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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88화 (488/522)

2부. 88화

말 그대로였다.

세상에 관리국을 칠 생각을 하다니.

그건 제아무리 영역 넓히기에 미친 개척왕이라 할지라도 생각조차 못해 본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관리국은 어비스의 시스템을 다루는 곳이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곳을 불가침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불가침영역?

누가 그런 걸 정해 줬단 말인가?

그건 편견이었다.

탑의 맨 아래층부터 여기까지 기어 올라오며 자기도 모르는 새 몸에 베여 버린 편견이나 인식 같은.

개척왕의 긍정적인 반응에 염왕과 빙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

“내 그럴 줄 알았다.”

“맞지? 내가 뭐랬어? 저놈은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영입 가능할 거랬잖아.”

두 사람의 말대로였다.

개척왕은 헨리의 말에 큰 관심을 보였고 염왕과 빙제의 동석 덕분에 너무나도 쉽게 동료로 합류시킬 수 있었다.

개척왕이 어깨에 망치를 얹으며 말했다.

“근데 왜 이것뿐이야? 밑에 놈들은?”

“귀찮아서 안 불렀어.”

“귀찮았다고?”

그 말에 염왕이 나섰다.

“내 아들이 제안한 계획이니 시작도 나였다. 그런 내가 불렀으면 너희 둘을 불렀지 나보다 급도 낮은 놈들한테 이런 제안을 했겠어?”

“음. 그것도 맞지.”

“일 리가 있어.”

염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둘.

빙제가 말했다.

“그럼 이제 다 모인 건가?”

“그래. 더 해야 될 준비가 없다면 이대로 관리국을 치겠다.”

“크흐흐, 그럼 제안 하나만 하지.”

“제안?”

“그래도 명색이 관리국인데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가야 될 거 아니냐.”

“우린 준비랄 게 없는데 넌 뭘 해야 하나보군?”

염왕과 빙제가 은근한 말투로 놀렸으나 개척왕은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는 듯 비웃었다.

“그게 너희와 나의 차이다. 1위와 떨거지들의 차이랄까?”

“뭐야?”

“닥치고 보기나 해라. 내 계획을 보게 되면 아주 마음에 들 테니까.”

그 말과 함께 개척왕이 어깨에 인 망치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힘을 모아 바닥에 내려치자.

쿠구구구구구구!!

마치 두더지 잡기를 하듯 지하에 파묻혀 있던 무언가가 엄청난 기세로 솟아올랐다.

엄청난 크기.

그것을 본 염왕이 피식 웃었다.

빙제도 턱 밑에 난 수염 같은 벼슬을 매만졌다.

“아아, 난 또 뭐라고.”

“오랜만에 보는구만.”

“으와아아…….”

클레버는 경탄했고 헨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만들어 준 그림자 아래서, 개척왕이 가슴 펴고 든든히 자랑했다.

“이걸로 급습해 보자고. 그래야 폼이 나지.”

“좋은 의견이야.”

“나쁘지 않군.”

“으와아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클레버가 눈빛을 빛낸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헨리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헨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지.”

“좋아, 그럼 바로 이동해 보실까?”

뜻을 모은 그들이 그것에 오르기 시작했다.

*

상층에는 세 가지 재앙이 있다.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거울용과 가로 막는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는 개척왕.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비스의 모든 층계 시스템을 조작하고 보조하는 단체인 ‘관리국’이 바로 마지막 재앙이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관리국이면 공무원 같은 존재일 텐데 대체 왜 재앙에 편재되어 있느냐고.

간단했다.

삼재앙이란 건 시스템이 정해 준 네이밍이 아닌 상층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같은 것으로 즉, 사람들이 지은 것이기 때문.

그리고 상층까지 올라온 플레이어들은 관리자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리국이 삼재앙 안에 들게 된 것이다.

물론 별명만 재앙일뿐, 여지껏 관리국은 상층의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친 적이 없다.

