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78화 (478/522)
  • 2부. 78화

    “이런 건방진 놈이……!”

    자신의 분신이 절단되자 칠흑은 분노했다.

    이것은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 본때를 보여 주어야 마땅했다.

    “놈이 진입했습니다, 칠흑 님.”

    “생포해라. 사지를 잘라도 좋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앞에 생포해서 데려다 놔! 놈은 날 모욕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모습으로 만들어 주겠다!”

    “예!”

    칠흑의 다그침에 칠흑의 오른팔, 잭이 다급히 출동한다.

    *

    칠흑성 1층.

    내부는 달이 뜬 바깥보다도 어두웠다.

    하지만 상관없다.

    여왕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낮처럼 환하게 앞을 보여 주는 기능이 있었으니까.

    헨리는 주위를 둘러보던 끝에 끝자락에 위치한 큼직한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 <다크 라이징>이 발동됩니다. ]

    시스템 알림과 함께 스킬 하나가 발동됐다.

    그와 동시에 바닥 곳곳이 갈라지며 지하로부터 손아귀를 비롯한 썩은 시체들이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네크로멘서라더니, 이제 시작인가 보군.”

    다크 라이징.

    칠흑의 시그니처 기술이자 그를 지금의 상층민으로 있게 해 준 스킬들 중 하나.

    다크 라이징은 보통의 네크로 라이징과는 달랐다.

    보통의 네크로 라이징이 단순히 시체를 일으켜 적을 공격하는 스킬이라면 다크 라이징은 일어난 시체들의 신체를 에테르로 몇 단계나 강화시켜 주는 기능을 가진 스킬.

    이윽고 1층 가득 칠흑 군단이 강림했다.

    그에 헨리는 검을 뽑아 든 후 스킬 하나를 발동시켰다.

    [ <열풍>이 발동됩니다. ]

    발동시킨 스킬은 열풍.

    열풍이 발동되자 전방으로 높은 열기의 강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화화화화화!

    열풍의 효과는 굉장했다.

    에테르를 잔뜩 쏟아 넣은 열풍은 다크 라이징으로 소환된 칠흑 군단을 자리에 서있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밀어낼 정도로 엄청난 저력을 보여 주었다.

    헨리는 그런 칠흑 군단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태풍처럼 불어닥치는 열풍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유유히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 후 계단을 파괴하였다.

    “이, 이런 미친.”

    그 광경을 본 잭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주인, 칠흑 님의 칠흑군단을 저런 식으로 무시해 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보통 놈이 아냐, 차라리 초장부터 내가 나서야 해.’

    이런 식이라면 2층도 3층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자기가 나섰다.

    “음?”

    그래서일까?

    헨리는 2층에 오르자마자 심상찮은 양의 에테르를 느낄 수 있었다.

    미리 대기해 있던 뱀파이어 잭의 에테르였다.

    헨리가 자신을 응시하자 잭이 갈무리 하고 있던 에테르와 살기를 풀어헤치며 헨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잘도 1층을 통과했구나. 하지만 여기서부턴 쉽지 않을 거다. 칠흑 님의 오른팔이자 칠흑성 2인자인 내가 너를 직접 상대 할 테니까.”

    “벌써부터 2인자라…….”

    잭의 소개에 헨리는 미소를 지었다.

    칠흑성, 꽤 높아 보였는데 벌써부터 2인자가 나서 준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는 이곳의 주인인 칠흑이 직접 나설 테니까.

    헨리가 쥔 검을 들어 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것 참 고맙군.”

    “건방 떠는 것도 지금뿐이다.”

    화아아!

    그 말과 함께 잭의 눈이 붉게 물들었고 2층의 온도가 삽시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 <뱀파이어 잭>이 <식은 피의 무도회>를 발동시킵니다. ]

    [ 모든 속도가 30% 저하됩니다. ]

    [ <뱀파이어 잭>이 <흑밤의 장송곡>을 발동시킵니다. ]

    [ 모든 저항력이 30% 저하됩니다. ]

    [ <뱀파이어 잭>이…… ]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상층민의 권속이라고, 녀석은 제법 쓸 만한 영역 스킬이 많았다.

    헨리는 자신에게 중첩되는 디버프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더욱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기 혼자 오길 잘했다고.

    그렇게 몇 개의 스킬이 더 추가되었을 때, 헨리는 그제서야 하나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 <업화>가 발동됩니다. ]

    화륵!

