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89화
- 관리국에서 전파한다. 개척왕, 염왕, 빙제, 그리고 새로이 2위에 등극한 플레이어 헨리 모리스가 관리국을 공격 중에 있다.
- 현재 관리자들은 하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언급한 플레이어들을 즉각 사살하라.
관리국에서 계속해서 같은 알림만 송신되고 있다.
그것은 확성기를 비롯한 시스템 메시지로 송신되는 것이었는데 헨리는 자신에게도 그것들이 뜨자 알림 자체를 오프시켜 버렸다.
콰앙!!
그쯤 개척왕의 워해머에 맞은 엘이 저만치 멀리 나가떨어진다.
제아무리 상급 관리자이자 대표 관리자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정점인 개척왕이었다.
그뿐일까?
엘은 염왕과 빙제의 공격을 막는 것도 급급해 보였다.
모든 게 예상대로였다.
“주인님, 정말로 상급 관리자가 쪽도 못 쓰고 있어요!”
관리국을 공격해 최상층에 대해 알아내는 것.
그 옛날 헨리가 염왕에게 상층에 대해 배우던 시절, 염왕이 지나가듯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헨리는 계속해서 그 말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그 말에 계속 집착한 결과, 어쩌면 정말로 관리국이라면 최상층으로 향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과거의 염왕이 말하길, 염왕 자신이 누군가의 뒷배가 되어 준다면 설령 상급 관리자라 할지라도 그 자를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관리자들은 절대로 하이 랭커를 이기지 못한다.’
시스템은 분명 플레이어를 키우고 통제하기 쉽도록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통해 과도하게 성장해 버린 플레이어까지 제어하진 못했다. 시스템이 가진 지나친 자율성 때문이었다.
이런 맹점들이 이번 사달의 종합적 원인이었다.
‘게다가 어쩌면 어비스의 윗대가리들은 이런 현상조차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 하늘에서 온갖 화려한 빛깔의 에테르 덩어리가 헨리들이 있는 곳으로 작렬했다.
콰과과! 콰광! 쾅! 푸콰하하!
갑작스런 폭격.
폭격은 한동안 몇 초간 이어졌고 그 사이로 촉수처럼 생긴 기다란 꼬리 하나가 헨리들 사이로 파고들어 엘을 건졌다.
폭격은 그제서야 멈췄다.
헨리가 흙먼지를 걷어 내자 그제서야 폭격을 쏟은 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면면들.
허나 그들이 엘과 같은 부류라는 것은 등의 날개나 하얀 복식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개척왕이 말했다.
“하나둘셋넷…… 머릿수를 보니 저놈들이 대표 관리자인 모양이군.”
건져 간 엘까지 합해 9명.
엘이 말한 아홉 명의 대표 관리자임이 분명했다. 그때 모두의 눈앞에 화상 메시지가 송출되었다.
- 처음 뵙겠습니다. 1번 관리자이자 국장인 칸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홉 대표 관리자 중 하나이자 최고 서열권자인 관리국 국장이었다.
스스로를 칸이라고 소개한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본론만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미 관리국을 상대로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래도 최소한의 예를 갖추었다.
그에 개척왕이 대답했다.
“그건 나한테 묻는 거냐, 우리 리더한테 묻는 거냐?”
- 리더요?
그 말에 헨리를 제외한 네 사람이 모두 헨리를 보았다.
칸은 그제서야 그들이 말하는 리더이자 이번 일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칸이 다시 한번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 이번에 2위로 새로이 랭크되신 헨리 모리스 플레이어님이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럼 헨리 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저희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
그에 헨리가 대답했다.
“네가 관리국 최고 책임자인가?”
- 그렇긴 합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우린 최상층으로 가길 원한다.”
- 최상……층요?
헨리의 입에서 최상층이 언급되자 순간 칸의 눈이 커졌다. 놀랐다기보단 황당하다는 표정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정확히는 너희 같은 부하가 아니라 어비스를 통제하고 있는 진짜 주인들을 만나고 싶다. 내가 그놈들한테 할 말이 많거든.”
