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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31화 (431/522)

2부. 31화

헨리가 열쇠를 조작한 순간.

[ 혈라은행의 금고지기가 당신의 호출에 응합니다. ]

아카이브의 알림이 떠올랐고 눈앞에는 전에 한번 만난 적 있던 뱀파이어 금고지기, 뱅키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혈라은행에서 개인 금고들을 담당하고 있는 금고지기, 뱅키드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본 뱅키드는 이번에도 역시 예를 갖춰 인사했다.

“이번에도 찾아주셨군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거짓 인장을 꺼내고 싶은데.”

“거짓 인장 말씀이시군요. 거짓 인장의 출품 수수료는 약관에 의거하여 10,000ap로 책정됩니다.”

“지불하지.”

[ 10,000 어비스 포인트를 사용하셨습니다. ]

[ <거짓 인장>을 획득하셨습니다. ]

“또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없다.”

“그럼 서비스가 필요하실 때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이만 혈라은행이었습니다.”

뱅키드는 이번에도 역시 예의를 갖춰 퇴장 인사를 올렸다.

뱅키드가 사라진 후 헨리는 거짓 인장의 정보를 확인했다.

++

[ 거짓 인장 ]

- 등급 : 하층, 특별, 장인

- 설명 : 하층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인장을 띄워 보일 수 있는 장난감.

사용법은 보통의 인장과 같으나, 누군가 말했다, 이딴 장난감은 대체 왜 만드는 거야?

++

거짓 인장을 획득한 헨리는 설명에 쓰인 대로 우선 최하급 계급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인장을 띄워 보았다.

삽과 곡괭이가 교차 돼 있는 노동자들의 상징. 붉은 바탕에 검게 표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헨리가 허멀트가 아닌 혈라은행에서 비싼 수수료를 내고 거짓 인장을 구매한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허멀트에게 거짓 인장을 구매하는 것보다 혈라은행에서 인장을 찾는 것이 더 싸게 먹혔으니까.

게다가 이번 층계에서 거짓 인장은 헨리가 보기엔 한 번쯤은 반드시 도움을 받을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클레버가 말해 준 정보대로라면 말이지.’

그때였다.

부우우우──!!

거대한 나팔 소리.

마치 전시 상황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를 닮아 있다. 그리고 얼마 뒤.

[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

아카이브가 알림 하나를 헨리 눈앞에 띄웠고.

두두두두……

헨리는 저 멀리,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엄청난 수의 몬스터 떼를 볼 수 있었다.

‘벌써 시작인가.’

클레버에게 들어 하층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다. 그중 몬스터 웨이브는 하층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

몰려오는 몬스터를 지켜보던 헨리는 이윽고 자취를 감추었다.

*“온다! 놈들이 온다!”

“모두 전투 준비!”

“대열을 맞춰!”

“기름이랑 돌 가지고 와!!”

식스랜드.

그곳은 하층 6번 구역에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세계이자 도시의 이름으로 갑작스레 발동된 몬스터 웨이브 탓에 도시 전체에 비상령이 떨어졌다.

“이번엔 뭐야?”

“그게…….”

기술자 계급이자 현장 지휘관 중 하나인 카엘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병사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병사가 얼른 허리춤의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아아, 거리지 말고 뭐냐고!”

“오, 오크입니다!”

“오크라고?”

“예……! 심지어 오크 라이더도 꽤 보입니다.”

“공성병기는?”

“그게…… 다섯…… 아니, 열… 최소 열 개는 됩니다.”

“제기랄.”

카엘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따금씩 출몰하는 오크들은 식스랜드에 있어 성가신 몬스터들 중 하나였는데.

그냥 오크들만 몰려오는 거라면 모를까, 쉽게 성벽을 넘는 오크 라이더와 더불어 공성병기까지 갖춘 웨이브는 최악 중에 최악의 군세 중 하나였기 때문.

‘하필이면 오크라니…….’

지난번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낸 지 이제 겨우 열흘이 지났다.

식스랜드에서 열흘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몬스터 웨이브를 잘 막아 냈다면 모를까, 한번 쳐들어올 때마다 피해가 꽤 생기는 식스랜드 특성상, 열흘은 모든 걸 회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제기랄, 예상도 안 되는 웨이브 주기를 탓할 수도 없고 결국은 또 죽기 살기로 막을 수밖에 없는 건가.’

