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65화
“음?”
구름 위에 누워 있던 비르파는 익숙한 기운의 등장에 반쯤 눈을 떴다.
“이건…….”
잘못 느낀 게 아니었다.
이 기운.
이 느낌.
얼마 전 자신이 친히 곤죽을 만들어 요새 안으로 던져 넣었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어느 플레이어 놈의 에테르였다.
비르파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피식 웃었다.
“이야, 엄청 질긴 놈이네. 그걸 안 죽고 살아?”
거인들에게 뒤처리를 맡기는 척 요새로 던져 넣었지만 사실은 자신이 거의 마무리 지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기만과 일처리를 허술하게 하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잘 처리했다고 생각한 그놈이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왔다.
비르파가 한쪽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놈이 무서운 속도로 자신을 향해 접근해 왔기 때문이다.
비르파는 그 속도에 맞춰 저번처럼 구름에 반쯤 걸터앉아 말했다. 그런데……
“어어?”
헨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뿜어내는 지옥불이 제트기 엔진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비르파를 덮쳤다.
쾅!
강렬한 충돌.
석궁처럼 날아온 도롱뇽 바늘이 가슴팍을 꿰뚫었다.
그 탓에 저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나왔고 피가 흘렀다.
방심이었다.
허나 비르파는 관리자.
아무리 방심했어도 한낱 플레이어의 창질을 아예 못 본 게 아니다.
그래서 창날이 가슴팍에 닿기 직전 두 손으로 잡아냈다.
그런데도 꿰뚫린 것이었다.
깊이는 창끝에서 손가락 다섯 마디 정도.
그 정도면 비르파를 창끝에 고정시키고 함께 날아가기엔 충분했다.
헨리가 바늘 끝에 관리자를 걸고 끊임없이 날아가자 분노한 비르파의 얼굴이 순식간에 악귀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이 새끼가 감히!”
비르파는 즉시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자신과 헨리를 감싸 쥐려는 거대한 손이 나타나 우악스럽게 두 사람을 감싸 쥐었다.
콰앙!
그러나 관리자의 손이 두 사람을 감싸 쥐었다 한들 헨리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결국 헨리는 바닥에 비르파를 내리꽂고서야 질주를 멈추었다.
감싸 쥔 손 속의 어둠에서 비르파가 형형한 두 눈으로 헨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못 본 새 칼이라도 갈고 온 모양이구나.”
“칼만 갈았을까봐?”
“크큭, 죽다 살아난 놈이 는 건 허세뿐이구나!”
비르파는 쥔 손을 비틀었다.
그러자 거대 손이 사라지면 주위가 밝아지더니 이내 곧 저 멀리서 거대한 주먹 하나가 헨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콰과과과과! 콰앙!!
주먹은 헨리를 노리기 위해 밭 갈듯 바닥을 긁어 오며 헨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종말들이 휩쓸려 날아갔으나 비르파는 신경 쓰지 않고 두 번째 주먹을 준비했다.
이윽고 큰 충돌음이 들렸고 흙먼지가 자욱해졌다.
손끝에 느껴지는 묵직한 촉감.
녀석을 확실히 쥐어박았다.
그런데……
‘왜 날아가지 않는 거지?’
정확히는 관성에 의한 넉백 효과가 일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리고 그 의문은 흙먼지가 걷혔을 때 해소되었다.
“……!”
흙먼지가 걷힌 직후 비르파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가슴팍에 바늘을 꽂은 채 여유로이 한손을 들어 자신의 주먹을 막고 있었으니까.
헨리는 멈춘 주먹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아카이브 알림에 눈웃음을 지었다.
[ <충돌이뮨>이 발동되었습니다. ]
충돌이뮨이 발동됐다는 메시지였다.
그로 인해 감소된 피해는 99%.
충돌이뮨은 순수하게 데미지만 감소시켜 주는 스킬이 아니었다. 충돌로 인해 생기는 넉백 등의 효과도 함께 감소시켜 주었다. 그래서 날아가지 않은 것이다.
