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84화 (484/522)

2부. 84화

[ 현재 위치는 <염가원>입니다. ]

아카이브 알림과 함께 시야가 바뀐다.

어비스에서 가장 뜨거운 곳.

염가원이었다.

염가원에 헨리가 발을 들이자마자 헨리 앞에 잘 구워진 돌덩이들이 한데 뭉치며 옥좌 하나를 빚어냈고 그 위에 불꽃이 뭉치며 염가원의 주인, 염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구나, 아들아.”

헨리에게 염왕자 특성을 내려 준 후로 염왕은 헨리를 아들이라 불렀다.

별로 기분 나쁘진 않았다.

염왕은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으니까.

헨리도 반갑게 말했다.

“오랜만이군.”

“흐흐, 활약상은 잘 보았다. 썩 만족스럽진 않아도 그래도 투자한 보람은 있었어.”

“그럼 다행이고.”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냐, 그때 고향을 구하겠다 어쩐다 했던 것 같은데 일은 잘 해결했고?”

“방금 막 미개척지에 등록하고 오는 길이다.”

“그으래?”

생각 이상으로 시원시원하게 일을 끝내고 나타나자 염왕은 헨리가 참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그럼! 누구 아들인데 당연히 그정도는 해야지. 그럼 여길 다시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냐? 감사 선물이라면 됐다. 나 또한 즐거웠으니.”

기분 좋은 염왕이 앉은 자리의 손잡이를 팡팡 쳤다. 그에 헨리도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건너편에 앉아 말했다.

“그전에 궁금한 것이 있는데…… 랭커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지는 거지?”

“랭커? 그런 건 시스템 아카이브가 정해 주는 것이지. 상층에서 가장 강한 천 명 안에 들면 자연스럽게 랭커가 될 수 있다.”

“넌 몇 위지?”

“크흐흐, 참 빨리도 물어보는구나. 나는 몇 위일 것 같으냐?”

랭크 시스템은 오직 상층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도 최상위층으로 가본 적이 없다는 말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사실상 상층이 마지막 도착지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상급 관리자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야기했으니 열 손가락 안에는 들겠지.”

“틀렸다.”

“그럼?”

“다섯 손가락이다.”

“……!”

염왕이 강한 존재일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탑 텐도 아니고 탑 파이브라니?

생각보다 더 높은 등수에 헨리가 놀란 표정을 짓자 염왕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놀랐느냐?”

“조금은. 그래서 정확히 몇 등이지?”

그 말에 쫙 편 다섯 손가락 중 두 개가 접혔다.

“3등이다.”

“그렇군.”

새삼 염왕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졌다.

“아까 보다는 덜 놀라는구나. 그래서, 내 등수는 왜 궁금한 게냐?”

“영향력이 필요해졌거든.”

“영향력?”

“캔시가 그러더군. 고향을 구한 것까진 좋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점령전을 조심하라고 말이야.”

“아아,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 말이었군. 허허, 그럼 벌써 네가 랭크전을 준비할 때가 됐다는 건가?”

랭크전.

말이 거창하지 사실 랭커를 상대로 싸워 등수를 빼앗는 것에 지나지 않는 행위.

하지만 상층에 워낙 많은 실력자들이 있다 보니 타인의 등수를 빼앗는 행위는 더없이 신성한 행위가 되었다.

염왕이 손짓하자 따뜻한 커피 두 잔이 만들어졌다.

염왕이 손수 만든 커피 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첫 상대는 정했고? 아님 상대를 골라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온 건가?”

“상대는 이미 정했어. 예전부터 꼭 상대해 보고 싶은 자가 있었거든.”

“그래?”

그 말에 염왕의 입에 또다시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의 아들이 상대하고 싶어 하는 자라니.

기대 만발이었다.

그도 그럴 게 헨리는 단언컨대 자신이 생각하는 역대급 루키였으니까.

염왕이 은근한 미소로 물었다.

“그게 누군데?”

“당신.”

“…뭐?”

순간 커피를 뿜을 뻔했다.

그러나 헨리는 염왕의 되물음에 기꺼이 다시 한번 더 대답해 주었다.

“염왕, 당신이라고.”

“허, 허허, 허허허…!”

어이없음에 시작된 웃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곧 박장대소로 변했다.