물론 방법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리트 계급원들이 함께 싸워 주는 것.

허나 기대할 수 없었다.

철저한 계급주의 시스템을 이용해 스스로 카르텔을 만들어 버린 엘리트 계급원들은 정말 자신들이 필요할 때가 아니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카엘 또한 그 사실을 잘 알았지만 그래도 증원 요청은 해야만 했다.

미리 보고해 두지 않으면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묻게 되기 때문에.

카엘이 아카이브를 조작해 대화 채널을 바꾸었다.

“웨이브 구성은 오크로 확인. 근데 라이더 다수, 그리고 공성병기도 최소 열 이상 보임. 화력지원 요청 바랍니다.”

카엘의 무전이 있고 얼마 뒤였다.

- ……알겠다.

대답이 돌아왔다.

허나 미덥지 못했다.

그렇기에 다시 일반 채널로 바꾸고 전장에 집중했다.

얼마 뒤 망원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오크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머릿수는 척 보기에도 수천.

평소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공성병기와 이족보행 도마뱀을 탄 오크 라이더들 때문에 평소보다 더더욱 긴장이 됐고 성벽 위에 선 병사들도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쿵-! 쿵-! 쿵-!

거대한 발걸음 소리.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난 게 아니었다.

수천 마리에 이르는 오크들이 동시에 발을 박차기 시작한 것이다.

쿵! 쿵!

“아우!”

쿵! 쿵!

“아우!”

발 구름에 맞춰 집어넣는 기합.

한두 마리가 아닌 무려 수천에 이르는 오크들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자 그 위용은 이루 말하지 못할 만큼 대단했으며 동시에 오크들의 사기 또한 하늘을 찔렀다.

그와 더불어……

“미치겠네, 시발…….”

카엘을 비롯한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오크들의 군세에 아군 측 병사들이 위축되기 시작한 것.

그때였다.

“아우!!”

오크 선봉장의 외침.

그와 동시에──

“아우우우!!!”

“아우우!”

“오오오!!”

오크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대열 흩트리지 마!”

“이탈하지 말라고!!”

“아우우우!!”

으적─!

전쟁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전쟁을 게임처럼 여긴다.

하지만 전쟁은 현실이다.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 나가고 눈 깜짝할 새에 자신의 다리가 잘려 나가는.

익숙해지고 싶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곳이 바로 전선이었다.

그때였다.

“좌측에 투사체가 온다!!”

어느 병사의 외침에 몇몇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오크들이 가지고 온 공성병기가 던진 거대한 바위였다.

그것은 갑자기 나타났다.

병사들이 미련해서 못 본 게 아니다.

오크들 중 한 놈이 순간적으로 투사체를 투명화시켜 그리 된 것이다.

뒤늦게 바위를 발견한 카엘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바위가 떨어질 위치가 아직 보수 공사가 채 끝나지 않은 취약지점이었기 때문.

저곳에 저만한 바위가 떨어지면 십중팔구 성벽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오크 군단이 밀려들어올 것이다.

“제기랄……!”

지원 요청한 화력대는 아직 도착도 안 했다.

그럼 그렇지.

빌어먹을 엘리트 놈들.

분명히 이번에도 대답만 하고 안 보내준 게 뻔했다.

그때였다.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떨어지던 바위에 선이 그어지더니 깨끗하게 두 동강이 났다.

그뿐일까?

바위를 갈라낸 사내는 오크들을 향해 자신이 가른 바위를 그대로 돌려보냈다.

쿠구궁!

쿠궁!

“쿠에에에!!”

엄청난 힘.

바위 두 쪽을 돌려보낸 사내는 허공에서 한 번 더 도약하더니 카엘이 있는 곳 옆에 안착했고 그자를 본 카엘이 반가움과 미안함이 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외쳤다.

“데폴랑 님!”

건장한 체구.

그와 더불어 길고 하얀 머리는 끈으로 꽉 조여 묶었으며 깎지 않은 수염 사이로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허나 그것은 자신의 힘듦을 가리기 위한 미소였다.

