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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38화 (438/522)

2부. 38화

“헨리 님!!”

누가 듣든 말든 데폴랑은 한껏 반가운 목소리로 헨리의 이름을 외쳤다.

그에 헨리가 제자리에 서서 데폴랑을 기다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했다. 성곽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긴 하나 그래도 혹시 몰라 존대를 유지했다.

이윽고 헨리 앞에 데폴랑이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한 데폴랑은 헨리 앞에 서자마자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배려가 무색해지는군.”

“다른 사람들의 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배려라면 이미 넘칠 만큼 받았는걸요.”

역시 데폴랑이었다.

이어서 데폴랑이 살짝 아쉬운 기색을 비치며 말했다.

“그……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건데, 가실 거죠?”

“그래. 갈 것이다.”

“아쉽네요.”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너와 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까.”

데폴랑도 처음부터 하층에서 사는 걸 목표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비스에 입탑한 자라면 모두들 하늘을 보고 들어온 자가 대부분일 테니까.

하지만 그런 데폴랑의 마음이 바뀌게 된 건.

‘착해빠진 천성 때문이겠지.’

불의와 곤경에 빠진 동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추구하는 바는 항상 바뀔 수 있고 타인의 목적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니까.

헨리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조언을 하나 하자면.”

그 말에 데폴랑이 고개를 들었다.

“강해져라. 네가 추구하는 바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조언.

헨리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작별 선물.

그 말에 데폴랑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예, 헨리 님! 잊지 않고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말을 마친 헨리의 신형이 사라졌다.

허나 어디로 갔는지는 알았다.

바다의 수평선처럼 드넓게 퍼져 있는 지평선.

언젠가 때가 된다면 자신도 가야 될지 모를 외부 지평선 너머로 데폴랑이 경계를 올렸다.

*

‘여기가 한국.’

김포 공항.

가벼운 가방 하나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이는 다름 아닌 렌이었다.

‘협회를 찾아가라 했지?’

연차 허락이 떨어지지 않자 렌은 결국 클랜에서 탈퇴했다.

후회는 없었다.

어렵게 입사한 곳이긴 하나, 굳이 백월이 아니라도 자신이 다닐 만한 곳은 많았으니까.

그렇기에 렌에겐 그런 것보다도 어비스에서 겪었던 일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렌이 공항 입구에 늘어진 택시 하나를 잡아타며 말했다.

“헌터 협회로 가 주세요.”

*

한참을 날았다.

황량한 사막 같은 대지를 한참이나 날아가다 보니 저 멀리 웬 숲지대가 보였다.

그런데 잎이 단풍처럼 붉다.

헨리는 얼마간 더 날아 숲지대 앞에 섰다.

‘여기가 그 중층으로 가는 숲이군.’

중층으로 가는 숲.

클레버가 말하길 정식 명칭은 미들 포레스트이며 미들 포레스트는 중층로의 입구와 같은 역할이라고 했다.

숲에 들어가기 전, 헨리는 상태창을 다시 확인했다.

++

[ 헨리 모리스 ]

- 신분 : 하층민, 이레귤러

- 특성 : 없음

- 공격력 : 15

- 방어력 : 15

- 관통력 : 15

- 친화력 : 15

- 지배력 : 15

- 어비스 포인트 : 425,025 ap

++

전체 스탯이 벌써 평균 15를 웃돈다.

식스랜드를 벗어나기 전 스탯 등급을 중급으로 맞추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중층로를 건너게 되면 그 과정에서 필히 스탯들이 오를 테니까.

헨리는 우선 스탯 페이지를 사용해 빈 스탯 홀을 추가로 확보했다.

[ <스탯 페이지>를 사용하셨습니다. ]

[ 상태창에 새로운 스탯 칸이 추가됩니다. ]

이어서 중급 무색의 룬을 사용하자 전에 그랬듯 획득할 수 있는 중급 스탯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헨리는 잠깐의 고민 끝에 스탯을 선택했다.

