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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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독지체 ]
- 등급 : ???
- 설명 : 모든 독에 절대적인 저항력을 갖고 있는 몸, 동시에 신체의 모든 것이 독성을 띠고 있는 체질.
태어날 때부터 이런 체질을 타고 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특이한 경우로도 독에 대한 내성을 가질 수도 있다. 허나 그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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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독지체.
그것이 헨리가 새로이 손에 넣은 스킬의 이름이었다.
‘만독지체라…….’
가우스 사람인 헨리로서는 만독지체란 단어 자체를 처음 본다.
하지만 만독지체가 가진 옵션이 자신이 아는 어떤 아티팩트와 매우 흡사함은 알았다.
‘베놈의 심장.’
바로 베놈의 심장이 그랬다.
원래는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남긴 유산이었지만 등신 같은 친구 아들 때문에 환생 후 결국 자기가 찾아 먹어야 했던.
‘뭐 결국엔 다시 구해다 놓았지만.’
헨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자신의 몸 안에 돌고 있는 맹독이 묘하게 반가웠다.
그때였다.
스킬 정보 창을 닫은 헨리의 시선에 무엇인가가 들어온 건.
그것을 본 헨리가 곁에서 기다리고 있는 루메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신전 탐사는 이쯤에서 중지해야 될 것 같군.”
“예? 왜요?”
“너는 기억에 없겠지만 난 신전의 진짜 주인과 만나고 오는 길이거든.”
“네?! 신전의 진짜 주인이라뇨? 이무기가 진짜 주인이 아니었던가요?”
“그래. 그나저나 저길 봐라.”
헨리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
그곳에는 아까 전에는 보지 못했던 웬 보물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루메인이 다가가 그것을 열자 한 번 더 까무러쳤다.
“헤, 헨리 님! 이것 좀 보세요!”
상자를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루메인.
상자 안에는 루메인이 그토록 원하던 이무기의 심장 일부와 이무기의 각종 부산물들이 들어 있었다.
‘메두사 녀석…….’
생각보다 일처리가 꼼꼼하다.
헨리가 물었다.
“그 정도면 되나?”
“네! 그럼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쳐요!”
“그래. 그럼 이제 나가자.”
“나가요?”
“볼일도 다본 마당에 남의 집에 계속 죽치고 있는 건 매너가 아니니까.”
“아, 그쵸그쵸. 근데…….”
나가자는 말에 루메인이 슬쩍 헨리의 눈치를 본다.
“왜 그러지?”
“그…… 사실 저는 이제 목적을 완수했거든요.”
“아, 그렇군.”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애초에 루메인이 여기에 온 것 자체가 클리어가 아닌 이무기의 부산물을 얻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저흰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감사합니다, 헨리 님. 그래서 말인데요, 이거.”
말을 잇던 루메인이 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안에는 체력 회복정과 에테르 회복정을 비롯한 각종 약들로 가득했다.
“언젠가 제 연구의 마지막을 도와주시는 분께 드리려고 챙겨 뒀던 건데 헨리 님께서 받아 주셨으면 해서요.”
“잘 받으마.”
거절 할 이유가 없다.
루메인이 만든 의약품들은 차원상인이 취급하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으니까.
선물 전달식이 있고 난 직후, 헨리가 물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네, 얼마든지요!”
“네가 만들려는 약, 뭔지 알려 줄 수 있나?”
“아, 제가 만들려는 약이요? 쿡쿡, 참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루메인은 의외로 거부감을 띠지 않았다. 오히려 왜 이렇게 늦게 물어보냐고 타박할 정도.
“큼큼, 제가 만들려는 약은 불로불사의 약입니다.”
“불로불사?”
“네. 근사하죠?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만드는 건 불로장생이 아니라 불로불사니까요.”
불로장생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걸 말하고 불로불사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약을 말한다.
불로장생과 불로불사……
둘 다 헨리가 그다지 좋아하는 단어들은 아니었다.
과거에 어떤 녀석이 저런 비스무리한 걸 만들다가 가우스 대륙 전역을 말아먹을 뻔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동기가 중요했다.
“이유가 뭐지?”
“동반자 때문입니다.”
“동반자?”
“마지막이니까 헨리 님에게만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때였다.
말을 잇던 루메인의 등에 무언가가 솟기 시작한 건.
루메인의 등에 솟은 것.
다름 아닌 날개였다.
그것도 꽤나 익숙해 보이는 날개.
“요정이었나?”
“엇, 요정에 대해 아세요?”
“내가 살던 세상에도 요정은 존재했다. 너보다 훨씬 작지만.”
“얼마나 작은데요?”
그 물음에 검지와 엄지를 좁혀 대답했다.
“하하, 저흰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술로 덩치를 좀 키운 편이긴 해요. 있는 그대로 다니니까 자꾸 난쟁이 취급을 받더라구요.”
“그렇군. 그래서 네가 요정족이라는 것과 동반자, 그리고 불로불사가 무슨 상관이지?”
“아참, 말을 하다 말았네요. 저는 이케의 마지막 요정족입니다. 그리고 제 동반자는 수인인데…… 지금은 이렇게 잠들어 있습니다.”
루메인이 말과 함께 두 손을 모으자 루메인의 손아귀에 웬 얼음덩어리 하나가 나타났다.
그건 단순한 얼음덩어리가 아니었다.
안에 루메인의 동반자가 들어 있는 일종의 관이었다.
“강제로 동면시킨 건가?”
“네, 뭐.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의 병이 너무 빨리 퍼져 버려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병과 동면, 그리고 동반자.
대충 어떤 사정인지 알 것 같았다.
“너희 둘이 이케의 마지막 생존자들인가?”
“그렇습니다.”
