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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23화 (423/522)

2부. 23화

허멀트의 입이 쓰다.

할 거면 한꺼번에 거래하던가.

매 거래마다 한 번씩 주고받다 보니 후려치기도 뭣도 못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엿 같은 건 상대가 돈을 얼마나 쥐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

‘제기랄, 이 정도면 층계 이동 수수료보다 조금 더 남는 수준이잖아…….’

그래도 손해는 안 봤다.

근데 딱 손해만 안 봤다.

짜증이 물밀듯 밀려왔지만 대놓고 인상을 쓸 순 없었다.

놈은 억지로 할인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덤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더 얄미웠다.

허나 최하층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아니, 단언컨대 82번 구역에서 꽤나 오래 장사했지만 이렇게나 예사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고객은 이 고객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기로 하고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다음에도 거래가 필요하시다면 꼭 저를 찾아주십시오.”

“맨입으로?”

“예?”

“보통 이럴 땐 뭐라도 쥐어 줘야 하지 않나?”

“…….”

그 말에 허멀트가 포션 몇 병을 꺼내 내밀었다.

정보를 확인해 보니 상등품의 회복 포션이었다.

헨리가 포션과 명함을 함께 받으며 말했다.

“기억하지.”

“감사합니다.”

도망치듯 사라지는 허멀트.

허멀트가 내민 명함에는 스테이지 지정 티켓과 비슷한 기능이 있다.

물론 명함의 경우엔 차원상이 직접 온다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이윽고 허멀트가 다시 돌아갔고 잠자코 거래를 구경하던 렌이 그제서야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헨리 씨, 엄청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난 원래 대단하다.”

“이럴 때 보통은 겸손을 취하지 않나요?”

“별로.”

“으음, 이런 캐릭터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아무튼 엄청 대단하셨습니다. 차원상인이 그렇게 쩔쩔매는 건 전 처음 봤거든요.”

82번 구역에서 허멀트의 악명은 자자했다.

뭣 모르는 82번 구역의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가 하면 플레이어들이 처한 상황을 이용해 갑질 아닌 갑질을 할 때가 많았으니까.

물론 헨리는 그러한 사정 따윈 모르고 있었다.

다만 장사치들 중 정직한 놈이 별로 없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렌이 물었다.

“근데 뭘 구매하신 거예요?”

“나를 더 강하게 해 줄 것들.”

“강하게 해 줄 것들요?”

“그래.”

헨리는 구매한 룬들 중 우선 성장의 룬부터 꺼냈다.

그리고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발현하자……

[ <성장의 룬>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성장의 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아카이브가 물었고 헨리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 성장시킬 것을 선택해 주십시오. ]

그와 함께 헨리의 상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떠오른 상태창에는 <강화D> 특성과 한계치까지 오른 모든 스탯들이 빛났다. 마치 서로를 합쳐 주길 바라는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헨리는 익숙한 모양새로 ‘근력’ 스탯과 ‘강화’ 특성을 선택했다.

[ 선택하신 것들이 맞습니까? ]

맞다.

그러자 또 한 번 상태창이 빛나고 새로운 알람이 떠올랐다.

[<스탯 : 근력>과 <특성 : 강화>가 <스탯 : 물리공격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알람이 떠오른 직후, 헨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상태창을 갱신시켰다.

++

[ 헨리 모리스 ]

- 신분 : 최하층민, 이레귤러

- 특성 : 없음

- 물리공격력 : 1

- 체력 : 99

- 감각 : 99

- 에테르 : 99

- 어비스 포인트 : 5,025 ap

++

‘됐군.’

하층로.

특히 9존 1층에서 끝내야 하는 작업.

그것은 바로 스탯의 세대 교체였다.

스탯과 특성은 층마다 속성이 전부 바뀝니다. 그래서 아래층의 존재는 절대로 윗층을 이길 수 없는 겁니다.

자신이 끝끝내 종말들을 굴복시키지 못 했던 이유.