-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지?”
- 그분은 함부로 만나실 수가 없습니다.
그분.
헨리는 주인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칸은 그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어비스의 진짜 주인은 한 명인 걸까?
새로운 정보에 헨리가 웃었다.
“주인의 진짜 존재를 알고 있긴 한가 보네. 너희들은 그를 뭐라고 부르지?”
- …마스터라고 부릅니다.
“마스터라… 생각보다 고리타분한 표현이군. 아무튼 마스터라는 자를 만나게 해 줄 생각은 없다는 건가?”
- 그분의 허락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먼저 요청할 순 없는 모양. 하지만 알 바인가? 사정은 그네들에게 있는 것.
“그럼 허락을 받아 와. 그렇지 않으면 너희 마스터와 너희가 만든 어비스 시스템을 모두 뒤엎어 버릴 테니.”
- …불가능합니다.
“그럼 협상은 결렬이다.”
안 된다는데 어떻게 할까?
아쉬운 쪽이 길 수밖에 없게 해야지.
헨리는 칸의 화상 메시지를 오프했고 다른 팀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들었나?”
“들었다.”
“아쉽게 됐군.”
“그나저나 마스터라니, 모르던 정보를 알게 됐어.”
말로는 아쉽다곤 하지만 다들 하나도 안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오히려 더 날뛸 수 있음에 좋아하는 듯했다.
그때 칸의 화상 메시지가 다시 한번 더 나타났다.
-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후회할 거였음 이번 일은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명백한 ‘어비스의 적’으로 분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던지.”
다시 화상 메시지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새로운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 지금부터 상층에 계신 모든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긴급 이벤트 <원티드>를 시작하겠습니다. ]
[ 긴급 이벤트 <원티드>는 시스템이 지명한 플레이어를 죽일 경우, 성공으로 간주됩니다. ]
[ 긴급 이벤트 <원티드>에 지목될 플레이어는……
지목된 플레이어.
당연히 헨리를 비롯한 다섯 사람이었다.
근데 웃긴 점은 이 이벤트는 원티드 대상으로 지목된 헨리들도 수행할 수 있다는 것.
‘서로의 등에 칼을 꽂으라는 거겠지.’
그러나 저들이 과연 서로의 등에 칼을 꽂을까?
아니, 오히려 싸울 적이 많아졌다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크하하, 간만에 팀 플레이겠군.”
“발목이나 잡지 마라.”
“이 팀에 끼길 잘했어. 무려 상층 전체와 싸우게 될 줄이야.”
그러나 아직 중요한 것이 남았다.
이번 원티드 이벤트는 분명 전례 없는 화끈한 이벤트임은 맞았지만 아직 이 이벤트에 참가해야 될 정확한 ‘이유’…… 그러니까, 동기 부여가 될 보상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럼 지금부터 이번 긴급 이벤트 <원티드>의 보상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
[ 이번 이벤트의 보상은 지목된 다섯 플레이어가 가진 모든 아카이브 데이터입니다. ]
“음?”
“오호?”
아카이브 데이터라는 말에 염왕이 흥미롭다는 듯 수염을 쓸어내렸다.
알림은 계속됐다.
[ 아카이브 데이터에는 스탯, 스킬, 아이템, 그리고 이번 이벤트에만 이례적으로 플레이어의 시신까지 모두 포함시키도록 하겠습니다. ]
[ 이상으로 긴급 이벤트 발표를 마치도록 하며 이벤트의 종료 기한은 없습니다. ]
끝으로 알림이 끝났다.
심지어 이번 이벤트에는 기한조차 없다. 말인즉, 여기 있는 모두가 죽어야 끝날 이벤트라는 말.
“꽤 흥미로운 보상을 걸었군.”
