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45화 (445/522)

2부. 45화

“왜 이렇게 조용하지?”

“설마 클리어 했나?”

“에이, 설마. 우리가 얼마나 빨리 점수 모아 왔는데.”

침입자들.

빌리아, 네코, 리리트, 실론이었다.

네 사람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각자 95점의 점수를 만든 다음에야 던전에 잠입했다.

그런데.

[ <스카샤>가 사망하였습니다. ]

[ 보스 몬스터가 처치되었습니다. ]

네 사람 앞에 뜨는 아카이브 알림.

그 알림에 빌리아의 눈이 커졌다.

“뭐야? 클리어?”

“여길 혼자서 깼다고?”

“이런 미친, 그럼 이제 어떡하지?”

던전에 들어온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던전 클리어라니.

그때, 잠자코 생각하고 있던 실론이 말했다.

“이건 기회야.”

“기회?”

“그래, 기회. 혼자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으면 분명 피해가 막대할 게 분명해. 그러니 오히려 지금이 기회야.”

“오.”

“일리가 있다.”

“좋아, 그럼 빠르게 접근하자.”

일리 있는 판단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네 사람은 속도를 높여 보스 룸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그때였다.

그들에게 냉풍이 불기 시작한 건.

“좀 추운데?”

“왜 이렇게 춥지?”

“그냥 온도 자체가 내려간 거 아냐?”

그냥 기우려니 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 강도가 좀 셌다.

[ 주변 공기가 많이 차갑습니다. ]

[ 동상에 걸릴 것 같습니다. ]

[ <동상> 효과가 적용됩니다. ]

[ 둔화 상태가 일어나며 모든 움직임에 대한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

[ <동상>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증가합니다. ]

상태이상 동상의 발발.

넷 다 저항력 스탯이 없는 터라 꼼짝없이 걸리고 말았다.

“아으, 갑자기 웬 동상이야.”

“해제 스킬 없어?”

“그런 건 없는데…….”

“아, 이런 걸로 포션 써야 하나.”

각자의 힘으로 중층로에 올라온 만큼 여분의 포션이라든지 차원상인 활용법 정도는 알고 있다.

허나 고작 동상 따위에 값비싼 포션과 차원상인을 부르기엔 좀 아까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 <동상> 효과가 증대됩니다. ]

[ 속도가 25% 감소합니다. ]

[ <동상> 효과가 증대됩니다. ]

[ 속도가 30% 감소합니다. ]

……

동상의 효과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빌리아는 생각했다.

‘이러다 그냥 다 죽는 거 아냐?’

생각했던 것과는 일이 다르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포션을 쓰기엔 좀 애매했다. 힐러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하필이면 넷 다 회복 쪽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곳을 혼자 뚫고 들어갔다가 죽임이라도 당하면?’

스쳐 지나가듯 한 번 본 게 전부인 크라운이었지만 그는 홀로 이곳을 클리어 했다.

그에 반해 자신들 넷은 던전 내부까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

빌리아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기습은 포기한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크라운 플레이어는 분명 탐나는 플레이어임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욕심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자신들은 점수까지 95점으로 맞춰 오지 않았던가.

결단을 해야 할 때.

그때였다.

“멘티스의 칼날!”

먼저 행동한 건 네프였다.

그에 빌리아는 물론 리리트와 실론도 번개 같이 반응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이 배신자 새끼.”

“지랄하네, 반응 속도 보니 너도 준비하고 있었구만 뭘.”

“닥쳐!”

뒤엉켜 싸우기 시작한 네 사람이었지만 각자의 목표는 확실했다.

빌리아와 네프.

두 사람은 서로를 점찍었다.

당연했다.

네 사람 중 근접 딜러에 속하는 두 사람은 서로가 가장 위험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리리트와 실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에게 가장 먼저 떨어졌다.

아수라장이었다.

처음 이곳을 함께 습격하겠다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그렇게 얼마간의 교전 후 살아남은 사람은 다름 아닌 빌리아와 실론이었다.

네프에게 꽤 깊은 공격을 당한 빌리아가 피를 뚝뚝 흘리며 자신의 무기로 실론을 겨누었다.

“계속 할 거냐?”

실론도 마찬가지였다.

실론도 지원계이긴 하나 그래도 리리트보다는 그 성향이 덜하여 리리트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실론이 독기 가득한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어때? 이미 파티는 쫑난 것 같은데.”

“동감이야.”

두 사람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네 사람 모두 95점까지 채운 상황이었고 각자가 둘을 죽여 모자란 점수들을 채웠으니 더 이상 서로 칼을 겨눌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애초에 팀이 결성된 이유 자체가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이었으니까.

무기를 내린 빌리아가 그제서야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상처에 부으며 말했다.

“다음에 보면 또 팀 제안할 거냐?”

“그건…….”

그때였다.

슈아아──

날카로운 파공음.

그리고.

푸콰하악!!

빌리아의 머리가 거칠게 터져 나갔다.

그 생생한 순간을 목격한 실론은 그대로 빌리아의 피를 몽땅 뒤집어쓰고 말았다.

“어, 어……?”

뭐지?

갑자기 왜?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사고 회로가 굳었다.

그때쯤이었다.

슈아아──!

또다시 들려온 날카로운 파공음.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들었다.

실론은 몸을 날려 그것을 피했다.