관리국은 말 그대로 관리자들이 모여 일을 처리하는 근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으어, 중층 이반 스테이지 건 다 처리했습니다.”

“그럼 솔마르트의 언덕 스테이지 건 기획 시작해.”

“네?!”

그래서일까?

멀리서 보면 위엄 넘치는 집단인 관리국이었지만 결국 이곳도 가까이서 보면 여느 평범한 회사들과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다.

하급 관리자, ‘이도’는 3일 밤을 새서 일을 처리했는데 곧장 새로운 일이 할당되자 죽을 맛이었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아무리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해 주는 직업이 관리자라지만 권리에는 그만큼 의무가 따른다고 얼마나 자신들을 부려 먹는지.

하루에 두 번 정도는 그냥 때려치우고 필드로 나갈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아냐, 그러지 말자.’

어렵게 입국한 관리국이다.

그런 곳을 나가 봤자 자신에게 플레이어 생활밖에 더 있을까.

그건 질색이었다.

하층이든 중층이든 상층이든 어느 층을 가든 결국은 목숨 내놓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 플레이어 인생인데 차라리 몸이 좀 고되더라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땐 훨씬 더 나은 길이리라.

그렇기에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생각보단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갑자기 회사에 운석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럼 합법적으로 일을 안 해도 될 테니까.

그때였다.

드드드드-

“응?”

책상이 떨린다.

누가 다리라도 떠나?

혹시나 싶어 옆 사람을 보았지만 옆 사람은 거북이 수인으로 다리를 떨기는커녕 업무 중에는 고개조차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이건 뭘까?

그때, 지진이라 여겼던 것의 진폭이 더더욱 커졌다.

드드드드드!!

“어어어어!”

그냥 지나칠 법한 진폭이 누가 봐도 지진이라 여겨질 정도로 커지자 그제서야 이도를 비롯한 다른 관리자들도 고개를 들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지진?”

“관리국에?”

“그게 말이 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상층.

그것도 상층의 관리국이다.

이곳은 자신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어비스의 높은 관계자가 직접 자리를 선정해 온갖 자연재해를 제거한 지역이라 들었다.

그런데 지진이라니?

하급 관리자들이 동요하자 그들을 관리하는 중급 관리자가 소리쳤다.

“모두 조용!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금방 알아볼 테니 모두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그 순간.

드드드드득!!

쿠과과과과과과!!

관리국의 지하가 무너지며 바닥에서 무엇인가가 치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자기 나타난 재앙이었으며 싱크홀처럼 바닥을 무너뜨린 그것은 자신이 만든 구멍을 통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것.

다름 아닌 초대형 어스웜이었다.

구멍에 휘말리지 않고 간신히 살아남은 중간 관리자 하나가 갑작스레 등장한 어스웜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 웜? 웜이 왜 여기에……?”

“멍청아 저게 어딜 봐서 그냥 웜이야! 저놈, 개척왕의 소환수인 지룡이잖아!”

“지룡?! 그놈이 왜 여기에?”

말 그대로였다.

관리국을 덮친 의문의 웜의 정체는 개척왕이 부리는 소환수, ‘지룡’이었다.

이름은 굴착기로 개척왕이 자신의 구역에서 지하 공사를 할 때 쓰는 소환수였다.

그때, 흐느적흐느적하게 올라온 굴착기가 돌연 허리를 뻣뻣이 세우더니 온몸에 칼날을 세웠다.

그리곤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다들 피해!!”

아수라장이었다.

어비스에서 가장 오래된 기관이자 유일한 기관인 관리국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일까?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윗급 관리자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새끼 죽여!!”

스겅!

카앙!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어스웜에게 달려드는 상급 관리자들.

그때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두!

“우박?”

우박이 맞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쏟아진 우박은 어느 것의 부스러기이자 일종의 인트로였다.

이윽고 관리국 하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고 상급 관리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를 만든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관리국을 집어삼킬 듯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낸 것의 정체.

다름 아닌 관리국만큼이나 거대하기 그지없는 ‘빙하’였다.

