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2화
쿼그그그그그!!
팽팽하게 당겨지는 사슬.
다행히 사슬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허나 그 기세만큼은 진짜였다.
‘서둘러야겠군.’
마력 대 마력이라면 모를까.
기본 전제가 에테르라면 이 싸움은 헨리에게 전적으로 불리한 것이 맞았다.
헨리는 다시 달려들어 도룡뇽 바늘을 내질렀다.
까앙!!
녀석은 또다시 왼팔을 들어 막았다.
예상한 바.
그와 동시에 미리 만들어 둔 수십여 발의 파이어 애로우가 또다시 녀석을 덮쳤다.
그 타이밍에 맞춰 헨리는 또 한 번 업화를 뿜었다.
화아아아아!!
“크웨에에에!!”
피어가 뿜어지고 냉기 두른 방어막이 펼쳐진다.
허나 업화는 꺼지지 않았다.
피어에 의해 저릿해진 근육을 억지로 끌어다 붙잡으며 버티고 버텼다.
그렇게 몇 차례 같은 교전을 반복하자 조그마한 틈이 보였다.
방패처럼 활용하던 녀석의 왼쪽 팔에 슬슬 비늘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스카샤는 바보가 아니었다.
좀 더 버티면 넝마가 될 지도 모를 왼팔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후와오!!”
블리자드.
그것은 흡사 블리자드였다.
드래곤 브레스처럼 뿜어낸 그것은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할 강력하고 차가운 냉기 어린 날숨이었다.
헨리는 즉시 방패를 들어 그것을 맞받아쳤다.
[ <빙마의 방패>가 스카샤의 <서리 숨>을 흡수합니다. ]
서리 숨.
그게 녀석이 뿜는 브레스의 이름인가 보다.
빙마의 방패는 몸체 중심에 박혀 있던 장신구를 서슬 퍼렇게 빛내며 서리 숨을 닥치는 대로 흡수했다.
그 광경에 스카샤의 형형한 안광에 당혹감이 조금 드리웠다.
하지만.
[ 남은 냉기 흡수량 83% ]
[ 남은 냉기 흡수량 77% ]
[ 남은 냉기 흡수량 69% ]
……
과연 스카샤였다.
제아무리 빙마의 방패라 할지라도 반룡의 브레스를 받아 내는 건 무리가 있었다.
빠르게 차오르는 흡수치에 헨리는 쏟아붓듯 포션을 입 안에 부으며 다시 한번 도롱뇽 바늘을 들었다.
그리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 <업화>가 발동됩니다. ]
화아악!
업화가 뿜어진다.
그때였다.
‘큭!’
심장에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스카샤의 공격?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통증을 헨리는 아주 오래전 가우스에서 느껴 본 적이 있다.
신이 되기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
반신이 되기 전보다 더 오래전이며 대마법사가 되기 전보다도 오래전이었다.
이 통증은 처음으로 환생했을 때보다 훨씬 더 먼 과거에 느꼈던 통증으로, 통증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력이 고갈되거나 서클이 과부하를 일으켰을 때 느낄 수 있는 통증이었다.
그렇기에 헨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이 통증은 클레버가 말하길, 플레이어의 에테르가 거의 고갈되면 발생하는 통증이라 하였기에.
우스웠다.
그토록 혐오하던 에테르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마력과 닮아 있다니.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사실에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기에 헨리는 때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끝을 봐야 한다는 걸.
와장창!
입에 물고 있던 포션병이 아래로 떨어지며 박살 난다.
지옥의 불꽃은 여전히 드래곤 브레스처럼 뿜어지고 있다.
그 순간.
[ <빙마의 방패>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
[ 냉기 흡수를 중단합니다. ]
빙마의 방패가 나가떨어졌다.
지금이었다.
