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0화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플레이어 사냥을 뒤로 미루고 탐색에만 시간을 쏟았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도 결국 헨리가 잡을 만큼의 플레이어는 남아 있을 테니까.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클레버의 정보와 가장 유사한 느낌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거대한 바위골을 지나 북쪽으로 가면 두 개의 용바위가 나온다.’
정말이었다.
용바위는 정말로 용을 닮은 바위였다.
자연이 조각한 듯한 두 개의 용바위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고 헨리는 그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
숲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숲.
작은 숲 사이에 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 보니 자연이 아닌 인간이 조각했을 법한 멋들어진 용 조각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이게 그 봉인석이란 말이지?’
이건 평범한 조각상이 아니었다.
클레버의 말에 의하면 지금 찾고자 하는 존재는 봉인석으로 눌러 둬야 할 만큼 강력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봉인석도 보통의 힘으로는 부술 수가 없다고 했다.
평균치 이상의 힘을 가진, 이레귤러 등급의 플레이어들만 겨우 부술 수 있다고 했다.
헨리는 검을 뽑았다.
그런 다음 마력을 완전히 제거하고 에테르를 모으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봉인석은 오직 에테르의 힘으로만 부술 수 있다 하였으니까.
일렁일렁.
이질적인 기운.
사실 헨리는 아직도 에테르가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세월을 마력과 마법만 이용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클레버도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고 했다.
단순히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 에테르 자체를 느끼고 활용하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 하였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신체 개조가 시급했다.
신체 개조를 통한 환골탈태가 이루어지면 소위 말하는 에테르 감응력 자체가 대폭 발달되어 느끼기 싫어도 알아서 에테르가 느껴지고 활용하기 싫어도 자연스럽게 에테르가 활용된다고 했다.
칼날에 미약하게나마 에테르가 맺히자 헨리는 그 힘을 칼끝에 모았다.
그리고 창처럼 내질러 용 조각성의 목을 쳤다.
뿌걱!
그러자 다행스럽게도 용 조각상이 부서졌고.
[ 숨겨진 던전이 개방됩니다. ]
아카이브가 던전을 발견했음을 알려 주었다.
버거걱!
목이 부러진 용 조각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자 조각상이 있던 자리에 선이 그려지며 굵직한 소음과 함께 양쪽으로 벽면이 벌어졌다.
던전의 입구였다.
그곳의 내부는 마치 잔잔한 우물의 속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게이트와는 또 다른 느낌.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강렬한 그 느낌이 마치 헨리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느낌이었다.
헨리가 우물 속 같은 던전 속에 손가락을 갖다 댔을 때였다.
[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던전에서 나오실 수 없습니다. ]
짤막한 경고 문구가 헨리의 눈앞에 떠올랐다. 안내 문구를 본 헨리는 클레버의 조언을 떠올렸다.
던전과 게이트는 그 개념이 완전히 다릅니다. 튜토리얼 구간의 게이트는 종류에 따라 언제든 나올 수 있기도 하지만 어비스 안의 던전들은 특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절대로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니 만약 힘이 부족하다 생각되시면 반드시 재고하셔야 합니다.
유념은 하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카이브의 물음에 헨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대신 과감하게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헨리가 던전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봤냐?”
“봤다.”
“뭐야, 저거?”
“아카이브 알림에는 저런 게 있다고 들은 적이 없는데?”
조심스레 헨리를 뒤쫓아 온 네 사람은 크라운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끝까지 주시했다.
스토킹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감지술사 리리트는 감지가 특기인 만큼 자신의 흔적과 기척을 숨기는 것에도 수준급이었으니까.
그런데 성공적인 스토킹 뒤에 보게 된 것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네 사람이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어떡할래?”
“어쩌지?”
“음…….”
마주 보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실론에게로 향했다.
팀을 설립한 게 실론이라 실론이 사실상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실론은 얼마간의 고민 끝에 대답했다.
“일단 저게 뭔지 확인해 보자.”