“크하하하하하!”

비웃음?

분노?

그런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재밌어서 웃는 것이었다.

“재밌구나! 이런 걸 더러 뭐라고 하더라?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왕위계승?”

“너무 거창한 의미 부여는 하지 말자고. 어차피 당신은 모두가 당신을 두려워해 플레이어를 상대해 본 지도 꽤 됐잖아?”

사실이었다.

그래서 늘 아래층 후원이나 할까 기웃거리는 것.

염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 그건 그렇지. 하지만 말이다, 아들아. 랭크전은 신성한 것이라 난 절대로 봐줄 생각이 없는데?”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지.”

“크크크! 재밌구나, 참 재밌어. 장성한 자식이 집으로 돌아와 아비에게 왕관을 내놓으라 하다니. 내 언젠가 이런 날을 꿈꿔 보긴 했지만 그 꿈이 너무 갑작스레 찾아오니 좀 당황스럽구나.”

“그래서, 거절할 생각인가?”

“설마.”

염왕은 자비로웠지만 그 자비는 보통 자신의 흥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지금, 염왕은 아래층의 헨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염왕이 애써 엔돌핀을 가라앉히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처음 옥좌가 만들어지듯, 헨리와 자신을 중심으로 커다란 무대가 만들어졌다.

흑색 옥석으로 이루어진 무대 바닥은 장인이 깎은 것처럼 매끄러웠으며 그 주변에는 염왕의 정원에나 어울릴 법한 소화산들이 부글부글 끓으며 곳곳에 자리했다. 곳곳에 핀 크고 작은 지옥화들은 덤이었다.

염왕이 의자에서 내려와 뒷짐을 지고 섰다.

작은 키였으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절대 작지 않았다.

그에 헨리도 의자에서 내려와 섰다.

염왕이 인자한 미소로 물었다.

“그나저나 궁금한 점이 있구나, 아들아.”

“편하게 물어봐.”

“너의 불꽃은 분명 나의 것보다 작고 미지근하다는 걸 분명 알 터인데…… 아니, 그전에 네게 그런 힘을 준 것이 나인데 어찌 내게 덤빌 생각을 다 하였느냐?”

묻는 염왕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피어 있다.

뜸들이지 말고 숨겨 둔 카드를 꺼내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숨겨 둔 카드는 숨겨 두었을 때 가장 빛나는 법.

“당신도 언젠간 넘어야 할 산이니까.”

“그래?”

헨리의 정석적인 답변에 염왕이 또다시 미소 짓는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넘어 보거라.”

말을 마친 염왕이 바닥에 발을 탁 하고 한번 찼다. 그러자 무대 테두리에 불꽃의 벽이 치솟아 올랐다.

“특별히 최고로 뜨거운 불로다가 준비했다. 도망칠 생각은 말란 말이지.”

“그 정도 각오는 이미 했다.”

헨리는 화산검을 꺼내 들었다.

그런 다음 칼날에 손바닥을 그어 혈독을 충분히 묻혔다.

염왕에게 불꽃으로 덤비는 건 멍청한 짓이니 다른 것으로 승부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준비가 끝났을 때, 염왕이 고개를 까딱였다.

“들어와 보거라.”

헨리는 대답 대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치고 나간 발힘이 어찌나 거센지 도움닫기를 한 바닥이 움푹 파였다.

화악!

헨리가 지나간 자리에 잔불이 형성됐다. 잔불 사이로 잔상을 남긴 헨리는 혈독을 묻힌 검을 염왕에게 내질렀다.

노린 곳은 목.

염왕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기울였고, 헨리의 검이 염왕의 목젖 지척에 닿은 순간 그 자리에 불꽃이 이며 헨리의 검을 밀어냈다.

염왕이 가진 스킬들 주 하나인 ‘화마의 벽’이었다.

허나 이미 예상한 바다.

그래서 처음부터 칼에 힘을 크게 주지 않았다.

헨리는 부드럽게 검을 회수해 그 흐름 그대로 염왕의 하단전을 노렸다.

그에 염왕이 팔로 헨리의 칼날을 밀어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헨리는 하나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 <거인의 힘>이 발동됩니다. ]

거인만큼 힘을 늘려 준다 하여 붙여진 거인의 힘은 일순간 헨리의 힘을 몇 배나 증가시켜 주었다.

