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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43화 (443/522)

2부. 43화

스카샤는 이곳이 아르티사라고 한 적이 없다. 허나 바보가 아닌 이상 이곳이 아르티사란 걸 알 수 있었다.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아르티사.

흡사 과거의 가우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

허나 그 평화도 잠시.

저 멀리 하늘에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성우?

아니.

놀랍게도 그건 헨리가 아는 것으로 다름 아닌……

‘종말…….’

종말이었다.

마치 백귀야행의 귀신처럼 밧줄처럼 꼬여 내려오는 그것들은 순식간에 아르티사 곳곳에 퍼져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허나 놀랍게도 사태는 금방 진정되었다.

왜냐하면 ‘스카샤’를 비롯한 아르티사의 수호신인 드래곤들이 나타나 종말을 진압하기 시작했으니까.

‘굉장하군.’

아르티사의 수호신들.

드래곤으로 일컬어지는 그들은 헨리 조차 놀랄 정도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들을 보여 주었다.

허나 첫 번째 종말이 사라지자, 얼마 뒤엔 두 번째 종말이, 그들이 죽으면 세 번째 종말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마침내 그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놈들이 나타난 건 그때쯤이었지.”

스카샤의 말.

그와 함께 하늘에서 흑색 유성우가 떨어졌다.

뭉쳐 오는 종말들과는 달리 운석처럼 각기 떨어져 내린 건 총 세 놈이었다.

“여기야? 에테르랑 같은 재질의 힘을 쓴다는 곳이?”

“별다를 건 없는데?”

“임무에 집중해라.”

척 보기에도 여유로워 보이는 그들은 아르티사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류의 옷을 입고 있었다.

들고 있는 무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그저 여태 쳐들어온 것들과 비슷한 수준의 침략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같은 줄 알았으나 전혀 아니었다.

뒤늦게 나타난 세 놈은 기존의 종말들과는 가진 힘 자체가 달랐다.

그들은 말 그대로 정말 괴물이었다.

“내 동료들 절반 정도가 죽었을 때 녀석들 중 하나가 말하더군. 우리 보고 꽤나 쓸 만해 보이는데 자기들 밑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고 말이야.”

“대답은?”

“당연히 거절이었지. 우린 명예를 중요시했거든.”

그때부터 스카샤는 더더욱 필사적으로 싸웠다.

허나 결과는 같았다.

고작해야 세 놈뿐인 그들은, 아르티사의 수호신들 전체가 덤벼도 어찌 하지 못했고 거의 대부분의 수호신들이 죽고 스카샤 혼자 남았을 때 스카샤는 그제서야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즈음 주변 풍경도 멸망한 세계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카샤가 말했다.

“놈들은 자신들을 랭커라고 하더군.”

“랭커?”

랭커.

클레버의 기억 속에서 본 적 있다.

어비스를 구분하는 층계들 중 상층에 기거하되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자들을 랭커라고 불렀다.

“그날로 아르티사는 멸망했다. 동물 하나 식물 한 점, 그 무엇 하나도 살려 두지 않더군. 하지만 난 살아남았어. 왜 그럴 것 같나?”

스카샤의 물음.

그 물음에 헨리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재미를 위해서겠지.”

“맞아. 난 일종의 전리품 같은 거였어. 멸망한 세계를 기념하기 위한. 벽에 걸어 두는 사슴 박제 같은.”

그 말과 함께 스카샤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 모습은 스카샤 본연의 모습인 드래곤의 모습이었으나 그 상태는 몹시 끔찍했다.

비늘은 곳곳에 벗겨져 있었고 심한 곳은 살점이 파이고 뼈가 드러났다.

또 오른쪽 팔 또한 뜯겨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패잔병의 말로는 대부분 끔찍하지. 특히 명예를 위해 버틴 자들이라면 더더욱이.”

스카샤는 다시 멀쩡한 외견으로 모습을 되돌렸다. 아픔의 크기를 보여 주는 건 잠깐이면 충분했으니까.

헨리가 물었다.

“그래서, 네가 맡고 있는 그 임무란 게 대체 뭐지?”

“환골탈태에 대해서 아나?”

환골탈태.

애초부터 환골탈태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니 모를 수가 없다.

“알고 있다.”

“그렇군. 놈들이 착실히 소문을 흘리고 있는 모양이야.”

