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92화
아이템 효과가 발동된 순간, 헨리의 몸집은 순식간에 커졌고 팀원들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피해가 클 것 같아 이 방법은 자제하려 했건만.’
헨리가 파티 메시지로 선언했다.
- 모두들 관리국을 벗어나라, 피해가 얼마나 클지 예상할 수 없다.
그 말에 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이제부터 헨리가 일으킬 파괴의 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가늠조차 안 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그뿐이었으니.
- 알겠다.
그 말을 끝으로 모두들 프리 티켓을 찢어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클레버는 자리를 벗어나는 것 대신 스스로 역소환을 택해 헨리 곁을 지켰다.
그사이, 헨리는 도마뱀만큼 작게 느껴지는 거울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키아아아아!!”
거울용은 헨리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허나 헨리의 크기가 커졌다고 해서 속도까지 떨어진 건 아니었다.
헨리는 키만 커졌을 뿐 힘과 속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다만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느껴질 뿐.
벌레 잡히듯 헨리에게 잡힌 거울용이 헨리의 손아귀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따끔하군.”
과연.
고작 신체가 커졌을 뿐인데 그 위협적이던 거울용의 공격이 고작 따끔거리는 수준으로 느껴졌다.
이를 통해 헨리는 거인족이 다시 한번 우수한 전투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끝낼 때였다.
[ <???>가 발동됩니다. ]
[ <???>의 남은 횟수는 1회입니다. ]
헨리는 2번 남은 합격기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비어 있던 헨리의 오른쪽 손아귀에 거대한 광명체가 밀집했다.
이전에 사용했던, 거울용이 피했던 것과 같은 합격기였다.
그러나 헨리의 신체가 거대해짐에 따라 저장된 합격기도 덩달아 커졌으니 그로 인해 발생되는 에테르 폭풍은 전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키아아아아아!!!”
거울용은 발버둥 쳤다.
온몸이 시뻘게지고 전신의 거울 비늘이 뜯겨져 나가든 말든 거울용은 헨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당연했다.
지상 최악의 생물이자 재앙이라 불렸던 거울용이지만 어찌 됐든 일개 생명체에 불과하니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헨리가 손아귀에 밀집된 합격기를 그대로 쥐고 거울용을 쥔 손과 맞닥뜨린다.
콰과과과과과과!!
합격기는 유지됐고 그 속으로 거울용이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에테르 폭풍이 일었고 형태를 유지하던 거울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변하더니 이내 곧 합격기 속에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퍼어엉!!
그쯤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관리국 일대에 일순 몇 초간의 강렬한 섬광이 내려앉았다.
섬광으로 인해 어지러웠던 시야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을 때였다.
[ <거울용>을 처치하셨습니다. ]
귓전에 울리는 아카이브 알림.
눈앞에도 떠올랐다.
그리고 헨리는 새카맣게 그을린 자신의 손바닥을 볼 수 있었다.
거울용이 흔적도 없이 완벽히 증발해 버린 것이다.
- 해치웠어요, 주인님!
그 광경에 기쁨이 폭발한 클레버가 환호하듯 소리쳤다.
“그런 것 같네.”
헨리는 즉시 거인단 효과를 해제했다.
허멀트의 것이 아닌 피를레스에게서 받은 거인단이라 중간 캔슬이 가능했고 부작용도 훨씬 적었다.
거인단 효과를 취소하자 헨리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대신 일정 시간 전체 스탯 50% 감소의 페널티가 작동됐다.
헨리는 그마저도 피를레스의 물약들로 깎인 스탯 수치를 모두 보완시키며 파티 메시지를 송출했다.
- 거울용 처치에 성공했다.
- 뭐?
- 그게 사실이야?
- 지금 바로 간다, 딱 기다려!
관리국 밖에서 가슴 졸인 채 기다리던 팀원들이 헨리의 연락에 모두들 환호하며 다시 관리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헨리가 있던 자리에 생겨난 거대한 폭발의 흔적을 보며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중 염왕과 빙제가 가장 호들갑 떨며 다가왔다.
