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77화 (477/522)

2부. 77화

헨리의 등장에 모두들 예를 갖추었다.

분위기는 마치 천년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그런 분위기였다.

사실 다를 건 없었다.

명칭이 달라졌을 뿐, 어쨌든 상층과 싸운다는 사실 자체가 변한 건 없었으니까.

모인 숫자는 거인병들을 포함해 1만이 조금 넘었다.

그중에는 위블에서 보낸 마녀들도 몇몇 보였다. 전날 요청한 보급품 관련하여 파병 온 듯 했다.

헨리는 그들을 지나쳐 상층로 입구 앞에 선 문지기에게 다가갔다.

문지기, ‘펠’은 갑작스러운 중층 플레이어들의 모임에 꽤나 당황했지만 헨리를 보더니 이내 곧 웃음을 터뜨렸다.

“자넨가 보구만, 중층을 뒤흔들었다는 사내가.”

“거창한 표현이군. 좌우간 지금 당장 상층에 도전하고 싶은데.”

“안 될 거야 없지. 하지만 약속된 룰이 아닌 이런 식의 도전은 위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내가 위층의 눈치를 봐야 되나?”

헨리가 맞받아치자 펠이 씩 웃었다.

“그럴 필요는 없지. 그럼 여기 있는 모두를 한 팀으로 규정하고 도전 자격을 부여토록 하겠다.”

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통통 두드리자 헨리 앞에 커다란 차원의 틈이 벌어졌다.

펠이 차원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층로의 도전 규칙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알아도 설명해라. 그게 네가 할일이잖아?”

퉁명스러운 대답이었으나 펠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지. 사실 상층로란 말은 없어. 상층에는 상층로 역할을 하는 구역들만 존재할 뿐. 너희들은 그중 1번 구역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중층과 상층 사이에는 상층로란 개념이 없다.

대신 중층과 가장 가까이에 맞붙어 있는 구역들을 상층로라 불렀는데 관리자들은 그곳들에 번호를 붙여 불렀다.

“도전 구역은 3번까지 있다. 매 구역마다 승패에 따라 팀과 팀원들은 선택을 할 수 있고…… 뭐, 자세한 건 다른 관리자가 설명해 줄 거야.”

펠이 지팡이로 헨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연히 네가 대표자겠지? 혹시 팀에 이름이 있나?”

팀 이름.

단체로 움직여야 하다 보니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헨리는 그 물음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곧 대답했다.

“가우스.”

“가우스…… 처음 듣는 이름이군. 뭐 아무렴 상관없겠지. 가우스 팀의 헨리 모리스 팀장. 그럼 건투를 빌지.”

펠의 축복을 받으며 헨리는 차원문으로 받을 디뎠다.

그러자 시야가 바뀌며 어두워졌고 상층로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인파 또한 순식간에 사라졌다.

*

[ <상층 : 1번 구역>에 입장합니다. ]

[ 현재 위치는 <해가 없는 도시>입니다. ]

아카이브 알림이 눈앞에 떴다.

들은대로 아카이브는 이곳이 상층로가 아닌 상층이라 했다.

주변 시야가 바로 서자 해처럼 밝은 달이 인상적인 곳으로 소환됐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상층에 오다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소환된 건 헨리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가우스라 부르기로 한 가우스 군단도 함께 소환됐다.

헨리는 그들을 병사 혹은 팀원들이라 부르기로 했다.

병사들은 긴장하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로서도 상층은 처음이었으니까.

그 순간, 그들 앞에 낯선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흰 보자기를 뒤집어쓴 듯한 전형적인 유령의 모습이었는데 발이 없고 안광이 형형했다.

펠이 말했던 관리자였다.

“반갑습니다. 관리자 무스라고 합니다. 그쪽이 가우스 팀이시죠?”

“그렇다.”

“천년전쟁이 아닌 이런 식의 도전은 또 처음이네. 하긴 뭐, 천년전쟁이 정식 룰도 아니고 무슨 상관이겠어요? 아무튼 정식으로 도전하기에 앞서 잠깐 설명 좀 해 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신지?”

