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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56화 (456/522)

2부. 56화

휘둘러진 검은 뽑히지도 않은 채 그대로 가슴의 절반을 갈라놓았다.

옆구리를 통해 빠져나온 검은 다시 사선으로 그어져 엔블의 가슴에 교차로를 만들었고 헨리는 엔블을 걷어찬 뒤 곧바로 플렌에게 검을 휘둘렀다.

채캉!!

금속 마찰음이 귓전을 때린다.

당황했지만 엔블의 가슴이 두 번째 베였을 때 정신 차린 플렌이 무기를 꺼낸 것이다.

“이……게…… 무슨……!”

털썩!

엔블이 쓰러진다.

상태가 심각해 보인다.

바로 복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힘이 이렇게……!’

느껴지는 힘의 차이.

당황스러웠다.

자신들은 중층로를 오가는 모든 이들 중 단연컨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놈은 자신들보다 한 단계…… 아니, 최소 두 단계는 강해 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엔블을 데리고 도망친다!’

고수일수록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나다. 또 어비스의 노련한 플레이어들은 절대로 도망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플렌은 가진 아이템 중 하나의 효과를 발동시켰다.

[ <독개구리의 풍음보>가 발동됩니다. ]

부풀어지는 폐.

그와 함께 맞닿은 검 너머로 입안 가득히 독무를 뿜어냈다.

‘오우거도 녹여 내는 독무다! 아무리 네놈이라도 이건 버티지 못할 테지!’

그리 생각하며 맞붙인 검에서 검을 뗐다. 엔블의 위치는 진작에 파악해 두었다. 그리 생각하며 몸을 돌린 순간.

촤아악!

등어리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

그때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독무가 먹히지 않았구나.

하지만 왜?

그러나 그런 의문에 대한 궁금증을 채 해소하기도 전에 엄청난 열기의 화염이 뿜어졌다.

모든 걸 태워 삼킬 지옥의 불꽃, 업화였다.

화화화화화!!

플렌은 그대로 엔블 위로 고꾸라졌다. 겹쳐 쓰러진 플렌은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몸을 지배하는 작열통의 끔찍한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그보다 더 플렌을 괴롭게 하는 건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리고 오랜만에 맛보는 치욕스러움 때문이었다.

상대방에게 특별한 기교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버티고 공격하고.

그 단순한 매커니즘부터가 자신과는 격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자 아주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감정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치 밧줄에 묶어 잡아당기듯 확 당겨진 그것.

다름 아닌 ‘공포’였다.

‘살아야 한다!’

본능이 그리 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외칠 수밖에 없었다.

도중 포기를 뜻하는 ‘기권’을.

화아아아!

빛이 플렌을 감싼다.

기권을 외친 플레이어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자리에 남은 건 헨리와 입도 벙긋하지 못한 엔블뿐이었다.

헨리가 남은 엔블을 보며 중얼였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 버렸군.”

엔블의 의식은 이미 끊겨져 있었다.

그럴 만 했다.

헨리의 공격은 보통 공격이 아니었고 정확히 급소만 노려진 것이었으니까.

헨리는 화산검을 휘둘러 엔블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런 다음 발로 걷어 차 녀석의 시체를 호수 저 멀리 던져 넣었다.

‘한 달이라.’

2미션지에 들어온 첫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이제 남은 건 한 달 동안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뿐.

헨리가 하늘에 띄워진 전광판을 보며 생각했다.

‘남은 시간 동안 이벤트를 열어야겠군.’

*

그로부터 약 한 달.

[ 미션을 종료합니다. ]

[ 현재 생존자 총 1명. ]

[ 축하드립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향하는 문이 개방됩니다. ]

한 달이 지났다.

생존자는 1명.

헨리였다.

한 달의 시간은 헨리에게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자그마한 이벤트를 열었다. 생존을 위해 흩어져 있는 플레이어들을 사냥하는 배틀 로얄의 이벤트를.

살육에 미쳐서 연 게 아니다.

어차피 일정 시간이 지나면 크라운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미션이 시작될 테고 그때가 되면 오히려 사냥 당하는 입장이 될 테니 그전에 선수를 친 것뿐.

그래서 처음부터 플레이어를 죽이진 않았다. 잡아도 풀어 주었다. 죽은 셈치고 숨어 있으라고.

하지만 크라운 플레이어를 사냥하라는 미션이 시작되자 숨어 있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든 이 지옥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헨리에게 덤벼들었다.

그래서 죽였다.

자기에게 덤벼드는 자들까지 살려 줄 만큼 헨리는 자비롭지 않았으니까.

미션이 끝나자 눈앞에 다음 스테이지로 향하는 문이 생겼다.

‘이제 마지막 스테이지인가.’

클레버의 정보에 의하면 중층로는 3단계로 나뉜다고 했다.

경쟁.

생존.

마지막으로 탈출.

생존을 테마로 한 2미션지는 미션 스테이지가 여러 곳이라고 했다.

말인즉 뱀의 신전에 입성하게 된 건 순전히 운이라는 말.

하지만 마지막 탈출이 테마인 마지막 스테이지는 오직 한곳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헨리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헨리가 마지막 미션지에 발을 들인다.

*

“흰머리 플레이어?”

어비스 내 최대 규모의 마녀 조합, ‘위블’.

그중 조합장, 피를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 듀오 중 한 명이 죽고 한 명만 겨우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건은 확보도 못 했고?”

“그렇다고 합니다. 어떡할까요?”

“흠.”

중층로 최강의 사냥꾼 듀오.

엔블과 플렌.

중층로에서 그들만큼 재료를 잘 수급해 오는 사냥꾼들도 없다.

