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7화
“그건…….”
이상하긴 했다.
배포 좋은 건 알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녀석 혼자서는 절대로 이무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설마 이무기를 잡는 과정에서 파트너를 미끼로 사용할 셈인가?”
“예? 아뇨아뇨!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저도 인의라는 게 있죠!”
“그럼?”
“그게…….”
머뭇거린다.
말하기 껄끄러운 모양.
하지만 그렇다고 봐줄 수는 없다.
어비스에서 이루어지는 파티들은 대부분이 처음 보는 이들과의 만남인 만큼 그만큼 최소한의 신용이 보장돼야 했으니까.
“말할 수 없다면 그냥 여기서 찢어지기로 하지.”
“자, 잠시만요! 말씀 드릴게요! 사실 좀 전에 뱀들한테 둘러싸여 있던 건 일부러 그런 거였습니다.”
“일부러?”
“네. 사실 그건 일종의 시험……이었거든요.”
말 그대로였다.
좀 전의 상황은 제대로 된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루메인이 일부러 벌인 자작극이었다는 말.
그러고 보니 루메인은 헨리의 업화에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루메인이 말을 이어 나갔다.
“…혹시 도핑이 뭔지 아세요?”
“도핑? 약물로 힘을 키우는 행위를 말하는 건가?”
“예.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연단술사입니다. 다양한 약을 만들 줄 알죠. 그중에는 당연히 일시적으로 무력을 증폭시키는 약도 있습니다.”
무력을 증폭시켜 주는 약이라.
과거, 자신의 제자들 중 약학에 심취해 있던 녀석이 한 명 떠올랐다.
‘그 녀석도 도핑에 심취해 있었지.’
단순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무력이 강화된다면 세상은 보다 더 풍요롭게 바뀔 것이라 믿으면서.
‘실상은 전쟁에 더 많이 쓰였지만.’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평소라면 제가 약을 맞고 직접 싸우겠지만 도핑이란 것도 한계가 있어서요. 제가 조사한 바로 이무기의 무력 레벨은 풀도핑한 저보다 훨씬 강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대신 싸워 줄 사람을 구한다?”
“그렇습니다.”
루메인의 설명을 들은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타당한 이유라 생각되어서였다.
“하지만 네가 준 약 중에 장난질이 되어 있을 수도 있잖아? 뒤늦게 독이 발동된다던지.”
“아하하…… 그렇게 의심하시면 끝도 없어요. 정 못 믿으시겠다면 드시는 약의 절반을 제가 함께 먹겠습니다.”
그 말에 헨리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 따지면 끝도 없긴 하지.
잠깐의 고민 끝에 헨리가 말했다.
“대가는?”
“대가요?”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파트너가 아니라 고용의 형태 같거든.”
“아…… 그렇긴 하죠! 그럼 이렇게 하시죠. 전 이무기로부터 허물과 심장 절반만 받겠습니다. 그 외에 것들은 전부 그쪽이 가지세요.”
“그 어떤 것도?”
“네, 뭐. 아이템이나 스킬을 비롯한 전부요. 전 정말 이무기에서만 채취되는 재료 때문에 여기 온 거거든요. 못 믿으시겠다면 차원상인이 제공하는 중재 서비스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루메인은 꿋꿋하게 자신의 신용을 어필했다. 눈빛을 보니 진심이다.
“좋아. 받아들이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애초에 자신도 뱀의 신전에 가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이무기 외의 다른 숨겨진 것들이 있다면 그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움직여야만 했으니까.
“단, 파티원은 너와 나 둘 선에서 끝났으면 좋겠군.”
“오,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도핑 관리가 힘들어지거든요.”
헨리의 수락에 루메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중재 서비스를 이용하시나요?”
“아니, 그놈들은 서비스 제공을 빌미로 수수료를 너무 많이 떼 가.”
