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52화
“이무기에 메두사에 히드라라…….”
재밌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이무기와 히드라가 메두사의 자식들이라니.
아무렴 어떠랴.
어비스는 수많은 차원들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든 거대한 탑이기에 이런 조합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키에에…….”
“키르르…….”
아홉 개의 머리는 각기 다른 울음소리들을 내고 있었다.
거기에 푸른 눈빛과 검은 비늘, 거기에 대비되는 하얀 뱃가죽까지……
척 봐도 단단해 보인다.
‘쉽진 않겠어.’
허나 걱정하지 않는다.
이번에 허멀트에게서 지원받은 것들 중에는 꽤 쓸 만한 무기도 하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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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푸줏간 주인의 칼 ]
- 등급 : 특별, 장인, 한, 생존
- 설명 : 아무나 살아갈 수 없는 화산지의 가장 큰 푸줏간 주인의 칼. 그의 검은 끓는 용암조차 견디며 오히려 열을 가하면 가할수록 단단해진다고 한다.
불 속성을 가진 상대에게 공격력과 절삭력, 관통력이 200% 상승하며.
화염 계열 베이스 스킬 사용 시 칼의 공격력과 파괴력, 화염 속성 계열 스킬들의 모든 위력이 300% 이상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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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 도롱뇽의 바늘이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다면 이것은 베기에 특화된 무기였다.
게다가 옵션은 용암 도롱뇽의 바늘보다 훨씬 좋았다. 헨리는 이것을 화산검이라 부르기로 했다.
화산검의 옵션을 떠올린 헨리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외상 거래와 투자는 차이가 다르네.’
수동적 태도와 능동적 태도의 차이랄까.
그때였다.
아르고스의 아홉 머리 중 두 개가 양방향으로 날아온 건.
헨리는 바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뛰어오른 방향으로 다시 두 개의 머리가 날아들었다.
공중에 붕 뜬 상황.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움직일 수 없을 테니 완벽한 사각이었다.
아르고스의 의도였다.
허나 이런 식의 전투는 헨리도 꽤 겪어 봤다.
그렇기에 알면서도 위로 뛰어올랐다.
그도 그럴 게 헨리는 허공을 발판으로 만드는 마법을 알 수 있고 그런 마법을 숨 쉬듯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였으니까.
헨리가 허공을 딛고 한 번 더 뛰어오르자, 아르고스는 다시 두 개의 머리를 화살처럼 쏘아 보냈다.
허나 헨리는 한 번 더 공중제비를 돌아 그것들을 회피했고.
[ <업화>가 발동됩니다. ]
화악!
화산검에 모든 것을 징벌할 지옥불꽃을 피워 올렸다.
공중제비와 함께 불꽃이 피어오르자 허공에 쥐불놀이가 그려진다.
헨리는 마차 바퀴처럼 그대로 다시 돌아 회전력을 실어 아래로 내리쳤다.
촤과과과곽!
자르기 시작한 첫 번째 머리.
그런데 비늘이 어찌나 두껍고 단단한지 회전력을 담은 공격이 아니었다면 절반도 채 베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마력으로 예기를 증가시켰지만 턱도 없었다. 아니, 이제 마력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게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검을 회수하고 철수하려던 찰나, 틈을 놓치지 않은 다른 머리가 헨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려 들어왔다.
콰직!
간발의 차.
헨리를 노리던 머리는 우습게도 절반쯤 잘린 자신의 다른 머리의 목을 물어 버렸다. 아니, 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그득!
그 무시무시한 치악력으로 완전히 목과 머리를 분리시켜 놓았다.
‘조금도 망설임이 없군.’
만약 저 아가리 속에 자신이 물렸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리라.
그 순간, 간신히 몸을 빼낸 헨리를 향해 머리 네 개가 돌진해 들어왔고.
“쯧!”
바람 마법까지 동원해 탈출하려 했으나 대기 중이던 다른 머리에 의해 꼼짝없이 놈들에게 포박당할 수밖에 없었다.
“키르르…….”
그 옛날 인간이던 시절, 어느 산지기 영감이 그랬다.