[ 스탯이 선택되었습니다. ]

[ <스탯 : 저항력>]을 획득하셨습니다. ]

중층에선 하층과는 달리 필수로 가져야 하는 스탯이 약 2배는 된다.

헨리는 그중 아직 획득하지 못한 것들 중 저항력을 택한 것이다.

‘회복력이나 재생력도 중요하지만, 어중간한 스탯으로는 있으나마나라 들었다.’

물론 저항력도 개수 자체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저항력은 회복력과 재생력과는 달리 회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선택하였다.

헨리는 이어서 티탄을 쓰러뜨리고 손에 넣은 티탄의 룬을 확인했다.

++

[ 티탄의 룬 ]

- 등급 : 룬, 보스

- 설명 : 하층 최강의 포식자들 중 하나인 다눈박이 거인족 티탄의 룬.

사용 시, 거인족의 힘을 얻을 수 있으나 어떤 힘인지는 알 수 없다.

++

워로베로스의 룬과는 달리 티탄의 룬은 무엇을 획득할 수 있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거인족과 관련된 룬을 손에 넣으신다면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사용하세요. 거인족은 탑 내에서도 상위 종족으로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녀석들이거든요.

클레버의 신신당부 같은 조언이 있었기에 헨리는 거리낌 없이 티탄의 룬을 사용했다.

[ <티탄의 룬>을 사용하셨습니다. ]

[ <스킬 : 거인의 힘>을 획득하셨습니다. ]

‘거인의 힘?’

헨리는 즉시 정보를 확인했다.

++

[ 거인의 힘 ]

- 등급 : 대지, 거인, 종족계승

- 설명 : 엄청나기 그지없는 거인들의 힘의 스킬화.

거인들은 태생적으로 힘이 강하고 방어력과 저항력이 뛰어났으며 땅의 축복을 타고 났다.

스킬 사용 시, 하루에 한 번 가진 에테르의 30%를 사용해 거인의 힘을 빌려 올 수 있으며 10분간 사용자의 모든 파괴력, 방어력, 저항력을 300% 상승시킨다.

++

‘음.’

거인의 힘.

상시 사용할 수 있는 업화와는 달리 하루에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리스크를 감안해도 비장의 수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이로써 헨리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업화와 거인의 힘 2개.

헨리는 이어서 마지막으로 획득한 아이템인 ‘초대장’을 꺼냈다.

‘초대장이라.’

마스터 웨이브 자체에서 나온 게 아니라 헨리의 활약을 보고 어비스에서 자체적으로 지급한 것.

뭘까?

정보를 확인했다.

++

[ 초대장 ]

- 등급 : 특별, 유일

- 설명 : 당신의 활약을 본 가장 뜨거운 불의 주인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초대에 응할 시, 어비스에서 가장 뜨거운 곳에 손님 신분으로 입장하게 됩니다.

++

‘가장 뜨거운 곳?’

모호한 설명.

허나 ‘손님’ 신분이라는 것은 뭔지 알고 있다.

층계에 상관없이 손님 신분이 적용되면 에테르 농도를 비롯한 스테이지 특성 피해로부터 해방되게 해주는 장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 내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라는 건 역시 애매한 설명이었다.

‘예상되는 곳이 한 군데 있긴 하지만…….’

업화의 스킬 설명과 빗대어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하나 있긴 했다.

바로 지옥.

허나 탑 내에 정말 지옥이 존재할 지도 만무하고 정보도 없는 상황에 섣불리 초대에 응할 순 없었다.

‘이건 나중에.’

초대장은 집어넣었다.

준비를 마친 헨리는 숲 속으로 발을 디뎠다.

*

얼마간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였다.

꺽-! 꺽-! 꺽-!

굵직한 소리.

나무를 도끼로 치는 소리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리의 근원지로 가니 예상대로 거대한 남자가 나무를 하고 있었다.

“휴, 손님이군.”

인기척은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허나 남자는 귀신같이 헨리의 기척을 읽고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남자가 말했다.

“난 목웅. 중층로 입구를 관리하는 문지기이자 관리자다.”