그러나 몸을 날려 피하자마자 연이어 파공음이 들렸고 그때마다 실론은 회피하기 바빴다.

무언가 잘못됐다.

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실론은 떨리는 입을 움직여 어떻게든 다음 장소로 향하는 문을 개방시키려고 했다.

허나 멀리서 날아오는 투사체는 그 조그마한 틈을 허용치 않았다.

저벅─ 저벅─

귓전에 발자국 소리가 밟힌다.

조급하지 않고 느긋한 템포로 걸어오는 듯한 소리.

허나 파공음은 쉴 틈 없이 계속해서 날아들었고 바닥에 구르기를 몇 차례.

실론은 마침내 발자국 소리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발자국 소리의 주인.

헨리였다.

“크, 크라운……!”

실론은 헨리의 이름을 모른다.

그렇기에 크라운이라 불렀다.

헨리도 저들이 왜 자신을 크라운이 부르는지 알기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건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 유혈이 낭자한 이곳.

모든 게 헨리의 예상대로였다.

‘연고지 없는 곳에서 동료라…….’

처음부터 같은 집단 소속이었다면 모를까.

아니, 설령 그렇다 해도 지옥과 다를 바 없는 이곳에서 타인을 쉽게 믿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클레버가 몸담고 있는 혁명군에도 가입하지 않은 것.

물론 어디에나 예외의 경우가 있듯 탑 속에서도 우정이나 전우애가 싹 틀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래서 한번 실험해 본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됐을 때 과연 이들이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인지에 대해서.

처음부터 이들을 쓸어 죽이지 않고 서리풍을 이용한 건 그 때문이었다.

헨리가 도롱뇽 바늘을 들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두 번 다시 당신 근처에 얼씬도 않겠습니다!”

그에 실론이 무릎을 꿇고 덜덜 떠는 손으로 빌기 시작했다.

나중엔 가진 소지품을 꺼내 바쳤다.

허나 헨리는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늦었어.”

푸욱!

굳이 죽일 이유는 없지만 살려 둘 이유 또한 없다. 후환은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기에.

실론이 죽은 직후였다.

[ 100점을 수집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

[ 증표가 완성되었습니다. ]

[ 증표를 사용하면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모자란 점수를 모두 채웠다.

이로써 D구역에 더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증표에 에테르를 주입하자 눈앞에 다음 미션지로 향하는 차원문이 생겨났고 헨리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

협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일본인 헌터 한 명.

자신을 야마다 렌이라고 밝힌 그는 협회장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이 숨기고 있는 자에게 스승의 전갈을 전하러 왔으니 말을 전해 달라고 한 것.

한참을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게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존재는 지구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확신하는 존재이자 재앙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였으니까.

허나 결국엔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재하가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경고한 상황이었지만, 판단하기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더더욱 확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랫사람으로써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재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때였다.

끼이익-

노크도 없이 열리는 문.

방문자는 다름 아닌 재하였다.

재하의 표정은 한없이 건조했다.

“오, 오셨습니까!”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저 알 수 없는 표정이 원래 저런 것인지 아님 화가 난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기에.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호들갑을 떨자 재하가 손짓으로 그를 앉혔다.

“스승의 전갈을 전하러 왔다고요?”

“예, 예! 그렇습니다!”

“누구죠, 그게?”

“일본의 만월이라는 거대 길드 산하의 클랜, 백월 출신의 스카우터인데 지금은 이 일을 위해 탈퇴했다고 합니다.”

“탈퇴?”

“예.”

“이게 탈퇴까지 할 일인가요?”

“전 그저 그 사람이 한 말을 전달만 해 드리는 거라…….”

건조하기 짝이 없는 표정.

허나 이것은 연기였다.

재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다른 일도 아니고 스승의 전갈이라니.

그도 그럴 게 재하에게 스승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당장 그자를 만나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싶었으나 호들갑 떨 수는 없었다.

이러한 연기들 전체가 헨리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 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였기에.

‘아직은 힘이 부족해.’

이제 겨우 서클을 그리고 마법을 배워 나가고 있다.

헨리가 선물해 준 것들을 지키려면 더 강한 힘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재하가 입을 다물고 있자 협회장은 렌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과연.

안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청 장치를 비롯한 그 어떤 감시 장치도 없습니다. 또 이곳은 스킬로 항상 완벽한 방음 처리를 하고 있으니 불필요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굽실거리며 두꺼운 방문을 손수 닫아 주는 협회장.

이윽고 방 안에는 재하와 렌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렌이 문 앞에 선 재하에게 물었다.

“당신인가요? 스승님의 전갈을 받을 사람이?”

“그렇습니다만, 당신은 누군데 스승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죠?”

“그전에 실례지만 한 가지만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확인?”

“예, 확인이요. 이게 저한테는 인생을 걸 만큼 아주 중요한 일이라.”

그건 재하도 마찬가지.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혹시 스승님의 성함에 대해 아시나요?”

“스승님의 성함이라면…….”

그 물음에 재하의 눈빛이 변했다.

“헨리 모리스. 그게 제 스승님의 존함입니다.”

그에 렌의 눈 또한 덩달아 커졌다.

아니, 커진 눈에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한때 헨리 씨의 동료…… 아니, 운 좋게 헨리 씨와 연을 맺게 되어 헨리 씨와 함께 탑을 올랐던 전 백월 클랜의 스카우터, 야마다 렌이라고 합니다.”

그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