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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49화 (449/522)
  • 2부. 49화

    에테르라면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힘이 에테르가 아닌 마력이라면 그때부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마력과 마법 그 자체였던 헨리이기에 아무리 입탑을 위해 제공된 육체를 가졌다 한들 본질 자체가 변할 순 없는 것.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쿠구구구!

    “헤, 헨리 님!”

    “알고 있다.”

    마침내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지면 저 아래서 느껴지는 힘의 파동.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른 속도로 위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헨리는 루메인을 당겨 자신의 플라잉 볼 속으로 루메인을 끌어왔다.

    그런 다음 마법을 사용해 자신의 앞에 도미노 같은 돌기둥들을 쉴 새 없이 만들어 세웠다.

    당연히 도망칠 줄 알았던 헨리가 퇴각하지 않자 루메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쩌시려구요? 설마 정면으로 받아내시게요?”

    그 말에 헨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그렇게 세운 돌기동의 수가 백여 개를 넘어갈 무렵, 헨리는 용암 도롱뇽의 바늘을 꺼내 칼날에 예기를 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때였다.

    쾅!

    쾅!!

    콰앙!!

    콰아아앙!!!

    저 멀리 돌기둥 부서지는 소리.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까워져 갔고 또 커져만 갔다.

    “어, 어! 와요! 온다! 오고 있어요!”

    “보고 있어.”

    그 소리가 마침내 귓전에 때려 박힐 때쯤, 지하 저 아래 숨어 있던 이무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뱀과 용 사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녀석은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지낸 건지 뿜어내는 존재감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찰나의 순간.

    헨리와 이무기의 눈이 마주쳤고.

    [ <거인의 힘>이 발동됩니다. ]

    스킬의 발동과 함께 헨리는 도롱뇽 바늘을 창처럼 내세웠다.

    촤좌좌좌좌좍!!

    살가죽이 찢어지는 소리.

    그와 함께 밝았던 사위가 어둠으로 물들었고 축하고 습습한…… 허나 묘하게 뜨거운 기운이 헨리와 루메인을 덮쳤다.

    쿠구구구구구!

    두 사람은 어둠에 삼켜졌다.

    허나 진동은 계속 됐고 세상이 여러 방향으로 뒤집혔다.

    그렇게 얼마 뒤,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사라졌을 무렵 루메인은 꼭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헨리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손은 여전히 꼭 쥔 채.

    그 순간, 어둠으로 가득했던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고.

    “어, 어?”

    밝아진 주변을 본 루메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 여긴……?”

    “그래. 이무기의 몸속이다.”

    “에에에엑?! 지, 진짜요?”

    헨리는 대답 대신 도롱뇽 바늘을 루메인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도롱뇽 바늘의 끝에 가죽 붙은 커다란 살점이 걸려 있었는데……

    “그, 그건 설마?”

    “입 쪽을 찔렀으니 그쪽 부근의 살점이겠지.”

    “허…… 세상에…… 이무기가 우리한테 오게 하신다더니 이걸 위해 그러신 거였어요?”

    “계속 놓치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보다, 필요한 재료가 뭐라고?”

    별로 당황한 기색도 없고 오히려 태연한 모습으로 필요한 것에 대해 묻는 헨리를 보며 루메인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은 아군이라 이렇게나 든든하지만 만약 적으로 만났다고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적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루메인이 얼른 대답했다.

    “심장 조금이랑 독샘, 그리고 뼛조각 조금요.”

    “그거면 되나?”

    “네.”

    “서두르지.”

    “왜요?”

    “뱀은 온몸이 소화기관이니까.”

    “아!”

    노닥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헨리의 말에 루메인이 품에서 채집 도구를 꺼내 들었다.

    “근데 살아 있는 채로 채집을 시작하면 고통에 몸부림 칠 텐데요?”

    “그럼 죽이는 게 낫겠네.”

    “그렇죠? 근데 어떻게 죽이시게요?”

    “내부에서 통째로 구울 생각이다.”

    “자, 잠깐만요! 그랬다가 방향을 잘못 골라서 심장 쪽을 태워 버리면 어쩌시려구요?”