거대한 창을 든, 통칭 ‘영웅’이라 불리우는 데폴랑이 사람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예, 카엘 님.”

“데폴랑 님, 분명 아직 상처가……!”

카엘이 뒷말을 흐렸다.

대답을 받기도 전에 이미 데폴랑의 어깨 갑옷 사이로 피가 새고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 데폴랑이 식은땀과 함께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본대의 증원은 이번에도 물 건너 간 것 같아 보이는데.”

“데폴랑 님……!”

“물론 저도 오래는 못 버팁니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건 진통제 때문이에요. 그러니…….”

데폴랑이 자신의 창을 들어 건너편 전장에 우뚝 솟아 있는, 오크들의 공성병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만 제가 처리할 테니 뒤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모하기 그지없는 말.

그도 그럴 게 공성병기를 처리하겠다는 건 아군 하나 없는 적지에 홀로 뛰어들겠다는 말이었으니까.

허나 본대의 지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공성병기만이라도 사라진다면 이번 싸움은 확실히 해 볼 만한 것이었다.

카엘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곧 미안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데폴랑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동료끼리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말을 마친 데폴랑은 품에서 마약성 진통 효과가 있는 이파리를 꺼내 씹었다.

그리고 히어로처럼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쾅! 쾅! 쾅!

“아우우우!!”

오크들의 격렬한 외침.

그것은 다급함이었다.

이유는 전과 같았다.

데폴랑 마시우스.

그 빌어먹을 자식이 또 자신들 사이로 들어와 전장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우!”

“아우!!”

막으라는 지휘관들의 외침.

허나 일개 오크가 막아내기에 데폴랑은 평범한 병사가 아니었다.

그는 영웅이었다.

허공에서 한 번 더 도약한 데폴랑은 허리축을 회전시켜 창날에서 거대한 참격을 발산시켰다.

효과는 굉장했다.

제아무리 거대한 공성병기라 할지라도 금속이 아닌 목재로 이루어진 그것은 참격을 견뎌 내기엔 너무나도 나약한 것이었으니까.

‘이로써 7개째.’

파괴 작전은 순조로웠다.

슬슬 진통 효과가 떨어져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아직은 버틸 만 했다.

그때였다.

- 부우우우우우!

거대한 뿔각 소리.

그와 동시에 데폴랑은 전신에 한기가 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레 기후변화가 일어난 게 아니다.

본능에 의거한 저릿한 한기였다.

쿵!

거대한 진동.

그와 함께.

[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

믿고 싶지 않은 알람이 떠올랐다.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보스 몬스터라니.

예상보다 너무 빨리 나와 버렸다.

놀란 건 카엘도 마찬가지였다.

카엘은 눈자위를 굴려 보스 몬스터를 찾았다.

저 멀리 보이는 검고 커다란 덩어리.

‘블랙 오우거’였다.

블랙 오우거를 발견한 카엘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데폴랑!! 돌아와!! 블랙이다!!”

하필이면 블랙 오우거다.

블랙 오우거는 오우거들 중에서도 물리 내성에 특화된 보스.

제아무리 데폴랑이라 할지라도 혼자선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

데폴랑도 그런 사실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또한 본대의 증원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그렇기에 지금 여기서 데폴랑을 구하러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쿠어어어어!!!”

블랙 오우거의 피어.

그 거대한 울음소리에 데폴랑의 몸이 굳었다.

‘제기랄!’

절체절명의 순간.

피어 때문에 몸이 굳고 사방에는 오크가, 하늘 위에선 블랙 오우거의 몽둥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인 건가…….’

몸을 비틀어 빼고 싶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그동안 억척 같이 버텨 왔다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로 모든 게 한계였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에.

허망했다.

그리고 분노가 차올랐다.

그놈들만 나서 주었다면.

그놈들만 진작에 나서 주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두 눈과 입술을 질끈 다문 데폴랑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죽음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 보스 몬스터가 처치되었습니다. ]

……?

귓가에 울리는 선명한 아카이브의 목소리. 그에 데폴랑은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 저 너머.

두 동강 난 블랙 오우거 사이에 서 있는 한 인물을.

다름 아닌 헨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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