구렁이처럼 거대한 뱀은 물려 삼켜지는 것보다 휘감겨 죽는 것을 더 겁내야 한다고.
영감의 말 대로였다.
아르고스의 조이는 힘은 대단했다.
하층에서 진작에 방어력과 저항력 스탯을 맞춰 오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몸이 터져 죽어 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그 순간, 헨리는 허멀트에게 받은 아이템들 중 하나의 옵션을 떠올리고 아이템 효과를 발동시켰다.
[ <빈약한 고집불통>이 발동됩니다. ]
피이잉!
아이템 효과가 발동되자 헨리의 몸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곧 철골 같은 갑옷들이 생겨나 헨리를 감싸 안았다.
그때가 되서야 헨리는 비로소 아르고스의 끔찍한 압박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헨리는 빈약한 고집불통의 아이템 정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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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약한 고집불통 ]
- 등급 : 특별, 장인, 의지
- 설명 : 뼈대를 중요시 했던 어느 고집불통의 건축가로 만든 보호구.
방어구가 가져야 할 방어력이나 저항력은 전혀 없지만 살아생전 뼈대를 중요시 여겼던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최초의 형태만큼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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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고집불통.
처음엔 이 아이템이 가진 설명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방어구면서 방어력도 저항력도 없는데 뼈대만큼은 유지시킨다니.
하지만 허멀트가 괜히 이것을 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르고스의 조이기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왜 허멀트가 이것을 자신에게 추천한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차원상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군.’
필요한 물건을 정확히 예측하여 추천하는 것. 허멀트는 충분히 거상으로서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듯했다.
한편 아르고스는 자신의 가죽이 터져라 헨리를 조였다.
어찌나 세게 조이는지 헨리와 맞닿아 있는 부위가 벌겋다 못해 가죽이 찢어지려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빈약한 고집불통’의 아이템 효과는 꺾지 못했다.
헨리는 그사이에 체력을 회복했고 슬슬 이곳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곧바로 화령자수의 망토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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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령자수의 망토 ]
- 등급 : 정령, 특별, 자연
- 설명 : 세상을 자유롭게 노니는 불꽃새, 화령자수의 깃털로 만든 망토.
화염 계열 베이스 스킬 사용 시 망토 전체에 사용된 스킬과 같은 불꽃이 피어오르며 불꽃이 유지되는 동안 방어력과 저항력이 300%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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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아래까지 가리는 높은 깃에 머리를 뒤집어써도 남을 만큼 큰 후드.
그와 더불어 발목까지 오는 긴 로브는 깃털로 만든 게 맞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표면 촉감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헨리는 그것을 금방 착용했다.
아르고스에 휘감겨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어비스의 아이템은 입겠다는 의지만 발현하면 거짓말처럼 몸에 걸칠 수 있었으니까.
[ <업화>가 발동됩니다. ]
화륵!
스킬이 발동됨과 동시에 헨리의 전신에서 지옥불이 치솟았다.
“키에에에에에!!”
그와 동시에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아르고스의 압박이 순식간에 해체됐다.
헨리는 녀석의 몸 일부를 발판 삼아 한 번 더 뛰어올랐고 화산검을 들었다.
화륵!
화산검에 다시 한번 불꽃이 피어오른다.
남은 머리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차 재밌는 광경을 발견했다.
좀 전에 목이 물려 양단난 줄 알았던 아르고스의 목이 재생되기 시작한 것.
‘정말 히드라가 맞긴 맞나 보군.’
생긴 것만 비슷하지 않았다.
가진 성질 또한 비슷했다.
잘됐다.
정말 자신이 아는 그 히드라와 성질이 같다면 해결책을 알고 있었으니까.
헨리는 즉시 재생이 시작된 머리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무기를 바꿔 들었다.
바꿔 든 무기는 용암 도롱뇽의 바늘.
헨리는 그것을 창처럼 들어 재생 중인 머리에 쑤셔 박았고.
[ <업화>가 발동됩니다. ]
바늘의 끝에서 모든 것을 태워 버릴 지옥불꽃을 뿜었다.