“소문?”

“내가 갇혀 있는 이곳은 중층로의 첫 번째 구역이다. 그리고 이런 곳은 대개 한번 지나가면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가 없지. 관리자나 차원상인이 아닌 이상은 말이야.”

“하지만 너에 대한 소문은 전설처럼 퍼져 있다.”

“당연히 퍼져야지. 그래야 누군가는 찾아올 테니.”

“…설마 어비스에서 일부러 너에 대한 소문을 냈다는 건가?”

그 말에 스카샤가 씩 웃었고 헨리의 표정은 더더욱 구겨졌다.

“악질적인 취미군.”

“재미란 자극적일수록 좋은 거니까.”

“그럼? 너는 이곳에 찾아오는 이마다 환골탈태를 도와주고 있는 건가? 환골탈태가 어떤 건지 알면서도?”

말 그대로였다.

어비스가 스카샤를 통해 추구하는 재미는 놀랍게도 특별한 힘을 가진 스카샤를 통한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이었다.

그도 그럴 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어비스를 증오하며 탑을 오르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강하리란 법은 없었고 게임의 즐거움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에 스카샤가 씁쓸한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그런 셈이지. 하지만 놀랍게도 아직까지 날 찾아온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없었다고?”

“그래. 아까 말했잖나, 이곳은 중층으로 가기 위한 중층로로 한번 이곳을 지나간 이는 두 번 다시 이곳에 올 수 없다고 말이야.”

“그럼 왜 이런 곳에 널 가두어 둔 거지?”

“바로 너 같은 플레이어 때문이다.”

“뭐?”

“생각해 봐라. 모든 플레이어들은 어비스가 처음이다. 그런데 넌 어째서 이곳의 존재를 알고 올 수 있었던 거지?”

“그건…….”

헨리는 대답을 아꼈다.

위층에 조력자가 있다는 건 비밀이었으니까. 허나.

“숨길 것 없어. 넌 아마 위층 어딘가에 정보나 힘을 제공받는 조력자 혹은 그에 준하는 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게 초행길일 너 같은 플레이어가 어떻게 이곳의 존재를 알았겠어? 말인즉…….”

스카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방에 노란 자위에 검은 눈동자, 예컨대 악어의 눈과 같은 그런 안구들 수천여 개가 생겨났다.

그것들은 헨리를 보고 있었다.

“어비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너처럼 위층과 내통하여 지름길을 이용하는 플레이어들의 존재를 말이야.”

“…….”

헨리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에 잠겼다.

사실 스카샤가 언급한 문제는 전부터 인지는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어비스가 정말로 곳곳에 눈과 귀를 붙여놓는다면 자신의 이러한 행보는 진작에 알고 있어야 할 터.

하지만 어비스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어비스의 감시가 완전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허나 스카샤의 대화로 인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어비스는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두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자신들의 재미와 유희를 위해서.

쉽게 말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밥도 뜸을 들여야 더 맛있어지는 법이니.

결론을 도출한 헨리가 천천히 눈을 뜨며 대답했다.

“그렇군. 이야기는 그게 전부인가?”

“별로 놀라지 않은 건가, 아님 안 그런 척 하는 건가?”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다만 근거가 부족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을뿐. 허나 덕분에 확실하게 알게 됐어. 그럼 이제 신세 한탄은 그만하고 슬슬 본론을 이야기해 줬으면 하는데.”

신세한탄.

어찌 보면 신세한탄이 맞긴 했다.

그가 이곳에 얼마나 오랜 세월을 갇혀 있었는진 모르겠으나 이곳에 온 게 정말로 헨리가 처음이라면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많았을 테니.

그때 스카샤의 인상이 처음으로 찌푸려졌다.

“그렇게 강한 척을 하면 뭐가 좀 낫나?”

“뭐?”

“우리 좀 더 솔직해지자고. 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어차피 너도 네 세상을 침략당해 이곳을 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근데 왜 그리 태연한 척 하는 거지? 여긴 내가 만든 의식세계다. 그 빌어먹을 놈들의 눈과 귀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어.”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래. 그렇겠지. 근데 그게 뭐? 그럼 넌 지금 내게 위로를 바라는 건가? 너와 내가 같은 처지의 피해자라서?”