바로 이 빌어먹을 스탯의 호환성 때문이었다.

물론 가우스는 어비스에 속해 있지도 않은데 무슨 호환의 문제겠냐 싶겠지만은……

놀랍게도 클레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비스는 등급만 놓고 보자면 모든 차원들의 상위 호환 격에 해당하는 차원이라 했다.

그렇기에 하위 차원인 가우스는 상위 차원인 어비스의 법칙에 지배될 수밖에 없었던 것.

헨리는 이어서 브렌에게 인정받기 위해 가지고 왔던 부패한 트롤의 룬을 꺼내 들었다.

++

[ 부패한 트롤의 룬 ]

- 등급 : 최하층, 보스

- 설명 : 최하층 스테이지에 기거하는 부패한 트롤의 룬이다.

사용 시, 좋은 것을 얻을지도?

++

헨리는 이것을 사용하지도 팔지도 않았다.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다.

헨리는 부패한 트롤의 룬을 즉시 사용했다.

[ <부패한 트롤의 룬>을 사용하셨습니다. ]

[ <특성 : 회복S>를 획득하셨습니다. ]

그러자 놀랍게도 S등급의 회복 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최하층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S등급 특성 룬이라더니 정말이었군.’

상태창에 <회복S>가 추가된 걸 확이한 헨리는 이어서 성장의 룬을 사용했다.

사용 대상은 좀 전에 얻은 ‘회복’ 특성과 한계치를 찍은 ‘체력’ 스탯.

이윽고 선택한 두 가지가 합성되자.

[ <스탯 : 체력>과 <특성 : 회복>이 <스탯 : 종합회복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종합회복력>이라는 결과물이 나왔다.

보통 회복과 관련된 스탯은 종류가 많습니다. 내상회복력, 외상회복력, 정신회복력 등등…… 근데 S등급을 찍은 특성을 성장시키면 하이브리드라 불리는 녀석으로 성장하는데 최하층 구간에선 오직 ‘회복’ 특성에만 적용되니 반드시 회복 특성만큼은 S등급을 확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클레버는 그 S등급의 특성 룬 조차도 미리 준비해 주었다.

헨리는 이어서 클레버의 조언대로 최하급 특성 룬을 또 한 번 사용했고.

[ <최하급 특성의 룬>을 사용하셨습니다. ]

[ <특성 : 강화E>를 획득하셨습니다. ]

클레버의 말대로 가치로 따지면 가장 저렴한 강화 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허나 상관없었다.

이 또한 설계의 일부였으니까.

헨리는 잇달아 같은 작업들을 반복했고 눈앞에 아카이브의 알림들이 쏟아졌다.

[ <스탯 : 감각>과 <특성 : 강화>가 <스탯 : 물리방어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

[ <최하급 특성의 룬>을 사용하셨습니다. ]

[ <특성 : 강화E>를 획득하셨습니다. ]

[ <스탯 : 에테르>와 <특성 : 강화>가 <스탯 : 스킬방어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이로써 헨리는 모든 룬을 소진했다.

룬을 모두 소진한 헨리가 상태창 정보를 갱신했다.

++

[ 헨리 모리스 ]

- 신분 : 최하층민, 이레귤러

- 특성 : 없음

- 물리공격력 : 1

- 물리방어력 : 1

- 스킬방어력 : 1

- 종합회복력 : 1

- 어비스 포인트 : 5,025 ap

++

새롭게 갱신된 상태창.

지구에서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스킬방어력을 얻어서 다행이군.’

종합회복력을 제외하면 사실 다 예상이 가긴 했다.

강화 특성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선택지는 물리공격력과 물리방어력, 그리고 스킬공격력과 스킬방어력 총 4개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직 스킬 하나 없는 자신에게 스킬공격력보다는 나약한 육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이 조금이라도 있는 게 나았으니까.

준비를 마친 헨리가 2층으로 향하는 문으로 발을 딛기 전 렌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렌이 더더욱 결연해진 눈빛으로 대꾸했다.