조합장 피를레스는 잠시 고민하던 끝에 대답했다.

“한번 봐줘. 그간 거래해 온 정이 있는데 한번 망쳤다고 바로 위약금 물려버리면 누가 우리랑 거래하려고 하겠어?”

“알겠습니다.”

“근데 흰머리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는 그게 다야?”

“가진 독 중 가장 독성이 심한 맹독성 독무를 사용했는데도 멀쩡했다고 합니다. 또 화염 저항 레벨을 상급자 수준으로 맞춰 두었는데도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

비서의 말에 피를레스의 눈이 커진다.

“걔네가 사용하는 독, 우리가 만들어 준 거잖아?”

“예, 그렇습니다.”

“근데도 안 통했다고? 중층로 수준에서?”

“예.”

의뢰에 실패한 건 그냥저냥 넘겨들을 수 있다. 세상에 절대란 건 없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들이 사용한 독이 자신들, 마녀 조합에서 만든 독인데 그게 안 통했다면 그때는 이야기 달라진다.

피를레스의 눈이 좁혀졌다.

‘설마 놈들이 키우는 선수인가?’

엔블과 플렌 듀오가 절대 약한 놈들이 아니다.

오히려 하층에선 포식자로 군림하는 놈들이고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중층으로 넘어 오지 않고 하층과 중층로를 오가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레벨은 이미 중층민 수준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듀오를 손쉽게 처리했으니 당연히 세력들이 키우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아무래도 한번 알아봐야겠어.’

천년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만약 플렌이 발견한 흰머리 플레이어가 진짜 세력이 키우는 선수라면, 슬슬 마녀조합도 다가올 변화를 준비해야겠노라 생각했다.

*

[ 현재 위치는 <중층로 : 거인들의 요새>입니다. ]

[ 요새 어딘가에 있는 출구를 찾아 탈출하세요. ]

빛이 시야를 감싸고 공간이 바뀌었다.

중층로 마지막 스테이지.

거인들의 요새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가 거인들의 요새군.’

과연.

사전에 들었던 대로 테마는 탈출이었고 테마가 탈출인 만큼 클리어 목적도 명료했다.

헨리는 클레버가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거인들은 어비스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들 중 하나로 강력한 선민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힘도 무척 강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구요. 특히 거인들은 플레이어들을 쥐새끼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요새 곳곳에는 쥐덫 같은 함정이 많으니 조심하세요.

‘쥐덫이라.’

누군가에게 쥐새끼 취급을 당해 본 적이 없어 이런 대접은 나름대로 신선했다.

헨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위치는 평범해 보이는 주방이었다.

그런데 너무 컸다.

당연했다.

거인들이 이용하는 곳이었으니.

‘티탄도 여기선 꼬맹이 취급을 받을 것 같군.’

그 정도로 이곳은 거대했다.

그리고 헨리가 이곳에서 해야 할 것은 2가지.

‘하나는 당연히 탈출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거인의 근골이었다.

에테르의 활성과 공급의 근원이 되는 심장을 용의 것으로 교체했고 무한한 성장을 위한 뱀의 운명을 뜻하지 않게 얻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두 가지를 효율적으로 받아들일 궁극적인 그릇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거인의 근골은 어비스에서 가장 뛰어난 그릇이었다.

‘거인족보다 뛰어난 근골을 가진 종족은 잘 없다고 했으니까.’

굳이 꼽으라면 용족 정도?

하지만 순수하게 전투를 위해 타고난 신체는 거인들의 것이 더 적합했다.

그래서 클레버도 거인의 근골을 추천한 것이었고.

물론 유명하다고 해서 손에 넣는 것도 쉽다는 건 아니다.

백년 묵은 산삼이 몸에 좋은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늘 그렇듯 어비스는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 각종 성장의 단서들을 전설이란 이름으로 흩뿌리고 다녔으니까.

그때였다.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헨리는 즉시 몸을 띄워 허공을 날았다.

‘겨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충격이라니.’

초반엔 괜찮겠지만 이런 환경에 계속 노출된다면 육체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이 쌓일 것이다. 그리 되면 컨디션 난조도 동반될 테고.

‘대책이 필요하다.’

헨리는 은신 마법을 사용해 몸을 감추고 충격파가 몸에 쌓이지 않도록 허공을 날았다.

그즈음 묵직한 발소리의 주인인 어느 이름 모를 거인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저녁엔 또 뭘 만들어 내놓는담.”

거인의 혼잣말.

그러나 고작해야 혼잣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바로 마력으로 고막을 보호했다.

‘방심할 수가 없군.’

허나 이마저도 임시방편일 터.

제대로 된 보호를 하기 위해선 혈라은행에 클레버가 맡겨 놓은 ‘거인 안전장비’나 허멀트에게 비슷한 물건을 지원받아야 했다.

주방에 나타난 거인은 하얀 빵모자에 갈색 콧수염이 인상적인 거인이었는데 그는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콧노래와 함께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눈이 한 개라는 걸 제외하면 영락없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끄아아아아아!!”

요리하던 거인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마력으로 고막을 보호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이 핑핑 돌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높은 비명이었다.

짧은 비명을 지르던 그는 이내 곧 아일랜드 식탁 위에 있던 반죽 밀대를 들고서 씩씩 성을 내기 시작했다.

“이놈의 쥐새끼! 또 나타났구나!”

거인이 분노한 이유.

다름 아닌 식료품 저장고 안에서 ‘쥐새끼’라 불리는 플레이어를 발견해서였다.

휘이이이이!!

반죽 밀대가 거대한 파공음을 내며 이름 모를 플레이어에게 휘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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