“설명해라.”

“하핫, 말이 짧은 분이시네. 그럼 설명하기에 앞서…….”

그 순간.

헨리 앞에 있던 무스가 분신술이라도 사용했는지 가우스 군단 전원 앞에 나타났다.

복제된 무스들은 오리지널 무스와 동시에, 그리고 똑같이 행동했다.

“여러 번 설명하면 번거로우니까 제가 배려해 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도전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릴 건데 이곳은 1번 구역으로 이름은 ‘해가 없는 도시’이고 ‘칠흑군단’ 팀의 ‘칠흑’이 지배하고 있는 곳입니다.”

첫 구역이라 그런지 설명은 꽤 친절했다. 무스의 말이 계속 됐다.

“도전 과제는 간단합니다. 상층민이 되고자 한다면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을 ‘칠흑’을 쓰러뜨리거나 항복을 받아내면 됩니다.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당연히 먼저 항복하면 패배하게 되는 거구요.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게 되면 중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층로나 중층로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룰.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스가 악마처럼 입꼬리를 찢으며 말했다.

“근데 여기서 팁 하나, 이곳에도 기권은 존재합니다. 물론 자신이 기권해도 팀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하지만 팀의 수장인 팀장이 기권하면 그 팀은 전원 패배 처리됩니다. 그러니 만약의 상황을 위해서라도 팀장은 끝까지 살아남아야겠죠?”

왠지 그 말이 헨리를 겨냥해서 하는 말 같지만 글쎄?

헨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무스를 건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헨리의 밋밋한 반응에 무스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팀장의 교체는 언제든 가능하니 편히들 하도록 하시고…… 아무튼 설명은 여기까지.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도중에 물어보세요. 전 꽤 친절하니까. 자, 그럼…… 게임 시작!”

그 말과 함께 무스가 사라졌다.

무스가 사라지고 난 뒤, 헨리는 부팀장급…… 예컨대 레반이나 페트로 같은 헤드급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라훔은 파티 메시지로 대화에 참여시켰다.

헨리가 말했다.

“다들 들었지?”

“예, 들었습니다.”

“그럼 계획대로 하자고.”

“예.”

그 말에 부팀장들이 각자 맡은 부대들로 흩어져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훔이 조용히 물었다.

- 정말 괜찮겠나?

- 괜찮아. 그리고 이 방법이 오히려 병력 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야.

- 알겠다.

사전에 작전을 내려 주었다.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

“간댕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군.”

칠흑성, 최상층부.

그곳에는 칠흑군단의 군단장, ‘칠흑’이 CCTV 기능을 하는 암경을 통해 헨리의 가우스 군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칠흑의 기분은 별로 좋지 못했다.

분명 오래 전, 자신들이 알려 준 천년전쟁의 룰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욕받은 기분이었다.

겨우 아래층 것들 주제에.

기껏 자기들을 배려해서 만들어 준 제도를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반기를 들어?

용납하기 힘들었다.

이건 자신들이 생각해 온 존경심이 담긴 순수한 도전이 아니었다.

그래서 징벌키로 마음먹었다.

한 놈도 빠지지 않고 싹 다 죽여 자신들을 무시하고 건방 떤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암경을 지켜보던 칠흑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뭐하는 거지?’

그 유명한 거인족까지 대동해 쳐들어 올 땐 언제고 기껏 상층에 진입한 놈들은 무기를 들고 자신에게 달려오기는커녕 전혀 엉뚱한 짓거릴 하고 있었다.

그 행위는 다름 아닌 방책을 짓는 것.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것은 야생동물로부터 마을을 지킬 때나 쓰는 그런 방책임이 분명했다.

어이가 없었다.

설마 자신이 네크로멘서라는 것을 알고서 저런 방책을 짓는 걸까?

수성전이라도 벌이겠다고?

그게 목적이라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때였다.

칠흑의 충실한 부하이자 오른팔인 뱀파이어 잭이 박쥐 모습으로 다급히 칠흑 앞에 나타났다.

