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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27화 (427/522)

2부. 27화

“헨리 씨?!”

헨리가 나타났다.

말도 없이 사라졌을 때만큼 이번에도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하필이면 헨리는 렌과 영주 사이에 나타났고 렌이 사용한 스킬, ‘신성한 돌격’은 발동 중에 웬만해선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피, 피하세요!”

스킬의 발동자인 렌도 멈출 수 없는 것이기에, 렌의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눈을 감는 것.

콰아아앙!!

폭음.

사방에 먼지가 뿌옇게 번졌다.

렌은 눈을 뜨지 못했다.

묵직하기 그지없는 이 충격.

대상이 누가 된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언갈 확실히 들이받았다는 게 느껴졌다.

렌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눈에 보인 것은……

“어, 어……?”

다름 아닌 검지 손가락 하나.

바로 헨리의 검지였다.

“어, 어떻게?”

그때였다.

“어어?”

아래로 쏠리는 무게.

그와 동시에.

콰앙!!

렌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팠다.

머리에 착용한 투구가 오토바이 헬멧과 같은 역할을 한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내부 충격까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렌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눈앞에는 한심한 눈초리로 자신을 보는 헨리와, 잔뜩 겁에 질린 영주를 볼 수 있었다.

“영주님!!”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들.

군장을 비롯한 사병들이었다.

그 소리에 헨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활짝 열려 있던 영주방의 문이 닫혔고.

쾅쾅쾅!!

“영주님! 영주님!”

“문이 왜 이러지! 가서 문 부술 것을 가지고 와라!”

놀랍게도 잠금장치 하나 없던 문이 굳건한 성문처럼 꽉 걸어 잠가졌다. 헨리는 이어서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그러자 렌의 몸에 걸쳐져 있던 무장이 끈 풀린 옷처럼 와르르 해체돼 바닥에 떨어졌다.

“어, 어라?”

“그 멍청한 투구도 계속 착용하고 있을 건가?”

“아, 아뇨! 아닙니다! 절대!”

헨리의 기색을 읽은 렌이 황급히 투구를 벗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영주는 여전히 이불을 끌어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는 영주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마법으로 원래의 복장으로 환복한 뒤 렌에게 물었다.

“왜 영주를 공격한 거지?”

“예?”

그 물음에 렌이 입을 반쯤 벌렸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그야 당연히 영주가 이번 스테이지의 핵심이라…… 근데 이런 거 막 말해도 돼요? 저흰 지금 스테이지에서 용병인 컨셉…….”

그 말에 헨리가 미간을 좁혔다.

“…죄송합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제였군요.”

그러나 영주는 상관이 있었다.

“스테이지? 용병? 컨셉? 그게 다 무슨 소리더냐?”

“아직 네 차례가 아니다.”

헨리는 검지로 마법을 부려 영주의 입과 움직임을 봉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이어 나갔다.

“다시 묻지, 왜 영주를 공격했지?”

마치 학생을 훈계하는 선생님 같은 말투.

그래서일까?

렌은 바짝 긴장한 채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스, 스테이지 클리어 미션이 악을 섬멸하라였잖아요. 그래서 영주를 공격한 겁니다.”

“영주가 악이라고?”

“예. 제가 추론한 바에 의하면 영주가 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거는?”

헨리의 물음에 렌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젊은 영주와 영주의 사병들, 그리고 지하에 감금되어 있던 산지기와 홍수,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충들까지도.

허나 렌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헨리의 미간은 여전히 좁혀져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를 구실로 영주가 영지민들의 고혈을 착취하고 있었다는 거냐?”

“예. 전형적인 탐관오리의 예잖아요. 진짜 지도자라면 민초들의 삶을 고려해 세금은 면제해 준다든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예?”

말을 마친 헨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푸하! 소리와 함께 입과 움직임이 봉해졌던 영주에게 자유가 돌아왔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그리고 곧장 영주의 항의가 이어졌다.

“가만히 듣고 있었더니 억울해서 못 들어 주겠군! 너희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은 똑바로 해야겠다!”

“……에?”

생각지도 못한 반응.

영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미쳤다고 토벤 그놈을 그냥 잡아 온 줄 알아!!”

“그, 그럼요?”

“그놈은 구제불능에 머저리 같은 놈이다! 그놈이 산지기로서 맡은 바에만 충실했다면 홍수 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았어! 그리고 홍수로 흉년이 들지도 않았을 거고 나 또한 제대로 세금을 거둬 왕궁에 공납을 올렸겠지! 근데!!”

악에 받힌 영주는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렌에게 다가가 핏대를 올렸다.

“이번이 세 번째다! 술 처먹느라 산을 제대로 보지 못해 이런 일을 만든 게 이번이 세 번째라고! 근데 내가 악이라고? 내가 악이라고!! 어!!!”

이제 서른은 되었을까?

그는 정말로 억울했는지 핏대를 올리다 못해 안구까지 촉촉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기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진심이야.’

영주의 진심을 말이다.

“그만.”

“뭐가 그만이라는 거냐! 아버님이 직접 임명하셨다 하여 벌써 여러 번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럼에도 산지기 직책을 유지해 준 게 바로 나다! 그런 내가 대체 왜 이딴 취급을! 읍읍!”

