올라가 비음을 내며 고개를 저었다.
“미의 사제는 아무나 될 수 없어. 아름다움이 검증되고 겸손하며 로나스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는데다 능력까지 있는 자들만이 될 수 있는 게 미의 사제야. 그런 엄격한 통과 기준이 있는 만큼 로나스도 그들을 끔찍이 사랑하지. 근데 만약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함부로 해한다면?”
“그땐…….”
검성은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여겼던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도 문제야. 네 검이 대단하단 건 알고 있지만 과연 신까지 벨 수 있을까?”
“…….”
검성은 치기 어린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예컨대 ‘그건 해 보기 전까진 모를 일이지’ 같은 말들.
검성의 나이도 어느덧 사십 줄을 넘었고 자신이 도달한 검의 한계 정돈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강해짐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어느 정도 무뎌진 자신의 성장 속도를 깨닫고 있을 뿐.
그렇기에 더 없이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상황을 직시할 수 있었다.
검성이 물었다.
“방법이 있나?”
“방법이야 있지. 하지만 그게 보통 방법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그게 무슨 말이지?”
“신을 베는 방법이야 존재하긴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는 거야. 설마 신을 베어 놓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너무 애 같은 발상이잖아?”
“…….”
검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
시올라의 말마따나 상대는 무려 신.
운이 좋아 신의 농간이 아닌 사제들의 행동이었다고 해도 신이 아끼는 사제들을 베면 필시 신의 분노를 사게 될 터.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리치 같은 반초월적인 존재를 상대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신에게 도전한다거나 신을 벤다는 생각은 치기 어린 젊은 날에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으니까.
검성의 낯빛이 어둡자 시올라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너,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재밌네. 저 여자 덕분에 진귀한 구경을 했어. 어쨌든 방법이 필요하다면 알려 줄 순 있는데.”
검성은 잠시 시올라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침묵 끝에 물었다.
“무엇을 원하지?”
그냥 들어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검성은 다크엘프가…… 아니 시올라가 어떤 여자인지 잘 알았으니까.
그 말에 시올라가 웃었다.
“역시 대화가 빨라. 하지만 이번에는 원하는 것이 있다기보단 좀 다른 문제야.”
시올라가 턱짓하자 레아가 뒤편에서 비단으로 감겨진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두 사람 앞에 그것을 풀어 보였다.
레아가 가지고 온 건 칼날 없는 검의 손잡이였다.
시올라가 말했다.
“들어 봤을진 모르겠지만 이건 봉혼검이라는 거야. 말 그래도 혼을 봉인하는 검이지.”
“혼을 봉인한다면…… 설마?”
“그래. 이 검이 있으면 그 신조차 이 검에 가둬 놓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섭리를 뒤흔드는 물건이란 말이야. 하지만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르듯 당연히 이 검을 사용하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가 필요해.”
“그 대가가 뭐지?”
“이 검의 칼날은 사용자의 혼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상대의 혼을 봉인시키기 위해선 그만큼 자신의 혼을 사용해야만 해.”
“그게 무슨……!”
“그럼? 타인의 혼을 봉인한다는 게 말처럼 쉽게 뚝딱 되는 건 줄 알았어?”
레아가 그것을 검성에게 내밀자 검성은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신은 초월된 존재야. 신성함을 넘어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위대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라고. 근데 그런 존재들을 한낱 필멸자가 검술 좀 연마했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설명을 잇는 시올라의 얼굴에 광기 비스름한 것이 엿보인다.
그녀의 솟은 입꼬리를 지켜보던 검성이 말했다.
“아직도 그때의 일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나 보군.”
“아직도라…… 너희 인간들과 우리들의 수명 차가 얼만지 알면 아직도라는 표현은 쓸 수가 없을 텐데?”
“현자의 복수는 백 년이 지나도 안 늦는다더니 괜히 엘프들과 척을 지지 말란 말이 생긴 게 아니었어.”
그때의 일.
검의 극의를 깨닫겠다고 대륙을 누비던 그때.
그 옛날 앤트맨과 다크엘프들을 상대로 유혈 사태를 일으켰던 그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시올라는 그때를 잊지 않고 있었다.
천년을 넘게 사는 엘프들과 백년도 못 사는 인간들의 시간 체감은 꽤나 다른 법이었으니까.
시올라가 은은하게 웃었다.
“선택은 네 몫이지. 네가 그때 그랬잖아? 지키고 싶다면 선택은 알아서 하라고. 이젠 그 말을 되돌려 줄 차례야. 인간아, 정녕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선택은 네 몫이란다. 후후.”
그 말에 검성은 얼마간 시올라를 노려보더니 먼저 집성촌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기스가 불안한 눈빛으로 검성의 뒤를 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