“세상이 멸망한 이유는…… 안 봐도 뻔하군.”
“……하하.”
어색하게 웃는 루메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어비스의 만행을 알게 되었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래서 궁금했다.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복수…… 처음엔 복수도 생각했었죠. 어비스 때문에 제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잃었으니까. 하지만…….”
루메인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복수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이 녀석이 더 중요해서요.”
“침착하군.”
“복수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지만 이 친구는 한번 죽으면 영영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물론 사령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하지만…….”
루메인은 말끝을 흐렸다.
뭐가 됐든 사령술을 택하지 않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래서 더더욱 존중했다.
“생명은 살아 있을 때가 중요한 거니까.”
“하하, 그렇죠.”
“그럼 동반자의 치료에 성공하면 그때부턴 복수를 시작할 건가?”
“여전히 고민 중이긴 합니다만 복수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 친구의 의견도 중요하니까요.”
“현명하고 사려 깊군.”
“헨리 님은 계속 나아가실 거죠?”
“그래. 나는 내 세상을 구하고 탑의 주인 되는 놈들을 박살 낼 생각이다.”
“후후, 딴 건 몰라도 마지막은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네요.”
말을 마친 루메인이 떠날 채비를 했다.
“모쪼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부디 이루시려는 일, 꼭 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너 또한.”
“함께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죄송할 필요는 없지. 그런 걸 죄송하다고 할 만큼 우리가 각별했던가?”
헨리의 말에 루메인이 크큭 웃는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그럼.”
[ 파티가 해체되었습니다. ]
파티가 해체되었다.
그리고.
화아아!
루메인은 기권을 선언했다.
위로 향하는 층로에서 기권을 선언하면 언제든지 층로의 입구로 되돌아 갈 수 있기에.
약을 제조하는 과정은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하니 장소를 옮기는 게 맞았다.
이윽고 루메인이 사라졌고 자리에는 헨리 홀로 남게 되었다.
외롭지는 않았다.
그런 인간스러운 감정.
초월적 존재가 되는 과정에 모두 날아가 버렸으니까.
신전을 나서기 전 헨리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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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모리스 ]
- 신분 : 하층민, 이레귤러
- 특성 : <전설 추적자>
- 공격력 : 36
- 방어력 : 36
- 관통력 : 36
- 친화력 : 36
- 저항력 : 19
- 지배력 : 36
- 어비스 포인트 : 825,025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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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뭔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모든 스탯들이 20%씩 상승해 있었다.
‘왜지?’
관련된 안내는 받은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스탯이 올랐다는 건……
‘역경진화 때문인 건가.’
일 리가 있었다.
애초에 역경진화로 손에 넣은 만독지체도 관련 안내를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허나 확실히 이것만 있다면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삼강이 메두사의 서포트에 목을 매는지도.
상태창 확인을 마친 헨리는 뱀 신전을 나섰다.
나서는 길에 헨리는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다름 아닌.
‘뱀이…….’
더 이상 덤벼들지 않는다는 것.
메두사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일까?
여왕의 눈이 가진 관조 효과로 스킬로 숨은 뱀들이 보였으나 이상하게도 녀석들은 헨리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많은 걸 얻어 가는군.’
마침내 입구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환한 햇살이 쏟아진다.
그런데 신전 입구에 못 보던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플렌과 엔블이었다.
두 사람은 입구에 캠핑 의자 같은 걸 놓고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간만의 인기척에 플렌이 뒤를 돌아본다.
“오호, 드디어 나왔구만.”
“얼레? 진짜네? 근데 왜 이렇게 멀쩡해? 설마 도망친 건가?”
두 사람의 아는 체에 헨리가 물었다.
“날 아나?”
“모르지.”
“우리가 널 어떻게 알아?”
헨리의 물음에 태연히 대꾸하는 두 사람.
그렇기에 의아했다.
“날 모르면서도 기다렸다고?”
“응, 그럼 안 되나?”
“우리 말고도 신전에 손님이 있다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 아잇, 놓쳤다!”
낚싯대를 당기던 물고기가 도망가자 엔블이 인상을 찌푸리며 낚싯대를 놓았다.
그에 플렌도 낚싯대를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신전에서 재미는 좀 봤나?”
“봤겠냐? 봤으면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잖아.”
“하긴.”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객인 걸까?
그때였다.
슈아아아!
헨리의 목이 있던 지점에 정확히 날카로운 창이 뻗어졌다.
물론 닿지는 않았다.
헨리가 반 박자 먼저 움직여 고개를 틀었으니까. 헨리가 자신이 있던 자리에 뻗어진 창날을 손으로 붙잡으며 물었다.
“무슨 짓이지?”
“오우, 그걸 피해?”
“최소 이무기한테 도망친 건 아니란 말이네?”
분명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공격이라니.
헨리가 다시 한번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분명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게 무슨 무례지?”
“적의? 무례?”
그 말에 엔블과 플렌이 와하하 웃었다.
“재밌는 친구네. 당연히 적의가 느껴지지 않지. 적의란 건 적대심이 있어야 하는 건데 우리가 너한테 왜 적대심을 느끼겠어? 적대심이란 건 최소 서로 안면이라도 있어야 생기는 거지.”
“맞는 말이야. 우린 그저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일?”
“그래, 일. 우린 사냥꾼들이다. 의뢰인이 부탁한 걸 대신 사냥해서 가져다주는.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 순간.
푸쿠학!
날카로운 피륙음이 모두의 귓전에 울렸다.
화산검의 칼날이 엔블의 가슴팍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엔블이 관통된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헨리가 말했다.
“난 생겼다, 적의. 그러니 불만 갖지 마라.”
푸화악!
헨리의 검이 다시금 휘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