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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64화 (464/522)

2부. 64화

“직접 하는 건가?”

“그럼. 중요한 일일수록 리더가 나서야 하는 법.”

“그건 마음에 드네.”

“근데 진짜 전력을 다 하나?”

“죽여도 돼. 할 수만 있다면.”

“크큭,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는군.”

사정을 모르는 이가 봤다면 충분히 비웃을 싸움이었다.

거인족은 탑 내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전투 종족 중 하나.

단순히 덩치만 놓고 봐도 그 티탄보다도 훨씬 컸다. 그런데 그 외의 것들까지 합산하면 격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매일같이 훈련하는 거인병들의 수장인 라훔을 상대로 이런 여유라니.

허나 라훔은 비웃지 않았다.

그저 황당했을 뿐.

그렇기에 도리어 기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싸움에 임하기로 했다. 어쩌면 오늘 만난 이 남자로 인해 자신들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막상 날파리만큼 작은 헨리를 상대로 무기를 빼어 들자니 이런 싸움은 난생 처음이라 힘이 덜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

[ <여왕의 눈>이 발동됩니다. ]

[ <여왕의 눈>으로부터 <위압> 효과가 발생합니다. ]

“……!”

아주 잠깐이지만 라훔은 등에 찬바람이라도 든 듯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놈 봐라?’

거인들도 굳이 종류를 분류하자면 플레이어다. 탑에 들어와 살기로 한 것부터가 탑의 구성원이 되겠다는 말이었으니.

그렇기에 라훔은 자신에게 적용된 위압 효과를 아카이브 알림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꽤 재밌는 걸 가지고 있군.’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지내왔지만 본부에서 외부 플레이어를 발견한 건 라훔의 기억상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자라 능숙하게 자신들과 거래를 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휘하에 두었다는 걸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힘까지 단기간에 증명해냈다.

이것들만 해도 충분히 흥미로울진데 ‘여왕의 눈’까지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 여자가 인정한 놈이라…….’

과정이나 사정은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여자가 인정을 했으니 신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라훔이 물었다.

“여왕의 눈은 메두사한테서 받은 건가?”

“메두사를 아나?”

“나 정도 되면 모를 수가 없지. 메두사한테 또 받은 게 있나?”

그 물음에 헨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뱀의 운명을 받았다.”

“뱀의 운명까지…… 그렇군. 왜 네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가.”

뱀의 운명이 언급되자 라훔의 눈빛이 일순 바뀌었다. 인정의 눈빛이었다.

“다른 신체가 더 있나?”

“반룡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완벽하군. 왜 네가 거인의 근골을 탐내는지 이해가 돼.”

“중층 아래서 구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선 이것들이 베스트라 들었다.”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구할 수 만 있다면 베스트지. 내가 거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세 가지는 삼신기에 가까운 것들이거든. 아, 물론 목적에 따라 더 뛰어난 신체들도 있긴 하다만.”

“그렇군. 그럼 이제 근골을 넘겨받을 수 있는 건가?”

“물론이지.”

라훔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 <거인의 근골>을 획득하셨습니다. ]

헨리는 그토록 찾아다니던 거인의 근골을 드디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인벤토리에 수납된 근골은 새하얀 구슬처럼 생겼다. 마치 사리처럼.

헨리는 그것을 꺼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용했다.

[ <거인의 근골>을 사용하셨습니다. ]

[ 신체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

아카이브의 알림.

그리고……

으드득!

“큭!”

헨리는 갑작스레 찾아온 격통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었다.

기어이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어느 한 부위만 아픈 게 아니었다.

근골이 교체되는 과정이라 그런지 온몸이 아팠다.

식은땀을 한 바가지 쏟아 내는 헨리를 보며 라훔이 말했다.

“버텨 내야 할 것이다. 버티고 흡수해야 네 것이 될 테니까.”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

근골이 분해됐다가 다시 조합되는 과정.

온몸에서 열이 났다.

