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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68화 (468/522)

2부. 68화

며칠간 끊임없이 비명을 자아내던 거대한 불꽃이 드디어 연소됐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커다란 숯검댕이 하나였다.

쩌적!

이윽고 그것에서 균열이 일어났고 파삭 소리와 함께 외피처럼 둘러싸여 있던 탄 것들이 일시에 바닥에 떨어졌다.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며칠간 타오르는 작열통보다 훨씬 더 끔찍한 고통을 견디며 꿋꿋이 살아남은 존재.

헨리였다.

헨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당연했다.

염왕의 도움으로 육체는 새로 태어났을지언정 그렇다고 정신적 피로까지 말끔히 치유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허나 염왕은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헨리에게 물었다.

“아이야, 새로 태어난 기분이 어떠느뇨?”

그 말에 헨리는 대답 대신 조용히 자신의 신체를 살폈다.

외견상 변한 건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두근!

용솟음치는 심장 박동.

며칠간 멈추어 있던 반룡의 심장이 헨리의 기상과 함께 그제야 펌프질을 시작했다.

펌프질한 심장은 헨리의 전신에 피를 돌게 했고 그와 함께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의 낯선 에테르를 느끼게 했다.

따뜻했다.

아니, 따뜻함보단 조금 뜨거웠다.

마치 데워지는 물처럼 헨리의 전신을 아우르는 에테르의 온도가 그러했다.

“인상을 보니 드디어 염기가 몸에 돌기 시작한 모양이구나.”

“…염기?”

“불꽃의 힘을 염기라고 한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이로써 넌 뜨거운 염가의 일원이 되었으니.”

그 순간.

[ <특성 : 염왕자>를 획득하셨습니다. ]

염왕의 가호에 이어 처음 보는 특성을 하나 획득했다.

헨리의 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자 염왕이 말했다.

“한동안 널 내 자식처럼 품겠다는 의미에서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기뻐해도 좋다. 이로써 넌 어비스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의 핏줄이 된 셈이나 마찬가지니까.”

자식.

허나 그 말을 완전히 믿진 않았다.

염왕이 말의 서두에 ‘한동안’이라는 전제를 달았으니까.

그럼에도 자식이라 표현하면서까지 밀어준다는 건 이만큼 밀어줬으니 확실하게 하라는 뜻이겠지.

차라리 다행이었다.

어설픈 것보단 확실한 게 나았으니까.

헨리는 즉시 상태창을 확인했다.

++

[ 헨리 모리스 ]

- 신분 : 하층민, 이레귤러

- 특성 : <염왕자>

- 염기 : 1

- 어비스 포인트 : 825,025 ap

++

스탯창이 바뀌었다.

그런데 모든 스탯이 사라지고 ‘염기’ 하나만 남았다. 변화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너무 극단적이었다.

“내 상태창이 왜 이런 거지?”

“그럼? 염가의 일원이 되었는데 잡스런 것들이나 주렁주렁 달고 다닐 줄 알았나? 곧 알게 될 거다. 염기가 어떤 힘인지 말이야.”

염왕의 핀잔.

그 핀잔에 헨리는 순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마력에 대해 떠올랐다.

다행히 마력은 그대로였다.

헨리가 짐짓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자 염왕이 피식 웃었다.

“소중히 여기는 것 같더구나. 아마도 살던 곳에서 취하던 힘이겠지. 그건 그냥 두었다. 모든 존재는 근본을 잊어선 안 되는 법이니까.”

염왕은 생각보다 배려심 있었다.

이어서 염왕이 박수를 쳤다.

그러자 헨리 앞에 시커먼 차원문이 나타났고.

“위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그러니 부디 아래에서 날 즐겁게 해다오.”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헨리의 몸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헨리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본 건 다름 아닌 파괴된 제단이었다.

‘제단?’

염왕은 헨리가 초대장을 찢은 곳으로 되돌려 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상급 관리자 엘은 돌아간 걸까?