“뭐야? 거울용은 어딨어? 설마 형체도 없이 삭제되어 버렸나?”
“그래.”
“오 맙소사. 그래 솔직히 네게 저장된 그 합격기는 말도 안 되게 강하긴 했어. 그 거울용조차 회피하려 했던 것이니.”
“그래. 근데 그 상황에서 거인단까지 써 버렸으니 얼마나 강력했겠어? 근데…… 시스템은 뭐라든?”
빙제의 물음에 파티원들의 표정이 모두 헨리에게로 모였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타 지역에 있는 자신들에겐 고작 거울용이 처치되었다는 알림 하나뿐이었으니까.
“거울용을 처치했다는 알림뿐이었다.”
“그건 우리한테도 떠서 알아. 다른 건? 다른 건 없었어?”
“없었다.”
“뭐?”
그 말에 파티원들의 표정이 제각각 바뀌었다. 인상이 구겨지는 파티원이 있는가 하면 한껏 놀란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다.
특히 극독왕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 돼?”
“사실이다. 처치되었다는 알림 외엔 그 어떤 알림도 없었다.”
“뭐야?”
“아무 보상도 없다고?”
“아니, 스킬이라든지…… 아님 하다못해 어비스가 뭐라도 줄줄 알았는데?”
거울용은 플레이어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한 최악의 생명체이자 재앙, 그리고 상층을 수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 프로그램이었다.
죽일 수 없는 존재를 죽였으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알림이 보여야 할 텐데, 게임 시스템을 표방하는 어비스가 이런 밋밋한 반응이라니 당연히 믿기지 않을 수밖에.
그러나 사실이었고 현재까지도 추가로 뜨는 알림은 없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개척왕이 물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국장은? 우리가 거울용 처치하자고 모인 건 아니었잖아?”
그 말에 다시 한번 모두의 시선이 헨리에게로 모였다.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잖아도 이제 찾을 참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이들이 여기 모인 이유는 거울용을 잡기 위해서가 아닌 최상층으로 향하는 단서를 얻기 위함.
그리고 그 단서는 관리국의 국장인 칸이 알고 있다.
헨리는 즉각 여왕의 눈과 라의 눈을 발동시켰다.
[ <여왕의 눈>이 발동됩니다. ]
[ <여왕의 눈>으로부터 <관조> 효과가 발생합니다. ]
스킬을 발동시키자 사위의 모든 에너지 파장이 눈에 들어왔다.
헨리는 한동안 주위를 둘러본 끝에 의외의 장소에서 국장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지하였다.
“찾았다.”
“어디에 있지?”
“지하다. 근데…….”
헨리는 안력을 집중해 지하를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지하에서 발견된 것들이 뭔가 이상했다.
분명 국장으로 보이는 에테르 파동은 찾았는데 그 주변에 거대한 에테르 덩어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에 뭔가가 있는 것 같군.”
“지하에?”
“그래.”
“시야 좀 공유해 줘봐.”
“시야를 공유?”
“기다려.”
그때, 신궁 마티아스가 스킬 하나를 사용했다.
[ <마티아스>가 파티원 전원을 대상으로 <공유안>을 발동시킵니다. ]
[ 공유될 시야는 <헨리 모리스>의 시야입니다. ]
[ <시야 공유>를 허락하시겠습니까? ]
신궁이라더니 이런 스킬도 있었나.
저격하기에 딱 좋은 스킬인 듯했다.
시스템의 물음에 헨리가 수락하자 곧 헨리가 보고 있는 시야가 파티원 전원에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헨리와 비슷한 반응들을 보였다.
“저게 뭐야?”
“저건 또 뭐야?”
“저건 왜 저렇게 커?”
시야에 공유된 것은 거대한 에테르 덩어리 몇 개와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국장의 에테르 하나였다.
그들은 작은 점이 국장이란 것은 금세 알아차렸지만 국장 주변에 있는 거대한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개척왕이 말했다.