라훔이 보고 있기에 꼴사납게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순 없었다.

그렇기에 헨리는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명상.

고통은 여전했지만 정신을 딴 데 모아 어떻게든 마음을 다스렸다.

라훔은 그런 헨리의 진화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 <거인의 근골>을 완전히 흡수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

마침내 근골을 흡수하는데 성공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고통 또한 차츰차츰 옅어지며 종국엔 완전히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흘러내린 땀으로 바닥이 축축했다.

몸에선 이상한 냄새도 났다.

헨리는 클린 마법을 사용해 몸을 단정히 하고 라훔을 보았다.

“흡수가 끝났다.”

“용케 버텨 냈군.”

“버틸 만했으니까. 근데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것 같군.”

“신체(信體)들이 다 그렇지. 하지만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거인의 근골이 가진 저력을 알게 될 테니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된다.”

“알겠다.”

“훈련은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지?”

“지금.”

“화끈해서 마음에 드는군.”

시간은 금이라 하였기에 낭비해선 안됐다.

라훔이 껄껄 웃으며 몸에서 에테르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묵직하기 그지없는 이 힘.

비르파의 에테르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강력함이 느껴졌다.

라훔은 이어서 자신의 전용 무기이자 묵직한 쇠몽둥이, ‘철곤’을 꺼내 들었다.

실로 거인족다운 무기였다.

헨리가 부탁한대로 전력을 다 하려는 모양.

그 모습을 본 헨리가 파티원들에게 짤막하게 파티 메시지를 보냈다.

- 현 시간 부로 내 명령이 다시 있기 전까지 모든 인원들은 하던 일들을 멈추고 일상생활로 복귀한다. 질문은 받지 않겠다.

명령은 이게 끝이었다.

그도 그럴 게 라훔과의 훈련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어서 헨리는 인벤토리를 열어 무기를 골랐다. 잠깐의 고민 끝에 집어든 건 화산검이었다.

일전의 어느 이름 모를 거인을 공격했을 때도 유효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상대는 그들의 수장인 라훔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유효타를 기대하진 않는다.

화산검을 든 이유도 그런 것에 기인해서였다. 만약 역경진화의 영향이 자신이 든 무기와 관련되어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화륵!

[ <업화>가 발동됩니다. ]

지옥불이 핀다.

그래 봤자 라훔의 눈에는 성냥개비에 붙은 불꽃보다도 작아 보일 터.

“그럼 시작하겠네.”

라훔은 친절하게 직접 시작을 알렸다. 헨리는 마력을 활성화시켜 한줄기 바람이 돼 라훔에게 달려들었다.

*

“…툼스 대대장님.”

“왜?”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무슨 소문?”

“요새장님께서 직접 플레이어를 키우고 계신다는 소문 말입니다.”

헨리가 라훔과 훈련을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부터 딱히 비밀로 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미주알고주알 말하고 다닐 생각도 없었다.

만약이란 게 있었으니까.

허나 어째서인지 요새의 거인병들에게 그 소식이 소문처럼 전해진 모양.

그 물음에 툼스가 자신에게 질문한 바핌 부관을 힐긋 보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따라와.”

“예?”

“따라오라고.”

갑자기 따라오라는 말에 바핌은 잠시 의아했으나 이내 곧 툼스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병사들이 훈련하는 훈련장이었다.

쾅!!

콰앙!!

쾅!!

훈련장에 누가 있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지금은 근무 시간인데?

부하가 말했다.

“훈련장에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대대장님.”

“훈련 중이니까.”

“훈련이요?”

“그래. 요새장님과 너희가 들은 그 플레이어가 말이지.”

“그게 무슨…….”

그렇담 소문은 사실이었다는 걸까?

이윽고 훈련장에 두 사람이 완전히 다다랐을 때 툼스를 따라온 바핌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드넓은 훈련장 중앙에서 요새장 홀로 허공에 무기를 휘두르되 간헐적으로 큰 소리와 더불어 엄청난 에테르 이펙트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대대장님, 지금 요새장님께서 무얼 하고 계신 겁니까?”