당연히 염왕은 이를 알지 못했다.

이건 헨리만 알 수 있게 조용히 발동시킨 버프 스킬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푸욱!

힘 계산에 실패한 염왕은 헨리의 칼날을 밀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

염왕의 눈이 일순간 커진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하단전에 꽂힌 검에 불길이 일었다.

지옥불, 업화였다.

헨리는 즉시 칼을 회수한 후 거리를 벌렸다.

거리가 벌어진 직후, 염왕이 씩 웃었다.

“좋은 수를 펼쳤구나. 초장만큼 방심하기 좋은 때도 없지.”

“그래서 노린 거다.”

“하지만 두 번째부턴 힘들 거야.”

염왕은 오른손에 불꽃을 만들어 상처 입은 하단전을 불로 지졌다.

무식한 지혈법처럼 보였으나 불꽃에 특화된 염왕만의 회복법이었다.

“독이 밍밍하구나. 보여 줄 건 이게 전부더냐?”

“설마.”

이어 헨리는 업화옥 10개를 만들어 염왕에게 투척했다.

*

꽤 오랜 공방이 오갔다.

대부분이 소모적인 방식의 원거리 공방이었다.

가까운 접점은 초장의 공격 때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염왕은 슬슬 지루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지루하구나.”

그래서 방식을 바꾸었다.

아들놈이라고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이리 하다간 비장의 수를 보여 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먼저 칼을 뽑기로 했다.

염왕은 가진 스킬들 중 헨리가 소화하지 못할 법한 것을 사용키로 했다.

염왕의 머리 위로 집채만 한 화염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매끈한 홍옥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는데 뜨겁기가 용암이 우스울 정도였다.

“업화옥 같은 애들 디저트 같은 것이나 맛보고 있으니 실망이 크다. 그러니 이번엔 네가 한번 맛보거라.”

염제옥.

염왕이 소환한 집채만 한 홍옥의 이름이었다.

염왕을 아는 자라면 모두가 아는 그의 시그니처 공격 스킬들 중 하나.

힘을 빼진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에테르를 더 불어넣어 더 크고 더 뜨겁게 만들었다.

헨리도 염제옥은 딱 한번 보았다.

그렇기에 그가 지금 꺼낸 염제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충분히 알았다.

이윽고 헨리에게 염제옥이 던져지자 헨리는 그것을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염왕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그 순간, 염왕과 헨리 사이를 잇던 염제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

마치 누가 도둑처럼 채 가기라도 한 듯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하지만 헨리는 있었다.

두 손으로 화산검을 집은 헨리가 다시 한번 업화와 혈독을 끌어모아 염왕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까지 속임수를 넣어 화마의 벽을 무시한 후 다시금 거인의 힘을 발동해 염왕의 허벅지에 칼날을 집어넣는데 성공했다.

“큭!”

짜릿한 고통.

염왕이라고 해서 몸이 강철은 아니었다.

칼날이 허벅지 뒤쪽을 통과했다 다시 들어갔을 때, 그 자리엔 시원한 바람구멍이 생겼다.

밍밍하게 느껴졌던 독도 한 번 더 맛보니 시큼하기 그지없었다.

헨리가 다시 거리를 벌리자, 염왕이 쓰게 웃었다.

“재밌는 스킬을 얻은 모양이로구나. 방어 계열이더냐?”

“글쎄?”

“후후, 그래. 신난 마음에 벌써부터 무턱대고 알려 주면 안 되지. 히든카드는 히든카드라 굳게 믿고 있을 때 부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럼 어디 이것도 한번 받아 보거라.”

화났다.

아무리 봐도 화난 게 보였다.

그래서 기뻤다.

랭킹 3위의 염왕을 화나게 했으니.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할 터.

염왕은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염왕이 가진 스킬들 중 가장 강력하고 무섭다고 알려진 ‘염룡’이 소환됐다.

그것은 현재의 염왕을 염왕으로 있게 해준 그의 대표 스킬이었다.

헨리에게 산 만큼 거대한 지옥불꽃의 염룡이 작렬한다.

그에 헨리는 거리낌 없이 염룡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하나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 <드래곤 미러링>이 발동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