헨리는 팔뚝에 돋은 힘줄의 고통을 느끼며 의식을 쥐어짜 내 아끼고 아껴 두었던 비장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 <거인의 힘>이 발동됩니다. ]
[ 10분간 모든 파괴력과 방어력, 저항력이 300% 상승됩니다. ]
거인의 힘.
하층 최강의 포식자 티탄을 쓰러뜨리고 손에 넣은 헨리의 두 번째 스킬.
발동 조건은 남은 에테르의 30%를 소모하는 것.
다시 말해 거인의 힘은 남은 에테르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용에 있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스킬이었다.
그렇기에 끝끝내 참았다.
하루에 한번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비장의 수라면 사생결단의 순간에 사용해야만 했으니까.
스킬이 발동된 순간, 하층 최강의 포식자 티탄의 형상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며 헨리의 전신에 힘을 북돋게 했다.
“죽어라!!”
화화화화화화화!!
지옥 업화의 화력이 300% 증가했다.
거인의 힘 덕분이었다.
너덜거리던 팔 비늘은 강풍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불길에 휩쓸리기 시작했고 헨리는 도롱뇽 바늘을 더더욱 들이밀어 칼끝에 압점을 더했다.
그 결과.
푸북!
마침내 스카샤의 팔뚝을 뚫고 들어가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후오오오!!
강력한 압력.
고개를 틀어 보니 꼬리였다.
헨리는 다시 한번 왼팔을 옆구리에 붙였다.
쩌어엉!!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터라 그 고통이 어마어마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날아가지 않았다.
녀석의 팔뚝에 집어넣은 도롱뇽 바늘 덕분이기도 했지만 300% 증가한 방어력도 한몫 했기 때문이다.
헨리는 붉게 물든 눈으로 힘을 쥐어 짜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쾅! 쾅! 쾅!
그때부터였다.
스카샤가 전력을 다해 꼬리를 휘두르기 시작한 건.
녀석의 팔이 하나뿐이어서 참 다행인 순간이었다.
헨리는 버텼고 또 버텼다.
버티고 버텨서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 마침내 녀석의 목덜미에 칼끝을 들이밀 수 있었다.
그때였다.
육체에 쏟아지던 고통이 별안간 느껴지지 않았다.
감이 무뎌진 게 아니다.
스카사의 거동이 멈춘 것이다.
허나 불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직이었다.
아카이브는 녀석의 죽음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 순간!
[ <스카샤>가 사망하였습니다. ]
[ 보스 몬스터가 처치 되었습니다. ]
아카이브가 녀석의 죽음을 보증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헨리의 지옥불 또한 바람 앞의 촛불처럼 급하게 사그라 들었다.
힘이 모두 소진된 것이다.
비틀-
피로는 물론 몸에 쌓인 데미지가 상당하다. 하지만 헨리는 의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대신 도롱뇽 바늘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바닥에 몸을 붙였다.
털썩!
대자로 뻗어 누운 헨리의 가슴께가 터질듯이 팽창했다가 줄어든다.
헨리는 가까스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런 다음 힘이 딸려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움직여 남은 포션 전부를 바닥에 끄집어냈다.
이후엔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바닥에 쏟아진 포션들이 두둥실 떠올라 저절로 마개가 열리더니 헨리의 몸 곳곳, 그리고 입 안으로 쏟아졌다.
염동 마법이었다.
힘이 다 떨어진 헨리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체적 한계가 찾아온 것일뿐이지 정신력까지 피로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마법은 참 편리했다.
마법은 한낱 유기물 덩어리 육체보다 정신력에 더 많은 영향력을 받는 것이었으니.
[ <종합 회복 포션>을 사용하셨습니다. ]
[ 외상과 내상이 빠른 속도로 회복됩니다. ]
……
메세지들이 여러 차례 떠올랐지만 헨리는 보기 싫다는 듯 눈짓으로 그것을 꺼버렸다.
그렇게 누워 있기를 얼마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던 육체에 조금씩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누적된 피로 자체는 여전했지만 상처가 어느 정도회복되어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였다.