“궁금하면 직접 가 보면 되지, 뭘 고개만 기울이고 있어?”
그 말과 함께 개척왕이 ‘굴착기’를 소환했다.
“다들 타. 한 방에 내려갈 테니.”
다들 굴착기라 불리는 지룡의 내피에 탑승하기 시작했고 파티원들을 모두 태운 굴착기는 금방 지하로 향하는 땅굴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
“이런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한편, 칸은 눈앞에 뜬 알림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방어 프로그램 : 거울용>이 처치되었습니다. ]
고작 한 줄의 글귀.
그러나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엄청 났다.
“진짜 패배할 줄이야…….”
거울용은 어비스에서 준비한 최후의 방어 프로그램으로 그 어떤 플레이어도 이길 수 없게끔 설계했다고 들었다.
난공불락, 철옹성 등등……
그런 줄로만 알았다.
헨리가 녀석을 갈아 마셔 버리기 전까진.
‘이제 어떡하지? 아냐, 정신 차리자.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봤자 결국 책임은 내가 져야 된다.’
관리국이 만들어지고 칸이 최초의 국장으로 취임된 이래 칸은 단 한 번도 업무적인 실수를 비롯해 ‘마스터’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선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것이 여태 자신이 마스터에게 보여 준 유능한 부하의 모습이었으니까.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관리국 지하.
어비스의 모든 데이터를 기록해 놓는 데이터 저장소, ‘세이버’라면 분명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순간.
콰앙!!
천장에서 큼직한 폭발이 일어났다.
세이버에서 난 폭발이 분명했다.
놀란 칸은 얼른 세이버 시스템을 열어 피해를 입은 곳을 확인했다.
실시간 감시 시스템을 통해 침입자들의 얼굴도 확인했다.
제길.
헨리와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
‘빌어먹을, 벌써 이곳의 존재를 찾아내다니.’
거울용까지 무너뜨린 마당에 세이버의 존재까지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접근 시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빨랐다.
칸은 고심 끝에 세이버 보호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그리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방법은 그뿐인 것 같군.’
칸이 형형한 눈빛을 뿜으며 세이버 시스템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
[ <세이버>에 입장합니다. ]
폭발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개척왕의 굴착기였다.
플레이어들은 굴착기에서 내리며 눈앞에 뜬 알림을 확인했다.
“세이버?”
도착한 곳은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동에 용이하게끔 만들어 놓은 거대한 복도였다.
시스템은 그곳을 세이버라고 했다.
헨리는 여전히 안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대한 복도 너머에 지상에서 보았던 거대한 에테르 군집도 볼 수 있었다.
“흠.”
멀지 않은 곳에 국장의 에테르가 보인다.
하지만 벽 너머로 느껴지는 에테르 군집체에 대한 호기심도 동했다.
염왕이 말했다.
“에테르 군집체에 대해 궁금한 건 알겠지만 우선은 국장부터 찾도록 하지.”
“…그래.”
잠깐이나마 고민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염왕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마법사가 탐구하는 존재라곤 하지만 지금은 호기심보다 목적이 더 중요했으니까.
헨리의 파티는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던 중 거대한 공동 하나와 맞닥뜨렸다.
공동에는 발광 물질이 없었지만 곳곳에 전등이라도 켜 놓은 것처럼 밝았다.
“중간에 뭔가가 있다.”
개척왕의 턱짓에 모두들 조심스레 그것에 접근했다.
그것은 가슴께까지 올라오는 원통형 철제 기둥이었는데 그곳에는 손을 올려놓으라는 듯 한손 모양의 형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 트릴로지 왕가와 멸망의 날에 대한 모든 진실 ]
트릴로지?
멸망의 날?
이게 다 무슨 말일까?
그때, 파티원 중 하나인 ‘데를로’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자, 잠깐만.”
“왜 그러지?”
“이, 이거…….”
커다란 덩치를 가진 전형적인 전사의 상을 가진 데를로.
절대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데를로였으나 글귀를 확인한 데를로는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데를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트릴로지 왕가는…… 내 가문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