헨리가 그만이라 하였지만 분이 풀리지 않은 영주는 계속해서 열변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이번에도 합죽이로 만들었다.

몸도 망부석처럼 굳혔다.

헨리가 시선을 옮겨 렌을 보았다.

“자, 이제 누가 악이지?”

“그, 그게…….”

“산지기는 산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산으로 인해 생길 마을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그런 놈이 전관예우를 핑계로 벌써 몇 번이나 마을에 해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산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헨리의 말에 렌은 입을 다물었다. 헨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같다. 토벤이 문제가 있는 자라는 걸 알았다면 굳이 영주가 산지기를 바꾸지 않더라도 본인들이 먼저 산지기를 교체했어야 옳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지. 토벤은 벨타 마을의 오래된 어른들 중 하나라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

헨리의 설명에 렌은 고개를 숙였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선입견만으로 모든 걸 판단해 버린 자신의 판단이 몹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 태도에, 헨리가 눈살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렌.”

“예…?”

“어비스가 어떤 곳인지 아나?”

“어비스요? 어비스는…….”

“어비스는 놀이터다.”

“놀이터요?”

강자존, 약육강식, 정글……

그런 대답을 하려고 했다.

허나 헨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그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주 위험한 놈의 제멋대로인 놀이터.”

위험한 놀이터.

그게 헨리가 정의한 어비스였다.

헨리의 말이 이어졌다.

“선입견을 버려라. 상식과 도덕도 버려라. 이곳은 강자존도 약육강식도 아닌 어비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만 살아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규율을 내세우고 자기만의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건 오직 강자만의 특권이다.

그렇기에 그 법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강자를 쓰러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며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고개를 숙이고 때를 기다려야 할 수밖에.

헨리의 말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인 것 같네요.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이번 스테이지에서 렌은 꽤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자신이 아는 상식선의 선입견으로 판단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 뻔한 것 등.

허나 그중에서도 가장 경솔하다고 판단되었던 것은.

‘내 멋대로 헨리 씨가 날 시험하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거다.’

그로 인해 죽지 않아도 될 자가 죽을 뻔했다.

다행이었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알게 되어.

헨리가 말했다.

“그럼 여기서 문제.”

말을 잇던 헨리가 렌과 눈을 똑바로 맞추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이곳의 진짜 악은 무엇인 것 같으냐?”

“이곳의 진짜 악은…….”

헨리의 물음에 렌의 머릿속에 인물 몇 명이 스쳐 지나갔다. 허나 쉽게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쳐 오랜 고심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지하에서 만난 토벤이란 작자 같네요.”

“이유는?”

“어비스에서 상식과 도덕, 그리고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면 결국 모든 문제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주는 영주로서 자신이 해야 될 일을 했으니 비정해 보일지언정 악이 아니고 사병들 또한 그런 영주의 명령을 받았으니 자신들이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남은 건 마을 사람들과 토벤뿐인데 마을에 흉년이 들게 한 원인이 홍수고 그 홍수가 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문제라면…….”

답은 하나뿐.

“홀로 자신의 의무를 행하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준 토벤이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예? 그건…….”

“토벤이 왜 술을 먹는지 아나?”

“예?”

“토벤은 원래 건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술을 먹기 시작한 거지, 근데 그 원인이 사실은 영주에게 있다면?”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네가 말했잖느냐,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그럼 어비스가 말하는 악의 기준은 무엇이고 너는 악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규정할 생각이지?”

그 물음에 렌은 대답하지 못했다.

뭐지?

그럼 무엇을 악으로 규정해야 된다는 거지?

렌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함부로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끙끙거리는 렌을 보던 헨리가 말했다.

“이번 스테이지에 정답은 없다, 렌.”

“예? 정답이 없다구요?”

“하층로는 최하층 플레이어가 하층에 입장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9존 3층은…… 아니, 비단 9존 3층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어도 언젠간 9존 3층과 같은 스테이지가 등장할 것이다.”

“이런 스테이지가 어떤 스테이지인데요?”

“플레이어의 가치관을 시험하는 곳.”

“가치관요?”

“모든 스테이지는 어비스를 지배하는 놈들이 플레이어들을 관음하기 위해 만든 놀이터 같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비스는 이곳을 통해 엿보고 싶은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앞으로 어떤 가치관을 갖고 탑을 오를지 말이야.”

“아……!”

“이제 알겠느냐?”

렌은 뒷통수를 크게 맞은 듯했다.

세상에 그런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니. 근데 헨리는 이런 걸 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리고 이런 사실들을 왜 자신에게 알려 주는 거지?

그때였다.

렌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헨리가 그에 대한 물음에 대답해 준 건.

“넌 언젠가 날 대신해 해야 될 일이 있다.”

“해야 될 일요?”

“그래. 날 대신해 할 일. 그러니 넌 그 누구도 모르던 탑의 진실을 알 필요가 있지.”

“하지만 전 그 일을 하겠다고 수락한 적이 없는데요?”

“내가 정말 네가 필요해서 데리고 다니는 걸까?”

그 말에 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헨리는 허멀트에게서 덤으로 받은 대검을 들었다. 그리고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영주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영주의 목이 바닥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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