헨리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보여 줄 건 이게 전부인가?”
“이 새끼가 감히!”
분노한 비르파가 팔뚝에 힘줄을 돋구며 도롱뇽 바늘을 붙잡았다.
자신의 가슴팍을 관통했다고는 하나 통째로 잡아 던지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움직여야 할 바늘과 놈이 마치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끙끙 용을 쓰는 녀석을 보며 헨리가 비웃었다.
“뭐 하고 있지? 나를 뽑아 버릴 심산이 아니었나?”
“닥쳐라!!”
역린이라도 건드려진 것처럼 비르파는 결국 진심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자 온몸이 붉게 물들며 힘줄이 징그러운 수준으로 번졌다.
붉은 눈동자는 피처럼 더더욱 붉어지다 못해 용암처럼 들끓었다.
폭발하듯 치솟는 분노를 담아 두 팔에 힘을 주어 헨리를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집어던져 버릴 심산으로.
그런데 헨리는 이번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놀랐다.
절대 티를 내선 안 됐는데 분노가 상회시켜 준 스탯으로도 놈이 꿈적하지 않자 그만 놀란 티를 내버리고 말았다.
헨리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까보다도 더 깊어진 눈동자로 비르파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위에서 아래로, 마치 맹수 발아래 발악하는 생쥐를 보듯.
그 눈빛이 비르파를 더더욱 분노케 했다.
“으아아아아!!”
덕분에 이성의 끈이 뚝 끊겼다.
비르파의 몸에서 붉은 에너지 파장이 태풍의 비처럼 가로로 퍼졌다.
분노한 비르파가 허공에 분노의 주먹질을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난타.
그것은 난타였다.
일전에 헨리를 곤죽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헨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바늘로 비르파를 꿰뚫은 채 가만히 서서 쏟아지는 주먹비를 온몸으로 받았다.
[ <충돌이뮨>이 발동되었습니다. ]
[ <충돌이뮨>이 발동되었습니다. ]
[ <충돌이뮨>이 발동되었습니다. ]
[ <충돌이뮨>이 발동되었습니다. ]
[ <충돌이뮨>이 발동되었습니다. ]
……
주먹질 한번이 헨리에게 닿을 때마다 아카이브 알림이 떠오른다.
시원했다.
99%의 피해를 줄이고 1%의 피해였기에 마치 시원한 안마처럼 느껴졌다.
비르파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주먹을 휘둘렀다.
휘두르고 휘둘러서 더 이상 팔이 들어지지 않을 때쯤이 되어서야 주먹질을 멈추었다.
관리자는 강했지만 무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주먹질에도 한계가 있었다.
비르파는 그 한계에 다다를수록 두려웠다.
손끝에는 분명 무언갈 때리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지만 마치 신기루에 손을 휘젓는 느낌이었다.
주사를 피할 수 없는 아이가 불가항력에 두 눈을 질끈 감듯, 힘이 빠져버린 비르파는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흙먼지가 걷히길 기다렸다.
그리고 보았다.
망부석처럼 태연히 서서 여전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헨리의 모습을.
“아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저 눈.
허세가 아니었다.
힘의 차이라면 직전까지 절절하게 느꼈다.
그래서 비르파는 공포를 느꼈다.
뭐지?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아무리 플레이어가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가졌다곤 하지만 중층 아래의 것이 관리자를 이겼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비르파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나 느껴서 잊고 있었던 공포라는, 위기의 감정을.
헨리가 서늘하게 말했다.
“발악은 끝인가 보군.”
그 말과 함께 헨리는 도롱뇽 바늘에 힘을 주어 아래로 짓눌렀다.
그러자 몇 마디밖에 들어가지 않은 바늘의 절반이 우그덕 소리와 함께 등 뒤의 땅까지 뚫고 깊숙이 박혀 버렸다.
