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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54화 (454/522)

2부. 54화

“무슨!”

막을 새도 없었다.

고작 손가락 튕김 한 번에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는 계란 부서지듯 부서져 버렸으니까.

[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가 파괴되었습니다. ]

[ 아이템 파괴로 인해 <고리대독>이 상환을 시작합니다. ]

아이템이 파괴됐다.

그와 동시에 독주머니에 저장되어 있던 독이 뿜어지기 시작했고.

[ <저항력> 스탯이 <고리대독>에 대한 저항에 실패합니다. ]

[ <중독> 효과가 적용됩니다. ]

[ 모든 스탯 효과가 99% 감소합니다. ]

[ 해독이 필요합니다. ]

[ 해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매 초 전체 체력의 3%에 해당하는 체력 피해를 입습니다. ]

말도 안 되는 알림들이 헨리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허리춤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아르고스의 독이었구나?”

“끄으윽!”

태연하게 말하는 메두사와는 달리 헨리는 전신을 옭아매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당연했다.

독주머니 안에 쌓여 있던 독들은 처음에야 버틸 만한 수준이었지만 아르고스와 전투를 치르면 치를수록 맹독 스택이 누적되어 결국엔 감히 해독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헨리의 무릎이 결국 무너졌다.

눈은 혈관이 터져 벌개졌으며 입술은 고통을 참기 위해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피가 샜다.

식은땀은 기본이었다.

바이러스처럼 퍼진 맹독들은 헨리의 모든 장기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빠른 속도로 차감되는 체력들.

어비스의 시스템은 게임의 그것을 표방했지만 그것을 적용받는 플레이어들은 게임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고통에 몸부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초당 3%의 데미지는 가히 아찔한 것이었다.

헨리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약 33초.

이제 겨우 7초 정도가 지났다.

“흐응, 내가 터뜨린 게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였구나? 어쩐지, 아르고스를 상대한 것치곤 너무 멀쩡한 것 같더라.”

“너……!”

“그래도 덕분에 좋은 걸 얻게 되겠네. 이참에 눈도 함께 줄 테니 다시 깨어나면 새로운 눈으로 똑똑히 변화를 확인해 봐. 그때가 되면 뱀의 운명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될 테니까. 뭐, 죽으면 다 부질없는 것이지만.”

“끄으으윽!”

말을 마친 메두사는 또 다른 금빛 구슬을 몸에서 뽑아 고꾸라진 헨리에게 떨어뜨려 주었다.

헨리에게 약속했던 ‘눈’이었다.

허나 헨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메두사의 말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끄으윽……!”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주변 소리도 점차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털썩!

헨리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흐음.”

메두사는 쓰러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헨리를 보며 팔짱을 낀 채 한쪽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흥미로운 걸 구경하는 표정.

메두사의 눈이 활처럼 휜다.

“어디 한번 보자고. 네가 중층을 뒤집을 새로운 세력이 될지, 아님 그냥 개죽음 당할 운명인지. 뭐…… 뭐가 됐든 그분 마음에 들어야 할 테지만 말이야.”

딱!

메두사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사위가 빛으로 뒤덮였다.

*

뜨겁다.

마치 용암 속에 담겨진 것처럼.

살면서 꽤 많은 고통을 겪어 봤지만 이것과 비슷한 고통을 받던 때를 찾으라면 그 옛날, 마왕 아래서 거대한 군단을 지배하던 놈들 중 하나인 맹독군주, ‘베놈’의 독에 당했을 때였다.

헨리가 인간이었던 시절.

베놈의 독에 당하고 자그마치 일주일이나 사경을 헤맸다.

모두가 헨리의 죽음을 예상했다.

그만큼 베놈의 독은 가우스의 모든 차원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독이라고 평가되었으니까.

허나 헨리는 살아났다.

성녀를 비롯한 수십 명의 고위 사제들이 밤낮으로 달라붙어 신성력을 쏟아낸 것도 회생의 이유라면 이유였지만 결정적으로 헨리가 살아날 수 있었던 까닭은……

‘내 스스로가 독과 싸웠기 때문이다.’

헨리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의식을 차렸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

육체는 너무 나약한 것이라 너무 큰 고통을 받게 되면 알아서 고통을 잊게 해 주는 물질을 분비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그럴 땐 기계의 스위치를 꺼 버리듯 의식 자체를 끊어 버리니까.

그리고 보통의 존재라면 여기서 모든 것이 멈춘다.

의식이란 그런 거니까.

허나 헨리는 아니었다.

아니, 헨리뿐만이 아니라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의식을 두 개로 분리하게 된다.

육체가 깨어 있을 때 사용되는 의식과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용하지 못할 ‘무의식’의 영역을.

그런 의미에서 헨리는 육체가 가진 의식이 암전되었고 진짜 정신에 해당하는 무의식으로 눈을 떴다.

그리고 잠든 육체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폈다.

‘가히 베놈과 비견될 만하구나.’

감탄스러웠다.

그 옛날, 가우스 최고의 대장장이 불카누스와 만들었던 ‘독금’보다도 더 지독한 독이었다.

이 정도 독이라면 설령 드래곤이 와도 버티지 못할 것이리라.

그런 독이 자신의 육체를 점령했다.

허나 이상하게도 헨리는 자신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

헨리는 그것을 느낌대로 천천히 따라갔다.

그것은 검게 물든 육체의 파도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황금섬과도 같은 것이었다.

심장.

그것은 심장에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지만 단 한 곳만큼은 진짜 자신의 것이 아닌 곳.

스카샤가 이식해 준 심장.

그곳이 황금섬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생명의 불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스카샤의 심장일까?

아니었다.