헨리는 이 틈에 얼른 요새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상급 관리자도 감히 어찌하지 못할 힘을 주었다는 염왕의 말을 믿고 잠시만 더 이곳에 남아 보기로 했다.

‘아직 제단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

제단은 완전하게 파괴하였으나 그게 무슨 기능을 가졌는지, 또 거인들이 걱정하던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 갈 필요가 있었다.

헨리는 마력을 이용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력만 사용했는데 왜?’

공중으로 떠오를 때 이용한 건 스킬이 아니라 마법이었다.

다시 말해 에테르가 아닌 마력을 사용했다는 말.

그런데 희한하게 심장이 요동치며 전신이 따뜻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헨리가 사용한 마력과 염왕이 염기라 부르는 이 힘이 공명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가.’

에고가 강한 자들은 자신의 것을 최고로 여기며 타인의 것을 배척한다.

헌데 염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헨리의 마력과 염기가 서로 뒤섞이게 했다는 건 아니지만 물과 기름처럼 서로의 구분을 뚜렷이 하되 새끼줄처럼 촘촘히 꼬아졌다.

덕분에 염기의 컨트롤에 대한 감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공중에 떠오른 헨리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종말…… 아니, 비스들이 없어?’

말 그대로였다.

헨리를 두려워하여 일정거리 이상 거리만 두던 비스들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헨리는 얼마간 날아서 주변을 수색했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비스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많던 비스가 전부 사라지다니?

헨리는 즉시 라의 눈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헨리의 마력에 반응한 염기가 헨리의 눈으로 순식간에 이어지더니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기존의 라의 눈보다 몇 배는 그 기능이 향상된 것이다.

‘염기…….’

직접 체감해 보라더니 이런 걸 뜻하는 거였나.

재밌는 점은 스킬창이나 인벤토리 그 어디에도 새로운 스킬이나 아이템이 추가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뭐가 됐든 잘된 일이다.

헨리의 눈에 금빛 마력에서 주황빛 에테르가 띈다.

덕분에 헨리는 기존의 라의 눈이었다면 절대로 찾지 못했을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비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모여 있는 거지?’

그런데 뭔가 수상했다.

분명 흩어져 있어야 할 녀석들이 한데 모여 있었기 때문.

헨리는 즉시 녀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헨리가 자리를 벗어나고 얼마 뒤, 헨리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선 존재가 인상을 찌푸렸다.

엘이었다.

“갑자기 어디로 내뺐나 했더니…….”

상급 관리자인 그는 하급 관리자를 비롯한 어지간한 플레이어들 대부분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헨리의 기권 기능을 잠가 버린 건데, 고작해야 중층 아래의 것이 중층 이상의 존재가 보낸 ‘초대장’ 같은 걸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기에 놓쳤던 것이다.

엘은 눈꺼풀을 반쯤 내린 채 헨리가 이동하는 방향을 차갑게 응시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라 할지라도 상층민인.

그것도 상층민 중에서도 포식자에 해당하는 염왕의 가호를 받고 있는 자라면 아무리 상급 관리자인 자신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하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쯧.”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 혹은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미간이 좁혀졌다.

예정에 없던 일은 딱 질색이었으니까.

*

기운을 좇아 간 곳은 장관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비스들이 하나의 군집체가 되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엘의 짓일까?

그 끝에는 거대한 차원의 틈이 있었는데 여태 보아 온 틈과는 달리 내부가 폭풍처럼 요동치는 게 마치 차원의 폭풍 같았다.

비스들은 무언가에 매혹된 것처럼 끊임없이 폭풍 속으로 들어갔고 헨리는 얼마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끝에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

[ <서리풍>이 발동됩니다. ]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놈들이다.