    “그럴 일은 없다.”

    “없다구요?”

    “어디가 꼬리 방향인지 어디가 머리 방향인지는 알아 뒀으니까.”

    헨리는 그 말과 함께 들어 올린 도롱뇽 바늘로부터……

    [ <업화>가 발동됩니다. ]

    화아아악!!

    최대 출력의 업화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에!!”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업화의 끔찍한 작열통에 이무기가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꽉 잡아.”

    요동치는 내부.

    루메인은 헨리를 꽉 붙잡았고 헨리는 마법으로 이무기의 몸에 착 달라붙어 계속해서 업화를 뿜어냈다.

    엄청난 화력이었다.

    그 화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도중에 에테르 회복정을 한 알 먹어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업화를 뿜어내길 몇 분.

    “멈……췄다?”

    요동치던 이무기의 움직임이 마침내 멈춰 섰다. 그와 더불어.

    활활활……

    헨리가 업화를 뿜어내던 방향은 불꽃에 익다 못 해 시커먼 재가 되어 자그마한 화염들이 물풀처럼 붙어 있었다.

    “주, 죽은 건가요?”

    “죽었다면 아카이브 알림이 떴겠지.”

    “그럼요?”

    “글쎄.”

    왜 갑자기 가만히 서게 된 걸까?

    의도야 어찌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확실한 결과였으니까.

    헨리는 달궈진 도롱뇽 바늘을 들었다.

    그리고 불로 채워진 녀석의 살점을 있는 힘껏 찔러 가르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화염에 익은 살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내구성이 약했다.

    헨리는 스러지듯 갈라지는 녀석의 살점을 한 바퀴 빙 둘러 베어 이무기를 양단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바깥으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바깥.

    루메인이 잽싸게 광명가루를 사용하자 사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여긴 또 어디죠?”

    상처 입은 이무기가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곳은 난생 처음 보는 곳이었다.

    사방이 검게 칠해진 벽면에는 푸르스름한 보석들이 종유석처럼 군데군데 솟아 있었다.

    헨리가 주변을 둘러보던 끝에 루메인에게 말했다.

    “그보단 재료 채집부터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군.”

    “아, 네!”

    헨리는 목적에 충실했고 정신 차린 루메인도 서둘러 이무기 내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뼛조각은 근처 뼈를 긁어 손에 넣었고 군데군데 종기처럼 돋아 있는 독 샘도 꽤 넉넉히 확보했다.

    남은 건 심장뿐.

    두 사람은 이무기의 머리 쪽으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갔고 마침내 녀석의 심장으로 추측되는 거대한 것과 마주할 수 있었다.

    ++

    [ 이무기의 심장 ]

    등급 : ???

    설명 : 이무기의 심장. 아직 맥박이 뛰고 있는 듯하다.

    ++

    정보를 확인해 보니 정말 이무기의 심장이 맞았다.

    그런데 아직 맥박이 뛰고 있다고?

    그럼 아직 죽지 않은 거란 말인가?

    대단한 생명력이라고 생각했다.

    루메인이 물었다.

    “저, 헨리 님…… 얘 아직 살아 있다고 뜨는데 어떡하죠?”

    “어쩌긴, 채집해야지. 만들고 싶은 약이 있다며?”

    “으음, 그건 그런데…… 그래도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음.”

    일리가 있다.

    아무리 몸이 양단 난 상태라고는 하나 또 몸부림치면 그때는 여러모로 귀찮아질 테니까.

    헨리가 바늘을 들어 심장 앞에 섰다.

    그리고 심장에 바늘을 휘두르려던 찰나.

    우뚝!

    거짓말처럼 도롱뇽 바늘이 심장 앞에 멈춰 섰다.

    누군가 강제로 붙잡은 듯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 여기까지 온 플레이어는 또 처음이군요.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헨리는 즉시 루메인을 보았다.

    그런데 루메인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루메인의 모습이 정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또다시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 놀랄 것 없습니다. 친구분은 제가 잠시 석화시켜 둔 것뿐이니.