“키에에에에!!”
“카아아아아!!”
채 돋지도 않은 머릿속으로 뿜어지는 지옥의 불꽃. 속살에 퍼지는 작열통의 위력은 다른 머리들이 대신 입증해 주었다.
고기 굽는 냄새에 이어 탄내가 진동을 한다.
한 박자 늦게 들이닥친 머리들을 따돌리고 다시 확인해 보니 새카맣게 타버린 환부에는 더 이상 새 머리가 돋아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머리는 8개.
[ <아르고스>가 분노합니다. ]
머리 하나를 잃은 아르고스는 분노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머리 하나를 날려먹었으니.
헨리는 다시 화산검으로 검을 바꿔 쥔 후 하늘로 솟았다.
분노한 아르고스의 여덟 머리 중 네 개가 헨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머지 넷은 뒤에서 매서운 눈으로 헨리를 주시했다. 전방과 후방을 나눠 각각 역할을 나누겠다는 뜻.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 여덟 개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마치 누군가의 지시라도 받는 것처럼.’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이 아는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들 전부가 서열전을 벌여 진짜 대가리를 추려 냈으니까.
말인즉, 저 중 지시를 내리는 ‘뇌’의 역할을 하는 녀석이 있다는 말.
‘그놈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때, 후방에서 엄호를 보고 있던 네 놈 중 한 놈의 입에서 보랏빛 증기가 뿜어지더니.
푸화화화화화!!
놈의 입에서 맹독으로 이루어진 숨결이 뿜어졌다.
[ <아르고스>가 <포이즌 브레스>를 사용합니다. ]
예상대로 그것은 포이즌 브레스가 맞았다.
하필이면 머리를 피해 달아난 장소와 크로스 오버 되어 직격탄으로 맞았다.
[ <저항력> 스탯이 <포이즌 브레스>로부터 저항합니다. ]
[ <저항력> 스탯이 <포이즌 브레스>로부터 저항합니다. ]
[ <저항력> 스탯이 <포이즌 브레스>에 대한 저항에 실패합니다. ]
[ <중독> 효과가 적용됩니다. ]
[ 모든 스탯 효과가 30% 감소합니다. ]
[ 해독이 필요합니다. ]
[ 해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매 초 전체 체력의 0.05%에 해당하는 체력 피해를 입습니다. ]
‘제길!’
헨리의 저항력 스탯은 최선을 다해 아르고스의 포이즌 브레스에 저항했다.
하지만 마냥 스탯으로만 버티기에는 아르고스의 독이 너무 강했고 또 뿜어지는 양 또한 많았다.
‘초당 0.05%면……!’
대략 30분 정도 뒤면 자신은 사망에 이를 것이다.
헨리는 황급히 해독제를 꺼내 섭취했다. 하지만.
[ <해독제>의 레벨이 낮아 중독 상태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허멀트가 준 해독제보다 아르고스의 맹독이 가진 독성이 더 강했다.
‘어떡하지?’
그때였다.
[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리대독>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아카이브가 아이템 사용 여부를 물어 온 건.
헨리의 머릿속에 순간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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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 ]
- 등급 : 특별, 욕심, 치유, 거래
- 설명 : 세상에는 돈에만 이자가 붙는 게 아니다. 시간을 늦추는 것도, 명줄을 늘리는 것도 대가만 치르면 전부 할 수 있는 일이다.
중독 상태에 빠질 경우, <고리대독>을 사용할 수 있다.
고리대독을 사용하게 될 경우, 독주머니가 플레이어에게 적용된 중독 효과를 가져가며, 전투가 끝난 뒤 독주머니에 누적된 중독 효과를 50% 증가시킨 후 한 번에 플레이어에게 적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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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게 있었지!’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
그 안에 담겨진 고리대독의 효과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었다.
하지만 목숨이 오가는 지금, 양날의 검이든 뭐든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사용한다!”
[ <고리대독>이 발동됩니다. ]
슈아아아!
알림과 함께 고리대금업자의 독주머니가 헨리에게 스며든 맹독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