“칠흑 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지?”

“웬 놈 하나가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요!”

“여길? 여기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궤적을 계산해 봤을 때 칠흑 님이 계신 칠흑성으로 오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잭의 보고에 칠흑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이곳 칠흑성은 위장 스킬과 위장 아이템을 겹겹이 둘러 철저하게 은폐시켜 놓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단 말인가?

그것도 도전이 시작된 지 아직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러나 잭의 말은 사실이었다.

암경을 통해 주변 풍경을 읽어 들인 결과, 정말로 웬 놈 하나가 빠른 속도로 칠흑성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은……!”

고속으로 접근해 오는 이.

아까 전에 암경으로 보았던 놈이었다.

가우스 군단의 수장, 헨리였다.

*

“칠흑성이 보입니다, 주인님!”

“그래.”

목도리처럼 헨리에게 휘감긴 클레버가 말했다.

클레버의 말마따나 저 멀리 흐릿하게나마 칠흑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마치 마왕성처럼 생긴 곳이었는데 꽤나 네크로멘서 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쉽게 찾아낼 줄은 몰랐는데.’

사실 무스가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 주기 전, 헨리는 이미 칠흑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허멀트 덕분이었다.

“크흐흐, 제 투자의 일등공신이신데 제가 그것 하나 못 알아봐드릴까요?”

중층 상권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 허멀트는 옛날보다 훨씬 더 배포가 두터워졌다.

덕분에 상층 문지기들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칠흑에 대한 것들이었다.

“칠흑은 실력 있는 네크로멘서입니다. 그리고 네크로멘서 답게 안전한 곳에 숨어 수많은 언데드 군단으로 끊임없이 도전자들을 공격하죠.”

그래서 가우스 군단을 입구에서 대기시켰다.

네크로멘서라면 가우스에서도 몇 번 상대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

‘네크로멘서를 상대로 물량전을 벌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지.’

네크로멘서의 부하들은 언데드다.

먹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육신이 부서져도 재생하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그렇기에 싸움에 참여시키지 않고 수비 태세로 전환시킨 것이다. 네크로멘서와의 싸움 같은 무한하고 무의미한 싸움에 병력을 투입할 순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싸움은 헨리 혼자 나서기로 했다.

이번 싸움의 핵심은 네크로멘서가 숨어 있을 ‘칠흑성’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냐에 따라 좌우 될 테니.

허나 애석하게도 허멀트라 할지라도 칠흑성의 위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라의 눈을 펼쳤더니 희미하게나마 칠흑성의 존재가 감지됐다.

염왕이 준 힘, 염기 덕분이었다.

헨리의 영향을 받아 덩달아 강해진 클레버가 칠흑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이네요.”

은폐 스킬과 은폐 아이템은 염기를 두른 라의 눈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헨리는 순식간에 칠흑성 앞에 도착 할 수 있었고 마왕성처럼 음습한 기운을 뿜어내는 칠흑성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다음 에테르를 뿜었다.

이것은 도발이었다.

칠흑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었다.

칠흑 정도 되는 자가 헨리의 접근을, 그리고 헨리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니.

이윽고 칠흑성 곳곳으로부터 새카만 연기가 뿜어지더니 이내 곧 헨리 앞에 뭉쳐졌다.

그것은 칠흑의 분신이었다.

네크로멘서 다운 음습한 응수였다.

연기로 빚어진 칠흑의 분신이 안광을 형형히 빛내며 말했다.

“여길 단박에 찾아내다니 제법…….”

그 말에 헨리가 검을 들었다.

[ <업화>가 발동됩니다. ]

치솟는 불꽃.

그리고 단숨에 분신을 베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클레버가 물었다.

“주, 주인님? 왜 그러세요? 그래도 말은 끝까지 들어보셔야…….”

“건방지게 분신을 보낸 놈이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돼.”

“아…….”

말을 마친 헨리가 저벅저벅 칠흑성으로 걸어 들어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