눈대중으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이곳은 어비스이니 필히 아카이브가 정보를 알려 줄 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우물 속 같은 던전에 손을 넣자 안내 문구가 떠올랐고 네 사람은 이곳이 던전임을 알게 되었다.
게이트가 아닌 던전.
실론이 말했다.
“이곳이 내가 아는 그런 던전이고, 우리도 추가로 입장할 수 있는 곳이라면 시간을 좀 더 두고 뒤를 밟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얼마나?”
“그게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들의 점수를 모두 95점까지는 확보를 한 후에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현명했다.
지금 결성된 팀이 미션을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팀인 만큼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
예컨대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모두들 최소한의 점수를 모으고 다시 이곳을 조사하기로 했다.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 되면 옆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팀원이 아닌 비상 점수가 될 터였으니까.
그렇기에 그 누구도 제안에 반박하지 않았다.
이중에 그 말의 뜻도 모를 멍청이는 없었으니까.
“그럼 크라운이 던전을 클리어 하기 전에 우선 점수부터 채우고 오자고.”
“설령 이렇게 크라운을 놓친다고 해도 아쉬워하지 말자.”
“크라운과 던전은 보너스 정도로 치자고.”
다행히 던전에 대한 욕망을 먼저 앞세우는 자는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이곳까지 오면서 조급한 마음과 섣부른 선택, 그리고 작은 것에 욕심을 부리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잘 아는 ‘생존자’들이었으니까.
“움직이지.”
결론을 내린 네 사람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봉인된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
[ 던전의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
[ 던전의 주인을 죽이지 못하면 던전에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
[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
[ 던전의 주인 사냥 0 / 1 ]
[ 반룡의 원념 수집 0 / 30 ]
눈앞에 쏟아지는 알림들.
확실히 지구의 게이트와는 그 궤가 달랐다.
헨리는 떠오른 알림들 중 맨 마지막 구절을 응시했다.
그런 다음 인벤토리에서 명함을 꺼내 찢었다. 허멀트의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던전 내부라고 해서 허멀트가 소환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허멀트는 차원탑 곳곳을 누비며 장사하는 차원상인이었으니까.
허멀트의 발랄한 인사에 헨리가 대답했다.
“혹시 반룡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반룡이요?”
“그래. 여긴 D구역이다.”
“D구역의 반룡?”
헨리의 물음에 허멀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내 곧 사색이 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헨리에게 물었다.
“여기…… 설마 거기예요?”
“거기가 어딘진 모르겠다만 반룡과 연관되어 있는 건 확실하지.”
“맙소사……!”
허멀트의 눈이 커졌다.
덩달아 두 주먹도 꽉 쥐어 보였다.
두려운 게 아니다.
마치 심마니가 삼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여기가 그 소문으로만 듣던 중층로의 그 던전이라니!”
“여기에 대해 아나?”
“그럼요! 아마 여기가 제가 아는 그 소문의 던전이 맞다면 이건 대박 사건이에요.”
그 말에 헨리가 추가 정보를 요구하는 눈빛을 띠자 허멀트가 말을 이어 나갔다.
“중층로 첫 번째 미션지에 숨겨져 있다는 전설적인 던전은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전설처럼 구전되는 이야기지만 저희 차원상인들 사이에선 이미 전설이 아니라 사실인 것으로 규정되어 있거든요.”
“왜지?”
“여길 다녀간 플레이어와 거래한 상인이 있으니까요.”
“그럼 이곳에 대해 꽤 잘 알겠군.”
“흠흠, 그분들은 거물이시라 저도 그냥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게 전부입니다만…… 그래도 아주 쓸모없진 않을 걸요?”
“말해 봐라.”
“여기가 만약 제가 들은 그곳이 맞다면 이곳의 주인은 높은 확률로 용일 겁니다.”
“그 정돈 나도 알고 있다. 아카이브 알림에 반룡이라고 표시된 것 자체가 용족과 관련된 것일 테니까.”
