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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63화 (463/522)

2부. 63화

‘제단?’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허나 어비스 갓이 끊임없는 나오는 제단이라니?

순간 한 군데가 머릿속을 스쳤다.

거인들의 대화는 계속됐다.

“탐사대장이 그리 말했습니다. 그곳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었는데 그 안에는 어비스 갓이 득실거렸고 우리 요새와 이어진 차원의 틈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고. 그리고 더 나아가 어쩌면 그곳이 모든 재앙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네 명의 거인.

놀랍게도 그들은 요새를 수호하는 거인병들의 최고 간부들이었다.

좀 전에 보고를 올린 건 1대대장 툼스였다.

툼스의 말에 요새장, 라훔이 대답했다.

“그럼 그곳만 제거하면 우린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이어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추측하기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쥐구멍보다도 좁은 곳인데 우리 애들을 전부 보내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그게…….”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어비스 갓들과 싸워 온 지 모른다.

처음엔 놈들로부터 요새 지키기에 급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이따금씩 닥쳐오는 대형 웨이브도 곧잘 막아 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막아내는 것이 한계일 뿐 여전히 놈들이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놈들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오리무중인 상태.

그러던 차에 겨우 손에 넣은 해결의 실마리였다.

라훔 요새장의 물음에 툼스 1대대장이 말끝을 흐린다.

라훔의 말 대로였기 때문이다.

듣고 있던 부요새장 디르푸가 말했다.

“무조건 무리입니다. 잊으셨습니까? 탐사대원들 12명을 축소시키는 작업만 해도 얼마나 많은 어비스 포인트를 사용했습니까?”

“그렇긴 한데…….”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때였다.

[ <거인단>을 섭취하셨습니다. ]

[ <거인화>가 발동됩니다. ]

화화화화화!

심각한 표정의 네 사람 옆에 일순간 그들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헨리가 나타났다.

“무, 뭐야!”

당황한 네 사람은 황급히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허나 헨리는 별로 당황하지 않고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인 채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

그 모습에 라훔이 물었다.

“너, 뭐야? 어디서 나온 놈이야?”

“난 플레이어다. 헨리라고 하지. 괜찮으면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플레이어? 미션 참가자?”

“그래.”

미션 참가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걸 보니 자기들 요새가 미션지인 건 아는 모양.

갑자기 나타나서 다짜고짜 대화를 제안하는 헨리의 모습에 네 거인은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했다.

페돈이 창날을 헨리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무슨 꿍꿍이지? 여긴 또 어떻게 들어온 거고? 덩치는 또 어떻게 커진 거야?”

“커진 건 아이템 때문에 그런 거고 여기 온 건 우연이다. 원래는 시야 오브젝트만 확보하고 나가려 했는데 우연히 흥미로운 이야길 듣게 되서 말이지.”

“흥미?”

“아이템 지속 효과가 그리 길지 않아서 본론만 이야기 하지. 너희가 말하는 제단이란 곳. 아무래도 내가 다녀온 그곳 같은데, 관련해서 이야기 나눌 생각 있나?”

제단이라는 말에 네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제단을 다녀왔다고?”

“네가?”

“어떻게?”

흥분하는 표정과 쏟아지는 질문에 헨리는 타이밍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리 중요한가? 어쨌든 나는 갈 수 있고 너희는 갈 수 없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건 그렇지만…….”

헨리는 시야 한켠에 떠 있는 거인화 지속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아이템 사용으로 커진 것이기 때문에 이 모습을 오래 유지 못한다. 나와 거래할 의사가 있다면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거야.”

헨리의 단호한 모습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라훔 요새장에게로 옮겨졌다.

라훔은 진즉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라훔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너희들이 가진 신체(信體)를 원한다.”

“근골을 달라는 말이군.”

“안 되나?”

“못 줄 건 없지. 거인의 근골은 정말로 우리의 신체를 뜯어서 주는 게 아니니까.”

“요새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줄 수도 있다는 말에 나머지 거인들이 흥분했다.

그 모습에 라훔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근골이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우리에겐 있으나마나 한 것인데 차라리 근골을 내주고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

“하지만…….”

말을 잇지 못하는 세 사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안다.

이곳의 거인들은 대부분이 선민의식에 찌들어 있으니.

그 모습에 헨리가 속으로 웃었다.

‘그래도 요새장이란 놈은 대화가 통해서 다행이군.’

헨리가 물었다.

“난 말했고, 그럼 이제 너희가 원하는 걸 말해라.”

“우린…….”

그 물음에 라훔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대답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제단을 파괴하고 싶다.”

“거기가 어비스 갓이 생성되는 장소라고 생각해서?”

“추측만 할 뿐이다.”

“그렇군. 하지만 거긴 관리자가 지키고 있는데?”

“관리자?”

“탐사대장에게 듣지 못한 모양이군.”

“듣지 못했다. 제단이 있는 곳이 워낙 미궁처럼 복잡하다고 해서.”

“복잡하지. 그래서 난 부수고 지나갔으니까.”

“부쉈다고?”

“문제라도 있나?”

“아니, 문제는 없지. 그저 몰랐을 뿐…… 근데 관리자의 유무를 안다는 건 넌 관리자를 만나 봤다는 건가?”

“만났지. 그리고 너희가 부르는 제단이란 걸 놈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그 말은…….”

헨리의 말에 네 사람의 눈빛이 형형해졌다. 실마리를 잡은 탐정의 그것 같았다. 눈빛을 읽은 헨리가 얼른 선을 그었다.

“설마 나더러 관리자랑 싸우라는 건 아니겠지?”