“저도 사실 그게 불만이라 웬만하면 이용 안 하긴 해요. 어쨌든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헨리라고 한다.”
“다시 소개드리자면 전 루메인입니다. 근데요 헨리 님. 혹시 손목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손목?”
그 말에 손목을 보여 주자 루메인이 헨리의 손목에 새겨진 왕관 표식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크라운…… 플레이어셨군요?”
“왜 그러지?”
“모르시는 걸 보니 2미션지도 처음이신가 봐요?”
“처음이다.”
“그럼 모르실 수도 있죠. 여기 2미션지는 미션이 경과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한 가지 미션이 추가로 발생합니다.”
“혹시 크라운 플레이어를 사냥하라는 뭐 그런 미션인가?”
“맞습니다. 정확히는 현상금 미션이라고 부르죠.”
그 말에 중층로의 문지기, 목웅이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그렇담 앞으로도 쭉 이런 일들이 생기겠군.’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렇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상관없다.”
“역시 크라운 플레이어다우신 자신감이십니다. 그래도 제가 사람 하난 잘 본 것 같네요. 크라운 플레이어의 신분으로 1미션지를 통과하셨다면 보통이 아니실 테고 그런 분을 도핑하면…… 와우 기대가 되는데요?”
“넌 나이트인가?”
“예, 전 나이트 플레이어입니다. 그럼 이제 파티를 맺으실까요?”
[ <루메인>이 자신의 파티에 초대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수락했다.
그러자 렌 때와 마찬가지로 시야 한켠에 루메인의 이름과 녹색구가 생겨났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헨리 님.”
“그래.”
“혹시 뱀의 신전으로 가시는 길은 아시는지요?”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조사를 철저하게 했거든요. 그럼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다행이군.”
길을 알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지도를 든 루메인이 앞서 나간다.
*
“드디어 뱀의 신전이군.”
“시도를 몇 번이나 한 거지?”
“9번?”
“10번 안 채운 게 용하군.”
눈 아래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목 높은 코트.
알이 작은 까만 안경.
큰 키.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놀라우리만치 복장이 똑같았다.
다른 점도 있긴 했다.
눈썹 모양과 헤어스타일 정도.
한 명은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머리가 삐죽거렸고 한 명은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올백 스타일이었다.
두 플레이어의 이름은 플렌과 엔블로 중층로에선 꽤나 유명한 플레이어들이었는데 그도 그럴 게 두 사람은 중층로에서만 주로 활동하는 ‘전문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다.
플렌이 물었다.
“확보해야 되는 게 뭐였지?”
“이무기 허물 10포랑 독니 4개. 꼬리 비늘 5개랑 그리고 구할 수만 있다면 알도 최대한 많이.”
“까다로운 것만 주문했군.”
“마녀조합에서 주문하는 것들이 다 그렇지 뭐.”
“아무튼 빨리 가 보자고.”
그때였다.
“까꿍!”
허공에서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온다.
기괴하기 그지없는 광대 복장.
허나 그것보다 더 기괴한 것은 광인처럼 형형한 이름 모를 플레이어의 눈빛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뚱이만 한 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이런.”
작고 까만 안경에 광대 플레이어의 검이 비친다.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칼날에 둘러진 에테르는 몹시 두터웠고 이대로라면 꼼짝 없이 칼날이 얼굴에 닿을 것이며 그렇게 휘둘러진 칼날은 플렌의 목을 지나 엔블에게도 닿을 것이다.
남자의 칼날이 플렌의 목에 닿은 순간이었다.
까가강!
금속 파열음.
그와 동시에……
파아앙!!
“……!”
남자의 눈이 토끼 눈처럼 커졌다.
그럴 만했다.
그도 그럴 게 남자가 회심의 일격으로 휘두른 검이 둘러진 에테르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버렸으니까.
찰나의 순간.
파괴된 자신의 검을 본 남자와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플렌의 눈이 맞닿았다.
플렌은 웃고 있었다.