“그러니까 빙제 널 죽이면 난 어비스 최강의 불과 최강의 냉기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말이지?”
“왜? 한번 해 보려고?”
“못할 것도 없지.”
투닥거리는 두 사람.
말은 그렇게 해도 절대 서로의 등에 칼을 꽂지 않으리란 걸 안다.
이들이 아마추어 같은 초심자라면 모를까.
전투에 대한 관록이 충분하다 못 해 넘치는 이들은, 관리국이 바라는 대로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아 최후의 한 명이 남더라도 절대로 자신들을 살려 주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염왕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가진 스킬은 좀 탐이 나는구나, 아들아.”
“가져 갈 수 있음 한번 가져가 보시던가.”
“크큭, 뒤 조심해라, 아들.”
그때, 이들의 머리 위에 미니맵이 떠올랐다.
미니맵에는 관리국의 위치와 원티드 이벤트에 표적이 된 다섯 사람의 좌표와 아이콘이 실시간으로 활성화되었다.
그것을 본 개척왕이 어깨에 워해머를 얹으며 말했다.
“그만 쫑알대고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관리국이나 마저 쪼개는 게 어때? 이따가 왕창 몰려오면 관리국은 한동안 신경도 못 쓸 텐데.”
“그거 좋지.”
“안 그래도 괘씸했는데 그럴까?”
개척왕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하나둘 카운터를 세더니 모두들 동시에 엄청난 양의 에테르를 사출시키기 시작했다.
관리국으로 쏟아져 들어가기 전 염왕이 말했다.
“알아서들 살아남자고. 아무리 봐도 이번 싸움은 먼저 죽는 놈이 제일 손해니까 말이야.”
“동감이야.”
쾅!
그 말을 끝으로 다섯 사람이 관리국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막아!!”
그 광경에 1번 관리자 칸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에 관리국에서 근무하던 모든 관리자들이 방어 태세를 갖추고 달려오는 다섯 사람 앞에 집결했다.
“부나방들이 잘도 달려드는구나!”
[ <염룡>이 발동됩니다. ]
염왕이 두 손을 모은 자세를 취한 후 앞으로 뻗는다. 그러자 모은 두 손으로부터 금빛 이채가 집결되더니 이내 곧 굴착기만큼이나 거대한 염룡이 소환되어 전장에서 날카로이 울부짖었다.
[ <빙마>가 발동됩니다. ]
그리고 그 위로 거대한 푸른 악마, ‘빙마’가 수호신처럼 나타나 달려드는 관리자들을 향해 먼저 아가리를 벌리고 몸통을 욱여넣었다.
콰앙!
지축을 뒤흔드는 충돌이 잇달아 이어졌고 그 강렬한 전투의 현장 속으로 아홉 명의 대표 관리자들 또한 사력을 다해 에테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
“이거 사실이야?”
“진짜라고?”
“뭐야, 2위가 왜 바꼈어? 헨리 모리스 이놈은 또 누구야?”
그 시각, 상층의 플레이어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항상 아래 등수에만 신경 쓰다 보니 윗 등수는 전혀 보지 않았는데 이벤트 알림을 보고 나니 탑티어 등수가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잇달아 나타난 미니맵을 보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들 관리국으로 가기 위해 이동 티켓을 찢기 시작했다.
시간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무려 개척왕과 빙제, 그리고 염왕의 아카이브였다.
평소엔 쳐다보지도 못할 존재들이었지만 혹시 알까?
어부지리라도 그들의 아카이브를 손에 넣을 수도 있을지?
그렇기에 일단 티켓을 찢고 봤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자에겐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고로 늦어서 손해 보는 건 결국 자신뿐이었으니까.
이윽고 첫 번째 선발대가 관리국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 수가 무려 팔백.
그리고 팔백이 넘는 선발대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순간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리국이…….”
“무너졌어……?”
놀랍게도 그 위엄 넘치던 관리국이 폭삭 주저앉아 멸망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