    스킬을 발동시키자 칼끝에서부터 시작하여 헨리의 전신에 지옥불이 피어올랐다.

    뜨겁기 그지없는 지옥불 때문일까?

    업화가 발동되자마자 잭이 발동시킨 ‘식은 피의 무도회’ 효과가 사라졌다.

    이외에도 두 개 정도의 디버프가 추가로 해제되자 헨리가 잭을 칼날로 가리키며 비웃었다.

    “보여 줄 건 이게 전부인가?”

    “헛소리!”

    그것이 방아쇠가 되었다.

    잭은 헨리에게 달려들었고 헨리 또한 잭의 돌격을 피하지 않았다.

    헨리의 칼날은 잭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었으나.

    카강!

    잭은 강철만큼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헨리의 칼날을 받아 쳐 냈다.

    덕분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몇 마디 안 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떨리는 칼날과 손톱 사이로 표정이 일그러진 잭이 일갈했다.

    “아랫것 주제에 제법이구나.”

    “그래? 그럼 이건 어때?”

    그 순간.

    [ <여왕의 눈>이 발동됩니다. ]

    [ <여왕의 눈>으로부터 <석화> 효과가 발생합니다. ]

    헨리의 눈에서 여왕의 저주가 발현되었다.

    쩌저적!

    그리고 여왕의 저주는, 놀랍게도 잭의 몸 일부를 중독시키듯 천천히 석화시키는데 성공했다.

    “……!”

    갑작스러운 석화에 놀란 잭이 두 손으로 칼날을 밀쳐 낸 다음 날개를 꺼내 뒤로 빠졌다.

    아니, 빠지려고 했다. 등짝에 석화 효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본능으로 몸을 뒤로 뺐는데 날개가 나오지 않아 잭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헨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찰나의 빈틈을 파고들어 잭의 심장에 화산검을 쑤셔 박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최악의 상성이었다.

    불과 은에 취약한 것이 뱀파이어인데 그 둘 중 하나인 화염이 심장에 박혔으니까.

    심지어 그 화염은 어비스 내에서 가장 뜨거운 악을 벌하는 업화였다.

    헨리는 잭이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할수록 더더욱 깊이 칼날을 박아 넣었다.

    종국엔 크게 검을 휘둘러 잭을 두 동강 내기까지 했다.

    갈라진 환부를 따라 전염병 퍼지듯 업화가 번져 나갔다.

    잭은 어떻게든 현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그러기엔 헨리가 자신에게 심은 불꽃이 너무 뜨거웠다.

    불꽃에 녹은 에테르가 너무나도 강력했다.

    잭은 살기 위해서 오랫동안 발버둥쳤다.

    그러나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 타인의 에테르를 불태웁니다. ]

    [ <염기>가 1 상승합니다. ]

    [ 타인의 에테르를 불태웁니다. ]

    [ <염기>가 1 상승합니다. ]

    [ 타인의 에테르를 불태웁니다. ]

    [ <염기>가 1 상승합니다. ]

    ……

    헨리의 힘만 키워주는 꼴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발버둥치던 끝에 잭은 마침내 숨을 거두고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뱀파이어다운 비극적인 최후.

    그때, 위층에서 폭음이 뿜어졌다.

    콰앙!!

    쾅!

    콰아앙!!

    폭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까워져 갔고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헨리가 있는 2층 천장을 박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폭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온몸이 시커먼 금속으로 이루어진 골렘이었다.

    이윽고 골렘으로부터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감히 내 권속을……!”

    골렘 속의 낯익은 목소리는 다름 아닌 칠흑이었다.

    고통받는 자신의 권속을 보다 못 한 주인이 갑옷처럼 골렘을 온몸에 두르고 직접 강림한 것이다.

    헨리는 아는 체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것이 도발로 작용했다.

    “죽어라!”

    골렘.

    정확한 명칭은 ‘네크로 아이언’으로 칠흑이 자랑하는 대표 스킬들 중 하나로, 근접전에 약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익힌 스킬이었다.

    칠흑의 골렘 조종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활용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갈과 함께 칠흑이 주먹을 내지르자 네크로 아이언의 팔이 일순간 크게 늘어나며 헨리를 향해 뻗어졌다.

    콰아아앙!!

    금속 주먹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자신의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느꼈다.

    하지만.

    “보여 줄 건 이게 전분가?”