“빙하?”

“빙하가 왜?!”

보통 크기가 아니었다.

흡사 거인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크기.

그때, 놀라는 관리자들 사이에 거대한 바람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시야가 한 번 번쩍 했고 얼마 뒤.

쩌거걱!

“……!”

“……!”

“……!”

놀랍게도 관리국을 덮칠 기세였던 거대한 빙하가 순식간에 네 방위로 쪼개졌다.

쿠궁!

쾅! 콰앙! 쾅!

네 방위로 쪼개진 빙하들은 정확히 관리국을 피해 쓰러졌다.

대신 주변 일대가 쑥대밭이 됐지만 관리국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 광경을 본 빙하의 주인이 아깝다는 듯 입을 오므렸다.

“으잇, 저거 모은다고 시간깨나 걸렸는데.”

“그래도 인사치레 치곤 괜찮았잖아?”

“그건 그렇지. 어이, 굴착기는 무사히 빠져나갔나?”

“좀 전에 회수했다.”

“그럼 슬슬 돌입하지.”

관리국 앞.

다섯 명의 남자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리국에 떨어진 재앙을 구경하고 있었다.

헨리와 클레버를 비롯한 염왕과 빙제, 그리고 개척왕이었다.

이정도면 선전포고로는 훌륭했다.

2차 폭격까지 마친 다섯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무기를 빼들었다.

그리고 활처럼 관리국을 조준하며 각자의 베이스 스킬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화아아아!

어비스에서도 손꼽을 만한 이들이 동시에 힘을 모으자 사위로 엄청난 수준의 에테르 압력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발사됐다.

퍼엉!

아마 이변이 없다면 관리국의 2할은 신기루처럼 스러져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그 무지막지한 에테르포 앞에 나타났다.

파드드드드드득!

그자는 에테르포 앞에 몸을 던져 온힘을 다해 그것을 막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다섯 명 분의 에테르가 완전히 기화되어 사라지자, 에테르포를 막은 자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오?”

“제법?”

그 패기 넘치는 모습에 염왕과 빙제가 입을 모아 칭찬했다.

이윽고 흙먼지와 연기가 걷히며 그 모습이 더더욱 자세히 드러났다.

그런데 그 얼굴은 놀랍게도 헨리가 아는 자였다.

“엘?”

헨리도 아는 자.

놀랍게도 엘이었다.

엘은 초췌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상층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들의 에테르포를 무리해서 막은 것이었으니까.

얼굴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엘이 그 째로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묵은 숨을 토해 냈다.

“후우.”

얼굴에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안도가 있을 뿐.

엘이 말했다.

“좀처럼 뵙기 힘든 분들을 이런 식으로 한 번에 보게 되다니, 이거 영광스럽기 그지없는데요?”

“상급 관리자냐?”

“예, 인사 올리겠습니다. 관리국 소속 상급 관리자이자 9명의 대표 관리자들 중 하나인 엘이라고 합니다. 근데…….”

엘이 눈을 가늘게 뜨며 헨리를 보았다.

“당신도 거기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거 참 의외네요. 못 보던 사이 장족의 발전이 있으셨나 봐요?”

그 말에 헨리가 피식 웃었다.

그런 다음 화산검을 들고 칼날에 성염을 휘감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지 그래?”

헨리가 인사와 함께 성염을 한껏 모아 엘에게 휘둘렀다.

그러자 성스러운 불꽃으로 이루어진 초승달 웨이브가 엘에게 뿜어졌고 엘은 이번에도 그것을 받아 냈으나.

“…….”

방어 후 저릿해진 손의 감각을 숨길 수가 없었다.

엘이 애써 고통을 삼키며 물었다.

“…그보다 관리국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하고서도 무사하실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지금이라도 즉각 처분의 대상입니다.”

그 말에 개척왕과 염왕, 그리고 빙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제발 그렇게 해라.”

“예?”

“제발 처분해 달라고.”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이 앞으로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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