화악!
눈앞이 점멸되며 헨리의 의식에 무엇인가가 침투 된 것은. 그와 함께 헨리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눈앞 풍경이 바뀌었다.
그것은 자신이 있던 던전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흑백색으로 이루어진 무의 공간이었다.
‘의식의 세계군.’
헨리는 확실히 의식을 잃었다.
허나 그것은 육체의 주도권을 잃은 것이지 헨리 본연의 정신이 흐려진 게 아니었다.
헨리는 신이었다.
그 어떤 존재보다도 고결하고 강인했던 존재.
그렇기에 지금은 비록 어비스의 규율에 맞춰 유기물 덩어리 육체를 사용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체적 패널티일뿐, 헨리의 혼과 정신까지 어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피로가 쌓이고 육체에 데미지가 누적되어도, 설령 누군가 헨리의 정신에 침투해도 평정심을 유지 할 수 있었다.
“간만의 손님이군.”
낯선 목소리.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백옥 같은 피부에 푸른 머리칼, 그리고 머리칼 만큼이나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사내가 헨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헨리는 직감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네가 스카샤인가?”
“맞아. 내가 바로 스카샤다.”
“날 이곳에 데려온 저의가 뭐지? 패배를 용납하지 못하는 건가?”
“후후, 성격이 급한 친구로군.”
저 자가 과연 좀 전에 헨리에게 패배한 광룡(狂龍)이 맞는 걸까?
그런 것치곤 쓸데없이 이성적이었다.
스카샤가 헨리 앞에 다가와 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걱정말게. 나는 자네에게 확실히 패배했으니, 그러니 좀 더 여유를 갖고 나와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이곳은 의식세계.
허락도 없이 타인의 의식에 접촉해 온 것 자체가 별로 달가운 행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은 어비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그렇기에 경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물음에 스카샤가 답했다.
“나를 쓰러뜨린 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어비스가 내게 맡긴 임무니까.”
“임무?”
“그래. 정확히는 강제로 부여된 것이고 이 조차도 나를 능멸하기 위함이지만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라.”
“나의 세계는 어비스에 의해 멸망되었다.”
그 말에 헨리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은 스카샤가 씩 웃었다.
“내가 살던 세상의 이름은 아르티사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이지만 한때는 그 어떤 세상 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지. 그런데 어비스에 의해 멸망되었다. 툭하면 차원 침략을 일삼는 게 어비스라곤 하다만은…… 우리의 경우엔 조금 특별했거든.”
“특별?”
“그래. 혹시 그런 말에 대해 아나? 세상에는 어쩌면 너와 똑같은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는 이론이긴 하나, 난 믿지 않는다.”
도플갱어 이론.
가우스에도 있는 이론이긴 했다.
허나 가우스에서의 이론은 도플갱어라는 마물 때문에 생겨난 인간들의 착각이었을뿐, 거창하게 이론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짗궃은 소문 정도에 불과할뿐.
스카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같은 이론이라도 세상 마다 다른 법이니까. 근데 말이야, 그 이론에 적용되는 게 플레이어가 아니라 만약 ‘힘’이라면?”
“힘?”
“그래. 너 또한 이계의 문명에서 온 불쌍한 존재일 터. 그리고 네가 살던 세상에서 다루는 힘과 어비스에서 사용되는 힘은 완전히 다르겠지. 그렇지 않나?”
“그런데?”
“근데 우린 아니었어. 우린 ‘포스’라는 이름의 고유한 힘을 사용했는데 놀랍게도 포스는 어비스에서 사용되는 에테르와 모든 게 똑같은 힘이더라고.”
“뭐라고?”
헨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어비스는 수많은 차원들 중에서도 단연코 최상위에 해당하는 곳인데?
“그래서 멸망 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순 없으니까. 그럼 한번 감상해 보겠어?”
말과 함께 스카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던 의식세계에 물감 퍼지듯 아르티사의 풍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