헨리에게 생명의 끈을 잇고 있는 건 스카샤의 심장 위에 펼쳐져 있는, 금빛 구슬이었다.

헨리는 헤엄치듯 그것에게 다가갔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보듬는 태양 같았다.

두 손으로 감싸 쥐면 꼭꼭 숨겨질 것 같은 그것을, 헨리는 두 손으로 꼭 안았다.

그러자 작디작은 그곳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헨리는 그것을 꼭 쥐고 의식을 연결했다.

그러자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존재감의 정체를.

그것은 뱀이었다.

자신의 꼬리를 문 채 끊임없이 구슬 안에서 돌고 있는 어리석어 보이는 뱀.

헨리는 그게 어떤 뱀인지 알았다.

‘우로보로스……!’

무한의 궤도를 그린다는 신성한 뱀, 우로보로스.

어떤 이들에게는 용으로 추앙받는다고 알려진 그것은 크기는 작았지만 확실히 우로보로스가 맞았다.

그때, 헨리와 우로보로스의 시선이 겹쳐졌고 우로보로스의 몸이 아까보다 더 맹렬하게 회전하며 찬란한 금빛이 뿜어졌다.

화아아악!

뿜어진 빛은 헨리의 몸을 덮친 맹독의 파도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심장으로부터 출발된 찬란한 파동은 머리와 어깨, 가슴을 거쳐 발끝까지 그 어느 곳도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뻗어져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잠식시킬 줄로만 알았던 맹독의 검은 파도는 그렇게 패배하고 말았다.

밀리고 밀려 변방의 끝에서 아르고스가 그리되었던 것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는 작고 검은 구슬이 되어 한데 뭉쳐졌다.

아니, 강제로 뭉쳐졌다.

그리고 개구리가 사냥하듯 순식간에 우로보로스가 있는 쪽으로 당겨져 집어삼켜졌다.

그러자……

[ <모든 뱀들의 수호신>이 당신의 그릇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

[ 당신은 <모든 뱀들의 수호신>의 인정을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

[ <스킬 : 역경진화>를 획득하셨습니다. ]

[ <역경진화>가 발동됩니다. ]

[ <모든 뱀들의 수호신>이 당신의 역경을 인정하고 탈피를 허락합니다. ]

[ 탈피를 시작합니다. ]

눈앞과 귓전에 아카이브 알림들이 쏟아졌고 다시 한번 금빛 이채가 헨리를 덮쳤다.

*

“……님.”

소리.

“……리님.”

익숙한.

“……헨리 님!”

“으음.”

익숙한 목소리.

그 소리에 헨리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옆에는 루메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헨리를 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여긴……?”

“여기 거기에요. 저희가 뛰어내렸던 절벽 위.”

“절벽 위라고?”

“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허나 사실이었다.

헨리는 루메인과 함께 정말로 처음에 맞닥뜨렸던 절벽 위에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루메인이 말했다.

“참 이상한 일이에요. 정신을 차려 보니 저희가 여기 있는데…… 웃긴 건 그사이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기억이 없다고?”

“예.”

그 말에 헨리는 루메인이 스테노에 의해 잠시 석화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설마 메두사가 우릴 이리로 되돌려 놓은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써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하나.

바로 상태 체크였다.

헨리는 우선적으로 신체 변화부터 확인했다.

그 순간, 헨리의 눈에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헨리의 몸을 타고 흐르는 수많은 에너지들.

그중에는 피도 있었고 마력도 있었으며 에테르 또한 있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헨리 자신의 몸뿐만이 아니었다.

루메인도 마찬가지였다.

루메인의 몸에 흐르는 다양한 에너지들이 헨리의 눈에 보였다.

그때였다.

[ <여왕의 눈>이 발동 중입니다. ]

‘여왕의 눈?’

아카이브의 알림.

그 말에 헨리는 스킬창을 열어 새로이 추가된 것들을 확인했다.

추가된 것은 3개.

헨리는 그중 ‘여왕의 눈’이라 불린 것의 정보를 확인했다.

++

[ 여왕의 눈 ]

- 등급 : ???

- 설명 : 감히 여왕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하사한 눈.

여왕의 눈은 3가지 효과를 가지며,

<위압>으로 상대방의 사기를 꺾고 <관조>로 모든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저주>로 상대방에게 <석화>상태를 유발시킬 수 있다.

++

‘내게 준다는 눈이 이걸 말하는 거였나…….’

여왕.

아마도 메두사를 뜻하는 말일 테지.

메두사가 아주 큰 선물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게 어느 순간부터 라의 눈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라의 눈을 대신할 수 있는 이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뿐일까.

‘관조’만 있어도 고맙게 생각했을 텐데 여왕은 통 크게도 위압과 석화라는 어마무시한 옵션을 추가해 주었다.

헨리는 몇 번 정도 눈을 깜빡인 끝에 어떤 식으로 여왕의 눈을 사용할 수 있는지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무에게나 석화의 저주가 내려지면 곤란하니까.’

헨리는 이어서 ‘역경진화’의 정보를 확인했다.

++

[ 역경진화 ]

- 등급 : ???

- 설명 : 모든 뱀들이 가지고 태어났다는 아주 진귀한 운명.

죽음의 위기에 닥쳤을 때 플레이어는 ‘모든 뱀들의 수호신’이 판단하여 플레이어를 위태롭게 만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신체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

역경진화!

의식의 세계에서 봤던 바로 그 스킬이었다.

‘이게 바로 그 뱀의 운명이라는 거군.’

처음에 메두사가 선수를 키워 준다고 했을 때 어떤 식으로 선수를 키우는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역경진화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마지막 스킬은…….’

마지막 스킬.

그것은 역경진화에 의해 손에 넣은 것으로 사료됐다.

헨리가 그것의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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