“그건…….”

헨리는 일부러 비르파와 격돌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르파를 잡을 생각이긴 했지만 협상의 기본은 정보의 절제에서 시작되니까.

“난 플레이어다. 그리고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관리자를 이기지 못해. 그리고 신체 하나와 제단의 파괴를 저울에 올려놓기엔 균형이 너무 치우치지 않나?”

“겨우 신체 하나?”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그만!”

약간의 도발.

거기에 나머지 놈들이 말려들었고 라훔이 소리친다. 허나 그렇다고 라훔의 기분이 안 상한 건 아니다.

“그럼, 넌 우리한테 뭘 해줄 수 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난 그냥 플레이어일뿐이야. 필요한 게 있다면 너희가 생각해야지. 나라는 패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으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헨리는 말 그대로 갑자기 찾아온 기회였으니까.

그들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피어오른다.

그동안 헨리는 밥이 익기를 기다렸다. 밥은 뜸을 들여야 더 맛있어지는 법이니까.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긴 하다만.”

“방법이 있다고?”

“그래. 근데 너희가 내 제안에 따라 줄지는 모르겠군.”

“…일단 들어나 보지.”

그들의 눈이 다시 형형해졌고 헨리는 그제서야 뜸 들여놓은 밥을 푸기 시작했다.

“너흰 지금 여건상 제단에 갈 수 없는 환경이고 나는 출입할 수 있지. 그리고 거기엔 수많은 어비스 갓과 그들을 아우르는 관리자가 있다. 하지만 너희가 원하는 건 제단의 파괴잖아?”

“그런데?”

“그럼 답은 간단하잖아? 날 강해지게 만들어라. 나 홀로 관리자를 쓰러뜨리고 제단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은 된다. 난 요새 안에 들어와 있는 플레이어들 중 가장 강하니까.”

“가장 강하다고?”

“그래. 못 믿겠다면 증명해 줄 수도 있다.”

“어떻게?”

“그건…….”

그때였다.

헨리가 사라진 건.

아니, 정확히는 거인단의 효과가 끝나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 온 것이다.

헨리가 사라지자 당황한 거인들이 사위를 허둥거린다.

그사이, 헨리는 몸 상태를 체크했다.

허멀트의 말대로 약의 부작용으로 에테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력은 멀쩡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몸 상태를 끝낸 헨리는 즉시 마법으로 몸을 띄워 협탁 중앙에 섰다.

거인들의 시선이 테이블 중앙의 헨리에게로 모인다.

헨리가 확성 마법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말했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으음…….”

침음을 흘리는 라훔.

거인들은 헨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제 대화의 주도권은 헨리에게 있었으니까.

라훔이 손을 내려 자신의 손에 헨리를 태웠다. 그런 다음 눈앞에 헨리를 끌어 와 마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증명은 어떻게 할 거지?”

“따라와. 직접 보여 줄 테니.”

“따라오라고?”

백문이 불여일견.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보는 게 낫다.

헨리는 즉시 파티 메시지로 세력들의 수장을 한 곳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라훔을 그리로 데려갔다.

“이건…….”

거인들의 등장에 플레이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 누구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그들을 이끄는 수장들의 통제력은 생각보다 강력했으니까.

라훔의 어깨에 선 헨리가 말했다.

“잘 봐.”

헨리가 파티 메시지로 수장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뒤로 돌아.”

그 명령에 플레이어들이 군인처럼 한번에는 아니었지만 모두 뒤돌아선다. 자신이 가진 명령권을 보여 준 것이다.

이후 헨리는 몇 번 더 명령을 내려 이것이 속임수가 아님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그에 라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군.”

“확인됐으면 장소를 옮겨서 마저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

“알겠다.”

보여 줄 건 다 보여 줬다.

수장들이 갑자기 웬 거인이냐고 물었지만 협상 중이라고 했을 뿐 대답을 미뤘다.

장소를 옮긴 뒤 라훔에게 물었다.

“그래서, 대답은?”

헨리의 말에 라훔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현재 상황에서 거인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거인들에게 있어 그들의 근골은 지켜야 될 보물 같은 것도 아니었기에 솔직히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으니까.

“강해지게 만들어 달라는 건 정확히 어떤 걸 이야기하는 거지? 근골만 넘겨주면 되는 건가?”

“아니, 방법은 내가 알려 줄 테니 협조만 해 주면 돼.”

“방법?”

“그래. 우선 거인의 근골을 넘겨주고 내가 근골을 완전히 흡수하면 그때부턴 나랑 대련을 해 주면 된다.”

“대련? 누가? 우리가?”

“그럼 너희가 해야지. 최선을 다해서 날 죽일 각오로 덤벼. 그 정도면 충분해.”

“……?”

헨리의 말에 라훔은 미간을 좁혔다.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딱 이 표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거 잘 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 걱정 말고 도와주면 된다. 물론 나도 너흴 죽일 생각으로 달려들 거니까.”

“……알겠다.”

역경진화로 충돌이뮨이라는 스킬이 생겼다.

덕분에 비르파 정돈 이제 가벼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비르파는 과정일 뿐 최종 종착지가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강해져야 한다.’

모아야 될 신체들 중 최종 오의로 여겨지는 거인의 근골.

그와 더불어 탑 내 최강의 종족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거인족과의 싸움이라면 헨리는 충분히 플레이어로서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 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역경진화가 날 그리 만들어 줄 테니까.’

이윽고 라훔이 헨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본부 한편에 위치해 있는 거인병들을 위한 훈련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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