남자의 이름은 목웅.

소개 그대로 중층로로 향하는 입구의 관리자였다.

목웅이 물었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중층로에 가기 위해서겠지?”

“그렇다.”

“인장을 보여라. 네가 가진 인장에 따라 맞는 길을 제시해 줄 테니.”

“없다.”

“뭐?”

“쓸모가 없어서 팔았다.”

“……?”

잠깐의 침묵.

헨리의 말에 목웅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정말이냐?”

“그래.”

“하…… 허…… 허, 참…….”

기가 찬 나머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꽤 오랜 세월 동안 6번 구역의 중층로 관리자를 해 왔지만 인장을 팔아 버렸다는 놈은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군. 나쁜 방법은 아니긴 하다만은…… 그렇다면 넌 엘리트였겠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6번 구역에서 왕은 나온 적이 없고 노동자나 기술자의 인장은 식스랜드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을 테니까.”

“틀렸다.”

“그럼?”

“내가 판 건 왕의 인장이다.”

“……뭐?”

목웅의 표정이 또다시 구겨진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

허나 진실이었다.

“난 하층로 9존 마지막 관문에서 흑문의 워로베로스를 쓰러뜨리고 왕의 인장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식스랜드 내에서 인장의 쓰임을 다 하고 적당한 자에게 넘겼지. 확실하게 대가를 받은 뒤에.”

“그게 말이 된다고?”

“안 될 건 뭐지? 인장을 거래하지 못한다는 규칙은 본 기억이 없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하, 씨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나.”

할 말이야 많았다.

하층에선 계급이 전부다.

말인즉, 왕의 인장을 갖고 있다면 그곳에서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다.

특히 고향에서의 신분이 별 볼 일 없었거나 특이한 사정이 있는 자라면 과거를 세탁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는 뜻.

목웅의 성향은 그랬다.

관리자지만 평화를 좋아했고 남들과 섞이는 게 싫어 인적이 드문 이곳을 지원했다.

허나 헨리의 성향은 그렇지 않았다.

“무얼 말하려는 건지는 알겠지만 나는 별로 관심 없다. 인장은 이미 팔았고 난 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다. 그럼 안내나 해 줬으면 좋겠는데.”

굳이 짧게 말하거나 뒷말을 생략하지 않고 관리자에게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그 단호함에 목웅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대신 선택지를 주지. 하층로는 9개의 선택지가 있었겠지만 이곳에는 4개의 길이 있다. 각 계급 별로 준비한 길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가진 계급에 맞춰 갈 필요만은 없다.”

“그럼 왜 굳이 4개 길을 준비한 거지?”

“배려지, 배려. 여기까지 찾아오는 놈들은 대부분 노동자나 기술자거든.”

“그렇군.”

이해가 됐다.

식스랜드에 있으면 계속 착취당할 테니 차라리 탈출하고자 한 플레이어가 많았을 터.

목웅이 웃었다.

“하지만 난이도 또한 당연히 달라. 여기까지 온 이상 대충 알겠지만 난이도가 다르다는 건 보상도 다르다는 걸 의미하지.”

“알고 있다. 그럼 난 최고 난이도의 길을 택하겠다.”

그 말에 목웅의 입꼬리가 더더욱 올라갔다.

“왕의 인장을 택했다더니, 정말이었나 보군. 하지만 명심해. 선택은 너의 자유지만 선택에 따른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걸.”

대답할 필요도 없을 말.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목웅은 다시 도끼를 들었다.

그런 다음 패던 나무를 마저 찍기 시작하더니.

쩌저저저적- 쿠웅!!

족히 수백 년은 되었을 법한 나무가 거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런데 나무가 쓰러지자 쓰러진 나무 밑동 위로 익숙한 차원문 하나가 열렸다.

“들어 가. 네가 원하는 길이다.”

꽤나 특이한 방식으로 문을 연다고 생각했다. 허나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고 헨리는 말없이 차원문 속으로 들어갔다.

[ <중층로>에 입장합니다. ]

아카이브가 헨리의 발자취를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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