“갈 겁니다.”

“그래.”

말릴 생각도 없었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간수하는 거니까.

헨리가 먼저 문 속으로 들어가자 렌 또한 뒤따라 들어왔다.

*“후우…… 후우…….”

청담동의 펜트하우스.

영동대교와 한강변이 잘 보이는 곳 테라스에 누가 앉아 있다.

재하였다.

재하는 반바지 하나만 입은 채 널찍한 테라스 정중앙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사방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바닥에는 처음 보는 문자들과 마법진들로 가득했다.

재하는 벌써 며칠째 그 위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한번 집중할 때마다 집중력이 지속되는 시간은 약 두 시간.

재하 인생을 통틀어 최고점에 달하는 집중력이었다.

그렇게 집중이 모였다가 풀어지길 여러 차례.

별안간 재하의 정신이 눈 뜨이듯 번쩍 뜨였다.

‘드디어!’

심장에 맺힌 콩알만 한 기운.

확실했다.

마력이었다.

‘자꾸 콩알 콩알 거리길래 뭔 말인가 했더니 이런 느낌이었구나…….’

스승님을 어비스로 떠나보낸 지 어언 며칠.

밤중에 일어난 재하는 신기루처럼 퍼진 어비스를 보며 다짐했다.

언젠가 반드시 스승님을 따라 어비스에 가겠다고. 그리고 반드시 스승님과 재회하겠다고.

그리고 그때부터 재하의 ‘마법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환경과 지식은 충분했다.

남은 건 자신의 의지뿐.

그래서일까?

재하는 자신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콩알만 한 기운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좋아. 이 콩알만 한 걸 기점으로 내 전용 마력 코어를 만든다.’

헨리가 재하에게 심어 준 지식은 그야말로 가우스 마법 지식의 전부였다.

심지어 침팬지도 익힐 수 있을 만큼 쉽게 정리가 되어 있어 재하에게 필요한 건 재능도 뭣도 아닌 개인의 의지와 노력뿐.

재하는 계속해서 집중을 이어 나갔다.

헨리가 말하길,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자연에 녹아 있는 마나가 필요한데 사람이 마나를 사용하기 위해선 체내로 마나를 흡수해 ‘마력’이라는 형태로 가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가공체가 바로 지금 만들고 있는 코어인 셈.

재하의 집중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마침내 콩알만 한 코어는 애기 주먹만큼 커졌다.

재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허나 이 모든 과정은 진짜 시작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재하는 최소한의 코어를 만들자마자 바로 다음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바로 마법사라면 응당 해내야 할 고리 만들기.

즉, 서클 생성 작업이었다.

재하의 심장에 첫 번째 고리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재하의 심장에 첫 번째 고리가 완성되던 그 순간, 재하는 지구 최초로 ‘진짜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 <하층로 : 9존 2층>에 입장하셨습니다. ]

문을 통과하자 두 사람의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이내 다시 밝아졌다.

동시에 아카이브의 음성이 들리며 주변 풍광이 바로 잡혔다.

새로이 바뀐 풍광은 밀림도 사막도 아니었다.

웬 좁은 복도였다.

복도 끝에는 문이 있었고 복도는 천장이 3m 정도로 꽤 높았다.

특이한 점은 발광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부가 무척 밝다는 것.

별 것 없는 광경이었지만 9존 2층이란 것 자체를 처음 보는 터라, 흥분한 렌이 아이처럼 주변을 막 둘러보았다.

“여기가 9존 2층……!”

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지구에서 9존 2층을 본 사람은 오직 자신뿐일 것이라고.

헨리는 지구인이 아니라 제외였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한 헨리는 렌처럼 주변을 잠깐 둘러보더니 이내 곧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양손으로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새로운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였다.

“드디어 왔군.”

낯선 목소리.

근데 한두 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문을 완전히 열고 앞을 보았을 때 두 사람은 볼 수 있었다.

머릿수만 십수 명에 이르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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