“크흠, 민망하네요. 하지만 이건 모르실 걸요? 그 용이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
그 말에 헨리의 눈이 빛났다.
그래.
이런 정보가 필요했다.
“어떤 힘이지?”
“차디 찬 냉기의 힘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빙룡인 건가?”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냉기와 관련된 무구가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되실 겁니다.”
“냉기라.”
냉기.
그 말에 헨리는 잠시 고민한 끝에 말했다.
“그럼 빙마의 방패와 용암 도롱뇽의 바늘이 적당하겠군.”
빙마의 방패와 용암 도롱뇽의 바늘.
클레버의 정보 속에 있는 수많은 아이템들 중 현재 상황과 가장 적합해 보이는 나름의 고민 끝에 선택한 무구들이었다.
그 말에 허멀트가 혀를 내둘렀다.
“안 그래도 그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긴 했는데…… 역시 볼 때마다 대단한 분이십니다. 근데 설마 이번에도 외상 거래인가요?”
“그렇다면?”
“흠흠, 그게 말이죠…… 제가 고객님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외상 거래만 하시는 건 좀…….”
“여기서 나오는 아이템에 대한 처분권을 주지. 전설적인 던전이라면 그에 걸맞은 전리품도 나올 테니까.”
“흠, 그것 참 솔직한 제안이긴 한데 말이죠. 이게 뭐랄까 그게 좀…….”
허멀트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다.
사실 허멀트가 고민하는 건 외상의 유무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헨리가 홀로 이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였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전설적인 던전이었으니까.
그에 헨리가 손아귀를 펼쳤다.
그런 다음 손아귀에서 지옥불 업화를 조금 피워 올리자 허멀트의 눈이 또다시 휘둥그레 커졌다.
“그, 그 불꽃은!”
“지옥견 워로베로스를 사냥하고 얻은 불꽃이다. 이 정도면 네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한가?”
생존에 대한 근거는 말이나 눈빛 같은 게 아닌 직접적인 힘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업화를 보여 준 것이고 허멀트는 대번에 납득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번 건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저도 고객님을 믿겠습니다! 그럼 이왕 투자하는 김에 몇 가지만 더 투자하도록 하죠.”
[ <빙마의 방패>를 획득하셨습니다. ]
[ <용암 도롱뇽의 바늘>을 획득하셨습니다. ]
[ <종합 회복 포션> 1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
[ <종합 상태이상 치료제> 1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
인벤토리에 쌓이는 아이템들.
헨리는 우선 빙마의 방패와 용암 도롱뇽의 바늘부터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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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마의 방패 ]
- 등급 : 요정, 특별, 신비, 장인
- 설명 : 요정 대장장이가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방패. 그 안에는 냉기를 먹는 괴물이 심어져 있다고 한다.
모든 종류의 냉기를 흡수방어 한다.
단, 종류에 따라 흡수 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으며 한계치를 초과 할 경우 더 이상 냉기 저항능력은 발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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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암 도롱뇽의 바늘 ]
- 등급 : 사냥꾼, 특별, 장인
- 설명 : 용암 도롱뇽의 척추를 깎아 만든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는 드워프제 무기.
용족, 파충류 계열 상대에게 찌르기 공격 시 공격력과 관통력이 200% 상승한다.
화염 계열 베이스 스킬 사용 시 칼 끝을 통해 분출이 가능하며 그 공격력과 파괴력이 200%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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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옵션들.
확실히 상대가 냉기에 특화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들이었다.
치료제들의 정보는 확인하지 않았다.
안 봐도 뻔했으니까.
허멀트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요?”
“충분한 것 같다.”
“절대 죽으시면 안 됩니다, 고객님? 저 이거 고객님 믿고 하는 투자라구요, 투자!”
“알겠다.”
“휴, 전 원래 이런 거 안 하는데 정말…….”
말은 그렇게 해도 믿음이 충만했다.
헨리도 그 사실을 알기에 담백하게 대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사냥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