그럼 만약 놈들 전부를 꽝꽝 얼려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 <서리풍>의 발동에 실패했습니다. ]

[ <스킬 : 서리풍>이 <스탯 : 염기>의 영향을 받아 <스킬 : 열풍>으로 임시 변경됩니다. ]

[ <열풍>을 발동시키겠습니까? ]

서리풍이 열풍으로 변경됐다.

아카이브의 설명에 의하면 새롭게 얻은 스탯인 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군.”

이해는 됐다.

무려 염왕의 가호를 받는 염왕자가 되었는데 불꽃이 아닌 냉기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었으니까.

서리풍은 서리풍대로의 쓸모가 있었지만 다양성 보단 더 큰 힘을 얻게 되었으니 이대로 만족키로 했다.

아카이브의 물음에 헨리가 사용을 허락했다.

[ <열풍>이 발동됩니다. ]

열풍이 발동됐다.

그것은 대낮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보다 훨씬 뜨거운, 마치 화산의 숨결과도 같은 것이었다.

동시에 반룡의 심장이 펌프질을 시작하며 헨리의 마력과 공명을 이루어 뻗은 주먹이 아닌 헨리 그 자체에서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퀴륵?!”

때아닌 열풍에, 제식 군인처럼 서 있던 비스들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점점 올라가는 온도에, 녀석들 중 두 팔이 달린 녀석들은 모두 얼굴을 감싸며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허나 그 모습을 놓칠 헨리가 아니었다.

헨리는 의지를 발현해 녀석들이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든 어디서라도 열풍을 맞을 수 있게 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온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비스들의 몸에 불이 붙기 시작했고 그 불길은 산불처럼 삽시간에 비스 전체에게로 옮겨졌다.

압도적인 화력.

그럼에도 헨리는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엘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허나 놈들이 모두 불타 스러질 때까지, 더 나아가 폭풍 속으로 걸어가던 놈들의 몸까지 몽땅 다 타죽을 때까지 엘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

차원 폭풍 앞 비스 군단이 전멸했고 라의 눈으로 탐색해 봐도 더 이상의 에테르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남은 건 어디로 이어졌을지 모를 차원 폭풍뿐.

헨리는 얼마 동안 차원 폭풍을 응시하던 끝에 다시 한번 라의 눈을 개안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폭풍 너머의 장소.

놀랍게도 그곳은 익숙한 장소였다.

바로 거인들의 요새였던 것이다.

‘그렇군. 제단이 파괴되자 이제 폭풍을 통해 거인들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어.’

엘의 짓인 걸까?

어쨌든 확실한 건 이 폭풍만 해결하면 요새가 앓고 있는 골치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헨리는 고민 끝에 폭풍 쪽으로 손을 뻗었다.

[ <열풍>이 발동됩니다. ]

화화화화!!

여태 퍼부은 것들보다 열기가 몇 배나 더 증가한 강력한 열풍이 차원의 틈 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헨리는 폭풍 속으로 에테르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가에 미소를 드리울 수가 있었다.

*

재앙의 협곡.

요새에 사는 거인들은 이곳을 재앙의 협곡이라 불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봉우리진 거대한 협곡 사이로, 거인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어비스 갓’이 끝없이 새어 나왔으니까.

그렇기에 재앙의 협곡의 역사는 요새의 역사와 동일했으며 빌어먹게도 녀석들은 주기적으로 거대한 웨이브를 요새로 보내왔다.

그런데 요즘 협곡에서 쏟아지는 웨이브의 강도가 평소보다 몇 배는 거세졌다.

덕분에 거인군단의 부담도 늘어난 상황.

그때였다.

“키아아아아!!”

전장을 가득 메우는 비명 소리.

앞 열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과 난투 중인 놈들에게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비명? 이 소린 분명…….’

후방에서 나는 소리.

확실했다.

그때였다. 외벌 망원경을 든 병사 하나가 페돈에게 급히 보고를 올린 건.

“대대장님! 후방에서 의문의 불길이 치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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