헨리는 여지껏 지었던 표정들 중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스카샤에게 말했다.

“그래. 어찌 보면 너와 나는 같은 처지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거 아나? 괴롭히기 좋아하는 놈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바로 괴롭힌 만큼에 대한 반응이야. 그러니 반응하지 않는 것뿐이다. 이곳에 놈들의 눈과 귀가 없는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아.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난 그 물을 주워 담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 그러니 난…….”

헨리가 스카샤와 두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더 이상 놈들을 위해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서 놈들을 부숴 없애고 내 세상을 구할 것이다.”

헨리의 말은 그게 끝이었다.

헨리의 말이 끝난 직후, 스카샤는 얼마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흐린 눈.

그리고 약간 벌어진 입을 하고서 헨리인지 허공인지 모를 것을 응시했다.

그러길 얼마간.

스카샤가 말했다.

“……그렇군.”

체념한 듯한 말투.

그 말은 곧 사과로 이어졌다.

“사과하지. 버틴다고 버틴 건데 너무 오랜 시간을 홀로 있었더니 정신이 부식된 모양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고독도 독의 일종이라 생각하니까.”

“이름이 헨리라고 했던가?”

헨리는 스카샤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던전의 주인으로서, 아카이브의 알림에 의해 헨리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아까도 말했지만 내 역할은 날 찾아오는 모종의 플레이어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게 어비스가 내게 맡긴 임무지.”

말을 잇던 스카샤가 왼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 위에 사파이어로 빚어 놓은 듯한 아름다운 형태의 심장이 떠올랐다.

“이게 뭔지 아나?”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군. 너의 심장인가?”

“그래. 이것은 날 이렇게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내 전부이자 마지막 조각인 나의 드래곤 하트다.”

푸르고 둥근 보석.

그것은 스카샤의 심장인 드래곤 하트였다.

“다시 한번 소개하지. 난 아르티사를 수호하던 모든 용들의 우두머리이자, 용신이라 불렸던 존재다.”

“용신은 너희들을 지칭하는 말인가?”

“정확히는 드래곤들 중 선택받은 수호자들만 얻을 수 있는 칭호지. 나는 아르티사 최후의 생존자이자 마지막 용신인 셈이고.”

“그렇군.”

“담백한 반응이군. 혹시 너도 신이었나?”

“그래.”

“역시.”

신이었냐는 물음.

마치 밥은 먹었냐는 듯한 정도의 톤.

그리고 그것에 대답하는 헨리.

둘 다 서로 대답한 사실들에 대해 놀라지 않았다.

당연했다.

차원계는 개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고 어비스는 그런 차원들 중 꽤나 많은 차원을 침략했다.

그중에는 굴복한 자들도 있을 것이며 헨리처럼 구원을 목적으로 어비스에 뛰어든 자들도 있을 터.

그런 의미에서 스카샤 본인도 신인데 헨리라고 신이 아닐 이유가 없다는 게 스카샤의 생각이었다.

스카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날 찾아온 걸 보니 이제 슬슬 한계점이 드러나는 모양이군.”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래서 난 반드시 신체 개조를 이루어야 한다. 내가 살던 가우스는 아르티사의 포스와는 달리 에테르와 닮은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었거든.”

“그렇겠지. 그런 경우는 극히 희박한 편이니까. 하지만 참 다행이군. 이곳을 처음 찾아온 플레이어가 다른 이도 아니고 한때 ‘신’이었던 자라서.”

“무슨 뜻이지?”

“혹시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나? 아르티사를 보우하던 최고 신들 중 하나였던 내가 어째서 이곳에선 ‘용신’이 아닌 ‘반룡’ 따위로 불리는지?”

“그건…….”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어비스가 견제할 만큼 용신들의 존재가 까다롭고 고귀하다면 스카샤는 반룡 같은 게 아니라 온전한 용이었어야 할 텐데.

스카샤가 말했다.

“어비스가 날 반쪽짜리 신으로 만들었다. 왜냐면 완전한 형태의 내 육체는 놈들조차도 꺼려하는 것이었거든. 단순히 재미를 위해 남겨 두기에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일 만큼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다. 아르티사는 어비스와 거의 똑같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흡사한 세계지. 말인즉, 육신이 온전했을 때의 난, 아르티사의 신이자 어비스의 신이기도 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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