“까꿍!”
“……!”
광대 플레이어의 눈이 커진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그러나 도망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바짝 검을 휘두를 수 있을 만큼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도 가까웠으니까.
“커헉!”
플렌이 광대 플레이어의 목을 붙잡은 후 자신의 얼굴까지 끌어당겼다.
광대 플레이어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플렌이 말했다.
“머저리 같은 놈, 눈치 못 챈 게 아니라 일부러 못 챈 척 한 거라고 생각은 안 해 봤냐?”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왜 안 돼?”
“장난 그만 치고 얼른 끝내라.”
“네, 네, 알겠습니다.”
엔블의 핀잔.
그에 플렌이 대답했고.
퍼어엉!!
작은 폭발음과 함께 광대 플레이어의 머리가 깔끔하게 터져 나갔다.
후두둑……!
사방에 광대 플레이어의 머리에서 나온 뼈와 살, 그리고 핏물들이 사방으로 튄다.
당연히 플렌과 엔블에게도 튀었다.
머리가 터진 플레이어의 몸은 그대로 고꾸라졌고 플렌이 쓰러진 남자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드러워 죽겠네.”
“다음부턴 그냥 깔끔하게 죽여.”
“그래야겠어.”
플렌과 엔블이 남자의 시체를 피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와.”
루메인은 감탄했다.
헨리가 강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헨리는 현재 홀로 플레이어 셋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
그것도 아주 여유로운 모습으로.
이윽고 헨리가 플레이어 셋을 사살한 뒤 루메인을 호출했다.
“이건가? 마지막 뱀 조각상이?”
“예, 맞습니다.”
“작업해.”
“넵!”
뱀의 신전은 놀랍게도 그냥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뱀의 신전을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뱀 조각상들을 잘 조작해야 뱀의 신전을 지키는 무서운 파수꾼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협조했다.
처음엔 그냥 뚫고 들어갈까 싶었지만 굳이 쉬운 길이 있는데 어렵게 돌아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번에 상대해야 될 놈은 스카샤 때보다 더 힘들 거라는 직감이 왔다.
“됐습니다.”
“그럼 이제 끝인 건가?”
“네, 이쪽 방향으로 쭉 가면 커다란 호수가 나올 거예요.”
“꽉 잡아.”
“네? 으아아아!!”
작업이 끝나자 헨리는 루메인을 잡고 고속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메인의 말대로 정말로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고 호수 너머엔 뱀의 신전으로 추정되는 심상찮아 보이는 곳이 보였다.
“저기에요, 뱀의 신전이.”
절벽 아래 위치한 신전 입구는 마치 산을 깎아 만든 듯한 모양새였다.
그 아래 위치한 조그마한 문.
헨리가 물었다.
“호수를 건널 수 있는 길은 안 보이는군.”
“네, 그래서 원래는 뗏목을 만들어 건너려고 했어요.”
“근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
“그렇죠. 전 헨리 님이 날 수 있으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근데 비행 스킬은 진짜진짜 귀한 걸로 아는데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중층에서도 비행 기술은 귀하다고 들었는데.”
“마법이다.”
“마법? 아, 토착 기술이셨군요. 제 영약술처럼.”
헨리는 대답 대신 루메인을 들고 천천히 호수를 건넜다. 그렇게 호수를 절반 정도 건넜을 무렵쯤……
“…파수꾼은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나?”
“조사해 온 조각상은 전부 맞게 작업했는데요?”
“그럼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놈은 뭐지?”
“밑이요?”
호수 아래 거대한 그림자.
이윽고 물거품이 생기더니 이내 곧 커다란 물살과 함께 호수 아래 숨어 있던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척 보기에도 수 미터는 되어 보이는 녀석.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말했다.
“거짓 정보였거나 작업 실수를 한 모양이군.”
“…죄송해요.”
그 말에 헨리는 조용히 도롱뇽 바늘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