“안 보이냐?”

“예?”

“눈은 장식이야? 두 눈 크게 뜨고 잘 봐. 요새장님이 혼자 생쇼를 하고 있는 건지 다른 무언갈 하고 있는 건지.”

그 말에 바핌은 눈살을 찌푸려 요새장을 자세히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까 전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다른 인물이 보였다.

날파리처럼 작은 존재.

소문의 플레이어인 헨리였다.

헨리를 발견한 바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날파리만큼 작은 플레이어가 요새장을 상대로 호각으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놀랍지? 처음엔 나도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서로의 무기가 부딪힐 때마다 터져 나오는 격렬한 에테르 이펙트.

결코 요새장이 봐주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요새장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바핌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순간.

콰아아앙!!

별안간 두 사람 사이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두 사람의 시야를 가렸고 깜짝 놀란 바핌이 소리쳤다.

“요, 요새장님!!”

“쉿.”

그 행동을 툼스가 저지하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 붙였다.

이윽고 폭발의 잔해가 거두어졌을 때, 바핌은 아까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쫙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후, 라훔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기를 놓친 채.

그 모습을 본 툼스도 황당했는지 헛웃음을 터뜨리며 훈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나참, 이게 진짜 되긴 하네요?”

“아, 자네 왔는가.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등장하다니. 조금 부끄럽구만. 뭐야, 바핌도 같이 온 거야?”

툼스의 웃음.

라훔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철곤을 찬다. 그 순간 일어난 라훔 옆에 라훔 만큼 커진 헨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단의 효과가 아닌 환상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일시적으로 키운 것이다.

그 모습에 바핌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고 헨리는 아랑곳 않고 라훔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훈련을 그만해도 될 것 같군.”

“내 생각도 그러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근소한 차이로 내가 앞서고 있었는데 말이지.”

라훔의 표정에 아쉬움은 있었으나 억울함은 없었다. 라훔은 뱀의 운명이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았으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 툼스가 놀람과 기대감이 서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제 준비가 다 끝난 겁니까?”

“뭐, 그렇다고 봐야지. 애초에 이 친구가 제안한 훈련이라는 것도 내가 이 친구보다 강하다는 전제 하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거였거든.”

“그럼 이제 이 친구가…….”

“뭐, 내가 아주 전력을 내보면 동귀어진까진 가능하겠지만 글쎄, 평범한 비무로는 이제 내가 뒤쳐지지 않을까?”

“와…….”

쉽게 패배를 인정하는 라훔의 태도에 툼스는 나지막이 감탄했고 바핌은 소리 없이 경악했다.

라훔이 헨리에게 물었다.

“출발은 언제 할 건가?”

출발.

그것은 최초에 헨리가 거인들과 했던 약속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물음에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 당장 하지. 제단으로 가는 길만 알고 있다면 말이야.”

“역시 화끈하구만.”

재정비, 휴식.

이런 것들은 헨리에게 별로 의미가 없었다.

역경진화를 활용키 위해 벌써 몇 번의 사경을 헤맸는지 모르고 그 과정에서 꽤 오랜 시간을 소비했으니까. 그리고 헨리는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편.

라훔이 품에서 조그마한 구슬 하나를 꺼내 헨리에게 보였다.

“요새에는 제단과 이어진 수많은 차원의 틈들이 간헐적으로 생겼다가 닫히곤 하지. 하지만 딱 한 군데 막지 못하는 쥐구멍처럼 항상 열려 있는 곳이 있다. 이건 그리로 가는 시야 오브젝트고.”

[ <라훔의 특별 시야 오브젝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인벤토리에 특별 시야 오브젝트가 들어왔다.

“그걸 미니맵에 등록하면 돌아오는 길도 수월할 거야. 그럼 무운을 빌지.”

이윽고 세 사람의 시야에 헨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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