“끄아아아!!”
비르파의 비명.
마치 못에 박제된 살아 있는 도마뱀 꼴이었다.
헨리는 녀석을 단단히 고정시킨 후 화산검을 들었다.
검에는 지옥불이 둘러졌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힘의 압차를 느낄 수 있었다.
“자, 잠깐!”
서걱!
비르파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몇 마디 조롱으로 시간을 낭비할 바엔 그냥 죽여 버리는 게 더 나았으니까.
비르파도 그 사실을 알았던 건지 휘둘러지는 검을 막기 위해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았으나 의미 없는 행위였다.
비르파는 양팔뚝과 함께 목까지 통째로 잘려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푸슈슉!
참수된 목으로부터 비르파의 새하얀 피가 튄다.
“…….”
헨리는 몸을 축 늘어뜨리는 비르파의 시체를 얼마간 지켜보았다.
여지껏 중층 아래 플레이어가 관리자를 이기거나 죽였다는 사례가 없었다고 하니 혹여나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허나 특별한 일은커녕 아카아브 알림 한 줄 뜨지 않았다.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관리자가 죽었으니 하늘에 천둥 날벼락이 쏟아진다거나 땅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개죽음이란 건가.’
명색이 관리자라면 어비스의 종이라는 말일 텐데 이리도 허망한 죽음이라.
헨리는 업화로 비르파의 시체를 완전히 소각했다.
그런 다음 고개를 틀어 비르파가 막고 있던, 죽음의 신전 혹은 제단이라 불리는 곳으로 고개를 틀었다.
헨리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거대한 결계라도 처져 있는 양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종말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이 헨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
단순했다.
두려움.
그게 원인이었다.
그렇기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쯧.’
고향 가우스에는 여전히 에테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한한 시간의 술래잡기가 벌어지고 있을 터인데 이제는 저들이 자신을 피하는 지경이 되었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젠 공중으로 이동해도 이전과 같은 공격이 없었다.
헨리는 가볍게 제단에 도착했다.
과연.
요새의 플레이어들이 이곳을 죽음의 신전이라 부른 이유를 알 만했다. 또 제단이라 부른 이유도 알 만했다.
이곳은 정말 제단, 혹은 어느 신을 모시는 신전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헨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울 줄 알았던 신전 내부는 묘하게 잿빛색으로 밝았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자 웬 거대한 공동 하나를 발견하였다.
공동은 헨리가 들어온 곳 이외에는 다른 출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온 걸까?
그때였다.
위이잉!
별안간 공동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벽과 천장, 바닥 할 것 없이 보랏빛이 뿜어졌다.
뿜어진 보랏빛 사이로 빛보다 더 진한 보라색 선이 그어졌다.
그것들은 각기 다른 점에서 시작되어 종국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선들이 하나의 점에 모이게 되자 일순 강력한 에테르 파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허공에서 웬 괴물 하나를 소환했다.
괴물.
종말이었다.
제단 밖에 널리고 널린.
공동 중앙에 소환된 종말은 이내 곧 흩뿌려지던 강력한 에테르 파장을 흡수하더니 이내 곧 몸집을 천천히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공동에 그려진 법진은 그러한 과정을 일정 시간마다 계속해서 반복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종말들의 덩치를 키워 보내는 건가.’
마력과 마법이 아닌 에테르와 스킬로 작동하는 세상이기에 정확한 원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그런 추측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기에 화산검을 들었다.
애초 거인들과 한 약속이 제단의 파괴였으니.
헨리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섭취했다. 그리고 꺼낸 검을 들어 올리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 <거인단>을 섭취하셨습니다. ]
[ <거인화>가 발동됩니다. ]
[ <거인의 힘>이 발동됩니다. ]
헨리의 몸이 커진다.
그와 동시에 헨리는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오랜 시간, 거인들의 요새에 숨겨져 있던 악의 근원이 파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