    주먹 끝에서 여유 넘치는 헨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충돌이뮨>이 발동되었습니다. ]

    충돌이뮨 덕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헨리가 주먹으로 네크로 아이언의 주먹을 거세게 내리치자 쾅! 소리와 함께 네크로 아이언의 주먹이 일그러졌다.

    [ <역반격>이 발동되었습니다. ]

    스킬, 역반격의 효과였다.

    역반격은 라훔과 목숨을 건 대련을 하던 중에 획득한 스킬로, 자신이 입은 데미지만큼 상대에게 한 번 되돌려 줄 수 있는 스킬이었다.

    ‘덕분에 거인족을 상대할 수 있었지.’

    네크로 아이언의 주먹이 찌그러진 걸 본 칠흑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지껏 자신의 네크로 아이언에게 이정도 데미지를 주었던 존재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헨리는 칠흑이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놈 앞에 붙었다.

    그리고 골렘의 핵으로 보이는 중앙 정수에 화산검을 역수로 쥐고 업화와 함께 거칠게 쑤셔 박았다.

    콰아앙!!

    정수가 폭발한다.

    그와 함께 네크로 아이언이 군데군데 갈라지며 칠흑을 뱉어 냈고 헨리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칠흑의 목을 잡아챘다.

    “계속할 건가?”

    “내가 곱게 죽을 것 같아?”

    키이잉!

    두 눈에 독기가 가득한 칠흑의 몸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에테르도 치솟았다.

    자폭하려는 건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빠르게 검을 휘둘러 놈의 몸을 베었다.

    화륵!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불꽃이 치솟았고 업화는 순식간에 칠흑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칠흑은 웃었다.

    “크하하! 이런다고 내 폭발을 막을 수 있을 성 싶으냐!!”

    그때였다.

    [ 타인의 에테르를 불태웁니다. ]

    [ <염기>가 1 상승합니다. ]

    [ 타인의 에테르를 불태웁니다. ]

    [ <염기>가 1 상승합니다. ]

    ……

    눈앞에 뜨는 메시지들.

    그와 함께 폭주하던 칠흑의 에테르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업화가 폭주하는 칠흑의 에테르를 태워 폭발을 억누른 것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서걱!

    추가로 이어진 칼질.

    그와 함께 칠흑의 목이 달아났고.

    [ <헨리 모리스> 님이 <칠흑>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

    [ <칠흑> 님이 사망함으로써 상층의 1번 구역인 <해가 없는 도시>가 이름을 잃고 <무명지대>로 전환됩니다. ]

    [ 축하드립니다! <헨리 모리스> 님의 <가우스> 팀이 상층 1번 구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

    [ 이제부터 상층 1번 구역의 주인은 <헨리 모리스> 님입니다. ]

    헨리는 칠흑을 쓰러뜨리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칠흑이 완전히 죽자 근처에서 지켜보던 무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났다.

    “대단하네요. 그 칠흑을 이렇게 빨리 제압할 줄이야.”

    그 말에 헨리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무스를 보았다. 그러자 민망했던지 무스가 헛기침을 하며 할 말을 이어 나갔다.

    “흠흠, 거 참 과묵하시네. 아무튼 당신은 칠흑을 쓰러뜨렸으니 이제 선택권이 생겼습니다.”

    “선택권?”

    “네, 선택권요. 당신은 1번 구역의 주인을 쓰러뜨렸으니 이제부턴 공식적인 ‘상층민’입니다. 더불어 당신의 팀원들도 각자 동의하기만 한다면 모두가 상층민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몸 무사히 중층으로 가야죠. 어비스에서 신분은 그에 걸맞은 의무를 져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이제 어떡할 건가요?”

    “무얼 말이지?”

    “당신은 팀의 대장이잖아요? 대장은 좀 다릅니다. 팀원들에겐 아직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지만 당신은 이번 게임의 주역인데다 1번 구역의 주인이었던 칠흑을 죽였으니 의무를 거절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다음 구역인 2번 구역에 도전하지 않을 권리는 있습니다.”

    도전하지 않을 권리.

    포기를 제법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이었다.

    그에 헨리가 픽 웃었다.

    “쓸데없는 권리가 다 있군. 난 당연히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그렇군요.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다음 구역에 도전하려면 당신의 팀원들 중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 1번 구역을 맡아야 한다는 걸.”

    그 말에 헨리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알고 있어.”

    그리고 그 대상자는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