    ‘석화?’

    -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는 어느덧 귓가에 속삭이는 육성처럼 들려왔다.

    헨리는 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도롱뇽 바늘을 회수했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굳은 루메인과 요동치는 심장.

    그리고 자신에게만 부여된 자유.

    - 여깁니다.

    그 부름에.

    헨리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기다란 키, 여리여리한 체형, 그와 더불어 얼굴 전체를 덮어 입만 보이는 로브를 쓰고 있는 여자가.

    “당신이 목소리의 주인인가?”

    “그렇습니다.”

    “정체가 뭐지? 내 행동을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이런 식으로 말리지 않아도 충분히 우릴 처리 할 수 있었을 텐데?”

    “보기보다 객관성이 뛰어나신 분이군요.”

    “원하는 걸 말해라.”

    헨리의 물음에 여자는 후훗 하고 웃었다. 하지만 헨리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대는 누가 뭐래도 자신보다 강한 ‘강자’라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때 여자가 돌연 후드를 벗었다.

    그런데……

    “넌…….”

    헨리는 말끝을 흐렸다.

    후드 속에 가려진 여인의 얼굴은 엄청난 미인이었다.

    하지만 헨리가 놀란 건 여자가 미인이라서가 아니었다.

    여자의 머리에 난 수백여 개의 ‘뱀’ 때문이었다.

    “메두사였군.”

    “저를 아시나요?”

    “너에 대해 들은 바 있다. 머리카락이 독사로 이루어져 있고 눈이 마주친 모든 사람들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를 가지고 있다지?”

    “꽤 알고 계시네요. 근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전 태어날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저주로 이런 특성을 가지게 된 건 제 어머니 되시는 분이시죠.”

    “어머니?”

    “네. 이곳 뱀의 신전의 진정한 주인이자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뱀의 어머니 되는 분이 바로 제 어머님이십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전 스테노라고 합니다. 뱀 신전의 유일한 사제라고 나 할까요?”

    뱀 신전의 주인.

    이무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눈앞의 여자도 진짜 메두사가 아니었다.

    헨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그렇군. 그럼 이 이무기도 당신 어머니의 자식들 중 하나겠군.”

    “예, 그리고 제 동생이기도 합니다. 원래라면 참견하지 않겠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동생이 죽을 것 같아서 관여한 거구요.”

    “그럼, 이제 날 죽일 생각인가? 네 동생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네? 하하하하!”

    헨리의 말에 웃는 스테노.

    그러더니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죽였겠죠.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 앞에 나타난 건 동생을 구하기 위함도 맞지만, 그보다 더 앞선 이유는 당신을 모셔 오라는 어머님의 말씀 때문이었으니까.”

    스테노가 뱀처럼 눈을 좁히며 물었다.

    “괜찮으시죠? 지금 바로 뵈었으면 하는데.”

    “살기나 갈무리 하고 제안하는 게 어때?”

    “어머, 동생 꼴을 보고 제가 좀 흥분한 모양이네요.”

    그 말과 함께 스테노가 앞섬을 풀어 몸에 걸친 로브를 박쥐 날개처럼 크게 펼쳤다.

    그러자 풀어진 앞섬으로부터 새카만 공간이 뿜어지더니 이내 곧 헨리의 시야를 덮쳤고 순식간에 사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주변.

    헨리는 이 어둠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아까부터 전신을 옭죄는 압박감이 상당했으니까.

    그때였다.

    세상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듯 갑작스레 빛이 뿜어져 들어왔다.

    아니, 세상이 갈라진 게 아니었다.

    헨리를 어둠 속에 가둬 두고 있던 건 손이었다.

    거대한 손.

    헨리는 누군가의 손아귀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너구나, 우리알을 저렇게 만든 녀석이.”

    마치 산청의 메아리처럼 울리는 목소리.

    그것은 손아귀 주인의 것이었고 헨리는 볼 수 있었다.

    운동장만 한 손아귀의 주인이자, 모든 뱀들의 어머니, 동시에 이곳 뱀 신전의 진짜 주인이라 불리는 ‘메두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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